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에서 생겨난 쓸데없는 궁금증
런던에서 유럽 본토를 여행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히드로나 개트윅, 루턴 같은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가거나, 세인트 판크라스 역에서 유로스타와 같은 기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아니면 도버에서 배를 타도 된다.
또 다른 방법은 차를 타고 가는 방법인데, 보통 차를 기차에 싣고 유로터널을 지나거나, 카페리를 타고 도버 해협을 건넌다. 이번 여름에 다녀왔던 네덜란드, 벨기에 가족여행은 카페리를 이용했다.
그런데 영국에서 산 차를 몰고 유럽 본토에 가다 보니,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바로 주차권을 뽑는 기계가 운전석의 반대쪽에 있었던 것.
네덜란드의 치즈 축제를 보기 위해 알크마르에 갔을 때 있었던 일이다. 가족들을 먼저 내려주고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러 내려갔는데, 주차권을 뽑아야 차단기가 열리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옆 좌석에 아내가 앉아있었다면 쉬운 일이었겠지만, 운전석에서 티켓까지 도저히 손이 닿지 않은 거리였다. 결국 급하게 내린 후, 후다닥 뛰어가 주차권을 뽑고, 차단기가 닫히기 전에 잽싸게 뛰어 다시 차에 타야만 했다. 뒤에 있던 차에서 그 광경을 보고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생각해도 황당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쓸데없는 궁금증이 일었다.
도대체 왜 영국은 차가 왼쪽으로 다닐까?
좌측통행의 기원은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른손잡이었고 오른발잡이었기 때문에, 말이나 마차를 탈 때 왼쪽에서 타는 것이 편했고, 그래서 마차가 왼쪽으로 다니기 시작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왼쪽 허리에 칼을 찼기 때문에, 오른쪽에서 타는 것보다 왼쪽에서 말을 타는 것이 훨씬 편한 이유도 있었다고 한다.
마차들이 왼쪽으로 다니다 보니, 마부도 자연스럽게 오른쪽에 자리 잡게 되었는데, 만약 마부가 왼쪽에 앉아 채찍을 휘두르면 거리를 걷던 보행자들이 재수 없게 맞을 수 있었기 때문에, 마부가 오른쪽에 앉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재미있는 건, 그 영향을 받아 지금도 영국 차의 운전석은 오른쪽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영국에서는 중간에 분리대가 있는 길을 Dual Carriageway라고 하는데, Carriage는 마차라는 뜻이다. 즉, 쌍마차길이 되는 셈.
차들이 왼쪽으로 다니는 데에는 중세 유럽의 영향도 있었다고 한다. 기사들은 오른손에 무기를 들고 싸웠기 때문에, 좌측통행을 선호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14세기경에는 교황령에 의해 로마로 향하는 순례자들에게 좌측통행을 하도록 강제했다고 한다. 중세=종교 and 기사였으니, 이 영향도 결코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17세기부터 제국주의가 확산되면서, 영국의 해외 식민지들도 영국의 좌측통행의 전통을 따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호주나 인도, 남아공에서는 지금도 좌측통행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왜 우측통행이 시작되었을까?
이것도 재미있는 설이 있는데,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기존 질서를 타파하는 과정에서 과거와의 단절의 의미로, 우측통행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나폴레옹이 기존의 유럽 군대와 달리 우측으로 공격하는 전법을 구사하면서 유럽 각국의 군대가 혼란에 빠졌고, 이것이 우측통행의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는 이야기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그럼 영국에서 운전하는 건 어떨까?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에서만 운전을 했는데, 헷갈리지는 않을까?
의외로 좌측통행으로 바꾸는 데 있어서 어려움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로터리에서 무척 헷갈렸는데, 30분쯤 운전을 하고 나니 금방 적응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도로가 선진국 치고는 너무 후지다는 데 있었다.
