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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r 26. 2018

티거야, 미안하다...정말루!

티거에게 전하는 편지.

이럴땐 얌전하다. 대신 발톱을 보니 무섭다.

‘딩동’

초인종이 울리자마자 으르렁 소리가 들렸다. 처음엔 그 으르렁 소리가 불친절하게만 들렸다. 들어오지 말라는 소리같기도 했고, 이 집에 환영 안한다는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아님, 집에 들어오려면 나를 거쳐야 한다는 괴성의 공표로 들리기도 했다. 현관문이 열리면 사정없었다. 내게 마구 접근해 으르렁 거리던 그 거대한 입은 이제 검은색 바지 아래위로 킁킁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이건 공항 검색대보다 훨씬 더 심했다. 인권이고 뭐고 없었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아래로 축 쳐져 출렁거리는 입근육 양쪽으로 그놈의 끈적끈적한 고드름같은 누런 침이 둥글둥글 매달려 요리조리 아무리 피하려해도 그 찐득한 액체는 내 바지에 묻었다.


으으악…


냄새로 내가 안전하다고 확인한 후는 조용히 사라졌다. 그게 라이언 신부님의 사제관을 방문할 때마다 나를 맞이하는 티거(Tigger)의 환영방식이었다. 질질 침을 내 바지에 묻히는… 으으악… 세상에 그렇게 흉측한 침은 처음이었다. 호랑이보다 곶감이 더 무서운 아이처럼 나는 침이 그렇게 더 무서웠다. 몇번이나 사제관 바닥에 찐득한 침이 흘려져 있는 걸 보고 기겁을 하며 피했다. 그렇다고 내가 티거를 아예 싫어한 건 아니었다. 다만, 으르릉거리며 사교성이란 전혀 보이지 않고, 무섭게 생겼는데다 덩치도 커서 처음엔 보기가 겁나중에야 티거의 성격이 참으로 좋다는 걸 알았지만 말이다. 만나면 용기를 내어 예의상 넓적한 티거의 등을 쓰다듬으며 친한 척했다. 물론 그 뒤엔 화장실로 직행해 만진 손을 박박 씻었다. 쓰다듬던 보송한 등의 털은 잘 씻지 않아선지 기름기가 주르륵 흘러 예민한 내 손으로 대번에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거는 늙은 개(Dog)였다. 라이언 신부님이 새로 성당에 오시면서 12년을 같이 산 티거를 데리고 오셨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어떻게 티거와 같이 12년을 넘게 살았을까 내 머리로 이해가 안됐다. 개 나이로 12살이니 사람나이로 치면 약 80세가 된다고 했다.  티거(Tigger)란 이름은 A. A. Milne의 ‘곰돌이 푸(Winnie-the-Pooh)’의 두번째 권인 ‘푸 코너의 집(The House at Pooh Corner)’에 나오는 바로 그 ‘티거’를 본따 신부님이 직접 붙여 주셨다고 했다. 어린이를 위한 이 동화속의 티거는 호랑이(Tiger)와 비슷하지만 신부님의 티거는 호랑이를 흉내내는 견공이었다. ‘곰돌이 푸’속의 티거는 냄새가 어쨌는지 모르지만 신부님의 티거는 티거 특유의 냄새를 질질 풍겼다. 사제관에도 그 냄새는 풍겼고 신부님의 차안에도 곳곳에 배어있었다. 아마 동화속 티거는 서섹스의 공기맑은 숲에 살기에 냄새가 없을지 모르지만 신부님의 티거는 대도시 런던의 사제관에서 거의 시간을 보내다보니 특유의 냄새가 나리라 짐작될 뿐이었다. 다만 티거의 주인인 신부님은 티거 때문에 사제관의 냄새가 다름을 모르는 것 같았다. 가끔은 실례를 무릅쓰고 덥다며 창문을 열어 숨을 쉬었다.


"휴..."


