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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Oct 31. 2019

미국 서부 - 위대한 자연과 인간의 땅

8박 9일 동안의 지옥의 로드트립

사람은 꿈을 쫓는다. 그런 인간에게 위대한 자연은 단지 넘어야 할 산에 불과했다. 인간의 오만함은 꿈의 상징인 '황금'을 쫓던 서부개척시대에 절정에 이르렀다. 우리는 황금이 아니라 꿈을 쫓던 인간의 발자취를 따라 미국 서부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에 가거든 머리에 꽃을 두르세요


If you are going to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에 가거든

Be sure to weare some flowers in your hair
머리에 꽃을 두르세요

If you are going to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에 가거든

You are gonna meet some gentle people there.
친절한 사람들을 만날 거예요.

익숙한 노래 속 가사를 따라 우리의 여정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되었다. 일곱 개 언덕의 도시라는 별명답게, 언덕진 길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도 즐거웠다. 바로 이 곳에서, 도시 간 이동 시간만 36시간에 달하는 우리의 지옥의 로드트립이 시작된 것이다.

도시간 이동 시간만 무려 1일 12시간

한 때 히피들의 본거지였던 도시는 자유롭고 여유로웠다. 자유를 갈망하고 평화를 추구했던 그들의 정신이 실리콘 밸리로 이어져 세계의 IT산업을 이끌고 있다. 반면 비트코인과 투기 광풍으로도 이어졌으니, 반전운동과 마약이 동시에 공존했던 히피 정신의 앞면과 뒷면이 현재에도 이어져오는 듯했다.

IT 전사(?)를 계속 쏟아내는 스탠퍼드 대학 또한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다.

앞으로의 고생을 예고하는 것일까. 여행의 시작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옥인 '알카트라즈'였다. 여행 내내 차 안에 갇혀있던 시간을 일행은 '감옥'처럼 생각했을지 모른다.

감옥으로 가는 페리가 보인다.
별명인 '더 락(The Rock: 바위)'처럼 멀리서 보면 그저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바위처럼 보이기도 한다.
감옥에서의 생활은 끔찍하고 끔찍하게 지루했을 것이다.
감옥 건너편에는 샌프란시스코 요트 클럽이 있어 그곳에서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음악소라에 수감자들이 고통을 받았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지 않는가. 첫날부터 고생스러웠지만 39번 부두를 걷다 우연히 발견한 식당은 너무 만족스러웠다. 이런 뜻밖의 즐거움이 있어 자유여행을 하는 것 아닐까.

가장 유명한 39번 부두. 주차비도 살인적인 39달러.
한 눈에 봐도 뭘 파는지 알 수 있는 식당.
우연히 들른 식당이지만 맛있었다. 맛있는 것을 먹는 건 여행을 떠나 내 삶의 이유가 되어버린지 오래.

근교인 나파밸리로 나가 여유 있게 와인도 한 잔 해본다. 와인 문외한인 우리에게 오크 향이 나니 흙 향이 나니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지만 우리도 알 것은 알았다. 술은 마시면 취하고, 분위기도 좋으면 취한다는 것ㅎㅎㅎ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의 전경은 수도원을 연상시킨다.
야외 테이블에서의 여유있는 한 때.
포도 밭에서 포도가 익어가는 동안 분위기도 익어간다.
끝도 없이 펼쳐진 포도밭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족해졌다.

술에 취하고 분위기에 다시 취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여정은 알큰한 취기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힐링 한 숟갈


힐링이 필요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쉬는 것도 좋지만, 속이 뻥하고 뚫리는 사이다 같은, 청량한 힐링이 필요했다. 그래서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갔다. 아니, 돌아갔다.

보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터널뷰'에서의 풍경

처음 요세미티를 간 것은 벌써 10년도 더 전이다. 10년 전의 어리숙했던 학생은 어디 가고, 피로에 쩔은 배 나온 직장인으로 돌아왔다. 반면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얄밉게도 10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면사포처럼 물이 흩어지며 떨어지는 면사포 폭포

힐링할 때는 제대로 해야 한다. 차를 타고 가다가 괜찮아 보이는 곳이 있으면 그대로 멈추고 풍경을 즐겼다. 호수에 괜히 자갈로 물수제비도 떠보고. 내가 힐링한다고 호수 속 물고기들의 평화를 헤쳤으니 이기적이라 할 수 있다.

