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지금 두 번째로 또 향수병이 도졌다.
석사 유학생활 중에 우울증과 향수병이 걸렸던 일이 생각나서 오늘 글을 쓰게 됐다. 사실 지금 또 향수병이 찾아온 것 같아 차라리 글을 쓰면 조금 해소되지 않을까 싶어 이 글에 희망을 걸어본다.
최근에 졸업식을 마쳤다. 12월 초에 Graduate Visa 를 신청하려 했지만 파운드 환율 폭등으로, 환율이 1700원대로 조금이라도 더 내려가길 기다렸다. 그러다 보니 졸업식을 했고, 그 주에 졸업비자을 완료하였다. 취업 준비중에 있지만, 불확실한 미래와 함께 계속 지출비가 나가는 상황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와서인지 또 향수병이 온 것인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오늘 설날 휴가가 시작되는데 가족이 더욱 보고 싶다.
요약하자면,
나의 향수병+우울증 증상은 어지러움증으로 왔었다. 걸어다니거나 책상에 앉아 있는데 몸의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2018년도에 피트니스 대회에도 나갔었고, 한국에서 나는 아주 아주 건강했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책상에 앉아 있으면 주변 사물이 아니라 뇌가 회전하는 것 같아 가만히 중심을 잡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GP와 연결을 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아 바로 NHS 111에 전화를 걸어 Urgent Care Centre에 갔었다. 의사 선생님이 referral letter (진단 소견서)와 함께 나를 응급실로 가라 하였다. 물론 모든 검사를 다하지 않았지만, 피검사, 심전도 검사를 하였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그리고 알았다... 이것도 향수병 증상일 수 있다는 것을...
5월, 2학기가 끝나고 찾아온 우울증과 향수병
4월 마지막날에 2학기의 모든 과제를 제출함과 동시에 2학기가 마무리 됐다. 5월부터 마지막 8월까지 3학기는 졸업논문에 집중하는 시간이며 이를 8월말에 제출해야 했다. 3학기부터 지도교수님을 만나지 않는 이상 학교에 갈 일이 아예 없게 된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국제학생들도 있다. 왜냐하면, 학기 중에 이미 지도교수와 어느정도 졸업 논문에 대한 윤곽을 짰다면, 온라인으로 지도교수님들과 약속을 잡아 미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지도교수님을 제대로 만나서 이야기 한 적이 없었고, 온라인에서 이야기하는 것 보다 면담이 훨씬 대화가 잘 주고 받아지며, 상대방이 내 얼굴을 기억했으면 바람으로 무조건 면담을 갔었다. 실제로 보고 상대방과 이야기 하는 것은 온라인으로 대화를 하는 것보다 한 사람의 존재가 더 쉽게 인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도 있었다. 그리고 미래에 모를 만남에 교수님 한 분이라도 더 내가 기억났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2학기가 끝나마자 마자 나에게 1주일의 휴식을 주었다. 그런데 번아웃이 왔는지 5월 첫째주에 우울증을 겪게 됐다. 이는 태어나서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증상, 생각과 감정이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피트니스 대회에 나간적도 있었고, 나름 내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을 가장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겪던 날, 나의 그 날이 시작되는 날이기도 했다. 토요일 주말이었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아무도 없는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의 뇌는 갑자기 '자살하고 싶다' 라는 입력값을 어디서 받았다. 타지에 와서 누군가 나를 괴롭히는 일도 없었고,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아무런 이유 없이 말 그대로 그냥 그런 생각이 났다는 것이 정말 무서웠다. 그러다 TV에서 웃긴 장면이 나와 하하하 웃었지만 곧 바로 내 얼굴의 근육들은 무표정을 짓기 위해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아주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한국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하였는데, 내가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호르몬 때문인가 싶었다. 이러한 생각과 감정은 태어나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었고, 우울증 때문에 왜 자살하는지 처음으로 이해가 갔었다.
우울증 걸린 사람에게 힘을 내라, 정신적으로 약하다라는 말은 잘못된 코드를 계속 입력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싶다. 이러한 조언을 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뇌 구조가 다르기에 인식의 차이로 행동이 다르게 나오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남성을 여성처럼 이해하려 들거나 혹은 반대로 하여 서소를 이해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우울증은 마치 가만히 있는 나에게 누군가가 나의 뇌를 그렇게 조작하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내가 왜 이러지??? 미쳐버린 건가 싶어 밝고 긍정적인 나의 내면을 소환해내기 위해 집 근처 공원으로 나가 걷고 뛰며 기분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하루 지나고 괜찮아졌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다.
6월 초에 어지러움증이 동반하다
또 나의 그날이 찾아오는 때였다. 이번엔 갑자기 어지럽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빈혈이 온 건가 싶었다. 월경이 끝나가면 괜찮아지겠지 싶어 버텼다. 그래도 동네 약국에 가서 증상을 말하니, 의사한테 처방받아야 빈혈약을 줄 수 있다 하였다. 처음에 빈혈약을 영국에서는 살 수 없는 건가 생각하였지만, 약사분께서 내 증상이 일반적이지 않기에 그런말을 하셨다는 걸 나중에 이해했다. 나는 월경과 함께 증상이 동반했기에 빈혈이 심하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4일째 되는 날, 내 어지러움증은 더 심해졌다. 뇌가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내 주변이 도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의 중심을 못 잡았다. 졸업논문 초기를 완성해야 하는데 꾸역꾸역 책상에 앉아 타자를 두드리지만 몸이 자꾸 기울어지니까 너무 짜증났었다. GP에게 오후에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온라인으로 상담신청을 남겼다.
