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준
#8
등단을 했다니까 상금은 얼마 받았냐, 쓰는 데는 얼마나 걸렸냐,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축하는커녕 아버지가 하신 말씀.
- 육 개월 쓰고 삼백 받았으면 월급 오십이란 말이냐? 때려치워라.
막내가 고등학생일 때 너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정신과에 다닌 적 있는 거 아냐는 어머니 말에 형이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새삼 떠올랐다.
- 작가는 원래 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거예요. 저 때문에 작가 된 거네요 뭐.
내용은 둘째 치고, 그런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게 더 놀라운. 나로서는 참으로 창의적이라고밖에는 받아들일 수 없는 논리적인 궤변. 아버지와 형의 발언에 비하자면 삼촌의 말은 상식에는 어긋나지 않기라도 했다.
상식에 어긋나지 않아서, 상대방을 더 불타오르게 하는 면이 없지 않았지만.
하지만 나는 삼촌이 툭하면 무시하는 “개념 없는 쟁이들”과는 달랐다. 기획서 개념은 없을지 몰라도 제안서 개념은 있었다. 대학원을 다닌다 함은 취직만 빼고 돈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야 한다는 의미였고 그중에 으뜸은 정부 지원금을 따내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봤자 논문 보조금이나 학술 관련 프로젝트였을 거라고? 맘 편히 지 공부하면서 세금 받아먹었을 거라고? 천만에.
정부 주도 산학연 프로젝트의 특징은 처음에는 전공과 관련이 있어 보여도 일단 일이 진행되면 어디로 갈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승헌의 말대로 정부의 진짜 의도는 세상의 모든 잡다한 노가다에 정통한 시다바리의 광범위한 생산에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21세기 학문의 핵심은 통섭이라며? 통섭은 학문과 학문 사이의 만남이라며? 학제와 학제 사이의 경계 허물기라며? 그런데 왜 아무리 가도 가도 만남은 없고 국경만 있는 것이었을까. 오아시스는 없고 사막만 펼쳐져 있는 것이었을까.
현대문학 전공인 놈이 예술 관련 검색엔진에 인문 파트로 참여했다가 컴퓨터 코딩을 배우게 되질 않나, 처음에는 문화 분석이 임무라고 들었는데 어느새 보니 앙케이트 조사를 정리하기 위해 통계 프로그램(SPSS)을 돌리고 있질 않나. 예산이 오천만 원으로 책정된 10분짜리 3D 애니메이션을 의뢰할라 치니 분당 일억의 견적이 나온 적도 있었고, 지방도시의 문화거리 조성 사업에 소요될 거리 조명의 설계도를 오백만 원에 주문할라 치니 장장 4킬로미터에 달하는 거리의 3D 정밀 축적도를 보내달라는 역 의뢰가 온 적도 있었다. 정밀축적도의 가격이 라이팅 설계도의 그것보다 두 배 비쌌던가 다섯 배 비쌌던가. 통섭이란 그런 거였다. 만남이고 경계허물기고 나발이고 그냥 교수와 조교 사이의 누군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닥치고 해내는 것. 툭하면 밤을 새우는 나에게 교수님들은 전화번호를 주었고, 조교님들은 틀린 문장과 틀린 숫자를 주었다.
하지만 덕분에, 나는 삼촌에게 가져갈 기획서를 로켓의 속도로 작성했다. 나를 사막이 아니라 달에, 혹은 드넓은 우주에 데려다줄 로켓.
일주일 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네 명은 다시 만났다.
나는 그동안 논의된 대로 사무실 겸, 공동작업실 겸, 예술강좌를 하는 회사를 설계했다. 글쓰기, 음악, 미술, 춤을 내부인원으로 다 가르칠 수 있다, 낮 시간에는 갤러리 겸 카페를 운영하여 각종 예술상품을 팔 것이다. 요즘 홍대에서 잘 나가는 뮤지션들의 음반, 홍대 아티스트들이 추천하는 이번 달의 신간, 그리고 각종 팬시 상품들을 취급하는 복합장르 편집샵이 될 것이다. 예술가들은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으므로, 공간이 비어있는 시간이 거의 없게 된다.
