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의 휴가
한창 시오노 나나미의 걸작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고 있을 때였다.
지인 가족이 튀니지 리조트를 예약했다는 얘기를 했다. 튀니지라면 로마와 자웅을 겨뤘던 카르타고의 후예들이 사는 나라 아닌가! 결국 정신을 차리고 보니 튀니지행 비행기를 끊은 후였다.
이번엔 조금은 생소한 튀니지로 가보자.
카르타고의 후예답게 튀니지 수도인 튀니스의 공항의 이름 또한 카르타고 국제공항이었다.
튀니지는 프랑스 식민지였던 탓에, 아직도 대다수의 국민이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공항에서부터 거리의 간판까지 불어와 아랍어, 영어 등이 혼용되어 있는 것이 특이한 풍경이었다.
공항 도착이 12시 반인데 택시를 4시 반으로 예약해 놨다. 바로 카르타고 공항 근처의 유명한 관광지인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에 들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택시기사에게서 벌써 도착했다고 일찍 출발할 수 있다는 문자가 왔다. 혹시나 싶어 시디 부 사이드 여행도 같이할 수 있냐 물었더니, 기존에 결제한 호텔까지의 비용에 50유로만 추가로 내면 된다고 한다. 흥정 끝에 45유로로 합의하고 시디 부 사이드로 향했다.
시디 부 사이드는 아프리카의 산토리니로 유명한 관광지다. 하얀 건물에 파란색 문과 창문이 산토리니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동네 자체는 별로 크지 않아서 삼십 분이면 다 둘러볼 정도였다. 아직 성수기가 아니라 관광객들도 별로 많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기념품 가게의 호객 행위가 조금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기념품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마 시디 부 사이드를 유명하게 만든 건 튀니지안 블루라는 짙은 푸른색의 문들이 아닐까 싶다. 그 문들 앞에서 수도 없이 많은 사진을 찍었다.
튀니지에는 고양이들이 참 많았다. 어딜 가나 사람을 별로 안 무서워하는 길냥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고양이 사진을 찍고 싶다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맡겨놨더니, 고양이 얼굴을 대빵만 하게 찍어놨다. 사진을 보니 고양이가 “뭘 보냐 닝겐”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시디 부 사이드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절벽 카페 Cafe Des Delices에 가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사진은 그럴싸하게 나왔지만 유명세답게 바가지도 만만치 않았다. 점심 값보다 음료 네 잔 값이 더 나왔으니 말이다. 게다가 파란색 천막은 너덜너덜했고 건물도 제대로 관리가 안되었다. 조금 실망...
마지막에 들린 카페는 조금 실망이었지만, 그래도 시디 부 사이드는 예쁜 풍경 덕분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항에서 한 시간 반을 달려 리조트에 도착했다. 리조트에 들어가는데도 짐 검사를 했는데, 예전에 있었던 리조트 호텔 테러의 영향이라고 한다. 검문 등을 강화한 덕분인지 리조트를 비롯한 여행지에서 오히려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유명 호텔 체인인 이베로스타 계열의 “Iberostar Selection Diar El Andalous“였다. 4박 5일 3명이 묵는 올인클루시즈 호텔이 378파운드, 한국 돈으로 65만 원 정도니 다른 올인클루시브 호텔에 비해 말도 안 되는 가성비를 자랑했다.
호텔에서 조금 걸어가면 바로 백사장이 나왔다. 3월 말이라 물놀이를 하기에는 아직 물이 조금 차가웠지만, 에메랄드 빛의 맑은 지중해 물에 기분까지 청량해지는 느낌이었다.
올인클루시브의 매력은 역시 계속 제공되는 음식과 술이 아닐까. 하루 세끼 거의 사육당하는(?) 느낌으로 실컷 먹고 마시다 보면 나중에는 질려서 과일과 샐러드만 먹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북아프리카의 과일에 대해서 또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어딜 가도 튀니지의 오렌지는 최고의 맛을 뽐냈다. 플로리다에서 오래 산 내가 보기에도 튀니지의 오렌지는 역대급이었다.
