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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Sep 05. 2017

박물관의 테이블

프랑스 파리 여행 에세이-

§
“가구는 죽은 것일까?

아님 살아있는 것일까?

용도폐기 후 박물관에 전시된 가구는 분명 운명을 다한 화석과 같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가구는

손때 묻힌 주인의 역사를 온 몸으로 보여주며

전시장을 찾는 에게 주인의 역사를 얘기하고 있었다. 그때 그 시절을...

부활한 박물관의 가구는 그렇게 살아 있었다.”

§


문: 여기 벽에 바짝 붙여 놓은 가구는 무엇인고?

답: 빅톨 위고의 ‘집필 테이블’이옵니다.

밤하늘에 총총 빛나는 그의 명성에 비해 그 창조의 산실인 집필 테이블을 직접보니 작은 사이즈라 먼저 놀랐다. 하지만 그의 명성을 말하듯 테이블 높이는 상대적으로 높아보였다. 키가 커서 이게 테이블인지 눈치채지 못했다. 의자가 없어서 일까? 의레 테이블과 짝을 이뤄야 할 의자는 거기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 위엔 잉크병에 꽂힌 깃털 펜이 떠나버린 주인을 축쳐져 애처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속을 굳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병속 잉크는 다 말랐을 것이다. 창조의 상상력도 죽음으로 막을 내렸고 이제 박물관의 유품으로 석화되어 있었다.

빅톨 위고는 의자에 앉기 보다 서서 집필하길 좋아했다. 앉아서 하면 편안하고 좋지만 오래있으면 허리도 둔부도 뻐근하게 아팠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예 서서(stand-up) 글을 썼다. 그가 서서 집필한 바로 그 테이블이 그렇게 침실의 왼편에 놓여있었다. ‘장 발장’도, ‘코젯’도, ‘마리우스’도, 그리고 악역의 ‘자베르’ 경감도, ‘테나디어’ 부부도 여기서 탄생했을 것이다. 그리고 혁명의 불길도 이 조그만 테이블위에서 활활 타올랐을 것이다.

영국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도 서서 글을 쓰는 걸 즐겼다고 하고 덴마크 사람이며 신학자겸 철학자 키에르케고르(Kierkegaard)도 마찬가지 였다고 한다. 빅토리아 시대의 인기작가 찰스 디킨스도 서서 집필하는 괴상한(?) 작가중의 한 사람이었고 파리에서 오래 머문 헤밍웨이도 빅톨 위고의 영향인지 서서 글을 썼다고 전해진다. 왜 몇몇 유명작가들은 서서 글을 썼을까? 단순히 육체적인 이유때문일까? 아님, 서서 글을 쓰면 두뇌의 운동력과 상상력이 더 활발해져 창조력이 술술 샘솟아 올라오는게 그 이유일까?

빅톨 위고는 위 사진에서 보듯 간편한 테이블에 서서 집필한 것 뿐만 아니라 옷을 하나도 걸치지 않은 나체로 집필했다고 한다. 세상에나… 흉측하다는 생각이 벌쩍 떠올랐다. 그는 자연주의자였을까? 거기다가 한술 더떠, 그는 하인에게 자신이 벗었던 옷들을 모두 숨기라고 지시한 뒤 집필에만 몰두 했다고 들려온다. 

'사실일까?'

하기야 그의 하인이 사실고백을 안했으니 정확히 알수는 없고 풍문이지만 이 일화속엔 얼마나 그가 글을 쓰는데만 ‘정신집중’을 했는지 엿볼수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옛날에(지금도?) 대입 수능을 준비하며 ‘하면된다’식 정신집중 수단으로 눈썹을 빡빡 밀던 유래가 빅톨 위고일까? 그런 무대뽀로 성공을 한 사람도 사실 많다. 어린 나이에 성공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한 박수받을 사람도 많다. 의지훈련으로 유용했을 것이다. 거기에다, ‘지금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공부하면 꿈을 이뤄요...’란 너무나도 멋진(?) 말을 한 사람도 떠올랐다. 그래서, ‘너, 잠자면 실패야! 인생의 실패라구!’ 하는 섬뜩한 말과 저절로 연상되어 나왔다. 어디 한 사람의 인생을 간판만으로, 많이 버는 세속적 성공만으로 동일화시켜 젊은이들을 지혜없는 공부기계로 격하시킨 그래서 결과적으로 무대뽀에서 시작해 무대뽀로 인생을 정리한 사람도 있다. 달달달 외우려 눈썹을 냅다 밀었던 불쌍한 젊은이들, 그래서 몇은 원하던 간판따고 난 뒤 사회와 인류에 도움은 커녕 자기 권력, 명성, 통장채우기에 요리조리 바빴던, 그게 아님 평생을 간판허세로 낭비한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니 입에서 한숨새가 도망쳐 나왔고 곧 빅톨 위고의 테이블위로 날아가 깃털펜 잉크병 속으로 쏙  들어갔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고
창조는 어디가고 윤리는 카지노에 갔느냐?

