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카당스 Sep 23. 2024

영국 사립학교에서 강조하는 이것?

영국 사립학교에서 문해력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

영국에서 아이 교육을 시작하면서 놀란 것이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철저한 엘리트 위주의 교육이라는 점.


영국의 학교는 크게 퍼블릭 스쿨이라 불리는 사립학교, 우리나라의 과학고나 외고에 비견되는 그래머 스쿨, 그리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다니는 공립학교인 스테이트 스쿨이 있다. 11+라고 불리는 어려운 시험을 치고 들어가는 사립학교나 그래머 스쿨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공립학교 안에서도 아이들을 성적으로 나눠 따로 관리를 한다. 농사로 치면 밭을 골고루 가꾸는 것이 아닌, 잘 자라는 밭만 집중적으로 가꾸는 셈이다.


두 번째로는 수 없이 많은 과외활동이다.


국영수와 같이 대학입시와 직결된 공부 위주로 이루어진 한국의 과외활동과는 달리, 아이들은 음악, 미술, 스포츠, 드라마와 같은 다양한 과외활동을 한다. 물론 선택의 영역이긴 하지만, 음악이나 미술 등에 따로 '그레이드'라는 성적을 매겨 학교 입시에 쓰이기 때문에, 필수나 다름없다. 재정이 빵빵한 사립학교가 공립학교에 비해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는 문해력에 대한 강조가 있었다.


우리 아이의 경우, 우리나라의 어린이집에 해당하는 널서리와 유치원에 해당하는 리셉션부터 사립학교를 다녔는데, 비싼 학비를 내는데도 불구하고 공부를 너무 안 시켜서 불만인 적이 있었다(물론 만 5세부터 시작하는 1학년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공부는커녕, 맨날 만들기와 놀기만 해서 불만이었던 것. 그러나 그 와중에도 단 한 가지 일관되게 강조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책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 문해력이었다.


영국의 교육에 관해서는 아직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영국 사립학교에서 어떻게 문해력을 키우는지, 문해력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영국 사립학교에서 배운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 등에 대해 집중해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매일 한 권, 작지만 큰 노력.


아이가 만 4세가 되면, 영국에서는 리셉션(Reception)이라고 불리는 정규 교육과정을 시작하게 된다. 리셉션의 커리큘럼은 본격적인 공부에 앞서, 앞으로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과정에 가깝다. 간단한 숫자 공부부터 시작해서 파닉스를 통해 글자 읽기, 드라마를 통해 표현하는 법 배우기, 친구들과의 관계 형성하기 등을 배운다. 그리고 만 5세가 되면 1학년(Year 1)이 되면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리셉션에 들어가자 매일 한 가지 숙제가 주어졌다. 바로 매일 한 권씩 책을 읽는 것이다. 책이라고 해봤자 10페이지 남짓의 짧은 책이고 내용도 처음에는 무척 쉬웠다. "Cat sat on a mat"이라던가, "Rat ran"과 같은 파닉스를 연습하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우스운 수준이지만, 네 살짜리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파닉스로 영어를 공부하기 때문에 CAT을 읽으려면 먼저 "크", "아", "트"와 같이 기본 발음으로 한 글자씩 읽고, 그리고 "캣"이라고 세 발음을 합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단어로 읽는 게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씩 읽다 보니, 열 페이지 짜리 책을 다 읽는데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15분까지도 걸렸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어린아이가 집중하기에는 제법 긴 시간이다.


그러다 보니 몸을 배배 꼬는 것은 기본이고, 하기 싫어서 도망치기도 하고, 그림을 보고 단어를 추측해서 말하기도 했다. 하루 10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무척 부모의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매일 책을 조금씩 읽히다 보니, 어느새 습관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여행을 가거나 어딜 놀러 가도 무조건 책을 한 권씩 읽혔더니, 점점 책을 읽히는 것이 수월해졌다. 무슨 일이 있어도 책을 한 권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아이가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엄마의 고생이 엄청나게 들어갔다)


사립학교이다 보니 도서관도 무척 잘 되어있는데, 매주 수요일마다 아이가 도서관에 가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한 권씩 빌려 집으로 가져왔다. 아직 아이가 직접 읽기에는 어려워 부모가 읽어줘야 하지만, 본인이 직접 고른 책이다 보니 집중도가 달랐다.


