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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Sep 02. 2024

영국 음식은 정말 맛이 없을까?

영국 식문화에 대한 관찰기

런던에 산다고 하면, 꼭 사람들이 물어보는 질문이 있다.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역시 "영국 날씨가 그렇게 안 좋나요?" (대답은 예스!)이고, 두 번째로 많이 물어보는 질문은 "영국 음식은 정말 맛이 없나요?"이다.


대답은 "아니요"이다.


물론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영국 음식만 맛이 없어요."




국제화된 도시, 국제화된 식문화


런던은 뉴욕 못지않게 국제화된 도시이다. 옥스퍼드 대학에 따르면, 런던 인구의 40% 이상이 해외에서 출생한 이민자라고 한다.


https://migrationobservatory.ox.ac.uk/resources/briefings/migrants-in-the-uk-an-overview/#:~:text=London%20has%20the%20largest%20proportion,London%20and%20the%20South%20East.


이는 다른 국제화된 도시인 뉴욕이나 토론토에 못지않은 수치인데, 실제로 런던 시내를 가보면 관광지가 아닌데도 외국어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럼 세계에서 가장 국제화된 도시는 어디일까? 한 연구에 따르면, 다름 아닌 플로리다의 마이애미라고 한다. 무려 거의 60%의 인구가 해외 출신이라고 한다.

물론 마이애미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의 최남단에 위치한 특성상, 쿠바를 비롯한 중남미 이민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까닭이다. 실제로 마이애미의 학교에서는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가 주 언어로 쓰이기도 한다고.


우리 사무실을 봐도 얼마나 국제화된 도시인지 알 수 있다.


우리 부서의 인원이 대략 40명 정도 되는데, 그중에 토종 영국인이 기껏해야 10명 안팎에 불과한 것이다. 내 상사의 경우도 아르헨티나 출신 영국인으로, 영국 시민권을 취득한 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렇게 국제화된 도시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정말 다양한 종류의 식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런던의 대표적인 먹거리 골목인 소호(Soho)에 가보면, 한중일은 물론이고, 거의 모든 나라의 음식들을 웬만하면 찾아볼 수 있다. 런던에서 인기 많은 피리피리 치킨(Periperi Chicken)은 포르투갈식 닭요리로, 서유럽과 아프리카의 식문화가 만나 만들어진 바람직한 결과물이다.


소호의 대표적인 먹거리 골목 중 하나인 킹리 코트(Kingly Court). 가장 인기 있는 식당은 일본식 라면집이다. (사진 출처: Wikimedia Commons)


이렇게 다양한 식문화가 공존하다 보니, 경쟁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경쟁이 가져다주는 좋은 점은 역시 음식 맛의 향상이다. 수많은 다양한 종류의 식당이 존재하면, 결국 맛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한식이 당기더라도, 맛없는 김치찌개를 먹느니 맛있는 일본식 라면이나 베트남 쌀국수를 먹을 수 있는 옵션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


그러다 보니 런던에 살고 있는 런더너들도 다른 나라의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하루는 한식당에 갔는데, 토종 영국인으로 보이는 백인 남성이 순두부찌개와 제육볶음을 시키고 소주를 혼자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전에 살던 플로리다나 부다페스트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한식당은 한국 사람들, 혹은 마니아들이나 가는 식당이었던 것.


또 다른 재미있는 경험도 있었다.


지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다 김치를 사기 위해 근처의 중국 슈퍼마켓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의 직원은 인도인이었는데, "중국" 슈퍼마켓에서 "한국" 김치를 "인도" 직원이 팔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런던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다양한 나라의 식문화가 섞여있다 보니, "영국 음식이 정말 맛이 없나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쉽게 할 수가 없다. 기존에 살던 플로리다나 부다페스트에 비해 훨씬 "맛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




영국 음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럼 "영국 음식"은 어떨까?


영국 음식을 영국에서 먹는 음식이 아닌, 영국에서 발생한 음식으로 한정시켜 보자. 그럼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먼저 전통적인 영국 음식이 무엇들이 있는지부터 생각해 보자.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역시 영국식 생선튀김을 감자튀김과 곁들여 먹는 "피시 앤 칩스"일 것이다. 영국의 어느 펍에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메뉴로, 대구 등을 튀겨 감자튀김과 함께 식초(?)를 뿌려 먹는다.


다음으로 유명한 것은 "선데이 로스트"가 있다. 선데이 로스트는 한 가지 음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주말에 고기나 야채 등을 오븐에 구워, 그레이비소스 등과 함께 먹는 것을 말한다. 보통 고기로는 소 안심이나 삼겹살 등을 굽고, 브로콜리나 컬리플라워 같은 야채를 곁들인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도 유명하다. 소시지나 영국식 베이컨(우리가 익숙한 미국식 베이컨과는 상당히 다르다), 구운 토마토와 버섯, 감자 요리인 해쉬 브라운, 계란과 베이크드 빈즈를, 구운 토스트와 커피 등과 함께 먹는 것이다. 차가운 고기와 치즈를 먹는 유럽 본토의 "컨티넨탈 브랙퍼스트"와 달리, 따뜻한 음식을 먹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영국인들이 즐겨 먹는 "코니쉬 패스티"라는 파이도 있다. 고기와 야채를 페이스트리 반죽에 채워 넣은 파이인데, 영국 남서부의 콘월 지역이 특히 유명해 코니쉬 패스티라고 따로 부르기도 한다.