런던은 무척 오래된 도시이고, 계획도시가 아니다 보니, 도시 중앙을 가로지르는 넓은 도로가 잘 없다. 그러다 보니 길이 막히는 것은 물론이고, 짧은 거리인데도 시간이 무척 오래 걸렸다. 오죽하면 런던 남서부의 우리 집에서 센트럴까지 가는데 대중교통으로 가나 자가용으로 가나 시간이 비슷하게 걸릴까.
공사도 시도 때도 없이 한다.
한 번은 고속도로를 공사 때문에 전면 통제하는 바람에,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산길을 따라 달려야 한 적도 있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만한 산길을 다닐 때면, 반대쪽에서 차라도 올까 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시골에나 있는, 경운기가 간신히 지나갈 농로 정도의 넓이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일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심심할 때마다 보이는 정체불명의 기둥들이다. 도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 기둥들은,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어 슈퍼카를 타는 사람도 겸손하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한다. 영국에서 큰 차를 타고 다니기가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카메라도 많고, 주차 단속도 자주 한다. 특히 주차 표지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벌금도 무척 비싸다. 영국에 와서 지금까지 3년 가까이 살면서 벌금으로만 거의 100만 원 이상 낸 것 같다. 지금이야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매 달 벌금 고지가 언제 날아오나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런 어려움들이 있지만, 운전 자체가 어렵다고는 할 수 없다. 운전 매너도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좋은 편이다. 도로와 주차장이 널찍널찍한 미국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유럽 본토보다는 운전해서 다니기가 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가지 어려움은 역시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보니, 운전하면서 무언가를 먹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운전할 때는 왼손에는 핸들, 오른손에는 햄버거를 잡을 수 있었는데, 왼손에 버거, 오른손에 핸들은... 아직까지도 적응이 안 된다.
영국은 전통이 있는 나라라서 그런지, 이런저런 규정도 많이 있다.
우선 MOT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MOT는 Ministry of Transport (도로안전국? 정도의 느낌이다)를 뜻하는데, 1년에 한 번씩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릴만한 상태인지 점검하는 것을 MOT 테스트라고 한다.
이 MOT 테스트 항목이 생각보다 깐깐해서, 타이어 상태나 전조등 상태 등 정말 다양한 항목들을 검사한다. 그러다 보니 테스트에서 불합격되거나 재검사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만약 테스트에 실패한 채로 운전을 하면 벌금을 물을 수 있다.
그럼 MOT 테스트 덕분에 영국의 자동차들의 상태가 좋을까?
글쎄,라고 말하고 싶다.
한국이나 미국에 있을 때는 문제가 있을 때마다 수리를 했는데, 영국에서는 MOT 테스트 일정이 있다 보니, 심각한 문제가 아니면 MOT 일정까지 수리를 미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도로 위에 상태가 안 좋은 차들이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많이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으로 ULEZ (Ultra Low Emission Zone)라는 것이 있다.
런던 중심지에서 어느 정도까지 거리에는 배기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제도인데, 만약 지역 안으로 들어가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은 채 들어가면 벌금을 내게 된다.
더 런던 중심으로 들어가면 CCZ (Congestion Charge Zone)라는 것이 또 있는데, ULEZ보다 더 규제를 강화한 것이다. 전기차 정도는 되어야 CCZ에 들어가는 비용을 내지 않는다.
이런 조치들이 과연 대기질의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이지만, 확실히 세수를 늘리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물론 세금을 더 걷는 것보다, 신년 불꽃놀이 같은 세금 낭비를 줄이는 게 더 나을 것이지만.
어쨌든 이런 규칙들을 잘 모르고 운전하면, 매달 날아오는 벌금 고지서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당했듯이 말이다.
오랜 전통의 나라 영국.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해리포터 덕분에 왠지 모르게 가깝게 느껴지지만, 차가 다니는 방향이나 운전대의 위치마저 다를 정도로 많은 것이 다른 나라이기도하다.
해외에서 10년, 영국에 산 지는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한 달만 살아도 어느 나라를 알기에 충분한 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3년이나 산 아직까지도 새로운 사실들을 깨닫는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