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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희준 May 12. 2016

재미있는일이라면 뭐든지 가르쳐드립니다 합자회사  6화

노희준




#6



현지의 말인즉 넓은 작업실이 필요하지만 일반인한테 수업 따위는 하기 싫고, 기업이랑은 더 하기 싫지만 고급화 전략을 취하자는 거였다.


뭐야, 그러니까 B to C도 B to B도 다 안 한다면서 뭘 고급화해?


사무실은 얻지 말고, 사업은 B to B로 가고, 전략은 고급화로. 구의 노선은 말은 되었으나,


그래서 대체 뭘 팔 건데? 지금 우리 중에 비싼 가격으로 B to B 할 애가 어디 있어?


얘기는 빙빙 돌았다. 돌고, 돌고, 또 돌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만 있지, 무엇을 할 것인가는 없었다. 소설가라면 구체적인 것에 길들여져 있기 마련이었다. 한마디로 나로서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몇 번의 술자리가 반복되자 다른 애들도 문제를 느끼는 모양이었다.


밤비가 늦게 합류하기 시작했고, 와서는 사업과 상관없는 얘기만 했다.


현지는 많이 늦지는 않았지만 은근 밤비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사실은 워낙 말로 남 누르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스트레스 해소용 술자리 정도로 생각하는 듯도 했다.


맨날 말만 말고 뭐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냐?


놀랍게도 현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러게제일 좋은 건 뭐든 다 한 번씩 해 보는 건데.


음모론을 피울 때만 아니면 헌승은 참으로 똑똑한 아이였다.


생각과 실전은 다르니까우리 케미가 어떤지 알아도 볼 겸아름아름 한 번씩 해보는 게 가장 좋지다들 알잖아십 년 동안 골방에서 기타만 친 새끼보다 공연 열 번쯤 한 삼 년차들이 훨 나은 거.


심지어 현명하기까지 했다.


어차피 나중에 다 할 거니까하나하나 각개격파를 해볼 시간이 필요해.


요는 비용을 최소화하면서 일종의 연습시간을 확보하는 것이겠군.


그렇지그거지.


내 말에 헌승이 기뻐했다. 현지가 괜히 심술을 부렸다.


정리충 같으니.


정리충은 익충이지.


익충이어도 벌레지.


하지만 우리의 싸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기저기 옮겨 다녀서는 탄성을 못 받을 거 같고.


헌승이 고집스럽게 말을 계속했기 때문이었다. 헌승의 성격상 잘 없는 일이었는데 아무래도 구댄서의 주장을 꺾고 싶은 거였다.


아무래도 공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당분간 임대료를 내기는 어려우니까.


순간이었지만 나는 느꼈다. 현지와 내가 헌승의 입술을 주시하며 동시에 꿀꺽, 마른침을 삼키는 것을.


왜 어디 빈데라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도 현지가 나보다 빨랐다. 날카롭게 빈틈을 포착한 드라이브였다. 헌승도 만만치 않았다. 대답 대신 막걸리를 한잔 들이켰다. 강하게 날아온 공을 허공에 띄워 시간을 버는 기술이었다. 그러면 우리도 헌승처럼 딴청 피울 수밖에 없었다. 곧바로 다시 묻지는 못했는데, 차라리 정리충이 낫지 설명충은 되기 싫지만 그래도 정확한 정보는 전달해야 하니까 짧고 간결하게 해보자면, 시간차를 두지 않으면 안달복달이 되고 안달복달이 될수록 헌승 같은 아이는 마음을 닫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비밀번호를 연달아 틀릴 경우 경보음이 울리며 시스템이 다운되는 도어락 같은 거였으므로, 충분히 기다려야 중복 카운트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거였다.


이 얘기로도 설명이 안된다면,


헌승의 부모님은 건물주였다. 자산규모가 얼마인지는 몰랐지만 한두 채 수준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조물주 위에 있다는 건물주의 아들. 고로, 예수보다 조금 높은 등급. 


음모론자니까 우리랑 친구가 됐지, 사실은 함께 놀 깃털이 아니었다.


설명을 그만둘 수 없어 슬프지만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헌승은 돈이 많건 적건 친구를 평등하게 대했으므로 작용 반작용의 원칙에 의거, 부자라는 이유로 헌승에게 더 많이 요구하는 것은 반칙이었다. 물론 헌승이 먼저 하겠다면 말리지야 않겠지만 돈이 그렇게 많으면서 이 정도도 못해줘? 하는 태도를 보이면 퇴장감이었다.


한마디로 마음은 흥청망청이어도 돈에 대해서는 철저한 애였다. 그런 헌승에게 공간을 제공할 의향이 있는지를 떠보다니, 현지의 질문은 어찌 보자면 꽤 발칙한 것이었다.





왜 어디 빈데라도 있어?


헌승은 막걸리를 한 모금 마시고 바깥에 나갔다 왔다. 담배를 한 대 피고 온 모양이었다. 나는 현지의 눈빛을 접수하고 적당한 시기에 다시 물었다.


너네 쪽은 시세가 얼마나 돼한 열 평쯤 하는 사무실이라면?


승헌은 솜씨 좋은 컷 드라이브로 공을 받아냈다.


나야 뭐 부모님 돌아가셔야지지금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알잖아?


하면서 술이나 먹자, 술이나 먹자, 허허허, 허허허허, 하고 웃었다. 나는 엣지 말고 떨어진 공을 급히 올려 깎아치기로 살려냈다.


어차피 임대할 거면 너한테 하는 게 효율적이지 않겠냐는 얘기지.


탁구는 평범한 주고받기, 쉬어가기 타임으로 전환되었다. 득점 따지지 않고 그냥 치는, 오늘은 그만치자 정리용 탁구.


에이 너네한테 돈 받기는 좀 그렇지같이 하는 사업인데.


무슨 소리야 친구일수록 시세대로 쳐서 정확히 받아야지.


인테리어가 수업하기에는 적당치 않아서 그러는 것보다는.


인테리어도 같이 돈 들여서 해야지 딴 데 빌리면 인테리어 안하냐?


나는 내가 말하면서도 가증스러웠다. 십시일반이라 해도, 여기 그만큼의 돈을 낼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현지와 밤비는 혹시라도 내 말이 진심일까봐 잽싸게 딴청을 피웠다. 별로 재밌지도 않은 얘기를 하며 깔깔거리는데 서로의 어깨를 치는 손이 자꾸 어긋나고 있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좀 있는데.


오랜만에 입을 연 건 구였다.


어떤 사람인데?


승헌이 물었다.


- 돈도 좀 있고, 최근 자기 건물에서 하던 사업 하나를 정리해서 건물이 비었는데 아직 창창한 나이라서 임대 주기는 싫다네? 나한테 젊은 사람들 좋은 아이템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는데 컨택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어떤 사업을 하셨던 분인데?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이것저것 하시는 분인데 이번에 접은 사업은 미술 관련 사업이었던 듯갤러리로 썼던 건물이라 건물도 예쁘게 생겼어.


헌승과 나는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듯 서로에게 고개를 돌렸다. 설마 아니겠지. 홍대에 미술사업하다 접은 사람이 한 둘이야? 확률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하지만 이곳은, 


가는 곳마다 날뛰는 설마를 한 마리쯤은 보게 되는, 


홍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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