하루만 놓고 보면 적은 양이지만, 쌓이고 쌓이면 절대 무시하지 못할 분량이 된다. 방학을 빼고 수업일수가 대략 190일 정도 된다고 하니, 1년이면 190권의 책을 스스로 읽는 셈이다. 1권에 10분 걸린다고 치면 1,900분, 약 32시간을 온전히 스스로 책 읽는 데에만 쓰는 셈이다. 여기에 매주 빌려와서 읽어주는 책이 대략 1년에 35권 정도 되니, 학교 교육으로만 1년에 200권이 넘는 책을 읽게 된다.


교재로는 요즘 한국에서도 유명한 옥스퍼드 리딩 트리(Oxford Reading Tree)를 사용하는데, 이 책은 난이도 구성이 너무 잘 되어있다. 레벨 1부터 20까지 되어있는데, 레벨 1에서는 파닉스를 집중적으로 연습할 수 있도록 되어있고, 레벨 2부터는 단어와 표현들, 그리고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옥스퍼드 리딩 트리의 레벨은 다음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cdn.oxfordowl.co.uk/2019/07/19/13/52/18/160/OxfordLevelsAndBookBands.png)


지금 한국의 교육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책을 읽는 것보다는, 받아쓰기나 단어 배우기와 같은 기술적인 영역에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정규 학교교육이 영국에 비해 조금 늦게 시작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교육에 대한 철학의 차이도 느껴졌다. 특히나 더 다르다고 느꼈던 것은, 리셉션 과정에서는 책 읽기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다른 숙제도 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럼 도대체 왜, 영국의 사립학교에서는 이렇게 책 읽기를 강조하는 것일까.




공부를 잘하게 되는 공부


영국에서 아이들이 만으로 11살에 되는 해에, 11+라는 시험을 칠 수 있다. 물론 선택사항이기 때문에 치고 안 치고는 부모의 선택이지만, 11+의 결과를 가지고 과학고나 외고라 할 수 있는 그래머 스쿨이라던가, 세인트 폴스나 시티 오브 런던과 같은 명망 있는 사립학교의 입학이 결정되기 때문에, 아이의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는 중요한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도대체 무슨 시험을 치는지 궁금해서, 모의고사 시험지를 구해서 한 번 읽어보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제를 이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것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제는, 고아원에서 자란 아이가 입양이 되면서 겪은 심정을 다룬 소설의 1페이지 분량의 내용을 주고, 뒷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써보라는 것이었다. 그 아이의 감정을 잘 나타낸 단어를 고르라는 문제도 있었고, 글에서 나온 "Friend"와 같은 표현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고르라는 질문도 있었다. 글을 읽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도저히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11+의 다른 중요한 과목인 수학은 또 어땠을까? 한국의 입시 교육을 이수했고, 미국 대학원 입학시험인 GRE를 통해 외국식 수학 시험에도 익숙해진 나였기에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문제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3x + 5 = 23에서 x를 구하시오"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닌, 수학 문제조차 글로 줄줄 풀어, 글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면 풀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물론 영국에도 멘탈 매스(Mental Math)라고 해서 기술적인 수학 과목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수학의 한 과목에 불과하고, 다른 수학 과목들은 글을 읽지 못하면 문제를 풀 수조차 없게 만들어놨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 왜 이렇게 영국 사립학교의 교육은 문해력을 강조하는 것일까?


