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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Dec 23. 2021

외노자 서바이벌 스킬 시리즈

성공적인 외노자/직장인으로 살아남는 법

일단 자랑질부터 해보자.


올해로 입사 11년 차, 그동안 6번 승진을 했으니 약 2년에 한 번씩 승진을 한 셈이다. 직급의 끝판왕인 Managing Director(MD)까지 두 번의 관문이 남았을 뿐. 물론 남은 두 번의 승진이 이전의 모든 승진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어려울지 모른다. 5년이 걸릴지, 10년이 걸릴지. 그러나 동기들 중에서도 가장 빨랐고, 몇 기수 위의 입사 선배들 중에서도 비교대상이 없으니 지금까지는 탄탄대로를 걸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내가 아주 특별한 기술이 있다거나, 명문대를 나왔다거나, 영어가 유창하다고 할 수 없다.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을 나왔으나 동기 중에서는 학벌로 가장 딸렸으니, 학벌과 그에 따르는 네트워크는 결코 내 무기가 아니었다.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듣기가 안되어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면 영어가 유창하다고도 할 수 없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영업능력을 갖춘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만의 "서바이벌 스킬"이 있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 이제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그 비밀을 공유해, 나와 같은 처지의 좌절하고 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한다.


서바이벌 스킬 #1: 리스크 테이킹 (Risk Taking)


기업에 있어 기회란 것은 대단히 한정된 자원이다. 따라서 "다음번"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그럼 기회를 얻기 위해 지불해야 할 재화는 무엇일까? 바로 위험부담이다. 그 위험부담을 제대로 측정하고 기회를 얻는 것, 그것을 리스크 테이킹이라고 한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입사 4년 차, 미국에서 일할 기회가 주어졌다. 내가 일하고 있던 리스크 본부의 Managing Director가 기존에 매니 지하던 팀에 자리가 났다고 메일을 돌린 것이다.


메일을 받아본 사람들은 즉각 계산을 시작했다. 미국에서 일할 경우 얻을 것과 잃을 것을 계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산은 무척 간단하다. 미국에서 일할 경우 고용안정성과 지금껏 쌓아온 퇴직금 누진 금액을 잃게 되고, 영어 때문에 고생을 할 수 있다. 반면 호봉제에서 벗어나 빠른 승진을 할 수 있고, 새로운 경험과 경력을 얻을 수 있다.


결국 예상보다 대단히 적은 인원만이 지원을 하고 말았다. 여러 가지 천운이 따라 결국 내게 기회가 돌아오고 말았지만, 만약 더 좋은 경력과 백그라운드의 직원들이 지원했다면 기회는 나한테까지 돌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 왜 소수의 인원만이 지원을 했을까?


미국을 가기 위해 잃는 것은 아주 분명하고 금전적인 계산조차 가능한 반면 얻는 것은 추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확실한 손해와 불확실한 이득 중 확실한 손해 쪽에 무게를 두었던 것이다.


반면 나는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다.


우연찮게도 기존에 알고 지내던 외국인 직원들 몇이 그 팀에 있어 정보를 캐냈다. 어떤 기회가 주어지는지, 근무 환경은 어떤지, 복지는 어떤지 등, 그들의 진솔한 답변이 불확실성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확실한 손해가 과연 정말 확실한 것인지 다시 따져봤다. 학연과 지연에 둘러싸인 국내의 환경에서 내가 성공할 가능성은 얼마일까?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한국 지사가 성장하고 그 혜택을 받을 가능성은? 한국에 남는다고 계속 고용안정성이 있을까? 이런 질문들은 확실하다고 여겨졌던 것들을 불확실성의 영역에 밀어 넣기에 충분했다. 결국 더 이상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미국 팀에 지원을 했다.


두 번째 예를 들어보자.


현재 상황을 조금 설명해보자면, 나는 갓 승진한 Senior Vice President (SVP)로, 현재 내 매니저는 24년 경력의 베테랑 SVP 되시겠다.


