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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y 26. 2017

시칠리아엔 하늘과 바다가 하나다...

이탈리아 여행 에세이-시칠리아 틴다리의 성모


“난 얼굴이 검어도 아름답습니다(I am black but beautiful.)


꼭두 새벽에 일어났다.

닭은 아직 울지 않았다.

길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지만 난 길 떠나는 걸 좋아한다. 그러나 나이 탓인가? 피곤이 확실히 풀리지 않아 몸이 뻐근했다. 아침 일찍 커피를 마시러 호텔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세 명의 시칠리아 직원이 우리 50명의 아침을 준비하느라 부산했다.  그 와중에도 나를 보자, ‘본 조르노’를 외치며 반갑게 맞았다. 시칠리아의 화사한 아침을 그들이 선사했다. 그리고 시칠리아의 피가 신을 맑게했다. 어제 밤 카피해 놓은 시 “틴다리에 부는 바람(The Wind at Tindari)”을 읽었다. 틴다리의 신비한 바람이 아침식탁에 불어왔다.


이 황홀한 광경을 보기위해 마음은 그렇게 붕 붕 떴다. 이곳에선 모두가 천진한 아이가 되고 사랑하는 틴다리의 성모님이 자상하게 내려다 보는 곳이다.

오늘은 ‘틴다리의 성모님(Our Lady of Tindari)’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아름다운 바닷가에 위치한 절경 틴다리(Tindari)는 시칠리아가 숨겨놓은 보물이다. 시칠리아 출신 시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살바토레 콰지모도(Salvatore Quasimodo. 빅톨 위고의 노틀담의 꼽추에 나오는 그 ‘콰지모도’가 아님.)’는 ‘ 틴다리에 부는 바람’이란 시로 영원히 사람들에게 이 고대 마을, 틴다리를 아름답게 각인시켰다. 이 시는 시간을 넘은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노래했다. 그렇다, 기대해보자. 오늘 틴다리에서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불어오는 틴다리의 바람을 맞으며 깨달아 보자.

틴다리 바실리카 성당. 이 새 성당안 뒤쪽에 옛 중세의 성당을 품고있다.


꼬불꼬불 틴다리로 올라가는 산길은 멀었다. 해안과 절벽이 그렇게 아름답다는데, 가는 길은 사실 평범해 보였다. 가끔 산 정상에 마을들이 있는게 신기했다. 한참 후에 덩치 큰 코치(coach)는 아직 아무도 주차하지 않은 틴다리 거의 정상에 위치한, 조그만 주차장에 숨을 거칠게 죽이며 우리를 토해내었다. 거기로부터 멀지 않은 정상에 위치한 ‘틴다리 바실리카(the Basilica of Tindari)로 걸어 올라갔다. 아침 10시정도라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주위의 기념품 가게들은 벌써 문을 열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바실리카라고 하기엔 작은, 아름다운 성당이 골든 돔을 이고서 우뚝 서서 순례자들을 맞았다. 바닷가 쪽에서 본다면 절벽위에 세워진 이 성당은 정말 볼만할 것이다. 등대의 구실도 할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순례자를 품에 안으시는 사랑의 등불 역할을 하시는 틴다리의 성모님이 계신곳이다. 기념품점에 들러 그림엽서들 중 바닷가 쪽에서 찍은 틴다리 사진을 보며 절경을 상상했다. 예부터 이곳으로 많은 순례자들이 찾았다고 한다. 우리가 올라온 새 도로는 대체로 옛날 순례자들이 걸어온 길과 많이 겹친다고 했다. 한 여름 성수기때는 올라가는 도로를 아예 막고 매 15분마다 전기차가 순례자와 관광객을 이 산정상의 성당과 마을로 실어 나른다고 했다.   

바실리카 정문.


틴다리 성모님 바실리카(The Basilica of the Madonna of Tindari)는 사실 얼마 오래되지 않은 1950년대 후반에 지어졌다. 그러나 그 안에 오래된 옛 성당을 '그때 그대로' 보존하며 아직 사용하고 있었다. 옛 성당이 몰려오는 순례자를 다 수용하지 못하자 이 바실리카를 지은 것이다. 바실리카의 제대 뒤편에 ‘틴다리의 성모님(Our Lady of Tindari)', 다른 말로 "기적의 검은 성모님(the miraculous statue of the Black Madonna)’이 모셔져 있었다. 성모상이라고 하나 사실은 성모님 팔 안에 아기 예수님이 있었다. 두 분 다 우리를 환하게 반기고 있었다.

