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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Oct 15. 2019

미국 서부 여행 후기

아기와 함께한 8박 9일의 대장정

올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 아이가 태어났고, 어쩌다 보니 한국을 세 번이나 다녀왔다. MBA도 졸업했고, 결정적으로 헝가리 부다페스트 발령이 거의 확정됐다. 복잡한 일들은 많은 생각을 부른다. 비빔밥 재료를 한데 어우르는 고추장처럼, 생각들을 정리할 계기가 필요했다. 나의 선택은 언제나 그랬듯이,


여행


여행이란 단어와 함께 질문들이 솟아났다.

8개월 된 아기와 함께 여행할 수 있을까?

생애 처음 해외여행을 하는 와이프의 가족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여행 방법은?

아이들까지 모두 만족할만한 여행 루트는?

준비하는데만 꼬박 몇 주가 걸렸다. 8개월짜리 아기를 포함한 아이 넷 어른 넷이 떠나는 로드트립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만족스럽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그랜드 캐년까지


처형네 식구들은 해외여행이 처음이었다. 아이 셋을 키우느라 여행 갈 체력도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위해 기왕 여행하는 것 뽕을 뽑을 수 있는 여행을 기획했다. '이게 정말 가능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패키지 투어로도 권유하고 싶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우리는 자유여행으로, 그것도 렌트카로 떠나는 로드트립으로 해냈다. 다음은 간략한 일정 요약이다.


1일차 - 샌프란시스코 (알카트라즈, 피셔맨즈 와프, 롬바르드 거리, 금문교)

2일차 - 나파밸리 와이너리 투어

3일차 - 요세미티 국립공원

4일차 - 엘에이 (게티 빌라, 멜로즈 거리, 헐리우드 거리, 그리피스 천문대)

5일차 - 라스베가스 (베네시안 호텔, 벨라지오 분수쇼)

6일차 - 후버댐, 그랜드 캐년 사우스 림

7일차 - 앤텔로프 캐년, 라스베가스 다운타운

8일차 - 유니버셜 스튜디오 엘에이

9일차 - 스탠퍼드 대학교


원래는 몇 군데 더 일정이 있었지만 체력의 한계로 인해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간단해 보이는 일정이지만 도시 간 운전 시간만 36시간에 육박하는 대장정이었다.




아이템빨로 극복하는 아기와의 여행


역시 육아는 아이템빨이라던가. 한창 이유식을 먹는 8개월 딸아이와의 로드트립은 아이템빨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필수 아이템들을 소개해본다.


1. 킨데 브레스트 밀크 스토리지 트위스트 백

원래는 모유를 저장하는 파우치인데 이유식이나 분유를 보관하기에도 유용하다. 파우치 자체로만 보면 그냥 보통 아이템인데, 아래 소개할 다른 아이템들과 함께라면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하는 슈퍼 초강력 필수템이 된다.


가격은 조금 나가지만 한 박스를 사서 통째로 캐리어에 넣어갔다. 없었으면 여행이 무척 힘들었을 정도로 반드시 챙겨야 할 필수템 되시겠다.


2. 킨데 푸디 베이비 푸드 스토리지 스퀴즈 스푼

아래 소개할 아이템과 더불어 킨데 파우치를 최강템으로 만들어주는 세트 아이템이다. 이유식을 담은 파우치에 스푼을 끼우고 쭉 짜서 아기에게 떠먹이면 된다. 사용도 간단하고 세척도 편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 걸까?


물론 이유식을 사서 먹이는 분이라면 이런 아이템은 별 쓸모가 없다. 그러나 우리처럼 직접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부모라면 생각해볼 만한 아이템이다. 꼭 여행 중이 아니라 외출 중에도 괜찮은 아이템!


3. 킨데 트위스트 밀크 스토리지 백 어댑터 키트

킨데 세트 아이템의 마지막 주자로, 시중에 판매하는 다른 젖병의 젖꼭지와 파우치를 연결시켜주는 어댑터 세트이다. 여행 시에는 젖꼭지와 어댑터만 가져가면 되니 짐도 줄고 무엇보다 젖병을 씻을 필요가 없어 훨씬 간편했다.


