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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Dec 22. 2017

내가 여기 왜 서 있을까?

이스라엘 성지순례-예루살렘-갈리칸투

*

평화로운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던 순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이곳 예루살렘 시온산 기슭 대사제 카이파스의 저택 밖에 서성이고 있었다. 밤이 되자 서서히 추워지기 시작했다. 호수의 푸른 물을 가르던 어부의 억센 팔뚝끝 손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모닥불에 손에 쬐며 마음을 녹이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그의 눈길은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을 응시했지만 마음은 딴 곳에 있었다. 대사제의 저택 동굴감옥에 갇힌 그분이 마음속에서 자꾸 퉁퉁 징을 치고 있었다.


“내가 왜 여기까지 왔을까?”


쾅쾅 징소리속에서도 뜬금없는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갈릴래아로 다시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군중에 섞여 여기까지 왔지만 돌아 갈 속마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거기엔 아내가 기다리고 있고 연세드신 장모님도 계셨다. 고향 카파르나움의 집이 어두운 시온산에서 갑자기 그리웠다. 갈릴래아 호수의 푸르른 물과 주위에 어우러진 풍경도 눈에 스르르 들어왔다. 내일 새벽 일찍 길을 떠날까? 갈팡지팡 양심의 저울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기울때 갑자기 걸걸한 아낙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저기 갇힌 갈릴래아 사람 알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마음속 저울이 와장창 깨어졌다. “아니오” 대답했다. 눈길은 다시 모닥불로 갔다. 그녀의 눈길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저 모닥불처럼 타버렸으면… 왜 내가 이곳 예루살렘까지 왔을까? 다른 제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시 그 걸걸하게 입담좋은 아낙네가 눈치도 없이 재차 물었다. “저 감옥에 갇힌 사람과 같이 있는 걸 보았는데요?” 베드로의 대답은 이제 여차 없었다. “모른다니까요.” ‘그래! 고향 갈릴래아로 돌아가자 거기서 옛날처럼 고기잡이나 하자. 아내도 기다리고 장모도 기다리는 곳으로... 예루살렘은 내 고향이 아니야. 고향 갈릴래아로 내려가자.’ 마음이 편해졌다.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노를 저을 팔뚝에 힘이 스르르 모아졌다. 모닥불 주위에 있어서 그런지, 아님 마음의 결정을 내려서 그런지 안락한 기분이 잠시 들었다. 그때 다시 걸쭉한 입담의 아낙네가 다시 다그쳤다. “우리가 다 봤는데 뭘 그러시요?” 그는 갑자기 짜증이 났다. “아, 정말 모른다니까요!”


바로 그때 닭이 울었다. “꼬끼오....꼬끼오...”


참을수가 없었다. 서있기가 힘들었다. 뛰쳐나갔다. 대성통 했다. 모닥불을 쬐며 거대한 태양을 망각했던 어둠에서 다시 태양을 보았다. 베드로는 왜 그가 왜 거기 서있었는지 깨달았다.


*****


라틴어로 갈리칸투(Gallicantu)란 말은 ‘닭이 울다’란 뜻이다. 베드로는 세번이나 포승줄에 묶여 잡혀있는 스승을 ‘모른다’며 배신했다. 닭이 두번 울고 난 뒤였다. 바로 그때  베드로는 깨달았다. 스승이 하신 말씀을… 그리고 닭이 아닌 베드로 자신의 통곡이 터져 나왔다.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마르코 14:30


성베드로의 배신과 회한 그리고 눈물이 서린 ‘성베드로 갈리칸투(St. Peter Gallicantu)성당’은 성모승천 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다. 시온산 비탈에 지어져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바로 키드론 계곡이다. 멀리 예수님이 잡혀서 끌려 오신 올리브산도 보인다. 베드로는 여기서 희망이 아닌 절망을 굽어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 성베드로 갈리칸투 성당터는 원래 비잔틴 시기인 457년경 성당이 세워졌다. 그러나 악명높은 알-하킴의 이슬람군에 의해 폐허가 되었고 다시 1102년 유럽의 십자군이 이곳에 성당을 세웠다. 그리고 ‘성베드로 갈리칸투’란 이름을 붙였다. 그것도 얼마 안가 예루살렘 함락 뒤에 다시 폐허가 되었고 지금의 성당은 1931년에야 세워졌프랑스의 성모승천(The Assumptionists) 수도회가 관리한다. 갈리칸투 성당의 지붕에 베드로의 닭을 상징하듯 황금수탉(a golden rooster)이 지붕솟아 있다. 성당정문은 철로 이루어져있으며 문의 조각도 예수님이 한손은 손가락 세개를 내밀며 베드로가 세번 배신했음을 보여주고, 다른 한손은 누구를 지적하는 손이다. 베드로만일까? 아니다. 그건 베드로만 아닌 우리 모두를 향하는 것다. 또 당시 상황에 있었던 닭, 질문한 여인 그리고 병사도 같이 있었다. 성서의 말도 새겨져 있었는데 베드로가 모른다고 잡아 뗀 말이었다.


“여인이여, 전 그 사람을 몰라요.”-루카서 22:57

"Woman, I know him not"! -Luke 22:57


이 성당터는 원래 대사제인 카이파스(Caiaphas)의 집이었다고 전한다. 이 곳에서 꼭 보아야 할 중요한 것은 성당 아래 예수님이 하루밤을 잡혀 보냈던 지하감옥이고 다른 하나는 성당 바로 옆의 2000년이 넘은 비탈의 돌계단이다. 지하감옥 밑으로 들어가면 당시의 좁은 동감옥의 흔적을 볼수 있다. 어떻게 대사제의 집 아래 천연 동굴이 있고 거기에다 죄수들을 가두었는지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지하로 내려가자 숙연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2000천년이 지난 지금도 부패가 만연해 정의가 지배하는 정당한 세상이 아니란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세상의 양심수를 이곳에서 기억했다. 깊고  어두운(사실은 전기불로 밝게 해놓았다. 그러나 마음이 어둡다...) 동굴감옥을 나오면 성당 옆에 고대의 계단이 있다. 지금은 계단의 위쪽 몇단만 개방되어 순례자들이 사진을 찍을 수 있고 나머지 아래 계단은 보호해 놓고 있다. 이 계단이 장장 2000년도 훨씬 넘었다고 하니 아마 예수님이 계곡의 저편 올리브산에서 붙잡힌 다음 포승줄에 묶힌채 이 계단을 걸어 올라오셔서 아래 동굴감옥으로 끌려갔으리라 한다.


그리고 스승이 이 어두컴컴한 동굴감옥에 갇혀 있는 바로 그날 밤, 베드로는 스승을 이곳까지 따라왔다. 스승을 완전히 버릴수는 없었다. 이 대사제집 밖에서(court에서) 모닥불을 쬐며 세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다.


“몰라요!

몰라요!

정말 모른다니까요…”


성당 지붕의 십자가위의 닭을 쳐다보았다. 닭이 울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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