아무데나 차를 대고 쉴 수 있는 것이 자유여행의 매력
그러다 멋진 사진을 얻기도 하고
마실나온 사슴에 차를 멈추기도 한다.

숙소는 요세미티 근처의 작은 오두막집. 나무로 지은 오두막집은 사랑스러웠고, 밤에는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2층짜리 나무집을 통째로 빌렸다.
아늑한 침실. 침실이 무려 다섯 개나 있었다.

시간이 더 많았으면 레포츠도 즐기고 캠프파이어나 바베큐도 즐겼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다. 어쨌든 대자연에서 힐링을 했으니 이제는 인간 문명으로 돌아갈 시간. 엘에이로 가자.




있을 건 다 있는 엘에이(LA)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라는 가사의 오래된 가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나성이 바로 미국 최대의 한인타운이 있는 엘에이(LA)이다. 헐리우드를 비롯한 미국 영화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먼저 대부호 폴 게티가 지었다는 '게티 빌라'를 관람했다.

시간이 남아 들린 바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 기분 좋았다.
전시한 미술품도 멋지지만 건물 자체가 예술이었던 게티 빌라
대정원의 분수가 특히 멋졌다.
빌라 2층에서 내려다보는 정원도 멋지다.

게티빌라를 뒤로하고 이번에는 일행의 인스타그램 사진을 위해 엘에이 인스타그램 성지인 멜로즈 거리로 향했다. 살짝 해멨는데, 멜로즈 거리가 워낙 넓다 보니 네비를 찍을 때 멜로즈 거리가 아니라 '폴스미스' 매장을 찍고 가는 것이 빨랐다.

개인적인 사진뿐이라 사진은 인터넷 펌.

도대체 아무것도 없는 이 핑크색 벽이 뭐라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한창 우리도 사진을 찍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 한 대가 오더니, 학생 스무 명 가량이 우르르 내린다. 그러더니 학생들이 제각각 사진을 찍느라 벽 앞은 시장바닥이 되어버린다. SNS의 위력을 실감했다.


바로 건너편에는 카레라 카페라는 작은 카페가 있는데 이 카페는 핑크벽 때문에 톡톡히 수혜를 보고 있기도 했지만, 사진을 라떼아트로 만들어주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그냥 지나칠 우리가 아니다.

한 번쯤은 해볼만한 특별한 기억이었다.

바로 다음 장소인 헐리우드 거리로 향했다.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라는 노래가 있는 까닭은 아마 나성에서는 바빠서 편지를 띄울 시간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도 싶었다. 그만큼 볼거리 할 거리가 많은, 있을만한 건 다 있는 화개장터 같은 도시였으니까.

멀리 헐리우드 표지판이 코딱지만하게 보였다.
우리가 나중에 갈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워터월드의 창시자 케빈 코스트너를 기리며...
이제는 헐리우드 배우가 된 이병헌의 손도장과 발도장도 있다.
헐리우드 거리의 상징과도 같은 차이나 극장
길거리 공연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팁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미국 여행을 하며 느낀 것 중 하나는, 관광지에서 누군가 말을 걸면 절대 답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강제로 쓰레기 같은 음악이 담긴 씨디를 떠넘기며 속사포처럼 쏘아붙이고 10달러에서 20달러를 요구하는 것이 요즘 구걸의 트렌드이기 때문이다. 노골적인 천민자본주의는 양심을 집어던진지 오래였다. 미국 살면서 거절하는 스킬만 늘어간다.

한인타운에서 먹은 엽기떡볶이

일행이 한식을 그리워해 한인타운에서 엽기떡볶이를 먹었다. 떡볶이는 내게 저렴한 간식이란 인식이 있는데 요즘에는 그렇지도 않은 모양. 떡볶이를 먹고 90달러(한화 약 10만원)이 나왔으니 기절초풍할 노릇이었다. 예전의 친구들과 길거리에서 사 먹던 떡볶이가 그리웠다.


