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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Aug 31. 2024

외국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

외국에서 아이 키우는 이야기

이제 5살이 된 우리 딸내미를 정의해 보자.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으로, 처음 1년은 미국, 나머지 생의 절반은 헝가리와 영국에서 보낸, 국적은 한국과 미국이지만 영국 발음을 가진 사랑스럽고 건강한 여자아이


그렇다.


이번엔 외국에서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그냥 물만 주면 자라는 거 아냐?


미국에서 일하던 시절, 애 셋을 키우는 직장 동료가 한 말이다. 당연히 온갖 질타를 받았다.


아이 키우는 것은 “장난이 아니다”. 오죽하면 밭일할래 애 볼래 물으면 밭일한다고 할까.


물만 주면 자라는 나무와는 달리, 부모가 어떤 영향을 주느냐에 따라 아이는 완전히 다르게 자란다. 그래서 더욱 아이 키우는 게 어렵게 느껴진다.


특히 외국에서 외국인으로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하루하루가 걱정의 연속이다. 애가 학교에서 친구들과는 잘 어울리는지, 영어는 잘하는지, 공부는 제대로 하는지.


그래서 매일 학교 다녀온 아이에게 물어본다.


"오늘 학교에서 뭐 했어? 누구랑 놀았어?"


그럼 여김 없이,


“몰라!”


아이는 모른다 답한다. 모를 리 없는데, 귀찮아서 그러는 걸 알면서도, 매일같이 물어본다. 그만큼 걱정되니까. 몰래카메라라도 달아서 학교생활을 훔쳐보고 싶은 심정이다.


교우관계에 대한 걱정 - 롤러코스터 라이드


하루는 아이가 시무룩한 얼굴로 집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었냐고 물으니,


"오늘은 아무도 안 놀아줬어"


라고 답한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혹시나 동양인이라 아이들과 못 어울리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아내는 걱정이 돼서 만나는 엄마마다 "플레이데이트"를 신청했다. 방과 후에 따로 만나서 아이들을 함께 놀리는 것을 말한다.


어린아이들은 감정에 순수하다.


좋은 것은 좋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피부색도 다르고 영어도 비교적 서툰 우리 아이를 대놓고 차별하지는 않을까. 주변에서 차별에 대한 이야기도 들린다.


기우였을까.


며칠이 지나고 학교에 아이를 픽업하러 갔을 때는, 아이가 반 친구들과 학교 앞에서 재미있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았다. 적극적으로 놀이도 주도했다. 그 모습을 보자 순식간에 걱정은 안심으로 바뀌었다.


우리도 알고 있다.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른들이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것이며, 아주 큰 문제가 있지 않는 이상 개입해서는 안된다고.


그러나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만큼 소중한 아이니까.


이렇게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매일같이 걱정과 안심을 반복하는 롤러코스터 라이드 같다.


아이를 대하는 아빠들의 자세


하루는 수영장에서 목격한 일이다.


우연찮게도 한국 아빠(내가 아닌), 영국 아빠, 인도 아빠가 아이들과 수영장에 왔다. 나는 우리 아이를 놀리는 한 편, 세 아빠들이 어떻게 다른가 지켜봤다.


먼저 인도 아빠.


인도 아빠는 수영장에 오자마자 아이를 물에 던졌다. 아이가 수영을 제대로 못하자 화를 내고, 잘할 때까지 계속 가르쳤다. 아이는 눈물을 머금고 수영을 배워야만 했다.


영국 아빠는 아이와 그저 신나게 놀았다. 그 옆에는 엄마도 같이 있었다. 자주 오는 모양인지, 놀이에 필요한 도구들도 다 갖추고 있었다. 신나게 노는 세 사람은 정말 즐거워 보였다.


마지막으로 문제의 한국 아빠.


한국 아빠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계속 수영장 바깥에 앉아 핸드폰만 보고 있는 엄마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눈치를 봤다. 아이는 아빠가 제대로 못 놀아주니 혼자 물장구를 치고 놀았다.


