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궁전
이번에는 런던에서 조금 떨어진 지역으로 가본다. 런던 남서부 리치몬드(Richmond)에 위치한 햄턴 코트 팰리스라는 궁전이다. 앤 불린의 남편이었던 핸리 8세가 머문 것으로도 유명한데, 아름다운 궁전은 물론 겨울에는 스케이트장까지 열려 런던 남서부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기도 하다.
유럽에 살면서 정말 많은 궁전과 성들을 봐왔는데, 햄턴 코트 팰리스처럼 관리가 잘 되어있고, 제대로 활용되고 있는 곳은 드물었다. 아직까지 입헌군주정이 유지되고 있는 영국이니까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거두절미하고, 궁전으로 가보자. 자세한 정보는 아래 홈페이지에서...
https://www.hrp.org.uk/hampton-court-palace/#gs.5zwund
드라마 대장금을 보면 장금이를 비롯한 궁녀들이 임금님이 드실 수라상을 준비하는 장면이 나온다. 서양의 궁전에도 우리네 장금이들처럼 앞뒤에서 왕가를 보필하는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햄턴 코트 팰리스에서 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궁전들이 화려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생활만을 보여주었다면, 햄턴 코트 팰리스에서는 중세 시대 서민들의 모습, 부엌의 모습, 그리고 중세 시대의 음식 문화까지 볼 수 있어 눈이 즐거웠다. 좀 더 제대로 중세를 체험해 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중세시대 서민 체험을 해보았다면 이제는 귀족이 되어 궁전을 누빌 차례다.
햄턴 코트 팰리스의 내부는 화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빈이나 파리의 궁전처럼 호사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다른 궁전에 비하면 실용적으로 느껴졌다고나 할까.
궁전 1층과 2층에는 당시의 귀족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들이 많았다. 2층에는 당시의 복색이라던가 특히 귀족들이 즐기던 게임을 재현해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중세시대의 게임을 해보는 것도, 햄턴 코트 팰리스에서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궁전 안에는 교회가 있는데, 관람객들과 주민들을 위해 정기적으로 예배를 진행하고 있었다. 종교가 없는 나로서도 가톨릭 성당의 미사와 사뭇 다른 것들이 느껴져서 신기했다. 성당 또한 비교적 소박한 느낌을 주었다.
햄턴 코트 팰리스는 여느 영국의 정원이 그러하듯 자로 잰듯한 균형미가 느껴졌다.
마차를 보니 아이가 타고 싶다고 조른다. 평소 같으면 절대 타지 않았을 텐데, 날씨가 좋다 보니 마차도 한 번 타본다.
햄턴 코트 팰리스에는 "매직 가든"이라는 숨은 명소가 있다. 다름 아닌 놀이터인데, 사진에는 잘 안담기지만 날씨가 좋은 날에는 피크닉을 나온 가족들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예쁜 놀이터이다. 놀이터 앞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마치 마법처럼 빨리 흘렀다.
햄턴 코트 팰리스에서는 무척 다양한 행사들이 열려 방문객들을 즐겁게 한다. 크리스마스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리고, 할로윈에는 할로윈 테마로 궁전을 꾸며놓는다. 여름에는 기사들의 마상 창시합을 재현하는데, 전혀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볼만했다.
드디어 경기가 시작한다. 나무로 된 창으로 상대의 몸이나 머리 등을 가격하면 점수를 얻는 방식. 갑옷을 입었는데도 창이 부서지는 것을 보면 무척 위험해 보였다.
경기 장면을 한 번 감상해 보자...
햄턴 코트 팰리스는 연간 백만 명이 방문할 만큼 나름 영국에서 인기 있는 장소이다. 관광객들보다는 주로 영국 현지인들이 방문을 하는데, 일 년 내내 다양한 행사로 볼거리가 끊이지 않는 장소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굳이 비행기를 타고 방문할만한 장소는 아니지만, 중세시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중세시대를 체험해보고 싶은 관람객이라면 일정에 넣어봐도 좋을 것 같다. 특히 마상 창시합이 있는 날이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새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