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 자동차로 떠나는 보석 같은 여행
유럽에선 3월 말 이스터(Easter) 방학이 시작하면 다들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리조트가 가성비가 훌륭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티켓을 예매했다.
프랑스 남부 도시 리옹에서 경유하는 비행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항공사에서 리옹에서 튀니지로 가는 경유 편을 다음 날로 바꿔버렸다. 그래서 급하게 정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남프랑스 당일치기 여행을 하기로.
리옹 근처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잡고 공유 자동차 렌탈 사이트인 투로(Turo)에서 차를 빌렸다. 에어비앤비의 렌터카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반 렌터카 업체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리옹 생텍쥐페리 공항에 도착하자 고소한 빵냄새가 풍겼다. 역시 프랑스 하면 빵이다
투로에서 빌린 차를 픽업하고 첫 번째 목적지인 안시(Annsey)로 향한다. 리옹 생텍쥐페리 공항에서 1시간 반 정도 동쪽으로 달리면 남프랑스의 숨은 보석인 안시가 나온다.
아기자기한 시내를 지나 안시 호숫가의 파키에 공원으로 향한다. 사진에 안 담기는 숨이 멎을듯한 알프스의 풍경에 흠뻑 빠져든다.
풍경을 감상하고 구시가지까지 걸어본다. 곧 섬의 궁전이라 불리는 팔레 드 릴이란 아담한 궁전이 보인다.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아도, 파키에 공원에서 서쪽으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나온다.
구시가지의 다리 위에선 젊은 악사가 아코디언을 멋들어지게 연주한다. 남프랑스의 로맨틱한 분위기에 음악이 빠지면 섭섭하다.
걷다 보니 배가 고파져서 사람이 많은 식당에 들어갔다. 오믈렛과 그라탕, 크레페를 시켜 먹었다. 맛은 음... 너무 기대를 많이 한 걸까?
이제 서둘러 길을 떠나 샤모니(Chamonix)로 향한다. 몽블랑산기슭에 위치한 샤모니는 스키어들의 천국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근처의 스위스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차를 세우고 곤돌라로 달려간다. 오후 3시였는데, 정상까지 가는 곤돌라는 이미 마감. 중간까지 가는 곤돌라를 탔다. 한 사람당 왕복 22유로니 엄청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스키어들 사이에서 당당하게 눈 덮인 중턱에 올라간다. 3월 말인데도 아직 눈이 쌓여있었다.
너무 추운데 이미 뜨거운 음료를 파는 매점도 전부 마감했다. 별로 할 일이 없어 금세 내려가 샤모니 시내에서 패스트푸드로 저녁을 때웠다.
그걸 마지막으로 짧지만 알찼던 남프랑스 당일치기 여행이 끝났다.
좋은 여행지들은 짧았든 길었든 아쉬움을 남긴다. 그 아쉬움 때문에 언젠가는 꼭 다시 와야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짧았던 남프랑스 여행이 그랬다. 한 일들을 생각해 보면 운전 다섯 시간, 사진 찍고 밥 먹고 걷고 그게 전부였다. 그러니 얼마나 비효율적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프랑스는 우리에게 좋은 인상을 깊게 남겼다. 낭만적인 거리의 풍경, 알프스의 숨 멎는 절경, 친절했던 에어비앤비 호스트, 어딜 가나 아이를 진심으로 예뻐해 주던 프랑스 사람들까지.
마지막으로 리옹 생텍쥐페리 공항에서 보았던 어린 왕자를 남기며 여행기를 마치고 싶다. 다음번에 다시 오면 조금 더 많이 알고 싶은 생각이 드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