밥을 먹고 다음 장소를 여행하며 깨닫는다. 엘에이는 깡패라고. 야경 깡패.

엘에이는 깡패다. 야경 깡패.
밤의 그리피스 천문대는 붐비는만큼 멋졌다.

도시 여행에 빼먹을 수 없는 필수 코스는 바로 야경 관람이 아닐까 싶다. 뉴욕에서도, 홍콩에서도, 타이베이에서도 야경은 반드시 일정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바라본 엘에이 야경만큼 멋진 것은 없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불빛을 카메라에 반이라도 담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스베가스에선 상상이 현실이 된다.


백 년 전만 해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네바다 사막 한복판에 거대한 환락의 도시가 떡하니 자리 잡게 될 거라고. 누군가 상상을 했고 (영화 에비에이터의 실제 인물이자 아이언맨의 모델인 미국 백만장자 하워드 휴즈였다는 말이 있다) 그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먼저 돌(?)부터 보자.

라스베가스 초입에 설치된 '세븐 매직 마운틴'이라는 조형물

스위스의 예술가 우고 론디노네는 네바다 사막 한가운데 화려한 색의 돌덩이를 쌓아놨다. 온 사막이 알록달록하게 물드는 상상을 한 것일까? 아니면 SNS의 성지가 될 것임을 예측하고 철저한 계산하에 만든 작품이었을까. 예술가의 의도는 알 길이 없는 법이다.

베니션 호텔의 운하

라스베가스의 화려함은 한순간의 허망한 신기루일지 모른다. 베니션 호텔(베네시안 호텔로도 부른다) 안은 베네치아를 운하부터 하늘까지 호텔 안에 옮겨놨다. 허무한 가짜. 그러나 운하의 곤돌라 뱃사공은 진짜 베네치아의 뱃사공처럼 구성진 '오 솔레미오'를 불렀다.

카지노 안은 허망한 환상을 쫓는 이들로 넘치고...

대박의 꿈. 서부개척시대를 이끈 그것 또한 허망한 환상이었을 것이다. 오죽하면 개척자들에게 청바지를 팔았던 레비 스트라우스만 부자가 되었을까. 서부개척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고 카지노에서 계속되었다. 외팔의 강도(One-armed robber, 슬롯머신의 별명)는 손님들의 지갑을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털었다.

프리몬트 거리 풍경
전구쇼를 보러 많은 이들이 몰려왔다.

금광을 찾아 젊은이들이 떠나는 바람에 황량해진 마을처럼, 라스베가스 다운타운은 카지노 호텔들이 속속들이 들어서며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화려함에 대적하는 방법은 또 다른 화려함 뿐. 다운타운 프리몬트 거리는 거리 자체를 전구로 둘러버리는 강수를 택했고, 어느 정도 먹힌 것 같았다. 매 시간 펼쳐지는 전구쇼는 촌스럽지만 화려했고,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으니까.


상상을 현실로 만든 라스베가스는 여전히 사람의 상상을 먹고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진짜 현실로 가보자. 대자연이라는 현실과 그것을 극복한 인간을 보러.




자연이 그린 위대한 작품 그랜드 캐년


화려한 라스베가스의 불빛을 뒤로하고 그랜드 캐년으로 향한다. 시작은 금방이라도 트랜스포머가 튀어나올 것 같은 후버댐이다.

황량한 황무지 사이를 달리다보면
타투인 행성(?)이 나오고 (사실 후버댐 주차장 풍경)
거대한 댐이 뙇하고 나온다. 실제로 보면 어마어마한 규모
한 눈에 보기 어렵기 때문에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으로 대체한다

동양인은 폭포를 좋아하고 서양인은 분수를 좋아한다는 말이 있다. 자연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라고 하는데, 이 말대로라면 후버댐이야말로 자연을 극복하는 서양인의 태도의 정점이라 하겠다.