티거가 온지 2달이 된 후 신부님이 편찮으셔서 우리 병원에 입원하셨다. 티거는 잠시 성당 사무장 아주머니의 손에 맡겨졌다. 그땐 난 혹시 신부님이 티거를 내게 맡길까봐 노심초사했다. 그런 나와 달리 신자들에게 티거는  사랑을 무척 받았다. 소위 '셀레브리티'였다. 미사후 신자들은 티거를 가지고 화제를 삼으며 오늘은 티거가 무얼 먹을까? 신부님이 병원에 계시는데 적적하지 않을까? 티거는 화제의 중심이었다. 마음씨 좋은 사무장 아주머니는 티거가 착하다며 이것저것 다 먹였다. 밥때도 가리지 않았고 먹는 양의 조절도 없었다. 아주머니가 주는대로 덮석덮석 받아먹은 착한 티거는 몸무게가 일주일 사이 무려 약 5킬 더 늘었다. 동화속의 티거는 꿀(honey)을 싫어한다고 불평아닌 불평과 응석을 하지만 신부님의 티거는 아무거나  냉큼냉큼 잘도 받아 먹었다. 반찬 투정없이 밥잘먹는 아이처럼 티거는 그렇게 아주머니와 신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에구, 착하기도 하지…’


그러나 난 달랐다. 현관을 들어서면 막바로 보이는 티거의 밥그릇 옆에는 친절하게도 티거의 물그릇이 놓여 있었으며 티거의 침이 혹시나 내게 묻을라 노심초사하며 물이라도 마시라고 티거의 머리를 손으로 물통으로 밀치면 물도 벌컥벌컥 잘 마시던 티거였다. 병원에서 일주일 후에 사제관으로 돌아오신 신부님은 약 30킬로에서 이제 35킬로의 송아지가 된 거대한 티거를 보며 걱정을 하시며 운동을 시켜야 겠다고 다짐을 하셨다. 그러면서 주인은 아파서 병원에 있는 사이 눈치없는 티거는 밥잘먹고 상팔자로 지내 몸만 퉁퉁 살찐 것에 대해 신부님의 서운한 눈치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운동도 좋지만 겨울이고 몸도 좋지 않으셔서 공원으로 티거를 데리고 다니며 운동은 시키지 못하셨다. 날이 풀려 봄이 오길 기다린것이다. 이제 연로한 나이에다 몸무게까지 불은 티거는 걷는 속도마저 느릿느릿 했다. 토끼를 날렵하게 잡던 젊은 날의 날쌘 티거는 이제 아니었다. 그저 신부님이 ‘토끼(Rabbit)’ 하면 갑자기 고개를 쳐드는 티거일 뿐이었다. 토끼를 잡으려 쫓아다니던 에너지 철철 넘치던 날렵했던 청춘이 그리울까 생각도 들었다.


나이도 들고 몸무게도 더 나가는 티거에게 이제 자기 이름의 유래가 되는 ‘곰돌이 푸’속의 티거처럼 공중으로 솟구치며 멋지게 점프하는 재주는 기대를 할 수 없었다. ‘곰돌이 푸’속의 티거는 항상 자랑스레 말했다. “공중뛰기는 티거가 최고야”라고. 그리고 동화속의 티거는 절대로 길을 잃지 않는 티거였다. 런던 남쪽 서섹스의 울창한 숲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티거였다. 그러나 나이 들고 덩치 큰 신부님의 티거는 달랐다. 천부적인 방향감각에도 티거는 사람들을 너무 잘 믿는게 탈이었다. 생판 처음보는 사람들까지 말이다. 어렸을 땐 동네 아이들 아무에게나 졸졸 따라다녔다고 하며 우편배달부 아저씨를 믿고 따라가다 길을 잃기도 했다한다. 심지어는 동네 맥도날드 매장안에 들어가 손님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는 티거를 신부님이 발견해 데려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티거가 길을 잃으면 착한 동네 아이들이 항상 티거를 사제관까지 데려다 주었다고 한다. 사람복도 많은 티거였다.


