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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an 24. 2018

세상에! 좋은 정치인도 있나?

런던 에세이

'모 몰럼(Mo Mowlam)'을 기억하며...

사진: www.alchetron.com

마틴 멕기네스(Martin McGuinness) 북 아일랜드의 '부-제1장관(the deputy First Minister of Northern Ireland. 사실상 한 나라의 부-수상 격)'이었다. 한때 악명높은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2인자로 오직 '통일 아일랜드(United Ireland)'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했던 과격분자, 그래서 영국정부에 의해 테러리스트로 낙인 찍혔던 사람이 방법론을 달리하여 기성정치권으로 들어와 활약하였다. IRA의 표면상 정당인 '신 페인'의 제 1인자인 '제리 아담스'가 테러리스트여서 모든 영국 방송에서 그의 진짜 목소리가 아닌, 성우가 더빙하여 뉴스에  들려주던 그 암울한 시기부터 난 마틴 멕기네스를 보아왔다. 테러리스트와 연관되기에 공포도 따라 붙었다. 그러니까 그게 20년은 족히 넘은듯 하다.
그러나, 세월을 비켜가는 자가 어디있을까? 중병을 알던 중 tv에 비친 그의 얼굴은 그야말로 피골이 상접한 모습 그대로였다. 북아일랜드의 고통 자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피의 일요일(Bloody Sunday) 기록영화에도 항상 나오던 피끊던 젊은 IRA과격분자도 병으로 그때 그 모습을 잃었던 것이다.


시간을 이기는 자는 없다.


이 아름다운 영국제도 변방지역에서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의 끊없는 대립은 아직도 소멸이 요원하다. 하지만 70년대와 80년대의, 그 암흑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진 않을 것같은 믿음도 있다. 영어의 종주국인 영국이라 이 북아일랜드의 혼란시기를 정관사 The를 붙여 그냥 '그 분쟁들(the Troubles)'이라 표현한다. 그 분쟁의 완전한 종말과 두 종교 집단으로 형성된 두 공동체사이의 평화는 아직도 먼 것 같지만 그 암흑의 시기로 돌아가진 않을 것이란 확신도 서는  그동안 평화를 향한 진보도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 마틴 멕기네스의 죽음과 옛 혼란이 다시 꿈틀댈 때마다 '모 몰럼(Mo Mowlam)'이란 걸출한 여장부 정치인이 기억났다. 그녀는 노동당 정치인으로 정치인이 되기전까진 더럼(Durham) 대학에서 공부하고 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한 학자였다. 토니 블레어가 정권을 잡은 그 이듬해 1998년 북아일랜드의 평화정착에 기초를 놓은 '성금요일 평화 합의(Good Friday Peace Agreement)'를 성사시킨 것은 당연히 이 여장부가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당시 북아일랜드 담당 장관이었고 이 평화정착의 순례길에 첫걸음을 떼게 만드는데 공을 세웠다. 그녀의 탁월한 리더쉽이 아니었음 그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했을 거라고 양편 모두 인정한다. 많지 않은 토니 블레어 정권시절 치적중 이 '성금요일 평화 협의'는 아마 가장 클 것이다. '적과 적'을 같은 테이블에 앉혀놓고 하는 협상은 쉽지 않다. 더구나 한쪽은 아예 테러리스트로 낙인찍힌 그룹이다. 한치의 양보도 않으려는 협상의 냉정한 이성과 함께, 이미 감정의 골이 깊을대로 깊어진 이 두 공동체를 같이 묶기란 오직 유능하고 노련한  정치인이 아니면 할 수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어떻게 감히 테러리스트들과 협상을 할수있느냐고 강력하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당시에  많았다. 특히 IRA 테러에 희생당한 가족들은 어이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래를 향한, 미래 세대를 위한 북아일랜드 평화건설이란 대의의 명분앞에 이 여장부는 밤세워 테이블에서 으르렁대는 두 공동체의 협상대표와 이마를 맞대며 협상을 이끌었다. 밤을 꼬박 세워 방송한 당시 tv 생방송이 기억난다. 토니 블레어 총리의 후원아래 진행됐지만 그보다 이 여장부의 공적이 훨씬 컸다. 그 후 토니 블레어는 명분없는 이라크 전쟁에 영국을 끌어들이며 그의 이미지를 완전히 망가뜨렸다. 한편, 이 걸출한 여장부는 이라크 전쟁이 명분없음을 꿰뚫어 보전쟁반대집회에 참석하며 반기를 들었다. 소리높여 보스의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이다. 20년뒤 지금은 어떤가? 참고로, 토니 블레어는 지금 40여채의 부동산을 소유한 천민자본주의 전사가 되어 돈만을 쫒아 이리 저리 기웃거리며 돈이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그리고...


그리고, '모 몰럼'은 안타깝게도,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룬 성과에 따라  스코틀랜드의 대학도시 세인트 앤드류스에서 영국 정부, 남 아일랜드 정부 그리고 북아일랜드 정부가 북아일랜드의 분권을 합의한 '세인트 앤드류스 협의(St Andrews Agreement)' 바로 한해 전인 2005년에 뇌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나이 겨우 55세였다. 신문의 부고란을 읽으며 나는 너무 안타까왔다. 아직 할일 많은 55세의 나이도 그렇고 손꼽을 만한 좋은 한 정치인이 떠난다고 생각하니 걱정도 됐다. 런던 킹스 칼리지 대학병원에서 그녀가 암치료를 받는 사실이 영국 타블로이드에 알려지기까진 그녀는 자신의 투병사실도 몰래 숨겼다. 화학요법으로 그녀의 숱많던 머리카락이 듬성듬성해지자 눈치빠른 기자들이 냄새를 맡았다. 그러나 그녀는 당당했다. 그런 그녀가 더욱 자랑스러웠다. 머리가 빠지면 빠진대로 그녀는 방송에도 나왔다. 당당한 그녀지만, 사실 방송을 보며 난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퉁실한 체격에 꼭 옆집 아줌마같은 성격 좋아보이는 그녀의 인상은 그 분을 더욱 존경하게 만들었다. 요즘 세상에 정치인을 존경한다고 하는 이가 과연 몇명이 있을까? 난 이라크 전쟁의 희생자를 볼때도, 토니 블레어의 말도 안되는 변명을 들을 때도, 마틴 멕기네스의 사망 소식을 들을 때도 난 이 아줌마 정치인을 떠올렸다. 솔직히 이분이 그리웠다. 왜 하필이면 이런 정치인을 하느님은 일찍 부르실까? 생각도 해보았다.


북아일랜드 평화의 순례를 향한 여정은 어려움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평화라는 말은 쉬워도 직접 이루어내기까진 난관도 많다. '성금요일 평화 협의'에 따라 두 공동체가 미래를 생각하며 잘 해줬으면 바란다. 자라나는 새 세대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모 몰럼'같은 이들의 헌신적 노력을 생각했어라도...


May she rest in peace.

Mo Mowlam(1949-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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