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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Aug 07. 2017

역사를 오롯이 품은 어머니 성당- 로마 라테란 바실리카

이탈리아 여행 에세이-

“우리나라 가톨릭 서울 대교구의 명동성당같은 로마의 주교좌 성당은 어디일까?”



새벽에 눈을 떴다. 로마의 새벽은 찬란했다. 새벽에서 꽤 이른 아침까지 그 시간은 여행자에겐 부산한 시간이다. 하지만 귀중한 아침을 이용하는 진짜 여행자가 되기위해 어렵지만 새벽에 일어나는 걸 시도했다. 일찌감치 새벽 커피로 머릿속을 정리하고 나면 여행은 즐거워지는 것이다. 특히 오늘은 세계 모든 ‘가톨릭 성당의 어머니(the Mother Church of all Catholic churches)’로 간다. 로마에 와있는 수많은 관광객을 피하기 위해 이른 아침에 라테란 바실리카로 향했다. 마치 어머니를 뵈러가듯이 마음이 흥분됐고 또 푸근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은 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을 가톨릭교회의 중심 성당이라 생각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황의 거주지가 거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답은 로마의 라테란 언덕(사실 지금은 언덕도 아닌)위에 세워진 '라테란 바실리카(The Lateran Basilica)'이다. 베드로의 '좌(seat)'을 대대로 이어온 현 교황은 로마의 주교이기도 하시다. 그 로마의 주교이신 교황의 주교좌 성당이 바로 이 라테란 대성당이다. 보통 라테란 바실리카로 불리나 '성요한 라테란 바실리카'로도 불린다. 여기서 요한은 세례자 요한과 복음사가 요한 두 분을 모두 지칭한다고 한다. 라테란이란 이름은 로마제국 시절 로마의 귀족가문이던 ‘라테라니’ 가문의 집터였는데 폭군 네로 황제가 강제로 뺏어가지고 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 바실리카는 서기 324년에 콘스탄틴(콘스탄티노) 황제(the Emperor Constantine) 재위기간 중에 이 궁터에 처음으로 세워졌고 후에 여러번의 보수와 증축이 이어졌다고 한다. 313년에 그리스도교의 신앙의 자유가 공표된 밀라노 칙령의 해라고 보면 10년 조금 더 지난뒤에 이 성당을 세운 것이 된다. 그리고 이 대성당의 중요성때문에 12세기부터 로마에선 10월 9일에 항상 라테란 대성당 봉헌 축일을 지내왔다. 그리고 이후에 로마전례서에 따라 이 로마뿐 아니라 다른 유럽으로 그리고 전세계로 퍼져 나갔으며, 어머니 성당으로서 그리고 가톨릭 교회의 중심성당으로 교회의 일치와 통합의 상징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 성당의 역사에선 어려움도 또 고난도 많았다. 중세기 한때 아비뇽 유수가 있던 시기엔 프랑스 왕의 권력으로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 성당은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했고 화재도 몇번 났다고 한다. 그러나 짧은 아비뇽의 시대가 마감하자 다시 이 대성당을 재건했고 재건 증축중에 당시 교황이 거주지를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감에 따라 자연히 바티칸 언덕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 교회의 중심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대성당의 정면은 18세기 초에 세워진 네오-클래식 양식의 성당이다. 이른 아침에 긴 줄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이 들른 이 대성당의 내부에 들어서자 우선 그 거대한 크기에 압도되었다. 높은 성당 천장의 장식을 구경하느라 목도 아팠다. 그러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성당안의 12개의 벽감(niche. 벽의 움푹 들어간 부분. 보통 성당에서 성상을 세움)은 바로크의 대표적 건축가 '베르니니(Bernini)'와 라이벌 관계였던 유명한 건축가 '보로미니(Borromini)'가 설계했다고 한다. 하지만 오랫동안 비워져 있다가 후에 신약성서에 나오는 12사도들 조각을 세워 넣었다. 각 사도들의 특징을 보여주는 아이코노그라피를 읽느라 정신도 없었다. 로마의 주교좌 성당이라 역대 교황들의 동상도 있었다. 그러나 성벽밖의 바오로 바실리카(St Paul’s Basilica outside the Wall)암에 새겨진 역대 모든 교황들의 모자이크처럼은 아니었다. 그 중에 ‘노동칙령(Rerum Novarum)’을 공표하고 신-토미즘 철학을 추천하고 후원한 레오 13세 교황의 동상도 있어서 반가웠다.



그리고 이 성당 한쪽에 '거룩한 계단(Scala Sancta. the Holy Stairs)'이 있는데 이 계단은 원래 예루살렘의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저택에 있던 것으로 신약성서에 나오는대로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재판받을 당시 이 계단을 사이에 두고, 위에는 빌라도가, 아래는 죄인으로 끌려온 예수님이 서 있었던 곳이다.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인이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하며 4세기에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또 이곳 라테란 대성당에는 아주 오래된 '세례소(Baptistry)'가 있는데 이곳에서 313년 밀라노 칙령을 공표함으로 그리스도교의 자유를 허락하였던 콘스탄틴 로마제국 황제가 세례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 대성당은 또 이탈리아 파시스트 무솔리니 정부와 가톨릭 교회가 맺은 ‘라테란 협약’이 이곳에서 이루어진 곳이다. 이로서 중세로부터 내려오던 교황령의 영토가 이제는 바틴칸 시국의 영토로 줄어들고 이탈리아와 구분 독립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바티칸 시국의 영토구분은 베드로 대성당이 있는 영역뿐 아니라 바티칸 밖에 위치한 이 라테란 대성당과 부속건물도 같이 포함시켰다는 사실이다. 비록 바티칸 역외이지만 이 대성당만큼은 로마의 주교좌 대성당이라 바티칸 시국안에 포함시켰다. 그래서 이 성당안에 있는 교황의 의자인 ‘주교좌(cathedra)’도 꼭 보아야 할 것이다.



대성당 밖으로 나오니 이 대성당 밖 광장 건너에는 프란치스코 성인과 그의 동료들의 조각상이 서 있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프란치스코회 수도회의 교황인준을 받기위해 여길 방문하였음을 기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광장 가운데의 이집트에서 가져온 뽀족한 오벨리스크도 정면의 바로크 대성당과 서로 비교되며 어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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