동화속의 티거는 멋진 오렌지와 검정색 얼룩 줄무늬를 가져 눈에 확 띄는 세련된 티거이지만 신부님의 티거는 브라운에다 검정색이 많은 평범한 티거였다. 그렇지만 한때는 스페인의 투우같은 예리하고 큰 눈을 가졌으며 비록 나이살땜에 지금은 눈꺼풀이 쳐져버렸지만 순박해 보이는 그런 맑은 눈을 가졌다. 유연하고 찰랑이는 티거의 꼬리는 동화속의 티거와도 비슷했다. 그러나 처음 티거를 보는 사람이면 신부님의 티거는 동화속의 티거보다 훨씬 무서웠다. ‘얼굴보고 평가하면 안돼’를 티거는 그대로 증명해 주었다. 아직 강아지였을 때도 티거가 창쪽에서 거리를 바라보면 티거가 짖지도 않는데 창밖을 지나던 행인들은 놀라 피했다고 한다. 처음보면 공격적이고 무섭게 생긴 얼굴로 태어난 티거는 나까지도 오해하게 만들었다.  


그런 티거도 이제 건강하게 뛰지도 못하고 점프도 못했다. 으르렁 거리던 괴성도 예전처럼 못하다고 티거를 어릴적부터 키운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가끔 정원으로 난 문을 열어 티거를 정원에서 뛰놀게하면 착한 티거는 토끼사냥을 실제마냥 연습하며 정원 구석구석을 킁킁 살폈다. 그전에 계시던 신부님이 관심이 없었는지 정글이 되어버린 사제관 정원을 서섹스의 숲마냥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티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상의 토끼를 찾았다. 자주 출몰하는 여우라도 지나면 우뢰같은 괴성으로 혼쭐을 내었다. 또 사제관 정원 울타리 넘어 조그만 공원길로 사람이라도 지나치면 그때마다 으르릉 괴성을 질러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기도 하는게 티거의 악취미였다. 그러나 나이든 티거라 예전같지 않아 쉽게 피곤해져 정원에서의 놀이는 점점 짧아졌고 곧장 집안으로 들어와 벌렁 드러누워 게으르게 낮잠을 잤다. 그런데 문제는 티거의 고약한 잠버릇이었다. 거짓말이 아닌 정말로 심했다. 가끔 신부님과 대화를 나누거나 텔레비전을 보면  카펫 바닥에 드러누워 티거는 코를 골았다. 드르렁 드르렁. 조금 과장해 산천이 떠나갈 듯했고 런던시민들 모두 다 들을 것같았다. 티거의 코골이는 대화를 방해했고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실황을 보던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개의 코골이로 짜증을 낸 웃지못할 경험은 생전 처음이었다. 티거의 코골이는 만성으로 코고는 사람의 소리와 너무 똑같았다. 그러나,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랴’란 민요를 읊조리며 가끔 ‘티거, 조용해’하며 발로 툭툭 건드리는 게 내가 할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면 티거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또 코를 골았다. 가끔 티거를 놀래키려 귀 가까이 대고 손뼉을 갑자기 치면 이제는 축 늘어져 무거운 눈꺼풀을 스르르 올려 잠시 날 바라보다 한심하다는 듯 이내 무시했다. 티거는 그렇게 나를 무시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살았다.


티거가 이곳 사제관으로 온지 6개월이 다 되어가는 어느날 신부님으로부터 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휴일에  윈체스터의 친구집을 방문하던 중이셨다. 내용은 티거가 지금 병원에 누워있다는 것이었다. 그랬다. 늙고 수척한 티거는 동물병원의 침대에 누워 수의사의 정밀검사를 받았다. 티거의 심장상태가 좋지않아 하룻밤을 윈체스터 병원에서 쉬며 수의사가 상태를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티거를 신부님 차에 태워가지고 런던에서 윈체스터까지 갈때부터 티거는 심상치 않았다는 것이다. 차만타면 차창으로 고개를 내밀고 소풍가는 초등학교 아이처럼 즐거워 하던 티거가 아니었다고 했다. 지나가는 차도, 사람도, 그리고 항상 예민하게 대응하는 소음도 아랑곳없이 늙고 피곤한 티거는 차안에 누워 조용하더라는 것이었다.