4. 미네베이비 일회용 식탁 깔개와 턱받이

여행 시에는 일회용만큼 훌륭한 아이템들이 없다. 환경에는 안 좋겠지만 여행의 스트레스를 줄여주는데 한몫한다. 아기 맘마는 대부분 차에서 줬기 때문에 매트는 사용할 일이 없었지만 일회용 턱받이는 훌륭한 아이템이었다.


5. 베이비 딜라이트 스너글 네스트 하모니 휴대용 베시넷

휴대용 베시넷으로 가져가면서도 과연 사용할까 반신반의했었는데 의외로 꿀아이템이었다. 특히 베시넷을 제공하지 않는 미국 국내선에서 아기를 재울 때 유용했고, 차 안에서도 무릎 위나 좌석에 놓고 아기를 재우기에 무척 유용했다.


그 외 유용한 아이템


쿨러백: 아이스박스 대신 보냉/보온이 되는 쿨러백을 사용하는 것이 공간을 절약할 수 있다. 여행 전 마트에서 $20정도 하는 것을 구매했다.


집락(Ziploc) 샌드위치 백: 마트에서 파는 입구를 봉할 수 있는 비닐팩이다. 샌드위치 사이즈와 갤런 크기의 냉동실용 사이즈, 두 가지 모두 계속 구매해서 사용했다. 특히 냄새까지 거의 막아주기 때문에, 응가 기저귀를 어쩔 수 없이 숙소에 버리거나 할 때도 유용했다. 그 외에 모든 보관에 유용하다.


릿첼소프트 의자: 튜브처럼 공기를 뺐다 넣었다 할 수 있는 휴대용 아기의자이다. 의자 자체가 방수이기 때문에 숙소에서 아기를 씻길 때 대활약했다.




카시트와 유모차는 어떡할까?


우리를 무척 고민하게 했던 질문이었다. 카시트와 유모차를 가져가자니 무겁고 번거로운 데다 파손의 우려가 있었고, 그렇다고 렌탈을 하자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우리는 두 가지 모두 사용하던 것을 가져가기로 결정했고, 결국은 옳은 결정이었다.


먼저 카시트. 렌트카 업체에서 빌릴 경우 적게는 하루에 $20에서 많게는 $50까지 청구하기 때문에, 차라리 현지에서 사서 쓰는 게 저렴하게 느껴질 정도로 빌리는 값이 만만치 않았다. 여행객들에게 단기로 저렴하게 빌려주는 업체들도 있었지만, 매번 이동해야 하는 로드트립의 경우 카시트를 배송받고 보내기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카시트를 안 할 수도 없었다. 하루 평균 다섯 시간이 넘는 운전시간 내내 아기를 안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게다가 미국에서는 법으로 카시트를 강제하고 있다. 카시트를 안 하다 걸리면 강력한 처벌을 받기 때문에, 카시트는 필수였다.


결국 사용하고 있는 카시트를 직접 가져가기로 했다. 다행히 항공사에서 체크인 시 카시트를 비닐로 싸서 부쳐준다. 비용도 무료. (만약 비닐에 싸주지 않으면 요청하시길 권합니다) 여행이 끝난 후 표면에 약간의 손상이 있었지만, 카시트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다음으로 유모차.


많은 고민을 했다. $30 정도 하는 저렴한 우산형 유모차를 구매할까 아니면 기내 반입이 되는 유모차를 마련할까. 결국은 집에서 쓰던 유모차를 가져가기로 결정했다. 아이가 편안해하고, 기내 반입은 안되지만 접어서 보관이 간편했기 때문이다.


