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 게바라와 마르타 아브로-산타 클라라

쿠바 여행 에세이 3-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극을 만나다.

by 런던 율리시즈


‘산타 클라라(Santa Clara)’는 너무 흔해서 친근한 이름이다. 가톨릭의 클라라 성인은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은 이탈리아 아씨시 출신이며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른 첫 그룹 중의 한명이다. 이 성인 이름을 딴 지역 이름이 많은 유럽국가에서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또 많은 여자분들의 이름으로(영어로 클레어. Claire/Clare), ‘메리’만큼이나 흔하게 사용되고 있다. 쿠바의 중부 지방에 이 나라에서 다섯번째로 큰 인구 (24만명정도)를 가진 도시가 이 성인 이름을 딴 '산타 클라라'이다.


'산타 클라라'라는 도시를 쿠바인들이 떠올리면 두 명이 떠오른다고 한다. 한명은 우리에겐 낯선 ‘마르타 아브로(Marta Abreu de Estévez)’라는 이 도시의 후원자이고 다른 한명은 전 세계에 알려진 공산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이다. 이 도시에서 사랑받는 마르타 아브로는 이 지역출신으로 남편은 1902년에 쿠바가 스페인으로 독립한 뒤 첫 부통령이되었다고 한다. 그녀가 차지하는 중요성만큼이나 그녀의 동상은 이 도시의 중심 광장(Parque Vidal)에 우뚝 서있었다(사실 여왕처럼 앉아있는 동상이다). 이 부부는 쿠바 독립전쟁(the War of Cuban Independence. 또는 the Spanish–American War)에 많은 공헌을 했으며 치열한 공산혁명을 거친 이 도시에서 아직도 많은 사랑을 받고 거의 이 도시의 상징적 인물이 된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기증하거나 세운 건물들은 아직도 이 도시의 중요한 시설로 쓰여지고 있다한다.


한낮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시내 '비달' 공원은 사람들로 붐볐고 특히 광장 한편에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점심시간이라 교복을 입은채로 삼삼오오 어슬렁거리거나 벤치에 앉아 떠들고들 있었다. 주위의 건물들은 온통 식민지 시절의 관공서와 문화시설들로 서 있었다. 이 광장은 쿠바의 여느 광장과 마찬가지로 오후가 되면 시민들이, 특히 싱글들이, 절에서 탑돌이 하듯이 광장 주위를 빙빙 돌며 걷는다고 한다. 여자들은 공원 안쪽으로 남자들은 바깥 써클로 걷는다고 하는데 점심시간이라 직접 보지는 못했다. 난 공원의 벤치에 앉아서 점심후의 나른한 휴식을 취했다. 뒤로는 이 도시의 우상, 마르타의 동상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역사적으로 이름난 인물이나 자선가들은 그럴만한 처지에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윌버포스'가 노예해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해마다 난리를 치고 기념하지만 그는 영국 MP(국회의원)였고 그럴만한 지위에 있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세상은 귀기울이지만 당시 비인간적 대우와 비참한 생활을 한 한명 한명 노예들의 수백만번의 절절한 외침은 허공에 사라졌다. 오늘날도 우리는 윌버포스를 잘 알고 치켜세우지만 당시 한명 한명의 노예들은 기억하지 않는다. 마르타 아르보가 기증하고 세운 많은 시설들은 그녀가 오롯이 물려받은 재산에서 나왔으며 또 그녀의 선조들은 어떻게 그 많은 재산을 불렸을까? 그녀는 당시에 유럽과 미국을 여행할만큼 인생을 즐겼다. 그렇기에 바깥 세상을 보았다. 죽음도 그녀의 이상인 이 산타 클라라가 아닌 세계 문화와 유행의 중심, 프랑스 파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가 나고자란 이 도시를 무척이나 사랑했다는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남편이 한나라의 부통령 자리에 오를만하면 그 세도도 짐작해 볼수있고 또 윌버포스처럼 그런 ‘위치’에 있었다. 그 당시에 평범하게 일한 99%의 산타 클라라 시민들은 하루하루 살길만을 걱정했으리라. 그렇지만 말처럼 쉽게 그녀의 행적을 깍아내릴수도 없다. 당시 다른 부유층과 권력가들은 그녀만큼 자선과 선행의 의지도 없었으니… 그녀가 기증한 시의 공공 도서관에 '체 게바라'와 일행의 행적이 전시되고 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산타 클라라는 또 '체 게바라'를 떠올린다. 시내 어디에고 그의 사진을 볼수있다. 체 게바라가 쿠바 공산혁명 당시 정부군( Fulgencio Batista 정부)을 맞아 1958년 마지막 사투를 벌인곳이 이곳 산타 클라라이다. 사람들은 이 전투를 ‘산타 클라라의 항쟁(The Battle of Santa Clara)’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약 10년뒤인 1967년 볼리비아의 정글에서 미국 CIA에 암살된 뒤 그의 유해는 여기로 옮겨져 그의 무덤(mausoleum)이 이 도시에 있다. 또 산타 클라라의 전투중 유명한 열차전복은 이곳에 그대로 여기에 재현해 놓았으며 코치를 타고서 이곳 저곳을 볼수 있었다.


어쨋든, 마르타 아르보와 체 게바라. 상반된 두 인물로 유명한 이 산타 클라라가 흑백으로만 판단할수 없는 것이 이 도시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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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 동상
비달 동상
비달 광장
산타 클라라 전경
체 게바라의 기억
산타 클라라
성당 안
체 게바라는 어디에고 있었다.
체 게바라 책도 빠질수 없다. 피델 카스트로보다 많았다.
예술 타운 '카마게이'엔 사람이 직접모는 자전거 택시가 있었다.
조용한 예술촌에 멀리 성당이 보인다.
어디갔는지 주민들이 보이질 않았다.
예술 타운에 많은 조각중 하나.
예술 타운인데 정말 한적하였다.
쿠바의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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