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편한 들판이 창밖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작은 섬 쿠바로 생각해 어디에고 바다가 보일 것으로 짐작했는데 아니었다.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 '듣고 읽은' 이야기만으로 새겨진 이미지는 자주 틀리게 마련이다. 들판엔 야자수 나무가 군데 군데 보초처럼 서있어 여기가 열대지방임을 상기시켰다. 어디에고 닳고 닳은 움푹 움푹 파여진 도로위를 45명을 실은 구식 코치가 덜컹이며 달렸다. 가끔식 창밖으로 말이 끄는 달구지도 심심치 않게 볼수있었다. 말 옆에는 고삐를 쥔 마음씨 좋아보이는 쿠바 할배가 땀을 흘리며 말과 보조를 맞추며 걷고있었다. 달구지를 지나면 가끔 먼지를 풀풀 날리는, 군데군데 녹이 슨, 그래서 폐차장에서 금방 나온듯 오래된 버스가 승객을 잔뜩 싣고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초현실적 풍경이었다. 다른 세상에 있었고 시간은 거꾸로갔다. 그러나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가끔식 활짝 열어재친 창으로 버스안 쿠바 승객들과 눈이라도 마주칠라면 항상 그들은 미소를 보냈다. 따뜻하고 인정많은 공산주의라는 말도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문득 산티아고 데 쿠바(Santiago de Cuba)라고 적혀진 표지판이 지나갔다. 여기부터 쿠바의 제 2 도시인 산티아고이다. 언뜻 보이는 도시 풍경은 필리핀의 지방도시와도 비슷했다.
산티아고(Santiago)란 이름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국가에 너무 많아 가끔 혼돈이 온다. 우선 본토 스페인의 성지순례의 대명사,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가 떠오르고 칠레의 수도인 산티아고 그리고 스펠링과 발음은 약간 다르지만 같은 이름인, 미 해군기지가 있는, 켈리포니아의 산디에고(San Diego)가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지역명이 이 산티아고, 즉 야고보 성인(영어로 제임스. James)의 이름을 따랐다. 스페인 북서쪽 갈리시아 지방 사투리로 ‘디에고’가 ‘티아고’로 됐다고 들었다. 800 킬로의 대장정이었던 지난 6월 스페인에서의 ‘산티아고 까미노’, 순례길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눈만 감으면 그때 그 소중했던 순간들이 스친다.
백만명이 조금넘는 쿠바의 제 2도시 산티아고는 원래 이 나라의 수도(1522-1589)였으나 오래지 않아 ‘하바나’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하지만 하바나와는 차별되는 도시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자연 경관을 자랑한다. 1518년에 유명한 스페인 탐사대 ‘환 데 그리할바(Juan de Grijalba)’와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황금의 부푼 꿈을 안고 멕시코 연안으로 탐사를 개시한 것이 여기였다. 일확천금이 뭔지, 황금이란 '우상'은 사람들을 미지의 세계로 도전하게 만들었다. 황금은 살아있는 생명이 아님에도 사람들을 움직이다. 그래서 우상이다. 성서의 십계명도 이 죽은 우상에 절하지 말라이다. 지금도 이 죽은 우상이 우리를 움직이고 있다. 이 원정대에 이어 1538년에는 ‘에르난도 데 소토’가 지금 미국의 플로리다로 탐사를 시작한것도 이 도시였으니(영국이 미국에 닿기 전) 산티아고는 초기 스페인의 미대륙 탐사의 전초기지였던것 같다. 그 뒤 프랑스 군대에 의해 1553년에 약탈 방화를 겪었으며 또 영국군에 의해 1662년에 약탈당했으니 이곳이 얼마나 서구 열강의 각축장이였는지 알게된다. 당시의 진짜 쿠바인들은 어디갔을까?
그러나 이런 정치적 부침과 혼동만이 아니라 산티아고는 문화적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 대표가 쿠바의 소월이나 목월 정도인 국민 시인, ‘호세 마르티(José Martí)’이다. 그는 하바나 출신이나 그가 묻힌 곳은 이곳 산티아고의 ‘산타 에피헤니아 공동묘지(Cementerio Santa Efigenia)’라고 한다. 그는 쿠바의 독립 영웅이며 하바나의 국제공항도 그를 기려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이다. 그 외에도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대부분의 예술가가 여기 출신이며 특히 ‘찬 찬’을 만든 꼼빠이 세군도도 이 도시에 묻혔다고 우리 가이드는 자랑에 자랑을 거듭했다. 그만큼 이 도시가 갖는 자부심을 보여주는 듯했다. 산티아고는 또 쿠바의 전통 춤과 가락인 ‘손(son)’의 발생지이며 그로부터 갈라져 나온 ‘살사(Salsa)’리듬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런던의 여러 지역 센터에선 ‘살사 교습’ 프로그램을 자주 볼수있다. (언제 시간나면 나도 한번 이 춤을 배워볼까나.)