피시 앤 칩스, 선데이 로스트, 잉글리시 브랙퍼스트, 코니쉬 패스티


물론 이 밖에도 스카치 에그나 비프 웰링턴, 해기스, 장어 파이(?)와 무수히 많은 다른 전통적인 음식들도 있지만, 위의 네 가지 음식이야말로 영국을 대표하는 전통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정말 영국 음식이 맛이 없을까?


단순히 맛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피시 앤 칩스 같은 음식은 튀긴 것이기 때문에 맛이 없기가 더 어렵기 때문.


그러나 전반적으로 다른 나라의 음식을 먹을 때와는 달리, 영국 음식은 먹고 나서의 만족도가 무척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국 음식을 잘 먹지 않는다.


왜 영국 음식은 만족도가 떨어질까? 이에 대한 오랜 고민 끝의 답은 바로 "맛이 단순하기 때문"이었다.




영국 음식은 맛이 단순하다


선데이 로스트를 먹어보면, 우리가 먹기에 정말 심심하다고 느낄 수 있다. 별다른 양념 없이 그레이비소스만을 뿌려먹기 때문인데, 아무리 잘하는 집에 간다 하더라도, 식사를 마친 후에도 공허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잉글리시 브랙퍼스트라고 해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재료들이 조화를 이루어 만족스러운 컨티넨탈 브랙퍼스트와는 달리, 재료들이 각기 따로 논다. 베이컨은 베이컨대로, 소시지는 소시지대로, 해쉬 브라운은 해쉬 브라운대로.


각각 먹었을 때 맛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하나의 음식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또한 한 음식 내에서의 맛의 다양성이 무척 떨어진다. 선데이 로스트는 여러 재료가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기보단 그냥 그레이비소스 맛의 다른 식감의 재료들과 같은 느낌이다.


피시 앤 칩스도 마찬가지. 튀긴 음식이니 기본적으로 맛있기는 하지만, 식초와 같은 매우 단순한 소스를 곁들이고, 별다른 부재료가 없기 때문에 맛이 매우 단순하다. 튀김 음식이지만 다양한 맛을 내는 소스를 부어먹는 탕수육과 비교해 보면 얼마나 단순한 맛의 음식인지 이해할 수 있다.


코니쉬 패스티를 먹어보면, 은근히 중독성 있는 맛이긴 하지만 역시 비슷한 포지션의 음식인 만두 등에 비해 심심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만두 또한 튀겨먹고, 쪄먹고, 구워 먹고, 탕으로 만들어 먹는 등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있는데 반해, 코니쉬 패스티는 그냥 그걸로 완성된 음식이다. 맛에 변화를 줄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것.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피리피리 치킨과 비교해 보자.


피리피리 치킨은 매콤하면서 새콤한 피리피리 소스를 바른 닭을 숯불에 구워낸 음식인데, 부드러운 닭고기를 베어 물면 숯불 향, 매콤한 맛, 새콤한 맛이 입 안에서 폭발한다. 같이 곁들여 먹는 샐러드나 곡물 등도 매운맛을 달래주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상승효과를 가져온다.


영국 음식에는 이런 부분이 완전히 빠져있다.


탕수육 파인애플이나 버섯과 같은 부재료가 하나도 없이 걸쭉한 소스만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것이 바로 영국 음식의 스타일이다. (물론 그래도 영국 음식보다 더 맛있을 것이다)


영국 음식이 이렇게 단순한 맛을 지니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오래된 폭정에 맛없는 음식만 먹는 사람들만 살아남아 음식들도 맛이 없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가장 그럴듯한 것은 역시 기후설이다. 1년에 해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날이 3-4개월에 불과하고, 거의 1년 내내 비가 오는 영국의 기후 때문에 야채나 과일, 향신료등이 제대로 자라지 않고, 그 때문에 다양한 식문화가 자라날 수 없었다는 것.




처음 영국에 간다고 했을 때, 우리의 걱정 중 하나는 맛있는 음식을 못 먹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내가 살던 플로리다 북부의 잭슨빌이나 헝가리 부다페스트보다 훨씬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앞서 얘기했듯 영국의 전통 음식은 맛이 없다. 그러나 영국의 전통 음식도 발전하고 있다. 피시 앤 칩스 또한 발전을 계속해, 감자튀김에 트러플을 넣는다던가, 여러 종류의 소스를 먹을 수 있는다던가 하는 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물론 갈 길은 아직 멀어 보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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