손가락을 연상시키는 대추야자는 또 어떻고. 대추야자는 이름이 대추가 들어가 대추맛이 날 것 같은데, 오히려 잘 익은 감 맛이 난다. 과일 하나만큼은 어디 가서도 지지 않을 만큼 훌륭했다.
호텔에만 틀어박히기 싫어 택시를 타고 가까운 곳의 시장에 가기로 했다. 수스라는 도시의 “메디나”라는 곳인데, 우리나라로 치면 전통시장이라고 한다.
경황이 없어 사진을 못 찍었는데, 택시를 타고 가면서 보는 풍경이 너무 이국적이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선글라스를 낀 상사맨이 금방이라도 하와이안 셔츠를 입고 튀어나올 것 같은 풍경이었다. 이럴 때면 상사에 입사해 아프리카에서 전기담요를 팔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나 메디나는 전통시장이라기에는 조금 어폐가 있었다. 위의 사진들은 전통 시장 느낌이 나는 것만 모아둔 것이고, 시장의 70-80%는 짝퉁 가방이나 신발을 파는 곳이었다. 인사동을 기대하고 갔는데 남대문 시장이 나온 느낌이랄까. 일부는 좋았지만 대부분은 지나친 호객 행위 때문에 벗어나고 싶었다.
어딜 가나 들리는 “니하오”도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사실 세계 인구의 20% 이상이 중국인이니, 상인들 입장에서는 동양인만 보면 중국인일 확률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니하오가 안 통하면 “곤니찌와”를 시전 하는데, “안녕하세요”가 안 들리는 걸 보니 아직 한국도 멀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시장을 구경하고, 이번에는 고대 이슬람의 요새라는 리바트(Ribat)로 향했다. 입장료를 받았는데 여기서도 흥정이 통했다. 유적지 입장료까지 흥정이 되다니, 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리바트는 사실 별다른 볼 것이 없었는데, 안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정말 특이해서 좋았다. 넓은 안뜰에서는 마치 당장이라도 창 두 개를 던져주면서, 서로 싸워서 이긴 사람만 살아남는 목숨을 건 경기가 펼쳐질 것만 같았다.
호텔에서의 마지막 점심은 이스터(Easter) 테마로 꾸며졌다. 이슬람 국가에서 그것도 라마단 기간 중에 이스터 테마의 식사를 하다니, 역시 자본주의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쉽지만 벌써 돌아갈 시간이다. 공항에 도착해 기다리는 동안 오렌지 주스와 피스타치오 쉐이크를 마셨다. 피스타치오 쉐이크는 녹진한 맛이 일품이었고, 즉석에서 오렌지 7-8개는 갈아 만든 오렌지 주스 또한 말이 필요 없었다.
마지막으로 튀니지의 바가지요금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시디 부 사이드의 절벽 카페에서의 바가지는 물론이고, 공항 내 카페의 바가지가 엄청났다. 코카 콜라 한 잔에 5.4유로, 레드불 8.2유로. 누가 보면 스위스 마테호른 정상에서 마시는 음료값이라 해도 믿지 못할 가격이었다.
면세점의 물건 또한 물가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에 비해 비싸면 비쌌지 결코 싸지 않았다. 지나친 바가지요금에 여행의 막바지에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바가지요금에도 불구하고 튀니지 여행은 참 좋았다. 시디 부 사이드는 예뻤고, 가성비 최강의 올인클루시브 호텔에서는 먹고 마시고 실컷 놀았다. 메디나에서는 평생 들어볼 “니하오”를 다 들어봤지만, 리바트의 묘한 분위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아프리카를 어느 정도 체험해 볼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다음에는 호캉스가 아니라, 사하라 사막이나 사바나 같은 곳에서 진정한 아프리카를 즐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