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의 경주, 트리니다드

쿠바 여행 에세이 2-쿠바 500년 산역사를 보다...

by 런던 율리시즈
붉은 지붕이 하늘의 구름과 조화를 이룬다.

관광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훅하고 폭염이 덥쳤다. 코치(coach)에서 내린 사람들 모두 얼굴을 가리느라 잠깐의 혼란이 일었다. 뜨거운 열기가 이 작은 타운의 좁은 골목 골목에 사우나의 쑥탕처럼 끓고 있었다. 그리스도교의 교리인 ‘삼위일체(The Trinity. 성부, 성자,성령이 한 몸이지만 세 위격이라는 교리)’란 말의 스페인어 단어 ‘트리니다드(Trinidad. 또는 Trinidad de Cuba로도 불림)’는 1514년을 타운의 기원으로 잡으니, 500살을 넘긴 늙은 도시이다. 조선 초기쯤에 이미 스페인인들이 여기 살았다는 말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유럽인 이민역사와 거의 맞먹으니 그 500년 이민역사와 수탈의 역사를 타운 건물 곳곳에 그대로 품고 있다. 이 인구 7만명이 조금넘는 트리니다드는 쿠바의 카리브 해 연안쪽에 위치해있어 역사 관광뿐 아니라 휴양지로도 인기가 좋아 연중 관광객들이 많은 타운중의 하나라고 한다.


우리는 큰 차가 들어갈수 없는 좁은 길, 그것도 작은 자갈을 깐(cobble stones) 운치있는 옛 골목길을 따라 성당이 서 있는 메인 광장, ‘플라자 마요르(The Plaza Mayor)’에 들어섰다. 경주 양동 마을처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된 이 광장과 타운 주위는 트리니다드의 중심이나 메인 광장이라해야 우리나라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작았다. 하지만 비스듬한 언덕에 위치해 있었고 잘 정돈해 놓아 주위의 식민지 시대 건물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트리니다드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자갈길(cobblestone streets)이 나있고, 또 낮고 아기자기한 집들이 이 자갈길 골목골목 죽 늘어서 있었다. 이제 광장부근 옛 대지주들의 집들은 대부분 화랑이나 박물관으로 바뀌었다. 타운의 역사 박물관(The Municipal History Museum)도 그 중의 하나였다.

트리니다드의 중심인 대성당(Santísima Trinidad Cathedral)은 광장 위쪽편 중앙에 우뚝 서 있었다. 미사준비를 해야하기에 일행보다 일찍 자갈길을 달음쳐 성당에 다다르니 벌써 사크리스탄(Sacristan. 성당에서 미사준비를 해주는 사람)이 두팔을 벌린채 미소를 지으며 환영해 주었다. 그리 크지 않은 성당이지만 천장이 높아 성당 내부는 시원했다. 스페인식 전통적 성당의 구조였고 폭풍에 파괴된 오래된 옛 성당위에 1892년 새로 지었다고했다. 그리고 성당 안 곳곳에 20세기 들어서 손질하고 땜질한 흔적도 동시에 발견되었다. 중요한 것은 1713년대 오리지날 십자가 유물이 왼쪽 두번째 채플에 있었다. 원래 유럽에서 맥시코로 운반하려했는데 폭풍으로 여기 이 성당에 정착 안치되었다고 했다. 하느님의 뜻은 사람의 계획과 다르다고 사크리스탄은 얘기했다. 이 유물은 멕시코가 아니라 여기있을 운명이란 뜻이다.

미사를 마치고 성당 왼편의 길을 단체로 우루루 올라갔다. 특산물 특히 ‘쿠바 시가(Cuban Cigar)’를 파는 상점이었다. 난 큼큼한 시가냄새만 킁킁 맡아보고 바깥으로 나와 광장의 벤치에 앉았다. 한무리의 단체 여행객들이 광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이 때 전날 밤 호텔에서 만났던 이태리 커플도 있었다. 여행코스가 비슷해 여기서 또 마주친 것이다. 반가웠다. 그들은 예술의 도시 피렌체에서 왔다고 했다. 대부분이 연세드신 분이 많은 그룹에서 그들은 가장 젊은 커플이었다.

그 전날 우리는 호텔에서 피델 카스트로와 실비오 베르루스코니를 비교해 한참을 얘기하며 웃었다. 피델은 혁명으로 말해주는 진지함과 항상 똑같은 인민복과 수염이 말해주는 단조로움 그리고 어찌보면 무서운 혁명가지만 인자한 할배의 인상도 풍긴다면 이태리 수상이었던 실비오는 ‘붕가 붕가(Bunga bunga)’파티로 알려진 화려방탕한 자본주의적 편력과 못말리는 언행으로 대중의 지탄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냈던 코메디언같은 정치인이었다. 한명의 공산주의의 다른 한명은 자본주의의 결코 좋지 않은 모델이다.