문해력이란 쉽게 말하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문해력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다. 그만큼 문해력이라는 표현이 대중적이 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반면, 엘리트 교육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영국의 사립학교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렇게 문해력 교육을 강조해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문해력이 높으면 공부를 더 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머리가 좋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게 되는 이유는 뻔하다. 머리가 좋기 때문에 남들보다 빠르게 새로운 내용들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들이 10시간을 공부할 때 5시간만 쓰면 되니, 그만큼 효율적으로 공부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문해력 또한 마찬가지이다. 공부는 결국 텍스트와의 싸움이다. 문해력이 높다는 것은 이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높다는 것과 같다. 따라서 적은 시간을 써도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 공부의 효율이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마치 게임을 할 때, 지금 당장 적을 이기는데 유리한 힘과 민첩성 같은 능력치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별 도움이 되지 않지만 획득할 수 있는 경험치를 올려주는 지혜와 같은 능력치에 투자하는 것과도 같다. 지금 당장은 느리지만 경험치를 획득하는 양 자체가 많아지다 보니, 스노우볼을 굴려 결국에는 훨씬 빠르게 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잘 안 와닿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문해력의 중요성을 절실히 체험했다.


학창 시절 음악이나 다른 것들에 빠져 공부를 등한시했던 나였지만, 단 한 가지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높은 문해력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강조했던 부모님의 교육 덕도 있었지만, 어이없게도 남다른 속독능력과 문해력을 가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미쳐서 했던 '머드게임' 덕분이었다.


머드게임은 지금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종류의 게임으로, 텍스트만 나오는 게임이었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인 어린 시절은 천리안, 나우누리, 하이텔과 같은 PC통신들이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는데, 많은 양의 데이터를 주고받기 어렵기 때문에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온라인 게임들 또한 전성기를 누렸다.


그 당시 유행하던 게임으로 '쥬라기 공원'이나 '단군의 땅'과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방대한 텍스트를 읽고 빠르게 반응해야 게임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문해력 훈련이 되었다. 그런 게임을 거의 2-3년 미친 듯이 빠져서 했기 때문에, 읽기의 양이 다른 또래 아이들과 비교도 되지 않게 많았고, 그 덕에 문해력 또한 남들보다 좋았던 것이다.


문해력이 좋다 보니 책 읽기를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판타지 소설 같은 책들을 도서대여점에서 빌려 미친 듯 탐닉하다가, 중학교 때에는 갑자기 전쟁사에 빠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이나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와 같은, 나이에 맞지 않은 책들을 읽어댔다. 사마천의 사기를 재미있게 엮은 소설 사기는 책이 닳을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비슷하게 자주 읽은 책이라면 드래곤라자 정도였달까.


그래서 그런지, 고등학교 1-2학년 내내 내신은 7등급일 정도로 공부를 못했지만, 수능 모의고사에서 언어영역은 한 개 이상 틀려본 적이 없었다. 그 한 개 틀린 것 또한 기술적으로 배우지 않으면 틀릴 수밖에 없는, 문법 문제였으니, 전반적인 성적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높은 문해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공부를 해서 좋은 대학을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벌써 고2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었다. 매우 늦은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고2 여름방학 때 삼각함수를 처음으로 보고 있었고, 처음 쳤던 모의고사에서는 반에서 뒤에서 10등 정도 했으니, 아마 선생님들은 물론이고 부모님마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해력이 기적을 일으켰다.


빠른 속도로 교재를 읽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공부하기로 마음먹자 마른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지식을 습득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당시 같이 공부를 했던 친구들은 대부분 나보다 모의고사 성적이 최소 50점에서 100점은 좋은 친구들이었는데, 1년이 지나자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었다. 반에서 밑바닥을 깔아주었던 나는 어느새 모의고사 성적만 따지면 전교 1-2등을 다투는 입장이 되어있었던 것. 선생님들의 대우도 완전히 달라지고, 어머니에게는 수많은 다른 어머니들의 질문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결국 내신이 딸려 최상위권 대학은 들어가지 못했지만, 상위권 대학을 들어가고, 지금은 이름만 들으면 다들 알만한 글로벌 은행의 런던 오피스에서 일하고 있으니, 나름 인생 역전을 이루었다 할 수 있겠다.


