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7일 수요일 - 육하원칙
그러니까, 이 일련의 글에서 뭘 쓰고자 하는지, 이 일기가 오리무중이 되지 않도록 육하원칙에 맞게 정리해 보자.
나는 73년생 소띠다. 2011년 9월 영국으로 왔으니, 만 십 년이 넘게 영국 살이를 하고 있는 셈. 중간에 코로나를 피해 대전에서 19개월 여 머물렀으나, 그동안에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영국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다.
집과 회사 모두 런던의 제2지구(Zone 2)에 있다. 런던의 중심인 제1지구(Zone 1)에서 살짝 북쪽이다. 집은 홀로웨이 로드 근처이고, 회사는 칼레도니안 로드 근처이다. 우편번호로는 둘 다 N7 구역. 런던은 우편번호로도 동서남북이 대략 나온다.
내 삶은 단조롭다. 회사, 집. 회사, 집. 중간에 슈퍼마켓, 또 더러 런던 시내를 오가는 삶이다. 그래도 더러더러 재밌는 일들이 벌어진다. 여기에서 내가 만나는, 비록 수박 겉핥기의 인상착의에서 조금 더 나아간 것일 망정, 내가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싶고,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스스로 들여다보고 싶다.
낼모레 쉰, 왜 새삼 이 나이에. 그리고 왜 하필 이 시점에서,라고 묻는다면. 한국에서 태어나, 사십 년 가까이를 한국에서 살다가, 영국이란 곳에서 좌충우돌하다 보니 어느새 십 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불혹, 미혹되지 아니하여 할 나이를 코앞에 두고 나는 모르는 길을 나섰고, 십 년 떠돌아, 지천명이 낼모레인 데도 천명은커녕 내 앞에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아직도 가물가물하다. 내가 소인이자 범부이니까 그렇다 치자.
호빗 영화에서, 간달프가 빌보 배긴스에게 길을 종용한다. 빌보 입장에서는 평화롭고 맛있는 집을 떠나 왜 모험을 해야 하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해서 묻는다. 내가 돌아올 수는 있는 거야? 약속할 수 있어? 간달프 왈. 아니, 못 돌아올 수도 있어. 그런데 돌아온다고 해도 더 이상 같은 공간이 아닐 거야. 네가 달라져 있을 테니.
나는 모종의 여행을 해버렸고,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더 이상 '빠꾸 도'는 없다. 그런데,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글쎄, 쩜, 쩜, 쩜.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짓도 아니할 수는 없으므로, 모르면 모르는 상태로 정리해 보자. 최소 일주일에 한 차례는, 아니면 더러더러 생각이 나면은, 내 영국에서의 떠돌이 삶을 적어보자. 나침반은 내 유전자 안에 코딩되어 있을 거라, 근거도 없으면서 배짱 좋게 믿어 보자.
육하원칙에 맞게 정리가 되었나? 그다지, 쩜, 쩜, 쩜! 낼모레 쉰, 나는 런던으로 출근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그리고 길을 찾고 싶다. 그 방편으로 일기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