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는 법을 찾는 법
작년 여름, 어쩌다 보니 한 달이라는 긴 휴가를 내고 한국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돌아가는 한국이라 먹킷리스트도 만들어보고, 이제는 부쩍 커버린 아이와 함께 무엇을 할까 상상도 하면서 도착한 한국.
그러나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뀌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너무 똑같은 사람들의 얼굴 표정. 너무 똑같은 길거리의 풍경. 너무 똑같은 건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오래 해외에서 살았던 탓일까, 그 균일함 속의 다양함을 느끼는 방법을 잃어버린 모양인지, 모든 것이 너무 똑같아보였던.
갑자기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숨이 막히는 데에도 여러 가지 과정과 절차가 있는 법인데, 숨이 턱턱 막히기보다는, 안개에 서서히 휩싸이듯이, 그렇게 졸리듯이 숨이 막혔다. 한 달이 후딱 지나가고, 나는 도망치듯 런던으로 "돌아왔다".
런던 집에 들어가면서, 항상 여행 후에 내뱉는 한 마디를 추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역시 집이 최고지!
외국에서 사는 친구들을 보면 삶을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많다.
객관적으로 봐도, 주관적으로 봐도 외국에서의 삶은 힘들다. 언어 문제도 있고, 은근한 인종차별도 있고, 또한 조금 더 실용적으로 체류 자격에 대한 문제도 있다. 그러나 많은 대화를 나눠보면 그런 것들은 큰 문제의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
가장 힘든 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가고 있는 길이 옳은 길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본인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한 확신을 갖기 어려운 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그러나 외국에서의 삶은 더욱 불확실하게 느껴진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그 길을 걸은 사람의 수가 적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삶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회사에 들어가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은퇴를 하고, (치킨집을 차리고), 그렇게 늙어간다. 우리 부모님과 선배들, 하다못해 인터넷에 나뒹구는 글이나 영상들을 보면, 어느 정도 내 삶이 이렇게 변하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에서의 삶은 예측이 어렵다.
우선 우리 부모님의 삶과 나의 삶이 완전히 다르다. 물론 인생은 어느 나라를 가나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그분들께 배운 인생의 지혜는 외국이나 한국이나 똑같이 통하는 데가 있다. 그러나 부모님의 삶을 보고 외국에서의 내 삶이 어떻게 되겠다는 것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또한 이 길을 앞서간 선배들이 적은 것도 예측을 어렵게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에 돌아가 살 것이라면 상관이 없다. 많은 이들이 유학 후에 한국에 돌아가서 삶을 이어가고, 그들을 보면서 내 삶이 어떻게 돌아갈 것이라고 대충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속 외국에 남아서 살고자 한다면 적은 수의 예제에 의존해 미래를 내다봐야 한다.
그렇다고 옆 부서의 폴이나 옆 집의 제임스가 내 삶의 이정표가 되기는 어렵다. 다른 문화와 다른 가치관, 다른 환경 때문에, 그들의 삶을 보면서 내 삶이 이러할 거란 예상을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외국에서의 삶이 유독 힘든 이유는, 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고, 그래서 쉽게 이해가 가능한 "객관적인 희망"을 가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생이 우울하고 힘든 이유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마크 맨슨(Mark Manson)의 저서인 [희망 버리기 기술](원제: Every Thing is F*cked. 한국 버전 제목을 너무 잘못 지은 것이 아닌가 싶다)을 보면 희망에 대한 다양한 통찰들이 나온다. 미래에 삶이 긍정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희망인 셈인데, 이런 희망이 없기 때문에 우울함과 절망을 느낀다는 것.
앞서 말한 외국에서의 삶은 희망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바로 "미래에 삶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할지 모르는 것"의 문제인 것이다.
객관적으로 미래의 삶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할지 알게 되는 것이 희망을 찾는 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이것이 가능하다. 수많은 선례들을 보면서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감을 잡고, 그 길에 대해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외국에서의 삶은 미대륙에 처음 발을 내디딘 청교도들의 삶과도 비슷한 데가 있다. 삶의 터전을 바닥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점부터 모든 결정과 결과에 책임을 내려야 한다는 점, 말이 제대로 안 통하는 원주민들이 있다는 점까지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찾는 법은 있다.
가장 먼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한 많은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끈끈하게 뭉쳐 생활했던 개척자들처럼, 지금 있는 인연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함께하는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혼자 끙끙 앓기보다는, 상황을 공유하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지만, 이 작은 불편함을 주는 행동 하나가 외국에서의 삶을 훨씬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이 길을 걷지 않았을 때의 내 삶을 생각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해외에 나오지 않고 한국에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보면 외국에서 살기를 결심한 이유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 또한 그 과정에서 확신을 얻을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너무 먼 훗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된다. 먼 훗날의 미래보다는, 오늘 하루하루를 어떻게 알차게 보낼 것인지.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보내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할 것인지를 생각하고 실천하다 보면, 어느새 희망을 가지고 실천하게 될 것이다. 반면 먼 훗날의 미래만 생각하다 보면 광활한 백지와도 같은 미래에 압도되고 말 것이다.
사실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처음부터 따로 있었다.
한국에서의 삶은 예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객관식 문제와도 같다. 반면 외국에서의 삶은 예측이 어렵다는 점에서 주관식 문제와도 같다.
외국에서의 삶을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다들 객관식 문제를 풀고 있을 때, 더 어려운 주관식 문제에 도전하고 있으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는 것.
자부심을 가지고 오늘도 한 번 살아보련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