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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l 08. 2017

영어를 얼마나 잘 하길래?

장하성씨가 트럼프를 영어로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의 안타까움...

사진: 한국일보


외국에 살면 그 나라 언어를 습득하는 건 기본이자 예의이다. 나처럼 그 나라 언어로 먹고 살아야 한다면? 두 말하면 잔소리다. 그리고 언어는 그 나라 문화이해의 지름길이다. 난, 영국 테니스 스타, '앤디 머리(Andy Murrey)'가 '프렌치 오픈' 시상식에서 왜 '봉주르' 한마디, '메르시' 한마디 안하는지 기분 살짝 나빴다.

"언어는 예의이다."

며칠전 신문을 읽었다. 트럼프 미국대통령이 '장하성'이란 사람을 칭찬했다고 헤드라인이 똑똑히 나왔다. 무슨 비즈네스 스쿨을 나왔느니, 동문이니 하며 떠들썩하게 신문들은 기사를 보탰다.

문제는 이 사람이 이 '중요한 국가간 협상' 테이블에서 "그럼 영어로 할께요" 라고 했다는 사실이다. 난 웃음이 피식 절로 나왔다. 그리고 걱정도 됐다, 정말...

우선, 이 사람이 어떻게 해서 그런 중요한 자리에 선택됐는지? 그리고 국제적, 외교적 에티켓을 제대로 습득했는지 의문이 불쑥 들었다. 영어 잘한다고 뽐내는 걸 탓하는게 아니다. 이 분의 과거를 모르지만 금방, 그리고 외교의 '외'자도 모르는 내가 왜 '아...외교의 신참, 협상의 신참이구나', 라는 생각이 금방 들었을까? 신문의 호들갑은 일상이 아닌가?

전후 정확한 사실관계나 상황은 모르지만 신문이 보도한 상황을 염두에 두자면;

첫째로, 이 자리는 '사석'이 아니다. 국가와 국가간의 중요한 협상 자리이다. 한 단어를 두고 나중에도 해석이 분분하고 또 논쟁이 되는 협상결과문을 염두에 둔 협상을 하는 자리이다. 제 아무리 '뛰고 난다' 하더라도 원어민, 그것도 고도의 협상력을 가진 사람들과 영어로 얘기해서 '이해시킨다'고? 얼마나 설득력이 뛰어나길래? 이 사람 참 대단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일자 무식이다. 또 동석한 통역자에 대한 엄청난 무례이다. 협상 테이블에 앉아 있던 미국인 대표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저 영어 잘하구나 생각했을까? 속으로 웃었을까?(참고로, 영어 잘하는 영어권외 사람들은 엄청 많다).

둘째는 한국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 사람을  '똑똑한 사람'이라 치켜 세웠다고 하는데, 이런 면에서 트럼프는 알려진 것처럼 그렇게 무식한 사람은 아닌 것같다. 그는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즈네스맨 답다. 한국에서 온 그리고 미국에서 공부한 이 사람을 추켜 세우고 떠올리며 자신의 목적달성을 은근히 실행하는 것이 아닐까?

'엉큼하다.'

그러나 이것도 고도의 협상술수이다. 그래서 칭찬도 외교적 협상에 꼭 필요한 것이다. 혹시 트럼프는 협상전에 학력에 목을 메는 한국문화를 사전 공부한 건 아닐까? 그래서 중요한 순간에 툭 한마디 하자 칭찬을 들은 한국사람은 그냥 우쭐해지고 기분좋아져서(협상 테이블이 화기애애 해졌다고 표현한 신문처럼), 혹시 '원칙과 목표'를 잠시 잊은 건 아닐까? 그래서 기분좋아 가지고 협상 테이블에서 나온 뒤 기자들에게 얼른 자랑한 건 아닐까?

'와,... 세계 최고 강대국 미국 대통령이 똑똑하다고 칭찬을 했다'

우리 대표팀은 그렇게나 순진한 아이 같았을까? 트럼프같은(?) 사람도 나온 그 비즈네스 스쿨을 두고 똑똑하다고 칭찬했으니 트럼프는 은근슬쩍 자신도 드러내며 올렸다. 그리고 영어권 문화에서 상대방, 특히 협상테이블에서 말한 '똑똑하다'란 말은 여러가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진담이든 농담이든... 하여튼 한국대표팀은 트럼프에 비해 한 수 낮았다. 난 아니라고 믿고싶지만...

영어처럼 세계 공통어가 된 경우에는 외국인이 한국말을 할때 듣는 우리의 감정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캄보디아나 필리핀에 가서 한 두마디 그 나라 말을 하면 금방 잘한다고, 정말 잘한다고 반색하며, 이 한 두마디 땜에 말문이 트이고 친구가 된다. 나 자신도 여기서 영국 사람이 한국말 한 두마디 하면 금새 '아..' 하면서 그 사람 다시 쳐다본다. 물론 그 사람이 능통하게 한국말 하는 건 기대도 안한다. 그러나 세계 공통어라 불리는 '영어 원어민'의 경우엔 약간은 다른 것같다. 한 두마디 영어 한다고 해서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잘 한다고 칭찬 할수도 있지만 우리가 칭찬하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영국인들 중에는 비-영어권인 외국가서 영어가 안 통한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다.

영어를 잘하면 물론 좋겠지만 영어, 즉 영어가 협상에서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반기문 전 유엔 총장이 '이제 대한민국도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국제 정치인들과 만나 얘기나누는' 시대가 됐다고 했을 때 웃음이 절로 나왔다. 같이 유엔에서 일했다는 강경화씨도 영어한다고 가끔 통역도 두지 않고 외국 정치인과 대화한다고 한다. 마냥 좋은 일일까? 굳이 한국말을 써야한다는 '속좁은 애국심'이 절대 아니라 이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정치인이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하는 사람들이고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성'이 이들에겐 항상 따라 붙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엔에서 일할 때와는 다르다."

강경화씨도 또 반기문씨도 이 '차이점'을 알까?

그럼,
독일의 안겔라 메르켈이 영어를 잘해서?
일본 수상 아베가 영어를 잘해서?
중국의 시진핑은 미국에서 공부했는데 그럼 '영어'로 트럼프를 이해시킬까?

그러나 이같은 협상 테이블이 아니라면 영어 구사는 여러모로 이점도 많고 또 요즘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만찬같은 장소에서는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오히려 이득이 될 것이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 전 엠마뉴엘 마크롱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했는데 영어로 했었다. 참신해 보였다. 특히 자국어에 대한 자존심 강한 프랑스 대통령에 도전하던 그가 아닌가? 사석에서 외국어를 사용하면 장점은 참으로 많다.

그러나...

국가의 이익이 달려있는 '공식외교협상 테이블'이라면? 그것도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상대방의 언어로? 혹시, 이런 '잘 난 사람' 둔 대한민국 국민은 자랑스러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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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허핑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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