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던 율리시즈 Jun 22. 2017

고통은 심해지고, 순례는 계속되고

산티아고 순례 에세이

-
고통없이 행복없다.

No Pain No Gain.

-


정말일까?


이층침대에서 공중에 부웅 뜬 불안감으로 밤새 난 눈만 감았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새벽 5시 정도가 되었을까. 부시럭대며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 낮게 소근거리는 소리, 그리고, 간간이 번쩍대며 귀찮게 구는 전등 불빛에 눈이 저절로 뜨였다. 밤새 한숨도 제대로 못잤다. 몸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다리는 다리대로 근육이 똘똘 뭉쳐 한발짝도 내딛지 못할 것 같았다. 부러질 것같은 나무 사다리를 통해 어렵게 이층 침대를 내려왔다. '듀엣'으로 밤새도록 지치지도 않게 드러렁한 바로 아래 침대의 호주 부부는 이제사 피곤한지 세상만사 골아 떨어져 있었다. 보통 사이즈의 싱글 침대에 덩치 큰 이 호주 부부 둘이 나란히 누운게 그저 신기해 보였다. 어젯밤 늦게 아내되는 분이 나에게 양해를 구하며 이이가 남편이니 여기 자도 되느냐고 했다. 건너편 침대엔 그에 질세라 같이 온 그들의 삼촌이 온 밤을 그르렁대며 이들에 응수했다. 덩치도 그 부부와 가족이 아니랄까 봐 만만치 않았다. 큰 강당같은 이곳에서 혹시 다른이들이 날 밤새 코를 곤 범인으로 지목할까 두려웠지만 내 덩치를 보면 그 장대같은 코골이 소리가 불가능할거라 이해하리라. 하여튼 이런 '코골이 가족'은 난생 처음이었다. 호주가 땅이 넓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아마 그 먼곳에서 왔기에 피곤해 더 그러했으리라. 나도 '까미노'를 시작한 지 첫날 밤이라 심리적으로도 잠을 설친 것 같았다. 하여튼 모든것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컨디션이 말이 아니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특히 몸이 그랬다. 예전만 못했다. 젊어서는 사서 고생한다고들 했는데 이 나이에 사서 고생하려니 뭔가가 들어 맞지 않았다. 이래저래 이틀을 제대로 된 잠을 한숨도 못자 찌푸둥한 몸을 가누며 샤워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최신 샤워기가 설치된 알베르게에서의 파워 샤워는 마사지를 해주듯 내 몸의 긴장과 두려움을 풀어주었다. 미안하지만 평소 시간의 두배를 넘게 샤워실에서 보냈다. '슬리핑 백'을 정성껏 접어 뱌낭에 쑤셔 넣고 다른 물품들도 베낭안에 차곡 차곡 챙기는 사이 호주 부부가 부시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여자분이 친절하게 물었다.

“Did you sleep well?”

왜 하필이면. 그냥 good morning도 괜찮은데. 뭐라 해야하나. 어젯밤 왜 코를 그렇게 골았는지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생각하니 웃음이 속으로 나왔다. 대신에 “Mm, Yes. Thank you..”라고 했다. 바로 그때 한 중년 신사분이 기타를 치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우리쪽 통로를 지나갔다. 이층 침대가 쭉 나열된 입구에서부터 안쪽까지 걸으며 부르는 그의 아침노래에 몇몇은 웃으며 박수도 쳤다. 이 층에서만 족히 50명의 순례자들이 잠을 잘수있을 정도로 넓었다. 옛날 학교의 큰 강당에 이층침대를 나란히 여러 열로 배치해둔 것 같았다. 아래로 내려오니 알베르게 입구엔 대여섯명의 순례자들이 벌써 출발을 하고 있었다. 부엌을 살짝 들여다보니 몇몇이 아침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직도 바깥은 컴컴하고 몇미터 분간도 어려운 새벽이었다. 몇몇은 머리에 고정시킨 전등(꼭 광부들이 끼는 헬멧에 고정시킨 전등같은)을 켜고 걸었다. 언제 이런걸 다 준비를 했는지? 이들이 제대로 된 순례를 하는 것 같았다.

어둠이 덮은 마을을 빠져나오자 바로 숲이 나왔다. 모두들 말없이 이 어두운 숲을 걸었다. 침묵을 지키며 막 깨어나기 전의 숲의 소리를 들었다. 신기했다. 어둠속에서 숲속 오솔길을 걷는다는 것이. 언뜻언뜻 헬멧의 전등이 숲속에 어런거리는 것이 마치 숲속의 요정이 이리저리 날라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한 30분을 걸어가자 서서히 동이 트고 밝아졌다. 이제사 다른 순례자들의 얼굴을 분간할수 있었다. 길가 간이 휴게소에서 커피와 크로아상으로 아침을 대신했다. 예정은 주비리(Zubiri)라는 곳에 도착해 숙박할 생각이었다. 건데 막상 도착해보니 아직도 시간이 정오 12시 밖에 되질 않았다. 새벽 6시에 출발했으니 6시간을 걸은 것이다. 긴장이 되어서인지 다리가 성치않은데도 불구하고 빨리 걸은 것 같았다. 주비리는 아름다운 중세의 다리가 마을 입구에 있었다. 난 다리 난간에 베낭을 세워 잡고 잠깐 휴식을 취했다. 다리 아래론 피레네의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다리에서 바로보이는 가까운 자갈밭에 몇몇의 순례자들이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한 젊은이가 말을 걸어왔다. 영국에서 온 핀(Fin)이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정보를 나눴다. 아직도 시간이 많아 우리는 일단 점심을 주비리에서 해결하고 다음 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약 2km를 예정보다 더 걷는 것이다. 내 책자대로 하면 딱 32일 걸리는데 일정상 30일로 축소해야했기에 하루에 몇킬로는 더 걸어야 했다. 다리도 아프고 힘도 부쳤지만 해보기로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뭔가 맞지 않았다. 다음 마을이 '라라카소네 (Larracasone)'였는데 난 표지를 잘못 읽어 한참을 다른길로 더 걸었다. '핀'도 무턱대고 뒤에서 따라왔기에 표지 확인을 못했다. 걸으면서 왜 마을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린 의심하다가 조그만 성당과 두어채의 집이 있는 외딴곳에 도착해서야 라라카소네(Larracasonne)를 벌써 지나쳐 와 버렸음을 알았다. 내가 정확히 그 표지를 해석했더라면 우리는 사실 오른쪽으로 꺽어 들어가야 했는데 곧바로 지나쳐 와버린 것이다. 할수없이 다음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까지 가기로 했다. 무식하면 고생한다더니 한 4km를 더 걸어야 됐다. 아주 지쳐있는데 또 4km를 더 가야하니 남은 힘마저 쭉 빠져나갔다. 배낭은 더 무거웠다.
(계속)

:::::




매거진의 이전글 '나폴레옹의 길'을 따라 피레네를 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