현재 있는 조직에 커다란 변화가 들이닥쳐, 빠른 시일 내에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조직의 사활을 거는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가장 유력한 대안은 기존 매니저가 4-5년 동안 IT팀과 일해 만들었지만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는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 나는 기존 시스템에 무척 불만이 많았고, 그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우리 조직을 망하게 하는 길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먼저 시스템의 문제점에 대해 매니저가 전혀 공개를 하지 않았다. 계속적으로 우리 조직의 MD에게 거짓된 보고를 한 결과 MD는 물론이고 다른 많은 직원들이 그 시스템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었다.


또한 시스템 개선을 위해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뿐더러 시스템 개발의 속도가 너무 느려 목표한 날짜까지 납기를 맞출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저는 계속해서 거짓된 정보를 상사들에게 뿌려왔고, 다른 대안도 딱히 없었던 경영진은 매니저의 시스템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여기서 내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선택지 1: 마음에 들지 않지만 나는 갓 팀에 들어온 직원이고 경영진들이 결정을 번복하기는 쉽지 않을 테니 최선을 다해 매니저를 서포트해 시스템을 완성시킨다.


선택지 2: 매니저와 척을 지게 되겠지만 대안을 제시한다. 기존의 시스템을 대체할 대체 시스템을 빠르게 개발할 스킬이 있었지만, 실패할 경우 경영진의 눈 밖에 날 수도 있다.


이미 눈치챘겠지만 나는 주저 없이 선택지 2를 택했다. 물론 철저한 준비를 거쳤다. 며칠 밤을 새우며 프로그래머도 아닌데 코딩을 짜고, 태블로 대시보드를 만들었다. 그 결과 조금씩 경영진의 신뢰를 얻기 시작했고, 인력 지원과 IT 팀의 서포트를 받게 되었다. 인력 지원과 IT팀의 서포트를 받게 된 이상 내게는 거침이 없었고, 여러 번의 고위 경영진 보고를 통해 마침내 매니저 대신 조직의 사활을 건 프로젝트 자체를 따내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매니저와의 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본인의 팻 프로젝트(Pet Project)를 잃게 된 매니저는 아주 치사한 방법으로 나를 견제했다. 이미 경영진의 신뢰를 얻은 나 자체를 공격할 수 없으니 지원 나온 인력에게 아주 힘들고 반복적인 업무를 시키는 방식으로 나를 괴롭혔다. 그뿐 아니라 경영진에게 내 악담을 하거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은 직원들에게 유언비어를 퍼뜨려 평판을 낮추려고 노력하는 등, 치졸한 행태를 보였다. 심지어 한 번은 내게 직접적으로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하는 바람에 내가 눈앞에서 "한 번만 더 그런 부적절한 발언을 하면 HR에게 보고하겠다"라고 경고를 준 적까지 있었다. (참고로 내가 근무하는 회사는 인종차별에 극도로 민감해 인종 차별한 사실이 드러나면 잘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매니저와의 대치 과정에서 리스크는 계속 커졌지만, 결국 프로젝트를 따내면서 좋은 결과를 얻게 되었다. 매니저는 결국 다른 업무를 배정받게 되었고, 부서의 매니징 디렉터가 교통정리를 해주면서 관계 또한 "친구이자 적"과도 같은 애매한 관계로 남게 되었다. 어떻게 프로젝트를 따내게 되었는지는 다음 스킬인 "백문이 불여일견"에서 자세하게 다뤄보고, 일단 선택지 2를 택하게 된 과정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갓 승진한 따끈따끈한 SVP였던 나에게, 아무리 무능하더라도 24년 차 베테랑 SVP 매니저에게 도전하는 것은 큰 리스크였다.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그 매니저 자신이었다. 나는 도저히 24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그대로 머물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 승부를 걸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가지 못하리라는 생각, 그 생각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회사생활은 물론이고 인생에 있어 이런 상황이 닥칠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무엇인가?"

위 두 사례에서 내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경우래 봤자 "직업을 잃는 것"에 불과했다. 결코 내가 생명을 잃거나, 소중한 가족을 잃거나, 아니면 병에 걸리거나 하는 최악의 경우는 발생하지 않는다. 선택이나 고난의 순간에 가장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는 것은 내게 언제나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비밀 한 가지. 막상 그 최악의 경우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정리해보자.


리스크 테이킹: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행동을 취하자

확실하다고 믿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자

승부를 걸자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자 (그 최악의 경우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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