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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Dec 29. 2017

TIME: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

런던 에세이

갈릴래아 호수너머로 지는 태양

또 다시 새해가 밝아온다. 세월 유수같다. 영어론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것을 표현할땐 ‘나른다(Flying)’라고 한다. 그래서 ‘Time flies’라고 한다. 여기에다 ‘벌써(already)’ 아니면 ‘또(again)’라는 말에서 보듯이 매년 연말때면 느끼는 특별한 ‘시간’에 대한 감정이다. ‘벌써 한해가 가는구나’는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특히 한숨(?)을 내쉬며 이 말을 내뱉을 땐 말이다. 긍정적이자 부정적이다. 빨리 이 해를 잊어버리자 하는 이는 새해를 기다릴 것이고 끝내 다하지 못했던 일이나 미련이 남았다면 새해가 와도 즐기지 못할 것이다.


“사실, 시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다만 우리가 느낄 뿐... 똑같은 흐름의 시간임에도 어떤때는 빠르고 어떤때는 느리다. 모든게 우리 마음에 달려있다. 우리는 이 시간을 넘을 수도 없고 조작할수도 없다. 거기엔 오직 복종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린 시간의 노예다. 오직 하느님만이 이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알파요 오메가’이시기 때문이다. 인류는 시초부터 시간을 정확히 나누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어떻게 보면 절대자 신을 찾는 것과 같은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다. 시간을 알고자하는데서, 즉 정확한 달력을 만들고자 하는데서, 문명은 시작되었다. 이집트, 중국, 인도 그리고 마야 문명까지 지구상 모든 고대문명이 시간을 어떻게 정확하게 관측하고 효율적으로 이용하며 미래를 예측할지 고민하고 관찰하는데서 문명은 발전되었다. 그들은 하늘을 쳐다보며 우주를 상상했고 먼저 종교와 과학적 상상력으로 시간을 관측했다. 음력이 먼저 생겼고 양력이 생겼다.



멕시코의 국립 박물관에서 보았던 원반형 고대 우주 달력(시간표)을 보며 감탄했던 적이 있었다. 마야인들 또는 메소 아메리카인들은 종말론적으로 달력을 제작했는데 5,126년의 긴 사이클로 이 종말이 돌아오며, 이걸 계산하면 2012년 12월 21일이라고 한다. 재빨리 세계의 미디어는 이를 재생산 보도하였고 할리우드에선 발빠르게 ‘2012년’이란 영화도 제작하였다. 비록 미디어가 관심있게 떠든 계산착오의 종말이지만 이들의 시간 관측은 정확도가 높았다. 낮과 밤을 세고 일년을 관찰하여 우리와 다른 달수로 구분도 하였다.



중국도 달을 기준으로 했으며 이에 우리나라도 음력을 썼다. 각 절기를 농경사회에 맞게 달력을 만들었다. 우수니 경칩이니 단오니 한식이니 다 이 달력에 기초한 것이다. 고대 히브리 사람들(구약성서의)도 달을 기준으로 해 음력 달력을 만들었다. 그들 나름의 절기와 축제일을 만들며 종교력의 구실도 함께 하였다. 이슬람 종교력도 음력이 기준이다. 태양을 기준으로 한 양력은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의 개혁으로 BC 45년에 로마제국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그러나 여러 정확치 못한 오차로 일년에 11분이 더 빨랐고(우리의 음력은 한달을 통째로 갖다 붙인다. 윤달) 그래서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수정한 양력을 1582년에 공표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다.


시간은 현대 과학자들에게도 관심있는 분야다. 캠브리지 대학의 뉴톤좌 스티븐 호킹 교수는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라는 베스트셀러 책을 펴냈다. 그러나 통계에 의하면 이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만 두었지 정작 끝까지 읽은 영국인은 얼마 안된다고 한다(하하하). 호킹 교수와 같은 과학자들도 시간의 탄생을 규명하려 애쓴다. ‘빅뱅’이니 ‘블랙홀’이니하는 이론도 시간과 연관이 되어있다. 이는 이론일 뿐이다. 과학에선 ‘절대 이론’이란 없다. 과학적 이론은 항상 바꿔지며 수정된다. 호킹 교수도 직접 시범을 보였다. ‘내 이론 틀렸어…’라고 시인했다. 용기있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시간은 ‘역사적(Historical) 시간’이고 ‘연대기적(Chronic) 시간’을 말한다. 그 이상은 그들의 임무가 아니다. 그러나 가끔 직무유기하는 과학자들도 더러 있다. 보통 과학자들은 하루의 낮과 밤을 이야기할때 해와 달의 운동과 위치를 보여주며 어떻게 낮과 밤이 되는지 설명한다.