그 날 저녁 나랑 가장 친하고 같은 층에 살고 있는 house mate에게 상황을 말했다. 그러더니 "혹시 병원을 가야한다면 내일 GP와 연결되기 위해서는 오전 8시가 되자마자 전화를 걸어야 한다. 그 시간을 놓치면 그 하루는 영영 GP와 연결될 수 없다"고 하였다. "만약에 전화를 놓치면 111에 전화해."
그 다음날 아침,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오전 8시 전화를 놓쳐 111에 전화를 걸었다. 나를 병원에 연결시켜주기 위해 몇 가지 물어보는데 나보고 타이레놀을 먹었냐고 하였다. 어지러움증으로 미칠것 같은 상태에서 그 말을 들으니, 화가 치밀어 올라," 타이레놀이랑 어지러움증이랑 무슨 상관이냐"고 따졌다. 몇 마디 나누고, Urgent care Centre에 당일 예약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조금 미안했다. 그분도 매일 얼마나 많은 전화에 시달리며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정신이 없었을까 싶었다.
GP or NHS 111 연결 후, Urgent Care Centre 방문
내가 간 곳은 St. Charles Centre였다. 30 정도 대기하고 의사선생님에게 진단을 받았다. 나는 이때까지도 내가 빈혈이지 않냐고 의사에게 물었다. 가볍게 이를 무시하시고, 1차적으로 할 수 있는 물리적 검사를 막 하였다. 눈 한쪽 찡그려 보고, 손 올리고, 눈동자를 가리키는 곳에 맞춰서 왔다갔다하고 아무 이상이 없었다. 그러다 한 가지 발견하였다.
일어나서 양팔을 접어 어깨 높이에 올려 눈을 감고 서라고 하였다. 그런데 내 몸이 휘청거렸다. 5-6번 계속 이 자세를 검사하였는데 나는 중심을 제대로 못잡고 아주 조금씩 휘청거렸다. 의사 표정이 조금씩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10분정도 무슨자료를 막 찾으시더니 letter를 하나 프린트 하여 그 편지와 함께 집 근처나 지금 갈 수 있는 응급실로 지금 바로 가라고 하였다. 지정된 응급실이 아니라 아무 응급실에 가면 되냐고 하니 그렇다라고 하였다.
나는 바로 나의 house mates에게 전화하였다. 응급실을 가라하는데 어디를 가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몇 주전에 새벽에 몸이 너무 안좋아져서 응급실을 간적도 있었고, 몇 년전에 런던에서 수술받은 적도 있기 때문에 병원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친구가 추천한 병원은 Royal Free London이다. 이 병원은 런던의 전통적인 가장 부촌 동네에 위치해 있으며, 친구 말로는 런던에서 가장 좋은 병원이라고 하였다. 여담으로 차인표 & 신애라 부부가 런던 여행을 유튜브에 올리셨는데 그 중에 이지역을 보여준 영상이 있다.
Accidental Emergency (A&E)로 응급실에 가다
응급실에 갔을 때, 외적으로 나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기에 나의 느낌으로는 다들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는 것 같았다 (저 친구는 어디가 아픈건가...?). 어떤 환자는 토하기 일보 직전이라 받침대 같은 걸 들고 있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표정이 안 좋은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 사이에 나의 대기를 기다렸다.
한 40분쯤 기다리니 내 이름이 불렸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피검사를 해야 하니 대기하라고 하였다. 그렇게 1시간을 기다렸는지,,, 피검사와 함께 심전도 검사도 같이 하였다. 그리고 나에게 알약을 주었다. 그리고 다른 대기실에 기다려라 하였다. 경과를 지켜보기 위함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내 팔에 피검사를 위해 꼽았던 바늘관 ? 같은 건 팔 중앙에서 빼지 않고 그대로 꽂은채로 다른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그 대기실에선 내가 제법 심각해 보였다.
1시간 30분이 지나 누가 나를 불렀다. 그래서 일어나서 가려하니 절대 움직이지 말라하였다. 다에게 다가와서 증상을 묻고 다시 기다리라 하였다. 이번엔 2시간이 지났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정말 심각해보이는 환자분도 있었다. 불안 증세로 계속 2시간 30분을 대기실 입구에서 자신의 자리까지 왔다 갔다 하였다.
마지막 단계가 드디어 왔다. 나를 담당하였던 의사 선생님과 면담을 조금 하고, 약을 먹으니 조금 났는 것 같다고 하였다. 이미 오후 6시인가 7시가 가까이되어 병원 약국은 문닫았으니, 내일 병원 약국에서 처방받아 가라하였다. 그 약은 병원에서만 팔기 때문이다. 참고로 병원에서 거의 5시간 있었다.
병원비는 학생비자로 모두 무료였지만 약 값은 결제해야 했다
학생비자로 의료보험을 납부하였기에 모든 진료는 무료였다. 다만, 약의 개수와 상관없이 처방전 1개당 약 9파운드를 결제해야했다. 나는 처방전도 의료보험 대상이 되는줄 혼자 착각하고 있었는데 돈을 내라하니 당황해서 아무런 맥락을 설명하지 않고 "저는 국제학생입니다" 라고 말하였다. 약사는 "그게 무슨 상관이지? 빨리 결제해"라고 하였다. 내 뒤로 처방받기 위한 대기줄이 엄청 길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약을 먹고, 나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