자랑 같이 들리겠지만, 핵심은 결국 '문해력'이 공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영국 사립학교의 교육은 이 사실을 오래전부터 이해하고 있었고, 그래서 문해력 교육을 지금까지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사립학교에서 배운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 방법


그렇다면 아이의 문해력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경우, 게임을 통해 문해력이 비정상적으로 길러졌기 때문에, 이 방법을 다른 이들에게 추천하기는 어렵다. 텍스트만 나오는 머드게임들은 거의 사장되었을 뿐 아니라, 중독성 또한 엄청나기 때문에 게임으로 문해력을 익히는 것은 절대 추천하는 방법이 아니다.


가장 첫 번째로 추천하는 방법은 당연히 꾸준한 독서이다.


이때, 독서 교재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의 나이에 맞는 교재를 선택해야 한다. 너무 쉬우면 아이가 흥미를 잃거나 문해력 향상에 도움이 안 될 수 있고, 너무 어려워도 아이가 좌절감 때문에 흥미를 잃을 수 있다. 영국에는 옥스퍼드 리딩 트리나 빅 캣과 같은 레벨별로 구성된 읽기 교재가 잘 되어 있지만, 한국에서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내가 한국 교재나 책을 추천하기는 조금 어려울 것 같다.


다양한 교재를 테스트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교재마다 강점과 단점이 다르기 때문인데, 아이에게 맞는 교재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개인적으로 전집이나 교육용 목적으로 나온 책들은 비추천한다. 아이들이 읽는 책은 '재미있어야'하지, 억지로 교훈을 주거나 어떤 개념을 읽히게 하려는 책은 아이의 '책에 대한 관점'을 망가뜨린다고 본다. 책에서 재미를 느껴야 아이 스스로 책을 읽게 되는 것인데, 교훈과 개념으로 얽힌 책들이 아이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는...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또한 개인적으로 미디어를 통한 문해력 교육은 절대로 반대한다. 미디어를 통한 교육은 아이의 흥미를 끄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아이가 미디어에 의존하게 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즉, 미디어를 통하지 않으면 공부 자체를 못하게 된다는 것. 아주 지루한 산수 반복 훈련 같은 것이 아니고서야,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에 대한 나의 입장은 확고하다. 게임은 그냥 즐기는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하지, 교육의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학교에서 독서를 강조하더라도 방학 때는 늘어지게 마련인데, 방학이야말로 뒤쳐진 부분을 만회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 할 수 있다. 우리 아이의 경우 엄마의 엄청난 노력으로 방학 동안에도 하루 1권의 원칙은 무조건 지켰는데, 여름 방학 동안 읽은 책이 40권이 넘었다. 그러다 보니 읽기 실력이 부쩍 늘었고, 학교에서도 거의 매일같이 선생님에게 읽기와 관련된 좋은 피드백을 들을 수 있었다. 아이의 자신감이 붙은 것 또한 당연한 결과였다.


두 번째는 독서하는 과정에서의 아이와의 상호작용이다.


아이가 책을 곧잘 읽는다고, 그냥 아이에게 전부 맡겨놓으면 안 된다. '읽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방식은 아이가 책을 읽을 때, 같이 읽고, 중간중간, 혹은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거나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특히 아이와 있었던 추억과 연관된 질문을 하면 아이가 신이 나서 엄마 아빠와 이야기를 하게 되고, 아이와의 유대감도 길러지는 또 다른 효과도 있다.


우리도 시행착오를 많이 겪은 부분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책을 읽은 후에 내용을 요약해서 말하게 했다. 만으로 다섯 살이 된 아이에게는 어려운 요구였는지, 점점 자신감이 없어지고 책 읽기 시간을 싫어하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간단한 질문들 몇 가지만 하지, 내용 자체를 전부 요약하라는 어려운 요구는 하지 않게 되었다.


상호작용을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이처럼 상호작용을 통해 아이에게 맞는 독서 방법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독서습관이 제대로 박혀, 학교에서 내주는 책 외에도 하루에 최소 4-5권은 그림만이라도 스스로 책을 보고, 어딜 가더라도 책을 읽어달라고 부모에게 부탁을 하는 아이가 되었다.


