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정치, 꼭 해야만 하나요?
지긋지긋한 사내정치 이야기
먼저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저는 평화롭게 할 일 하면서 살고 싶은데, 듣기만 해도 지긋지긋한 사내정치, 꼭 해야만 하나요?
답변은 "네"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회사에 입사한 순간부터 나 자신은 사내정치의 일부가 된다. 따라서 아무리 눈과 귀를 닫고 살더라도, 사내정치는 알게 모르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내가 현실 정치에 관심이 없어도, 정치가 우리의 삶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듯 말이다.
우리 회사의 유명한 정치인들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이런 사람들 꼭 있지 않은가?
회사에 정치를 하러 온 것인지 일을 하러 온 것인지 헷갈리게 만드는 이들 말이다. 하라는 일은 제대로 안 하고, 모임이란 모임은 죄다 찾아다니며, 학연지연혈연을 최대한 활용하는, 우리 회사의 유명한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또한 자신의 능력 부족을 네트워킹으로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능력도 좋고 네트워킹도 좋다면야 최고겠지만, 그러지 못하다 보니 네트워킹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문제는 이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기도 하고, 빠르게 승진을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계속 이렇게 성공할 수 있을까?
먼저 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또는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자.
복잡하면 복잡한 조직일수록, 네트워킹의 중요성이 점점 더 커진다. 네트워킹을 통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과 부서를 찾아내고, 조율을 할 수 있어야 일이 해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네트워킹은 그 자체로서 큰 능력이 될 수 있다.
즉,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런 능력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남들보다 부족한 업무능력으로, 단순히 "인맥"만 가지고 계속 성공할 수 있을까? 물론 사장님 아들, 사장님 딸 같은 황금 인맥은 제외하고 말이다.
내 대답은 "어렵다"이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먼저, 인맥으로 쉽게 성공한 이들은 그 인맥 때문에 쉽게 망할 수 있다.
정치에 올인한 동료 직원 하나가, 학연지연이 있는 회사의 고위급 임원에게 줄을 댔다고 하자. 임원 입장에서는 귀여운 후배에게 기회를 한 번 줘보거나, 혹은 중요하지 않은 프로젝트에 넣어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임원 자신의 입지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업무이거나 자리라면, 단지 학연지연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직원에게 맡길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만약 그저 학연지연만을 이유로 직원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이라면, 임원 자리에 애초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또한, 능력이 부족한 이들은 결국 다른 직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정치에만 올인한 직원들은 이미 다른 직원들의 눈밖에 나있다. 일보다 정치에만 신경쓴다는게 한 가지 이유이고, 또 한가지는 대체로 이들은 다른 이의 성과까지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회사 일은 직위가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위를 향한 정치 (영어권에서는 이를 Managing up이라고 한다)만을 하는 직원이라면 이처럼 복잡하고 어려운 업무를 맡았을 때 주변의 도움을 제대로 받지 못해 실패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들은 결국 사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아무리 네트워킹에 출중하다 하더라도, 직위가 오르면 오를수록 경쟁 또한 심해진다. 그것도 능력과 네트워크, 경력까지 모두 갖춘 이들과 말이다.
인맥만을 가지고 성공한 사람들은 이 지점에서 멈추고 만다.
예를 들어 학연지연으로 올라온 임원 후보와, 해외 지사를 혼자 힘으로 일구어낸 임원 후보가 맞붙으면? 결정권자가 제정신인 이상 후자를 임원으로 선택할 것이다. 결정권자의 선택이 모든 직원들의 사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를 지키기 위한 정치
이번엔 조금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미국에 있던 시절, 정치에 올인한 직원 A가 있었다. A는 열심히 일했지만 능력이 부족해, 정치에 제법 힘쓰는 친구였다.
안타깝게도 A는 그의 부족한 능력을 다른 직원원 B를 통해 해결하고 있었다. A는 데이터를 다루는 능력이 특히 부족했기 때문에, 데이터를 잘 다루는 B에게 자주 부탁을 하고, 그런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곤 했다.