우선 전략적 요충지로서 또 미지로의 탐사 전초지로서 이 도시가 가졌던 매력은 내륙쪽에 병풍처럼 에워산 산이였다. 그 산 꼭대기에 식물원이 있었는데 온갖 종류의 나무와 꽃을 가꾸고 있었다. 어떻게 산 정상에 이런 식물원이 있는지 신기했다. 여기서 보면 이 식물원뿐 아니라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산세가 우리나라의 지리산에 견줄만했다. 큰 버스가 올라가기엔 너무 가파르고 좁은 산복도로로 우리는 작은 미니벤에 나누어 동승했는데 한참을 올라가야했다. 꽤나 높은 산이라 짐작이 갔다. 올라가면서 창밖으로 우리나라 산세와 비슷한 풍경을 보니 더운 날씨와 오버랩되어 영화 ‘카리브해의 해적’에 나오는 풍경을 떠올렸다. 아마 영화를 만든 사람들도 이 산세를 참고했으리라. 식민지 쿠바는 해적의 침범이 빈번했고 또 약탈도 많이 당하였다. 방문한 몇몇 성당도 해적에 약탈당한 역사를 표기해 두었었다.
그러나 진짜 해적을 막기위해 세운 성채는 이 산이 아닌 도시의 해안가 그리 높지 않은 산위에 있었다. 식물원을 내려와 다시 시내에서 가장 높다는 건물인 호텔에서 큰 코치로 갈아 타고 헤어졌던 일행과 다시 조우했다. 코치는 시내를 벗어나 해안가 산위에 지어진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암석의 베드로 성채(Castillo de San Pedro de la Roca), 줄여서 그냥 ‘모로 성채(Castillo de Morro)라 부르는 곳으로 갔다. 이 성채는 1637년에 이태리 밀라노 출신의 죠반니 안토넬리(Giovanni Battista Antonelli)라는 엔지니어에 의해 세워졌다. 17세기에 세워진 이태리 르네상스 스타일의 이 성채는 당시의 건축물 중 가장 잘 보존된 그리고 이 시기 성채의 모델이 되어주는 성채라고 한다. 17세기의 정치경제적 요구에 의해 지리상으로 중요한 산티아고 항을 방어하기 위해 이 바위산위에 성채를 지은 것이다. 성 안으로 들어가니 여러 방이 있었고 또 옛 대포들도 그대로 전시해 놓았다. 그러나 가장 볼만한 것은 역시 성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카리브해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던 사람들은 왜 황금에 그렇게 미쳐 싸우고 약탈에 약탈을 감행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인간의 욕심이란 한계가 없는것 같았다. 나 또한 이 풍경을 놓칠세라 욕심으로 열심히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으니… 도중에 한 독일인이 나에게 사진찍어달라 부탁했다. 카리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니 고맙다고하며 어디에서 왔는지 나에게 물었다. 난 농담으로 멀리 바다를 가리켰다. ‘저기 저 바다로부터. 배를 타고서(I am from the Sea by the boat)’ 왔다고했다. 그는 내 농담을 받아쳐 ‘혹시 전직이 해적이세요(Are you a retired pirate?)’하고 물었다. 난 ‘예, 잭 스패로우인데요(Yes, I am Jack Sparrow)’했더니 깔깔 거리며 웃었다. 물론 잭 스파로우는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죠니 뎁이 연기한 해적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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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채를 나와 죽 늘어선 거리의 매점상들을 지났다. 한낮의 뜨거운 날씨라 목이 말랐다. 나무 그늘에서 물 한병을 한번에 다 들이 마셨다. 바로 옆에 쿠바인이 조각상들을 팔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온걸 단번에 알아보았다. 한국사람들이 이 조각상을 많이 산다고 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어느 나라 사람들이 많이 오느냐고 물으니 캐나다와 유럽인이 대부분이라고 하였다. 미국은 비록 최근에 외교관계가 새로 수립되었으나 아직 관광객은 캐나다인에 비해 적다고 하였다. 그러나 저쪽(왼편 멀리 보이는 산을 가리키며)에는 미국인들도 많다고 하였다. 의문이 들어 왜냐고 하니 저 산 너머가 악명높은 ‘관타나모 베이(Guantanamo Bay)’라고 하였다. 순간 오싹했다. 물고문(waterboard)과 수감자들의 인권문제로 말도 많던 그 관타나모 베이가 저기구나 생각하니 오렌지색 수의를 입은 죄수들이 금방 떠올랐다. 재판도 없이 아프간이나 이라크에서 끌고 온 많은 이들이 아직도 위험한 테러분자로 저 수감소에 있다고 한다. 민주국가 미국에서 정당한 재판도 없이, 그것도 외국인들을. 영국 국적을 가진 수감자들도 몇 있었는데 작년에 마지막 수감자(영국 국적이 아닌 거류자라고 들었다)가 풀려나 가족을 만나는 이야기가 온통 미디아를 장식했던 걸 기억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없앤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그대로 있다고 하니 쉽게 없애지는 못하는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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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 성채.
모로성채 일부.
성채에 가까운 바다.
산티아고 중심광장에 서 있는 주교좌 성당. 이 주교좌 성당앞에서 거센 혁명의 물결이 일었다. 체 게바라도, 피델 카스트로도, 산티아고 시민들도. 광장 주변의 건물도 특색있다.
산티아고 보통거리.
저 작은 발코니에 서서 피델 카스트로는 산티아고 시민들에게 연설했다. 기다렸으나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