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숨은 명소
길고 긴 어둠이 지나고 드디어 런던에도 맑은 날이 찾아온 2023년 4월!
악명 높은 런던 날씨는 거의 5개월 동안 매일 비를 뿌렸다. 이렇게 오랜만에 맑은 날이 찾아오면 런던 시민들은 너나할 것 없이 담요를 싸들고 근처 공원으로 피크닉을 나오곤 한다.
우리도 런던 시내에 사는 지인 가족과 함께 그리니치 천문대로 유명한 그리니치 파크로 피크닉을 나왔다.
그리니치 파크로 가는 길은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역시 추천하는 방법은 DLR 노선을 타고 가는 방법이다. 넓은 그리니치 파크 근처로 두 개의 역이 있는데, 커티 삭(Cutty Sark) 역과 그리니치 역이 있다. 커티 삭 역에 내리면 유명한 쾌속 범선인 커티삭호를 비롯해 그리니치 마켓, 해양박물관 등 다양한 볼거리를 보면서 그리니치 파크로 갈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은 우버 보트(Uber Boat)를 타고 그리니치 피어(Greenwich Pier)에 내리는 방법이다.
시간이 많은 여행자들에게 추천하는 방법인데, 타워 브리지를 비롯해 캐너리 워프의 고층 빌딩 등 템스 강 주변의 명소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애플 페이나 오이스터 카드도 쓸 수 있으니 시간이 넉넉하다면 추천.
이번에 우리는 자차로 그리니치 파크에 갔다. 피크닉이다보니 이것저것 먹거리와 준비한 것들이 있어서 차로 가는 게 오래 걸리더라도 편리했다. 주차는 몇 군데가 있는데, 주말에는 해양박물관 뒤쪽에 단돈 10파운드로 하루종일 주차할 수 있다. 우리가 갔을 때는 기계가 고장나서 무료로 주차할 수 있었다! (럭키!)
우리가 갔던 주는 찰스 왕세자(찰스 3세)가 왕으로 등극하는 즉위식(Coronation) 주간에다 날씨까지 좋아서 그리니치 마켓에는 사람들로 미어터졌다. 아쉽지만 그리니치 마켓과 커티 삭은 나중에 구경하는 걸로 하고...
우선 우리가 캐너리 워프에 살던 시절 정말 자주 갔었던 국립해양박물관에 가봤다.
런던은 명실상부한 박물관, 미술관의 도시이다.
자연사박물관, 과학박물관, 대영박물관, 빅토리아 알버트, 테이트 모던 등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곳들이다. 게다가 런던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이 모두 공짜라는 사실! 그래서 우리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애용한다.
국립해양박물관이라고 하면 다른 유명한 박물관들에 비해 이름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러나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그리니치 파크와 묶어서 가볼 만한 장소로 추천하고 싶다. 그만큼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이 가득하기 때문.
우선 그리니치 파크와 연결된 입구 쪽으로 가본다.
박물관 입구를 끼고 왼쪽에 카페가 보인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시키지 않았는데 기억을 떠올려보면 음식 맛은 그저 그랬던 것 같다. 사진에는 잘 안 담겼는데, 실제로 보면 색감이 무척 예쁜 카페였다. 런던은 정말 색감을 잘 활용하는 예쁜 도시라는 생각이 또 한번 들었다.
지상층 메인 전시관에는 실제로 예전에 썼던 육분의 같은 도구들이나 선수상 등을 전시해 놨다. 예전에 대항해시대라는 컴퓨터 게임을 너무 재미있게 즐겼던 터라 실제 선수상의 모습이나 도구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무척 즐거웠다.
박물관 메인 데스크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촉감놀이 세트를 무료로 빌려주고 있었다. 안에는 건전지로 돌아가는 선풍기, 돋보기, 소책자, 전등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자잘한 것들이 들어있다. 예전에 대영박물관에서도 비슷한 세트를 빌린 적이 있었는데, 이런 소소한 소품들로 아이들에게 더 좋은 추억을 남기게 해주는 점이 너무 좋았다.
이제 1층과 2층으로 올라가 전시들을 본다.
1층 카페 앞에는 넓은 공간에 세계지도가 그려져 있고, 배 모형들이 있어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 좋았다.
2층에 올라가면 프로젝터를 활용한 전시가 있었는데, 꽤 볼만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보면 새삼스레 영국이 선진국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물론 전시품은 대영제국 시절 약탈해 온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아이들도 즐길 수 있게 해 놓은 것을 보면 참 잘해놨다는 생각이 든다.
이스트 윙(East Wing) 지상층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작은 실내 놀이터가 있었다. 유료에다가 시간제한도 있었지만 가격이 저렴해서 나쁘지 않았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을 주는데, 작은 실내 놀이터이다 보니, 한 시간쯤 되자 아이들이 지루해했다.
이제 실내 놀이터를 나와 해양박물관 정원으로 향한다. 밖에서는 특별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국립해양박물관 앞 넓은 잔디밭에서는 특별전시가 한창이었다. 지구본 모양의 작품들을 전시해 놨는데, 하나하나 특이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World Reimagined라는 전시의 일환으로, 노예무역과 인종 간의 정의, 화합 등을 주제로 여러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고 한다. 단일민족인 대한민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다른 인종간의 갈등과 화합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전시였다.
런던에 와서 참 놀란 것 중 하나. 정말 공원이 많다.
하이드 파크부터 시작해서 리치몬드 파크, 부시 가든 등 공원들이 하나같이 예쁘고 잘 꾸며놨다. 시민들의 소중한 휴식공간인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중에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공원은 당연 그리니치 파크인데, 넓게 펼쳐진 푸른 언덕을 보고 있으면 무엇보다 마음이 편해지기 때문이다.
그리니치 파크 / 국립해양박물관에 대한 글인데 막상 사진을 올리다 보니 그리니치 파크 사진이 별로 없다.
국립해양박물관뿐만 아니라 그리니치 파크도 아이들에게 최고의 장소. 아이들과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하고 뛰어다니면서 놀아도 좋지만, 그리니치 파크 놀이터도 정말 좋았다.
그리니치 파크는 다른 런던의 주요 여행지들과 조금 떨어져 있다 보니, 여행 오시는 분들에게 추천드리기가 조금 어렵다. 국립해양박물관도 네임벨류 면에서 다른 주요 박물관만 못하다. 그래서 오히려 여행객들보다는 현지인들이 더 좋아하는 공원이었다.
만약 런던을 오래 여행할 예정이고, 현지인들의 삶을 체험해보고 싶다면, 그리니치 공원을 일정에 넣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