어떻게 보면 서로 돕는 훈훈한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A가 모든 것을 자신이 혼자 해낸 일인 것처럼 임원들에게 보고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다 보니 임원들은 계속 A를 눈여겨보고 일찍 승진시켰지만, B는 계속 고통받아야만 했다. 열심히 일하는데 왜 승진이 안되고 고과가 안 나오는지 이해도 못한 채 말이다.
이처럼, 사내정치를 무시하면, 사내정치의 피해자가 되기 쉽다. 주변의 누군가는 분명 사내정치를 하면서 남의 공로를 가로챌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B는 어떻게 처신해야 했을까?
먼저 B는 A의 요청을 무시하거나, 좋은 말로 거절했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이 바쁘니, 시간이 나면 도와준다고 말하고 그냥 깔고 앉는 것. 물론 내가 맡은 업무분장에 있는 일이라면 이렇게 해서는 안될 것이다.
다른 방법은 상사에게 이 일을 보고하고, 공식적인 업무로 만드는 것이다. A를 도와주되, 이 업무가 고과평가에 반영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A에게 자신의 이름을 올려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으나 별로 추천하고싶지 않은 방법이다. B의 이름이 보고서에 올라가 있다 하더라도, 결국 A가 보고를 하게 되면 임원들은 A가 일을 했다고 기억할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 치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을 지키지 않으면 계속 남들에게 이용당하고 결국 사내정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누군가 무언가 도움을 요청한다면, 무조건 승낙하지 말고 조금 생각을 해보는 습관을 가지자. 이런 작은 습관이 사내정치로부터 자신을 지켜줄 것이다.
최고의 네트워킹은, 평판 네트워킹
다음으로 네트워킹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MBTI 성향상 극 I에 속하는 내 경우, 회사에서 종종 있는 모임이나 칵테일파티 등, 네트워킹을 위한 모임이 무척 불편했다. 어떤 이들이 네트워킹을 통해 많은 것을 얻어가는 것을 보면서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사내 교우회, 친목회, 동문회 같은 모임들, 혹은 다른 종류의 불편한 네트워킹 모임들이 정말 도움이 될까?
물론 도움이 된다.
네트워크 이론에 따르면, 가장 도움이 되는 이들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적당히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내 주변에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네트워크에서 벗어나 친목회나 동문회 등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도 있고, 막혔던 일의 실마리를 잡을 수도 있으며, 회사 생활에서의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모임에 전혀 참여하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방법이 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네트워크라면 믿겠는가?
그것은 바로 일을 잘한다는 좋은 평판을 쌓아가는 것, 즉, 평판 네트워크를 쌓는 것이다.
회사가 아무리 넓고 복잡해도, 결국은 관련된 부서의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어있다. 이들에게 "이 직원은 일을 잘해"라는 평판을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제대로 된 네트워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승진을 해서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더한데, 업무의 난이도가 올라감에 따라 협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그에 따라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자신을 얼마만큼 신뢰하는지가 성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믿을만한 직원과 일해본 경험이 있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와닿을 것이다.
또한 이런 평판은 자신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막아주는 방패막도 되어준다. 미국에서 일하던 당시, 두 명의 직원이 해고를 당했다. 이 직원들은 사람 좋고 할 일은 하는 직원들이었지만, 일을 잘한다는 평판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지켜주는 팀장들이 없었다.
따라서 승진을 위해서라도, 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일을 잘한다는 평판을 쌓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간혹 일은 열심히 하는데 승진이 안되거나 늘 뒤처지는 직원들이 있다.
나는 그렇게 안 돼야지 마음먹으면서도, 괜히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열심히 일만 하고 인정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알아서 내가 한 일을 인정해 주고, 계속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상사를 만나는 것도 회사 생활에 있어서의 큰 복이다.
그러나 누구나 그런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내정치를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내가 사내정치를 무시한다면, 사내정치가 나를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