물론 단 한 번 목격한 일을 가지고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아이와 잘 놀아주는 한국 아빠도 있고, 못 놀아주는 영국 아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외국에서 지금껏 본 한국 아빠들은 다들 일에 지쳐있었고, 학교 행사에는 거의 얼굴을 보이지 않으며, 아이의 친구들이 누구인지도 잘 몰랐다.


재미있는 건, 다들 한국에 있을 때보다는 가족들과 더 오랜 시간을 보낸다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좋다 나쁘다를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다만 한국 사회가 아빠들에게 너무 많은 짐을 지게 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과 놀 시간마저 뺏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교육에 대한 관점의 차이


부모들의 교육에 대한 관점도 나라와 인종에 따라 크게 다르다.


영국에서 제일 교육에 열성인 인종은 당연히 한국인, 중국인, 그리고 인도인이다.


여학교로 유명한 LES (Lady Eleanor Holles School) 앞을 지나가보면, 하교하는 아이들의 80%가 한국, 중국, 인도인이다. 영국의 유명한 그래머 스쿨(한국의 과학고와 유사한)인 티핀 걸스 스쿨의 경우, 학교 앞을 가보면 이곳이 인도인지 영국인지 헷갈릴 정도다.


반면 영국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은 그들만 못하다.


물론 영국인들도 자녀 사교육에 열성이다. 다만 그 대상이 공부가 아닌, 다양한 교외활동에 집중된다는 점이 다르다. 방과 후에는 테니스나 수영, 악기 등을 가르치지, 영어나 수학을 위해 학원에 보내는 경우는 많이 없었다.


영국의 대학진학률을 보면 대충 감이 온다.


영국의 대학진학률은 49%로, 한국의 73.3%에 비하면 훨씬 낮다.


단일민족에 가까운 한국에 비해, 다양한 인종이 섞여사는 영국의 경우 분명 이 대학진학률은 유색인종이 끌어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걸 감안하면 실제로 영국에 사는 백인들의 대학진학률은 훨씬 낮은 셈이다.


낮은 대학진학률과 유연한 고용시장은 대학교육을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만들었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행복하게 사는 길이 많은 나라인 셈인데, 그럼에도 한국, 중국, 인도인들이 교육에 목숨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개인의 행복과 성취보다 사회적인 행복과 성취를 중시하는 가치관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개인의 행복과 성취가 스스로 10킬로미터를 뛰는 것으로 목표를 잡고,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라 한다면, 사회적 행복과 성취는 사회가 10킬로 미터라는 목표를 정해주고,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학을 가지 않으면, 집이 없으면, 명품 가방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다.


무엇이 맞다 틀리다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다만, 대학교육이 의무가 아닌 선택인 사회에서 사람들은 더 행복을 위한 선택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걱정하는 한 가지는 바로 "정체성"이다.


우리 아이의 복잡한 이력(?)을 보면 알겠지만, 쉽게 정체성을 확립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인이자 미국인이면서 영국에 살고 있는, 어찌 보면 아이에게는 3가지 선택지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어렸을 때부터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우리는 아이에게 "한국인"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너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인이고, 영국에서 살고 있다고.


외국에서 나고 자란 교포들이 정체성의 혼란을 겪은 시기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위상이 낮아, 부모들이 한국인임을 딱히 강조하지 않았던 시기였다. 이 당시를 겪은 교포 친구들은 한국말을 아예 못하거나, 한국인이라는 인식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한국의 위상이 올라간 지금은 많이 상황이 달라졌다.


SNS의 발전으로 한국의 문화와 상황을 접하는 것도 훨씬 쉬워졌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 나고 자라는 요즘의 한국 아이들은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쉽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이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워나가는 것 같은 모습이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은 없더라도, 한국인이라는 "뿌리"가 이역만리타국에서 살아가는 아이에게 힘을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한국에서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다.


외국에서 키워본 것이 전부이니, 한국에서 키우는 것과 외국에서 키우는 것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어디에서 키우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중요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아이를 제대로 키우는 방법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었다. 반대로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분들도, 우리가 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이야기를 들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두서없이 아이 키우는 것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해 봤다. 뻔한 말로 글을 마무리해보고자 한다.


"공부 못해도 좋으니 (너무 못하지는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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