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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희준 May 19. 2016

재미있는일이라면 뭐든지 가르쳐드립니다 합자회사  7화

노희준




#7. 돌고 또 돌고



나는 감정의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물었다.


그 사람을 어떻게 아는데요?


같이 사업하는 게 있어서요.


무슨 사업인데요?


별건 아니고 주말마다 건물 일층에서 프리마켓을 열어요.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구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성씨가 같네혹시 노작 씨 친척이에요?


막내 삼촌은 아버지와 터울이 많이 졌다. 맏조카, 즉 내 형과 열 살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형보다 더 철없는 나의 삼촌.


철 대신 돈이 많은 나의 삼촌.


삼촌은 아버지와 상극이었다. 의절하다시피 한 지 십년 쯤 되었다. 물론 아버지 장례식에는 왔지만 장례식장은 조직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곳이었다. 나도, 삼촌도, 형도, 매형도, 앉았다 일어났다 하느라 바빴다. 외국인의 눈에는 꽤 잘 되는 레스토랑의 웨이터들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국의 장례식은 슬픔을 근육통으로 바꾸는 의식 같았다. 마음의 나라와 육체의 나라 사이에 있는 환전소. 하루에 수백 번 절을 하고 나면 피곤해서 잠도 오지 않았다. 장례식이 끝나고 거의 일주일을 나는 무릎이 아파 절뚝거리며 다녔다.


어쨌든 삼촌과 대화할 새는 없었고, 근황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삼촌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다. 북극 같은 곳. 가 보고 싶기도 한데 과연 갈 수 있을까 싶은 곳. 남극에 사는 북극곰이 있다면 삼촌이었다. 겉보기는 영락없는 UFC 선수인데 대학은 무용과를 나왔다. 아 그러고 보니, 삼촌은 한때 댄서였다, 댄서!


고딩 때 삼촌의 댄스 회사에 찾아간 적이 있다. 건강에도,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을 것 같다고 둘러댔지만 숨은 뜻은 클럽에 가고 싶다였는데 눈치 챘는지 어쨌는지 삼촌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동작을 보여주었다.


삐루엣. 발레의 기본 동작.


더도 말고 한 번만 성공해라.


한 번만 하면 돼요?


일 회전을 성공하면 이 회전, 삼 회전도 성공할 수 있고, 그 뒤에는 무한 회전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오 회전 십 회전도 아니고 무한회전이라니.


근데 이것만으로 춤이 돼요?


안되지.


근데 왜 이것만 시켜요?


그게 안되면 춤이 안되니까?


나는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어쩌면 나에게 숨은 끼가 있어 책상에서 탈출하게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3일이 지나도, 4일이 지나도, 연속 회전은커녕 한 바퀴조차 말끔하게 성공할 수 없었다. 보람 없이 땀에 젖어 연습생들의 재즈 댄스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비 동산의 땅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일주일째 되는 날 나의 삐루엣을 본 삼촌은 말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마라.


어리석게도 나는 삼촌에게 이의를 제기했다.


아니클럽에서 춤추는데 발레까지 알아야 해요?


그쯤이면 클럽 정도는 충분하니까 그만 돌아가도록 하여라.


뭔 말이야, 하루 종일 빙빙 돌기만 했는데, 아무것도 안 가르쳐주고는 뭐가 충분하대, 싶었는데 삼촌의 말은 사실이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클럽에서 대충 박자를 맞출 정도는 돼 있었다. 연습실에 오는 연습생들은 예뻤고, 빙빙 돌면서도 나는 예쁜 연습생들의 춤추는 모습을 열심히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으며….





헌승은 한번 찾아뵙는 것도 겸사겸사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입장이었다. 헌승의 말버릇이 워낙 그랬다. 한 마디로 끝내고 말 것을, 이 단어 붙이고 저 단어 붙여서 열 마디로 만들고 마는 녀석.


구 댄서는 삼촌인데 만나면 되지 뭐가 문제냐는 태도였다. 삼촌은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었지만 다르지 않은 점도 있었다. 가족에게는 친절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삼촌이 유일하게 친절하게 대하는 가족이 있다면 딸이었다. 이제 길거리에서 만나면 알아보지도 못할 나의 사촌 여동생.


뭔가 껄끄러웠지만 더 이상 쉬운 방법은 없었다. 북극곰과 펭귄을 이야기하던 계절은 갔다. 한 달 내로 망원동에 꽃이 필 텐데, 우리는 언제까지 술자리 토크만 반복할 텐가. 생각하고 있는데 마침 구 댄서가 허를 찔렀다. 구는 제법 사람 심리를 아는 여자애였다.


노작 씨가 싫으면 제가 얘기해볼까요?



삼촌을 일방적으로 찾아간 건 이십 년 만에 처음이었다. 몇 개월 전에 장례식장에서 보았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오랜만인 나에게 삼촌은 고개를 보일 듯 말 듯 끄덕,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처음 보는 헌승에게는 반갑게 악수를 청했고, 구에게는 며칠 사이 예뻐졌다며 등까지 토닥였다.


구의 말대로 삼촌은 일층 카페를 제외한 나머지 층을 비워놓은 상태였다. 노출 콘크리트로 지어진 오 층짜리 건물이었다. 부자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예쁜 건물을 갖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간의 개요를 열심히 설명했다. 구가 큰 도움이 되었다. 적절한 타이밍에 맞장구도 쳐주고 보충 설명도 해주었다. 삼촌은 내 얘기는 뚱하게 듣고 있다가도, 구가 말하면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구 때문에 일이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었다.


내 얘기를 다 듣고 난 삼촌은 전화를 했다. 5층에 있다는 사무실 직원에게 하는 모양이었다. 삼촌은 사업을 할 때도, 안할 때도 있었지만 직원은 언제나 데리고 있었다.


난데오늘 아침에 봤던 거 있잖아그것 좀 가지고 내려와 봐봐.


삼촌은 문서만 받고 직원은 올려보냈다. 삼십 장쯤 돼 보이는 A4용지 한 뭉치를 테이블에 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첫 장에 <이태리 도시락 기본계획>이라는 타이틀이 적혀있었다. 이태리 도시락은 뭐고, 아니 그전에 도시락이랑 예술사업이 무슨 상관? 이태리라는 고급스러운 아이템과 도시락이라는 대중적인 상품을 결합시킨 아이디어를 좀 배우라 이건가? 그거야말로 우리 사업의 핵심이에요, 폼나는 걸 쉽게 가르치자, 이를테면 가요처럼 격 떨어지는 거 말고 브라질 음악처럼 간지나는 걸 일반인 눈높이에 맞춰 공급하자는 거지요. 


삼촌이 입을 열었다.


내용은 볼 것 없고.


삼촌은 여전히 짧고 명쾌한 사람이었다.


이런 양식으로 써갖고 와.


잠시 동안은 회의가 끝난 줄도 몰랐다. 헌승과 반갑게 악수하고 난 삼촌이 구 댄서에게, 바쁘지 않음 나랑 식사하러 갑시다, 친절 가득하게 말했을 때에야 너네는 그냥 집에 가라는 얘기임을 알았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깜박 잊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삼촌의 비슷한 점은 한 가지 더 있었다.


너는 사업을 하겠다는 놈이 기획서 개념도 없냐?


이른바 확인사살. 급소를 관통하는 마지막 한 발. 이쪽은 한동안 죽음을 체험할 것이므로 대꾸할 기회는 없을 것이다. 간신히 부활하고 나면 저쪽은 이미 총총 사라진 후일 테니까.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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