한마디로 초기 비용 제로, 공간 효율성 극대화가 키워드였다.
삼촌은 기획서를 꽤 꼼꼼하게 읽었다. 구가 옆에 앉아 보충 설명을 잘 해주었다. 삼촌은 미간에 주름을 잡고 기획서를 보다가 구의 설명을 듣고 고개 끄덕이기를 반복했다. 카페 직원이 커피를 가져다주었을 때쯤 말했다.
- 근데 이윤은 어디서 내겠다는 거냐?
- 거기 다 써놨잖아요?
- 초기에 적자가 심할 텐데 그건 어떻게 해결하려고?
- 비용이 안 들어가는데 왜 적자가 나요?
- 비용이 왜 안 들어가지?
- 이윤이 발생할 때까지 아무도 인건비를 안 받을 거라니까요?
삼촌은 하하하하, 어이없다는 듯 웃더니 말했다.
- 공간 임대료는?
아니, 이 아저씨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 너 이 건물 한 층 월세가 얼마일 것 같냐?
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 정도면 층당 삼십 평쯤 되겠지. 열 평짜리 오피스텔 월세가 백만 원 정도니까, 많아 봐야….
- 사백만 원 정도 하겠죠?
삼촌은 다시 웃었다.
- 일 층만 삼천만 원인데?
나는 놀란척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당연히 일 층은 비싸겠죠.
- 그렇다고 이 층이 칠 분의 일 가격이 되겠니?
- 그래서 얼만데요?
- 이 층 삼 층 통으로 임대한다고 했을 때 최소 천오백만 원.
- 그 정도는 삼촌이 투자하셔야죠.
삼촌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 일 년이면 일억팔천만 원인데? 내가 왜?
아니, 어차피 지금 놀고 있는 공간 아닙니까. 놀고 있는 동안에만 쓰자는 건데 그렇게 다 드릴 것 같으면 뭐하러 친척을 찾아옵니까? 라고 생각하기에는 걸리는 게 있었다.
아버지와 삼촌의 관계. 그러고 보니 아버지와 삼촌에게 공통된 집안의 내력은 세 가지였다.
끼니를 굶고 있다며 찾아온 삼촌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춤 같은 걸 추고 있으니 끼니를 굶는 건 당연한 거야. 내가 너한테 돈을 주면 너는 계속 춤을 출 테니 이번 기회에 정신 차리고 취직해서 사람 노릇을 하며 살아가도록 해라.
내 형의 논리-작가는 원래 문제가 있는 법이에요. 저 때문에 작가 된 거네요-에 따르자면 삼촌을 성공시킨 것은 아버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아버지 말대로 취직을 했더라면 삼촌은 부자가 될 수 있었을까? 성실하고 정직했던 아버지는 집 이외의 재산을 갖지 못했다. 평생 돈 걱정을 하며 사신 것은 물론이었다.
- 그래, 네 말대로 내가 투자로 생각하고 공간을 내놓는다 치자.
내가 아무 말을 않고 있자 삼촌이 다시 입을 열었다.
- 인테리어는 어떻게 할 참이냐? 24시간 공간을 굴리면 전깃세와 난방비는 어떻게 해결할 셈이지? 공과금만 해도 층당 오십만 원은 발생할 텐데?
그리고는 삼촌만은 차마 안 할 줄 알았던 발언을 했다.
- 돈이 없으면 취직을 해야지, 이게 지금 내 돈 가져다가 너네끼리 나눠 갖겠다는 얘기랑 뭐가 다르냐?
포장용 노끈에 라이터 불이 닿은 것처럼 가슴속 무언가가 뚝, 끊겼다. 그 순간 나는 냉정하게 깨달았다.
상처는 돌고 도는 것임을.
돌고 도는 상처야말로 집안 내력의 정체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