바실리카 안. 정면에 틴다리의 성모상이 보인다. 중세로부터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에 몰려들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성모상은 화물선에 실려 중동쪽이나 북아프리카쪽에서 중세기에 이리로 실려왔다고 한다. 멀리서 온 이 화물선은 각종 진기한 보물과 상품들을 가득 싣고 있었다. 당시는 성상파괴(the Iconoclastic) 운동이 한창이던 때로 많은 이콘(icon)과 성상이 많이 파괴되었는데 동로마제국 후반기 즉 비잔틴 시대에 우상숭배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이 화물선이 틴다리 근방에 다다르자 거대한 폭풍이 몰아쳤다. 맹렬한 폭풍이 지난 뒤 바다가 잠잠해지고 선원들이 배를 틴다리 입구에서 빼내려 했다. 무엇에 걸렸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배는 빠져 나올수가 없었다. 짐들이 많아서 그런줄 알고 선원들은 짐을 바다에 하나 하나 던져 배를 가볍게 만들었다. 그래도 안되자 이 틴다리의 성모상이 담긴 상자도 할수없이 바다로 던졌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났다. 그 배는 무사히 틴다리 입구를 빠져 나올수 있었다. 후에 이 성상을 담은 상자는 틴다리 지역 어부에 의해 발견되었고 지역민들은 아마 성모상이 이곳 틴다리에 머물려고 기적을 행했다고 해석했다. 당시 많지 않은 숫자의 그리스도인들이었지만 절벽위에 작은 성당을 지었고 성모자상은 틴다리의 가장 높은 곳, 가장 아름다운 곳에 모셔졌다.


바실리카 안은 여느 시칠리아 성당과 비슷하게 바로크 스타일이었다. 스테인드글라스가 돋보였고 특히 제단 바로 뒤 우뚝솟게 만든 천사들이 받치고 있는 틴다리의 성모자상은 성당의 가장 중심인 제대 뒤편에 서 있었다. 그리고 성당안에 세세하게 묘사한 모자이크 ‘십자가의 길’도 볼만했다. 각 모자이크는 천연색(technicolour)으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등장인물들도 거의 보통 사람 키높이였다. 너무도 실제적이라 꼭 2000년전 성서의 시대 사람들과 같이 걷는 것처럼 느껴졌다.

콰지모도 광장 앞 풍경.


미사 준비를 서두르기위해 뒤편의 제의실로 갔다. 벌써 제의실 담당자는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미사가 시작되었고 영광스럽게 청동의 천사들이 받치고 있는 금색의 받침대(pedestal) 위에 높이 모셔진 성모자상을 바로 가까이 볼수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앞에서 미사를 거행하니 이 먼곳까지 찾아 올수 있었음에, 문득 어떤 인연같은게 느껴졌다.  영광스러웠고 감사했다.  

바실리카 안.


유리창안에 모셔진 성모상은 약 50cm로 크지 않았다. 성모상은 전통적 아프리카 나무조각 스타일같기도 하였다. 우아하고 세밀하게 조각한 성모님의 얼굴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복잡한 디자인의 의복과 왕관은 이 조각상을 만든이가 보통이 아님을 눈치채게 만들었다. 이 틴다리의 성모상은 전체 바실리카의 중심이었고 순례자들을 끌어당기는 알지못할 신비로움으로 가득했다. 틴다리의 성모상은 거기서 시간을 초월한 신앙의 징표(icon), 어머니로서의 징표 그리고 선(goodness)의 징표로 순례자를 천년도 넘게 인도했다.

산 정상엔 여러 식물과 꽃들도 순례자를 반겼다.


이 성모상의 유래는 분분하지만 보통 비잔틴 양식이라거나 아니면 비잔틴 양식의 영향을 받은 중동이나 북아프리카에서 제작됐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이 중세의 성모상은 팔레르모에서 7달여의 보수끝에 이 성당에 다시 모셔졌고 성상의 디자인과 의복 그리고 문양등으로 그 유래에 대한 설이 분분하다고 한다. 특히 세월이 지나 그동안 앉았던 먼지를 제거한 결과 성모님의 눈은 원래 감긴게 아니라(두꺼운 먼지로 인해) 뜨고 있었고 그 눈의 모양으로 보아 그리스 비잔틴 여인보다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쪽 여인상이라고 하는 학자도 있다. 그외에도 이 성상의 재료는 검은 사이프러스(Cypress) 나무로 특히 남프랑스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그래서 이를 제작한 예술가는 비잔틴, 중동의 영향을 받은 라틴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고대 디오니시오스 극장터를 가는 도중에 만난 폐허. 이 돌들은 고대극장의 일부분이었으리라...


유래조차 신비한 이 틴다리의 성모상은 또 피부가 검어 보통 ‘검은 성모님(Black Madonna)’라 일컫는 유럽의 여러 성모상 중의 하나이다. 유럽엔 사실 몇백의 검은 성모상이 존재하며 보통 12세기나 15세기에 사이에 많이 제작되었고 분포되었다. 그리고 많은 기적의 이야기들이 이 성모상들과 함께 전해온다.



틴다리의 성모상 아래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Negra sum sed Formosa”


이를 해석하면,

“난 얼굴이 검어도 아름답습니다(I am black but beautiful.)

시칠리아 색깔은 화려하다.