아직도 엄연히 공산주의인 쿠바에서 이 광장은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광장 주위의 건물들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는데 식민지 시절, 정확히 말해 공산 혁명전까지는, 스페인계 쿠바 대지주들의 궁전같은 저택들이었다. 성공한 사업가인 실비오의 대저택과 견줄 이 원 소유주인 지주들은 실비오처럼 파티를 열며 방탕과 사치의 세월을 즐겼으리라. 이와 반대로, 이 광장과 타운을 벗어나면 이들의 부를 축적해주던 ‘설탕제분 계곡(the Valley of Sugar Mills)’에서 아프리카에서 끌고온 흑인들과 가난한 쿠바인들은 노예의 삶을 살았으리라. 한때는 이 계곡에선 70여개의 사탕수수 제분소가 번성했으며 18세기 후 쿠바 경제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 역사적 중요성으로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자유와 방탕, 혁명과 노예, 지주와 농민을 이 조그만 광장은 다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가난의 흔적을 광장을 조금만 벗어나면 볼수있어 다 평등하게 잘사는 혁명의 열매를 따먹을 날은 아직도 멀고 먼듯 느껴졌다. 다행히 공산혁명이 이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잔재를 파괴하지 않아 산 교육장이 된 것이다.

트리니다드에서 꼭 들러야하는 곳은 이 플라자 마요르 광장에서 아주 가까운 '보렐 가(the Borrell family)'의 집이다. 그냥 보통의 집이 아닌 큰 맨션이라 불리는 만큼 부유한 집안의 집이었고 지금은 일반에 오픈되어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나중에 독일계 농잔주인 칸테로(Kanter 또는 Cantero)로 소유권이 넘어가 칸테로 집(Casa Cantero)으로 불린다. 이 새 소유주인 후스토 칸테로(Dr Justo Cantero)는 거대한 사탕수수 농장을 획득했는데 정당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는 한 노예무역업자에게 독약을 먹여 죽이고 그의 부인과 결혼했으나 결국 제 운을 다하지 못하고 미스테리하게 죽었다고 한다. 돈이 뭔지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정은 마찬가지 인듯하다. 어쨋든 네오-클래식(neo-classic) 유럽 스타일로 모방한 각 방은 볼만했다. 이 집의 오른편에 꼭 성당의 종탑같은 탑이 있는데 이 탑은 이 타운 어디에서도 보이고 또 가장 높은 건물이었다. 탑 안은 오래된 목조로 되어있어 좁은 층계와 사다리로 올라가기에 가벼운 내 몸집으로도 부담스러웠지만 한참을 빙빙 땀흘리며 올라가자 탑의 정상에 다다랐다.

"아, 여기서 보는 트리니다드 전경은 최고였다."

이 루프탑에서 오래된 타운인 트리니다드의 아름다움을 동서남북 사방으로 훤히 볼수있었다. 붉은 기와를 얹은 지붕과 성당들 그 뒤로 배경이 되는 산들이 멋진 조화를 이루어 트리니다드만의 풍경을 보여주었다. 무덥고 지친다고 혹시 안올라왔으면 정말 후회했을 것이다.

탑에서 내려와 가까운 골목안으로 들어섰다. 우리나라 전통시장처럼 골목전체가 관광용품을 파는 시장이었다. 특히 특산물인 ‘보(식탁보나 태이블위에 덮는, 특히 손으로 짠)’를 여러 사이즈로 팔았다. 골목을 벗어나니 요란한 생음악소리가 들렸다. 따라가보니 한 음식점 넓은 베란다에서 쿠바 음악을 대여섯명이 흥겹게 연주하고 있었다. 악단 앞으로는 여러 관광객이 사진을 찍으며 덩실대며 몸을 흔들고 또 몇이는 이 악단의 CD를 사고있었다. 특유의 쿠바 음악이 모두를 즐겁게 했다. 아침 11시경인데 햇빛은 더욱 강해졌다. 시간은 아직도 남아 어슬렁거리며 이곳저곳을 혼자 걸어다녔다. 홈리스로 보이는 개들도 여럿 있었다.

열대지방 도시에서 볼수있는 익숙한 풍경인 노인들이 집앞에 나와 우두커니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보거나 또는 두세명씩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한가롭고 평화스러웠다. 특이한 것은 정말 여기가 공산주의 국가인가하는 의문이었다. 내가 갖고있던 공산주의의 이미지가 머리속에서 다 녹아내렸다. 그들은 한가하게 거리를 거닐고 카페나 집앞 의자에 앉아 잡담을 나눈다. 또 그들의 표정에서도 어느 한군데 내가 가지고 있던 공산주의의 우울함이나 스파이처럼 서로를 감시하며(특히, 외래인을) 눈치살피는 그런 표정이 아니었다. 내가 어슬렁거리며 지나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특히 로만 칼라를 한 사제복을 입은 내가 말이다. 종교는 공산주의자들에겐 아편이 아닌가. 분명히 ‘빨갱이’들일텐데 왜 런던 사람들보다 즐겁게 보이고 여유로울까? 신기했다. 어디에서든 팔고있는 티 셔츠와 인민모자에서 붙은 ‘체 게바라’의 얼굴만 빼면, 웃고 떠들고 음악을 즐기는 그들은 여느 라틴 아메리카 사람들과 똑같았다. 그늘져 시원한 한 카페에서 들어가 앉아 독한 커피를 마시며 잠시 혼란해진 머리를 정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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