유모차의 경우 수하물로 부치는 대신 게이트에서 무료로 맡길 수 있다. 항공사마다 규정이 다를 수 있는데, 이렇게 할 경우 경유지에서 내릴 때 유모차를 찾아다 준다. 환승을 기다리는 도중에 유모차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게이트에서 맡길 경우 비닐 포장을 해주지 않으니, 카시트를 맡길 때 비닐을 추가로 요청하는 것이 좋다.




호텔에서 묵을까? 에어비앤비에서 묵을까?


에어비앤비의 등장으로 여행자들은 편리함과 동시에 새로운 고민을 가지게 되었다. 바로 호텔과 에어비앤비 중 어디에 묵을까 하는 것이다.


여행의 목적과 상황에 따라 답은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에어비앤비를 선택했다.


먼저, 인원이 많았다. 나라마다 다를 수 있지만 주택 보유자의 대부분이 침실 세 개 이상인 집을 선호하는 미국의 특성상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호텔보다 에어비앤비가 가격이나 편의성 면에서 월등하다.


특히 큰 집이면 큰 집일수록 더욱 럭셔리한 하우스에서 묵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래드 캐년 투어 중 묵었던 집. 뒷마당에 미끄럼틀이 있고 대리석 욕조가 있는 락셔리의 절정이었다.

또한 에어비앤비의 장점은 취사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미국은 직접 해 먹는 것이 외식에 비해 압도적으로 저렴하다 (특히 고기가 싸다!) 아침과 저녁을 숙소에서 해 먹으면서 비용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였기 때문에 에어비앤비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다. 먼저 호텔의 경우 냉장고는 있지만 보통 냉동실은 없다. 우리는 미리 7일치를 만들어 냉동시킨 후 가져가고, 다 떨어진 후에 3일 치를 추가로 만들어 먹였는데, 에어비앤비에는 보통 냉동실이 있기 때문에 불편함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에어비앤비에 묵는 것 자체가 여행의 경험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에어비앤비를 선호한다. 8박 9일 동안 7개의 숙소를 거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고 특히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반면 적은 인원이라면 호텔이 나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위치가 편리하고, 안전하며, 깨끗하다. 에어비앤비에 비해 어느 정도 이름 값있는 호텔들은 검증이 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더러운 침대에서 자게 될 가능성이 낮다. 다만 취사가 어렵기 때문에 식비가 더 들 수 있고, 인원이 많아지면 그만큼 방을 더 빌려야 하므로 비용이 에어비앤비에 비해 비싸지는 시점이 온다.


모텔은 절대 권하지 않는다. 학창 시절 미국 서부 로드트립을 할 때는 모텔에서 묵었지만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우선 청결도가 매우 떨어지고, 위험하다. 돈을 조금 더 들이더라도 호텔이나 레지던스 인 같은 곳에서 묵을 것을 권한다.




에어비앤비 잘 고르는 방법


에어비앤비는 복불복이 심한 편이다. 잘 걸리면 최고의 경험을 얻을 수 있지만 잘못 걸리면 하루를 망칠 수 있다. 그간 에어비앤비를 애용하며 얻은 요령들을 공유해본다.


반드시 고객 후기를 읽어본다. 특히 좋은 후기보다 별 한 개짜리 후기를 유심히 읽어보면 단점이 보인다.

도시 중심에서 30분 정도만 떨어지면 가격이 저렴해지고 더 좋은 숙소를 잡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실을 활용해 도시 사이를 이동할 때 길목에 있는 숙소를 잡으면 저렴하고 좋은 숙소를 구할 수 있다.

모르는 도시는 반드시 구글에서 범죄율을 검색해봐야 한다. 보통 숙소는 괜찮은데 숙소 주변에서 장을 보거나 기름을 넣다 봉변당할 수도 있다.

궁금한 것은 반드시 호스트에게 물어보자. 응답률이 고객 유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대부분의 호스트가 1-2시간 안에 답을 준다.

보통 호스트가 상주한 경우, 게스트용 별채, 집 전체로 종류가 나뉘는데 아기와 함께 여행하거나 숙소에서 밥을 해먹을 계획이라면 게스트용 별채나 집 전체를 고르도록 하자. 아니면 매우 불편할 수 있다.