마지막은 독서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영국 집들이 그러하듯, 우리 집은 좁은 대신 3층으로 되어있다. 1층에는 큰 거실과 부엌이, 2층에는 방 두 개가 있고, 3층은 전체가 하나의 큰 방으로 되어있는 구조인데, 우리 집의 특징은 어느 층에나 서재가 있다는 것이다.


아이의 놀이방은 2층에 있는데, 말이 놀이방이지, 장난감에 비해 책이 압도적으로 많다. 책은 사달라고 하면 곧잘 사줬지만, 장난감은 쉽게 사주지 않았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책 자체가 많다 보니 아이가 심심하면 책을 꺼내보는 습관이 길러졌다.


1층에도 책이 가득한 서재가 있는데, 영어책와 한글책 가리지 않고 가져다 놨다. 아이가 학교가 끝나서 처음 맞이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주로 아이가 흥미를 가진 분야의 책들을 아이가 팔이 닿는 높이에 가져다 놓았다. 한 동안 이집트에 빠져있는 아이를 위해, 서재의 한 칸이 이집트 섹션으로 이루어진 적도 있었다.


반면 3층에는 아이가 잘 때 읽고 싶어 하는 책을 가져다 놓았다. 요즘에는 어린이들이 읽는 소설인 "Isadora Moon" 시리즈를 가져다 놓고 잘 때 읽어주고 있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시리즈가 매번 바뀌기 때문에 3층 책장은 늘 시리즈가 바뀌곤 했다.


뿐만 아니라 복도에도 책들을 가져다 놓아 아이가 원하면 그게 복도이든, 거실이든, 침대이든, 가리지 않고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았다.


그럼 티브이는 안 볼까?


우리 아이는 티브이도 실컷 본다. 단, 정해진 날짜에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티브이를 절대 틀어주지 않고, 토요일 일요일에만 티브이를 볼 수 있는 규칙을 정해놓았다. 처음에는 반발도 있었지만,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무슨 말을 해도 티브이를 틀어주지 않고, 토요일 일요일에는 실컷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이도 그 방식을 받아들이고 규칙을 따르게 되었다. 우리 부부가 티브이를 거의 안 보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기도 하다.


이렇게 환경을 조성해 놓으니, 당연히 아이가 책과 친해지고,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갖춰졌다. 억지로 읽으라고 하지 않아도, 본인이 흥미가 가는 대로 쉽게 책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책은 질도 중요하지만 양도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학교에서 주는 책이 1년에 200권 남짓. 아이가 그림만 보는 책도 하루에 최소 2-3권씩 1년에 1000권 가까이 되고, 우리가 읽어주는 것도 하루에 평균 1권 이상 되니, 다섯 살짜리 아이가 1년에 접하는 책이 천 권을 훌쩍 넘기는 셈이다. 아무리 짧은 책이라해도 말이다.


이렇게까지 하는데, 문해력이 안 길러질 수가 있을까?




영국은 해가지지 않는 나라에서 해가 지고 있는 나라가 된 지 오래다.


브렉싯으로 전지구적인 조롱거리가 된 것은 물론, 엉망진창인 코비드-19 대처나, 현근대사에 저지른 수많은 악행들이 재조명되는 것도 전부 대영제국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이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여전히 높으며,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별로 없는 나라인데도 불구하고 막강한 소프트파워를 자랑한다. 해리포터와 같은 세계적인 문화 상품은 물론이고, 수많은 밴드와 뮤지컬의 나라이기도하며, 런던은 뉴욕과 더불어 금융의 최전선이고, 패션이나 미식 또한 영국을 따라갈 나라가 많지 않다.


역사상 많은 나라들이, 짧은 시간 안에 도태되어 왔다. 한 때 부유했던 아르헨티나라던가, 막강했던 오스만제국이나 합스부르크 가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영국 또한 대공황과 2차 대전 이후 급격하게 쇠락했다. 그러나 영국이 아직까지 가진 저력은 누구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런 저력 뒤에는 오랜 역사의 교육, 그중에서도 문해력을 강조하는 교육 철학이 있는 것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생각해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