그러다가 별짓 다 하는구나 생각하니 씁쓰레 한 기분도 들었고, 한편으론 아직도 침묵하며 서있는 그때 그 테이블을 보면서 빅톨 위고가 나체로 그 앞에 서서 집필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피식 웃음도 새어 나왔다. 그러다 위대한 작가에 혹시 실례되는게 아닐까 생각되어 정색을 했다.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그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위대한 작품들을 이 테이블에서 썼다는 것이다. 그가 나체로 작품을 썼든 연미복을 입고 썼든 문제가 안된다. 눈썹을 밀었든 안밀었든 문제는 아니다. 하나는 후대에 길이 남고 영향을 미칠 위대한 작품을 쓰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자기 안일을 위해 허상의 간판따러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눈썹까지 아낌없이 쓱쓱 민 것이다. 그 간판은 명동거리의 네온사인보다 남포동의 네온사인보다 더 화려하게 빛을 낸다고 보았다. 밤에만...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는 자연의 기적에 밤새 빛났던 화려한 빛은 모두 기죽어 사그라지고 앙상한 몰골만이 보임을 몰랐을까? 그게 다 허상임을... 그러나 많은 젊은이는 그 ‘허상의 꿈’을 좇아 청춘의 달콤한 잠도 물리쳤다.

‘아니, 못잤다!!!’  

빅톨 위고가 꿀잠을 잤을, 가끔은 집필하느라 힘들어 드러렁 소리내며 잠잤을 침대를 보며 위대한 사람은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가 꿈을 꿀수있는 침대를 집필 테이블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그는 서서 집필하다가 피곤하고 졸리면 냉큼 침대위에 널버러 잠을 잤을 것이다. 언제든지! 쉬는 것은 창조를 위한 필수품임을 굳이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창조는 무대뽀로 책상앞에 앉아 있는다고 나오지 않는다. 그렇지 않다면 외부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서 또 정신집중을 위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글을 쓴 이 이상한 작가가 안락한 침대 바로 곁에 글쓰는 테이블을 배치해 놓았을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집에서 공부하면 집중안되고 잠만 와. 도서관 가’하며 불호령에 쫒기듯 내몰렸던 청춘들… 나체로 서서 글을 쓰든, 눈썹을 빡빡 밀고 잠 안자고 공부하든, 유혹은 외부보단 내부의 유혹이 훨씬 더 치명적이다.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란 말이다. 위대한 작품의 창조를 위해 서서 정신집중하며 끙끙 매달렸을 테이블과 그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킨 위고의 쇳덩어리 머리를 베게에 누이고 달콤히 꿈꾸었을 푹신푹신한 침대는 그렇게 작은 공간안에 서로 마주하며 가까이 있었다. 가까운 친구처럼… 성공을 위해 생물학적 필요에 의한 ‘잠’까지 적대시한 성공방정식에 정나미가 뚝뚝 마루바닥에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위고는 여기에서 허구를 사실에 기반하여 창조했다. 그는 역설적으로 나체로 옷입고 있는 인물들을 그렸다. 옷잘입고 있는 자들의 불의에 분노했고 누추한 옷을 입고 있는 자들의 고통을 드러내었다. 그러면서 실상과 허상을 구분하라고 호통을 치는 벌거벗은  두 눈만은 크게 부릅뜬 침대위에 누워있는 위고를 보았다. 허상과 실상이 구분 안되는, 윤리와 비-윤리를 분별 못하는, 지혜와 지식을 분간 못하는 그래서 무엇이 유한이고 무엇이 무한인지도 모른채 ‘눈’을 감은채 꿀꿀 잠자고 있는 사람들도 빅톨 위고의 침대 아래에서 보았다.

사람은 갔지만 작품은 남았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빅톨 위고의 생가를 걸어 나오면서 보이는 거울에 재빨리 내 눈썹을 살펴보았다.
휴… 

얼굴보며 눈썹에 집중한 건 처음이었다.

:::::

(빅톨 위고. 옷을 입었네...)

빅톨 위고의 침대.

오른쪽이 위고의 침대이고 왼편이 그가 서서 집필한 테이블이다. 온통 붉은 색 배경이라 어지러웠다.

그는 이 테이블에 서서 글을 썼다. 여기서 '레 미제라블'이 탄생했다. 이와 비슷한 테이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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