괜찮은 숙소가 안 나오면 인원수를 줄여서 검색해보자. 어떤 숙소들은 인원수에 관대한 편이고 추가로 에어매트리스나 침대를 제공하기도 한다. 호스트에게 문의하자.




미국 여행의 소소한 팁들


미국을 여행할 때 도움이 될만한 팁들을 준비해봤다. 미국 서부여행이나 로드트립에만 국한되지 않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일반적인 팁들이다.


미국에서 운전할 때는 네비게이션보다 Google Map을 활용하자. 와이파이 에그를 빌려가면 구글 맵을 활용할 수 있다.

산간지역이나 외딴 지역, 심지어 고속도로 위에서도 전화가 안터지는 구간이 있다. 이 때를 대비해 일부 구간은 Google Map의 오프라인 지도를 다운로드 받아놓자.

맛집을 찾을 때는 Yelp 앱을 활용하자. 별 네 개 이상의 맛집에 리뷰 수가 백개가 넘어가면 왠만해서 실패하지 않는다.

팁은 음식 값의 12-15%가 적절하다.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경우 먼저 결제한 후에 추가로 영수증을 가져가주는데, 그 곳에 팁을 적는 란이 있다. 때때로 영수증에 팁이 이미 포함되어있는 경우가 있는데 (Gratuity, Service Charge등 표현도 다양하다) 그 경우에는 팁을 추가로 주지 않아도 된다

레스토랑에서 종업원을 소리내어 부르는 것은 큰 실례다. 테이블마다 종업원이 배치되어 있으므로 아무 종업원이나 불러선 안되고 담당 서버를 불러야 한다.

계산은 보통 테이블에서 한다. '첵(Check)'을 달라고 하면 영수증을 가져다준다.

길거리에 주차할 경우 주변 표지판에서 룰을 잘  파악해야 한다. 'Monday thru Friday 8PM - 8AM enforced'라고 되어있으면 주말이나 주중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는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주차 시간에 제한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반드시 표지판을 읽어봐야 한다.

운전 중 Stop 표지판을 보면 반드시 잠시 멈춰야 한다. 스쿨버스가 Stop 표지판을 날개처럼 펼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에도 멈춰야하고 심지어 반대편 차선에서라도 멈춰야한다. (가드레일 등으로 중앙선이 분리된 경우에는 멈추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있다)

경찰차나 소방차, 구급차 등이 사이렌을 울리며 달려오면 피해야 한다. 꽉 막힌 도로에서도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다.

차 안에 귀중품은 반드시 보이지 않게 잘 숨겨놔야 한다. 창문을 깨고 훔쳐가는 경우가 있다.

밤에는 걸어서 돌아다니지 말자. 한국만큼 안전한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로드트립을 마치고...


여행기에 앞서 후기를 먼저 써본다.


로드트립은 왜 가는가? 힘들고, 비싸고, 관광 시간보다 이동시간이 더 길다. 그러나 로드트립은 그것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로드트립을 떠날 것이다.


나는 로드트립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준다 말하고 싶다. 다섯 시간 졸음과 싸우며 운전하는 동안에도.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간단한 게임을 할 때도. 주유소에서 시원한 커피로 목을 축일 때도. 일행과 함께한다는 유대감이 있었고, 서로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리고 자연의 경이와 문명의 이기를 보았을 때, 내가 아닌 우리가 함께 했다는 그 기억. 그것이 사람들을 숱한 고난 속에서도 로드트립을 떠나게 만드는 것이다.


(비록 와이프님께서는 앞으로 고생 좀 시키지 말라고 하셨지만서도...ㅎㅎ)


여행은 늘 이렇다. 여행 중에는 고생이다 싶다가도, 돌아오면 꿈과 같고 다시 떠나고 싶다.


그 마음을 아는 사람들, 그 마음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감히 추천하고 싶은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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