후버댐을 떠나 대자연 끝판왕(?)을 보기 위해 그랜드 캐년으로 향한다. 후버댐이 극복할 수 있는 자연의 모습이었다면 그랜드 캐년은 그야말로 극복할 수 없는 자연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자연이 남긴 작품은 인간의 해석을 거부했다. 한갓 인간은 그저 그 경이에 압도될 뿐.


이번에는 인상파를 넘어 추상화에 도전해보자.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협곡으로
미지로의 여행
그 미지 안에서 빛은 수묵화를 그리다가도
이내 화려한 자태를 뽐낸다.

엔텔로프 캐년은 그랜드 캐년처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이 빛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투어는 가이드를 따라 약 40분 정도 진행되었는데, 흙먼지를 제대로 먹으면서도 탄성이 터져 나오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잠깐 들린 홀슈밴드
어딘지 기억 안나는 곳

괜히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장소'에 꼽히는 게 아니었다. 가는 길이 멀었지만 그만큼 제대로 자연을 흠뻑 느꼈다. 아쉬움을 남기고 이제 여행은 다시 인간 세계로, 그리고 막바지로 향했다.




즐거움의 끝판왕 유니버셜 스튜디오


테마파크만큼 온전히 '즐거움'을 위한 공간이 또 있을까. 이번에만 유니버셜 스튜디오 방문이 네 번째(와이프는 벌써 여섯 번째)였지만 늘 즐거운 유니버셜 스튜디오였다. 즐거움을 글로 전할 길이 없으니 사진과 느낌으로 전해 본다.

테마파크 초입에는 늘 상점가가 있기 마련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상징인 지구본
심슨이 즐겨먹는 더프 맥주 캐릭터가 보인다.
옵티머스 프라임!
좀 허접한 쿵푸팬더도 보이고...
케빈 코스트너를 파산에서 구해준 워터월드
역시 가장 인기있는 곳은 해리포터 테마 마을
올란도에 있는 호그스미드와 정말 100% 똑같다
호그와트 성도 마찬가지

유니버셜 스튜디오 헐리우드는 실제 헐리우드 영화 스튜디오와 세트장을 구경하는 스튜디오 투어를 제공한다. 실제로 드라마 촬영 중이라 투어 버스 승객들에게 조용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세트장을 구경하다 지루해질 때쯤 버스가 놀이기구와 합체(?)하면서 놀이기구로 변한다. 정말 안 봤으면 후회할뻔한 구경거리였다.

쥬라기공원으로 시동을 걸고...
서부극의 세트장도 갔다가
캘리포니아의 지진도 체험하고ㅎㅎ (물 나오고 불 나오고 장난이 아니었다)
영화 '조스'의 촬영지도 구경했다.
어마어마한 규모의 비행기 착륙 현장을 묘사한 세트

이외에도 킹콩, 분노의 질주 등 세트장과 어트랙션으로 40여분의 투어시간이 전혀 지루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디즈니월드(랜드)를 가보면 정말 테마파크란 이런 거구나 하고 놀라게 된다. 놀이기구의 스릴뿐 아니라 전반적인 경험을 디자인해놓았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그랜드 캐년과 함께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장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은 것들...


길고 긴 대장정이 끝났다.


여행이 끝나고 남은 것은 막대한 카드빚(!)과 아무리 쉬어도 풀리지 않는 피로. 곧바로 할로윈 파티를 준비해야 했기에 여행 후의 2주는 정말 지옥 같았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 희한한 것이, 막상 여행 중에는 힘들다가도 돌이켜보면 좋은 기억만 남기 마련이다.  이번 여행도, 다른 여행들도 그랬다. 그래서 자꾸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에는 돌고 돌아 사람이 남았다. 여행 동안 우리는 즐거운 추억과 힘든 순간을 공유하고, 투닥거리면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더욱 가까워졌다. 이것이 로드트립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일 것이다. 그리고 그 느낌을 알기에 이렇게 다시 한번 길 위로 오르게 된다.


그 길의 끝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그것은 또한 행복이다. 짐꾸러미를 풀면서 '아 이번 여행은 즐거웠어' '힘들지만 또 가고 싶어'라 말하면 여행은 성공이다. 평생남을 추억뿐 아니라 소중한 사람들과의 인연을 만들어준, 미국 서부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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