종교인들도 시간에 주의를 기울였다. 현대 과학자들도 중세 어거스틴 성인의 ‘성삼위(The Trinity)론’ 안의 시간론을 읽어본다면 감탄할 것이다. 그러나 보통 종교인, 시인, 그리고 예술가들은 과학자처럼 시간을 다루지 않는다.



“과학자는 시간을 설명(Description)하지만 신학자, 시인, 예술가는 시간을  ‘이해(Understanding)’한다.”



시인은 낮을 밝음으로, 그래서 ‘선’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밤은 어둠으로 즉 ‘악’으로 표현할 수 있다. 밤은 어두움이기에 상상의 공간이자, 창조의 공간 그래서  가능성의 공간이다. 화가는 밤을 검은 단색으로 표현할수 있으며 또 빛의 강약에 따라 루앙 성당을 다르게 그렸던 ‘모네’의 예처럼 한 사물이지만 항상 다르게 본다. 하나의 똑같은 루앙 성당을 과학은 하나로 보지만 모네에겐 수백가지로 볼 수있다. 예술가들이 발견하는 관점(perspective)과 해석(Hermeneutics) 그리고 보는 눈(상상의)은 과학과 구별된다.



“과학만이 진리를 설명한다고 믿는이는 또다른 미신을 믿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시간에는 ‘연대기적 시간(Diachronic)’뿐 아니라 ‘공시적 시간(Synchronic)’도 있다. 올림픽에서 ‘싱크로나이즈 수영(Synchronised swimming)’ 종목의 앞 글자와 같이 ‘동시성(simultaneity)’이란 말이 붙는다. 이 시간의 개념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같이 존재한다. 그래서 종교와 예술에서 이 단어를 많이 차용한다. 종교적 언어와 시적 언어는 많이 상통한다. 가령 가톨릭의 미사에서 ‘성찬전례기도’부분 사제의 언어는 공시적 언어이다. 즉 2천년도 넘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만찬식 바로 그때 그 시간과 ‘동시에/공시적으로’ 사제의 기도(언어)는 발화된다. 이때 연대기적 시간은 멈추고 공시적 시간의 상태로 모드가 바뀐다는 말이다. 바로 그때 그 당시로 돌아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한 그 말씀을 그대로 사제의 입을 빌려 말하는 것이다. 제대위에서 현존(Real Presence)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에 2천년 전이라는 연대기적이고 고고학적이고 물리적인 시간의 개념은 없다. 이 한순간 바로 지금 여기(here and now)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공시적 시간을 ‘신의 시간’이라고도 불린다.


새해가 밝아온다. 그리고 시간과 더불어 모든게 변해간다. 우리 또한 하느님의 피조물로 하루 하루 매 시간 다르게 변해간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하지만 그분은 ‘변함’이 없다. 그분은 있는 그대로다. 구약성서에서 모세가 하느님의 성함을 알려달라고 애원했다. 궁금했다. 누굴까? 이름은 그 사물이나 인물의 ‘정체성(identity)’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주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존재 그 자체다(I am who am).’ 영원히 변함이 없는 분이라는 뜻이다. 마지막 한가지, 인간이 이 ‘신의 시간’에 동참할수 있는 것은 ‘믿음(Faith)’으로만 가능하다. 믿음으로 이 시간을 예민한 영적 촉수로 감지하며 동참한다. 변하는 세상만물속에서 ‘절대자’를 느끼는 것은 신의 시간을 같이 공유한다는 말이다. 인간의 시간뿐 아니라 신의 시간도 느끼자. 세상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면 세상도 달라 보일 것이다.

아하, 새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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