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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n 22. 2017

'에디트 피아프' 노래에 우린 가족이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


-빈 집은 싫다.
빈 거리도 싫다.
혼자서 하는 산티아고 순례길에
사람이 그리웠다.
그리고 순례자는 나의 가족이 되었다.
누구든 가족이 되는 순례길.
이게 '상투스(Sanctus)' 아닐까?-


4킬로미터를 더 걸어 드디어 '주리아인(Zuriain)'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피레네의 맑은 개울물이 흐르는 바로 옆에 그림같은 알베르게가 있었다. 동행한 '핀'과 나는 앞 뜰을 가로질러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가 벨을 누르고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바스크 주인장이 어슬렁거리며 나왔다. 등록을 하고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가니 5-6명이 잘수있는 방이 몇개 있었다. 너무도 피곤해서 그냥 침대위에 신발만 벗고 대자로 누워 한시간을 넘게 그냥 누워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샤워를 하니 그제사 몸이 가뿐해졌다. 하지만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것은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걸을수가 없었다. 꼭 중고등학교때 체육시간에 벌로 앉아뛰기를 한 다음날 걸으면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그때는 왜 체육선생님이나 교련 선생님들이 그렇게나 많이 벌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지금 아이들보다 더 순하고 말도 잘들었는데 말이다(특히 나같은 착한 순둥이 에게도 말이다…ㅋㅋㅋ).

난 80대 노인이 된 기분으로 계단을 겨우 내려와 맥주를 한잔 시켜 들고 시냇물이 흐르는 앞 뜰로 나갔다. 테이블엔 커플인 듯한 사람 둘이 맥주를 들이키며 앉아 있었다. 그 중 남자분이 날 보자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농담으로 난 “I am from heaven.(천국에서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들은 웃으며 이 농담에 환호했다. 이후 이들이 나를 소개할때면 항상 내가 천국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금방 친해졌다.

이들은 네들란드에서 왔다고 했다. 나중에 핀도 내려와서 우리는 한 팀이 되었다. 개울물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다.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종교를 얘기했다. 내가 가톨릭 신부라고하자 관심이 증폭됐는지 질문들이 끝없이 이어졌고 얘기시간은 더 길어졌다. 피레네 산맥 기슭이라 저녁이되자 바깥은 추웠지만 알베르게 안은 따뜻했다.

저녁때가 되자 주인장 아저씨가 저녁으로 뭘 먹을 건지 주문을 받으러 왔다. 그때 우리는 핀이 능숙한 스페인어를 한다는 걸 알았다. 영국인으로 외국어를 한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며 놀렸는데 에딘버러 대학을 다닐때 여자친구가 스페인인이여서 자연히 배우게 됐다고 했다. 주인집 아저씨는 핀의 통역을 통해 저녁으로 빠에야(Paella)를 준비하려하는데 다들 괜찮은지 물었다. 물론 우리는 좋다고 했다. 넓고 그리 깊지않은 둥그란 솥에 쿠킹된 채로 테이블에 올려진 빠에야는 예상한 대로였다. 갖은 해산물이 노란색 색깔과 잘 어울려 보기에도 좋았다. 특히 해산물 냄새도 솔솔 나 식욕이 일었다. 옛날 큰 냄비를 상 가운데 놓고 가족들이 빙 둘러앉아 먹던 된장찌게가 저절로 생각났다. 거기에다가 '하우스 와인(house wine)'을 걸치니 정말 일품이었다. 알베르게엔 앞서 말한 핀과 네들란드 커플 그리고 프랑스 노인 둘과 브라질 커플뿐인 작은 알베르게였다. 우리는 긴 테이블에 같이 앉아 빠에야를 먹으며 오늘밤 하루 만큼은 우리가 같은 가족임을 느꼈다. 어제 묵은 대형 학교 기숙사같은 알베르게완 전혀 딴판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소개하며 즐겁게 저녁을 즐겼다. 다들 와인을 걸친 탓인지 저녁이 끝나갈 즈음엔 거나하게 취해 우린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먼저 프랑스인 둘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네들란드인들은 프랑스어 뿐만 아니라 프랑스 노래도 곧잘 했다. 내가 아는 프랑스 노래는 전혀없었고 가수는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밖에 모른다고 했더니 네들란드인이 갑자기 아이폰으로 youtube을 찾고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아니야, 난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 가 아이폰으로부터 흘러나왔다. 모두들 다같이 갑자기 합창을 시작했다. 나만이 즐겁게 이들의 합창을 들었다. 우린 뭔가에 홀린듯 했다. 스페인 주인장은 그런 우리를 즐겁게 바라보고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두 프랑스 노인은 소화 성녀 데레사의 고향 리지외(Lisieux) 인근에 산다고 했다. '에디트 피아프'는 어렸을 적 할머니가 운영하는 윤락가에서 자랐다. 영양부족 등으로 눈이 멀게 되었는데 한 윤락녀의 도움으로 '리지외'로 가서 성녀 소화 데레사에 요청을 청하는 기도를 특별히 했다고 한다. 거짓말처럼 나중에 눈이 다시 보이고 그 후론 항상 성녀 데레사의 요청을 구하는 기도를 했다고 한다. 성인은 피아프에겐 친구와 같은 존재였다. 난 ‘마리안 꼬띠옹’이 연기한 에디트 피아프의 영화를 기억했다. 그녀의 크고 슬픈 눈망울이 어련거렸다. 그녀의 입은 쉴새없이 재잘거리거나 아니면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는 그녀가 아니었다. 죽기 바로 전까지도 그녀는 인생에서 중요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불렀다. 결코 순탄치 않았던 그녀의 생애가 떠올랐다. 왜 그녀는 자신의 삶 끝에(죽기 3년 전인 1960년) ‘후회하지 않아’라고 노래했을까?

몇 곡의 노래를 더 부른뒤에도 우리는 늦게까지 얘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셀피도 찍었고 나중엔 주인장의 카메라로 단체사진도 찍었다. 이 사진은 이 알베르게 facebook에 곧바로 올려졌다. 이날밤 만난 우리들은 산티아고 끝날때까지 서로 연락해서 만났으며 또 어디쯤 있는지 서로 안부 확인을 하곤했다. 우린 정말 순례의 가족이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들은 서로만날 때면 나의 아픈 다리를 염려했다고 한다. 가족처럼 고마웠다.

프랑스 노인들이 산티아고를 가장 먼저 도착했다. 그 뒤를 이어 네들란드 커플 그리고 내가 뒤를 이었다. 브라질 커플은 이틀 뒤에 입성했고 핀은 맨 나중에 들어왔다. 그러나 순례를 가장 즐긴이는 핀이었다. 그는 이 순례가 세번째라고 했다. 순례중에 그렇게도 불편하고, 힘들고, 어색하지만 항상 되뇌이는 것은 다시 여기 오리라는 생각이었다. 순탄치 않았던 삶에서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노래한 에디트 피아프처럼 나도 산티아고 순례를 온것도 후회되기는 커녕 너무 좋아서 꼭 다시 올거라는 다짐만을 반복했다. 개울물이 흐르는 그 알베르게와 마음씨 좋은 주인장이 쿠킹한 빠에야 맛과 더불어 걸친 하우스 와인, 그리고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그곳...

언젠가 또 가야지...
(계속)

:::::

아, 다시 가고싶은 이 개울가의  알베르게. 이 바로 앞에 깨끗한 개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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