티거는 결국 그날밤을 넘기지 못했다. 나한테 간다는 예고도 없이 그렇게 티거는 가버렸다. 훌쩍 가버리고 나니, 그토록 싫어했고 피했던 찐득한 티거의 침, 참을 수 없었던 티거의 고약한 냄새, 그리고 전쟁의 포탄처럼 쉴새없이 드렁드렁하던 티거의  코골이에 그렇게 예민했던 것들이 미안함으로 주르륵 올라왔다. 그럴줄 알았더라면 끈적끈적 기름기가 흐르던 등을 조금이라도 더 쓰다듬어 줄 걸 후회도 되었다. 따뜻한 봄이 오면 공원으로 티거를 데려가겠다고 한 지키지 못한 약속도 기억이 났다. 신부님은 티거를 윈체스터에서 화장시켰다고 했다. 티거의 흔적인 한줌의  재도 가져오지 않았다고 한다. 티거는 흔적없이 그렇게 외지에서 사라졌다. 신부님이 병원에 있는 동안 살이 퉁퉁 쪘던 티거와 달리 티거를 잃은 신부님은 며칠사이 식욕부진으로 살이 쑥 빠진 걸 알수 있었다. 티거가 떠난 후로 사제관의 공기는 서섹스 숲만큼은 아니더라도 서서히 맑아졌다. 그래도 티거의 흔적이 냄새로 남아있었는데 일주일쯤 지나자 그 흔적마저도 날아갔다. 사제관 부엌 한쪽엔 티거가 먹지 않는 음식이 포장지도 뜯기지 않은 채 쌓여있었다. 주인을 잃은 티거의 밥통과 물통은 현관밖에 덩그러니 놓여 비를 맞고 있었다. 영혼이 없는 동물들은 ‘저 세상’도 없다고 믿고 있다. ‘이 세상’뿐이었던 티거에게 이제 미안하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런 마음인데, 신부님은 또 사실 티거가 나를 무척 따랐다고 하며 넌지시 나의 죄의식을 건드렸다. 정말일까? 내가 그렇게 티거의 냄새를 싫어하고, 끈적한 침을 혐오했으며, 친절을 가장해 등을 쓰다듬은 뒤 화장실로 곧장 달려가 손을 씻었는데도? 나의 죄의식이 티거의 고약한 냄새처럼 사제관에 퍼졌고 끈적이는 티거의 침처럼 흘러내렸다. ‘곰돌이 푸’의 티거는 자기를 ‘복수(plural)’로 알고 있었다. 어느날 티거가 거울을 보자 놀랍게도 그 안에 또다른 티거를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티거는 그 뒤로 항상 복수로 ‘티거들(Tiggers)’이라 했다. 그래서 ‘곰돌이 푸’의 티거처럼 티거가 여럿이었으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했다.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들어내고 싶어서 였을까?


그때 성당의 한 여자애가 티거를 잃은 신부님을 위로하러 그 애 엄마와 함께 사제관을 찾아와 벨을 눌렀다. ‘딩동’해도 티거의 괴성은 거기 없었다. 평소에 티거만 보면 덩치 큰 티거를 쓰다듬고 눈을 맞추며 친했던 티거의 절친이었다. 그때마다 어떻게 쟤는 티거의 험상궂은 얼굴이 무섭지도 않은가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여자애 옆의 애 엄마는 장례식에 온 하객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애가 훌쩍이며 말했다.


“티거가 보고싶어요, 신부님”.


그러자 신부님이 허리를 굽히며 그 애에게 다정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야, 그렇지만 생각해봐.
티거는 지금 프란치스코 성인과 하늘나라에서 뛰어 노느라 정신이 없을게다.”


http://www.brunch.co.kr/@london/90

http://www.brunch.co.kr/@london/78

http://www.brunch.co.kr/@london/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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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요에 앉아 쉬는 티거. 티거는 상팔자다.
그래서 가끔 이렇게 사람이 들어가도 무시한다.
귀찮게 말라는 표시일지도...
무슨 생각하시나? 티거는 견유학파? 검소한 생활은 아닌디...
이 모습보니 티거가 그립다. 티거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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