여기엔 또 한 전설이 따라온다. 한 여인이 아기를 업고 이곳 틴다리에 순례를 왔다가 틴다리의 성모님을 보곤 단지 얼굴이 검다는 이유로 공경을 못하겠다고 후딱 내뱉었다. 그런 후, 성당을 나오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 높은 절벽위에 지어진 성당이라 잘못하여 아기를 바다쪽 절벽에 빠뜨렸다. 너무도 놀란 이 여인이 즉시 잘못을 깨닫고 빌며 살려달라고 틴다리의 성모님께 간청했다고 한다. 그러자 절벽밑 바다에서 땅이 갑자기 솟아오르며 여인의 아기를 구했다고 한다. 실제 성당앞의 '콰지모도 광장' 담벽에서는 깍아지른 절벽과 그 아래 지중해 바다, 그리고 하얗고 길쭉한 모래톱이 바로 보인다. 그 모래톱을 자세히 보면 꼭 여인이 아기를 안고있는 형상이다. 시칠리아 사람들은 이를 그 여인과 견주기도하고 모두의 어머니인 성모님과 견주기도 한다. 이 ‘모성’이란 거룩함을 여기에서 다시 되새기며 터키색 바다 넘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끝에서부터 시작되는 하늘.... 만약 여기서 영원(eternity)을 느끼지 못하면 정말 깨어있지 못한 둔한 사람일 것이다. 그래서 콰지모도 시인은 여기서 영혼의 안식을 찾았을까?

마그네틱도 각양각색. 세 다리의 여신은 시칠리아의 상징.


하여튼, 이 피부색으로 인해 이 성모상은 다른 문화, 인종, 종교들 사이의 ‘일치(unity)의 보편적 심볼’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성모상의 아름다움은 그 긴 세월에도 살아남아 계속 사람들을 진리이신 아드님 예수님께로 인도한다는 사실이다. 성모상의 검은 눈과 햇빛에 탄듯한 피부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면, 무릅앞에 앉힌 아기 예수를 자신의  팔안에 안고 있는 성모님이 꼭 우리를 초청하는 것처럼 보인다. 신비함이 감도는 이 거룩한 초청에 어느 누가 거부할수 있을까?

시칠리아의 화산인 에트나를 본떤 모조술병.


미사가 끝나고 성당을 나왔다. 성당 앞 작은 광장은 시인 살바토레의 이름을 따서 ‘살바토레 콰지모도 광장(Piazza Salvatore Quasimodo)이라 명명되었다. 스마트 폰을 꺼냈다. 그리고 이 광장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이 시를 다시 읊었다. 이곳 틴다리의 풍광은 시인 콰지모도의 쉴곳없는 영혼에 평화와 안식을 가져다 주었음이 분명하다. 노벨상이고 뭐고 고향만큼 따뜻한 곳이 어디있을까? 부모님 품처럼 따뜻한 고향품이 어디 있을까? 틴다리의 신비한 바람이 시인을 매혹시키고 본향의 따뜻함을 전한다고 이 시는 노래했다. 아니 시인뿐만아니라 이곳 틴다리를 방문하는 누구나 이 따뜻한 평화를 여기서 발견할 것이다. 고향 시칠리아를 떠나 로마와 밀라노를 떠돌던 시인은 이곳에서 시칠리아의 비밀, 시칠리아가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들을 여기서 발견했을 것이다. 아니 시인이 한때 잃었던 동심의 기억, 고향과 부모님을 다시 발견했을 지도 모른다.

바실리카 옆 광경. 절벽 아래 모래톱이 보인다. 몇몇 수영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광장에서 마을로 난 길을 따라가니 작은 기념품 가게와 카페들이 조르르 줄지어 있었다. 좀 더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옛 고대 디오니시우스 성벽도 보였다. 정다운 소나무와 느릅나무 사이로 콰지모도가 찬양한 틴다리의 바람을 솔솔 맞으며 고대 그리스 극장을 찾았다. 고대 시기, 정확히 396 BC에 틴다리는 서양문화의 요체, 그리스의 식민지가 되었다. 머리를 굴리며 그게 약 2400년전임을 알았다. 왜 이런 높은 곳에 청동기 시기부터 사람들은 도시를 세웠을까? 안내서에 의하면 이곳은 옛부터 세라믹과 와인 산지로, 비옥한 토지와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당시 세운 그리스의 야외 극장이 폐허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윤곽은 분명했다. 그리스인과 시칠리아 관객들이 앉았던 큰 돌로 만든 좌석들도 아직 그들의 온기가 느껴졌다. 2400년의 온기는 시칠리아의 강한 햇빛이 그때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극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아치형 문은 그 긴 세월을 버티며 아직도 꼿꼿이 선채로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갑자기 시끌시끌한 관객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같았다. 그러다 고요해졌다. 2400년 전으로 꺼이꺼이 올라가려 했다. 다시 고대의 고요가 밀려왔다. 혹시 이 고요속에 콰지모도는 고대의 비밀을 알아챘을까? 바다에서 불어온 틴다리의 신비한 바람이 이 비밀을 시인에게 전했을까? 틴다리는 고대의 비밀을 알려줄듯 말듯하며 나의 애간장을 태웠다. 다시한번 콰지모도의 시를 읽으며 비밀을 훔쳐볼까?


소나무 그늘에 앉아 터키색 바다와 하늘을 동시에 바라보았다.


봐도 봐도 신비롭다.
시칠리아는 푸른색이다. 하늘도 바다도. 그 안에 각양각색의 시칠리아의 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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