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모레 쉰의 런던 출근기 8

2022년 3월 26일 토요일 - 볼로냐 어린이 도서전

by 진영순

2년 여 만의 도서전이었다.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매해 봄에 열리는 이 어린이 국제 도서전은 어린이 책 저작권 교류에 있어 가장 중요한 도서전으로 꼽힌다.




2022년 볼로냐 어린이 도서전


코비드 19로 인해 2020년 볼로냐 도서전은 미뤄졌다가 결국 취소되었다. 비행기며, 여행 및 미팅 일정을 모두 물러야 했다. 그리고 2년 후 다시 찾은 볼로냐 도서전은 예년만은 못 했지만 사람들로 북적였다. FFP2 마스크를 써야 했지만, 팬데믹은 물러간 듯 보였다.


우리 회사는 이전과 같은 위치에 같은 규모의 사이즈로 부스 설치를 했다. 다만 간격 확보를 위해 테이블 수를 줄였다. 미국 사무실 동료 가운데에서는 도서전 운영을 위해 한 명만 참여하고, 아무도 오질 않았다. 나로서는 단 한 건의 미팅도 없이 출장을 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국에서 몇십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는 상태에서 열 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출장 올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전시장 둘러보기


처음으로 느릿느릿 전시장 내 다른 부스들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대만 출판사들의 부스가 우리 부스 바로 근처 25홀에 자리 잡은 게 보였다. 그리고 중국 전시장도 보였는데, 전시를 시작하는 날까지도 책이 다 도착하지 못해, 책꽂이들이 비어 있었다. 일본 포프라샤에서는 까만 양복의 남자분이 미팅하느라 바빠 보였고, 29홀에는 반갑게도 한국 부스들이 보였다.


한국 부스들도 예년에 비해 반 정도만 참가를 하신 거 같은데, 그나마 담당자들이 못 오고, 이탈리아 현지에 거주 중인 한국인 아르바이트생을 쓰거나 아니면 대부분 사람 없이 책만 전시해 둔 상태였다.


그래도 그 와중에 그림책에 사인을 하고 계시는 한국인 분이 보였다. 이번에 <커다란 손>이란 작품으로 볼로냐 라가치 논픽션 부문의 우수상 (Special Mention)을 수상한 최덕규 작가님이었다. 오시진 못했지만, 이번에 픽션 부문에서는 이수지 작가님이 <여름이 온다>라는 그림책으로 우수상을 받았다. 이에 그치지 않고, 작품이 아닌 작가에게 주는 한스 크리스천 안데르센 상의 일러스트레이터 상을 이수지 작가가 받았다. 한국인으로서 경사스러운 볼로냐 도서전이었으나, 많이 참가하질 못해 다소 아쉬웠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이미 해외에서도 인기가 적지 않은 글로연 출판사 실장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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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볼로냐 도서전 한국관



우크라이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가까이 되는 시점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여러 면에서 서방 세계와 러시아와의 전쟁이었으므로,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우크라이나를 위해 유럽은 모처럼 똘똘 뭉친 듯 보였다. 볼로냐, 런던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에서 모두 러시아를 배제하는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전시장 한 켠에는 전쟁 반대(No War)의 염원을 담아, 일러스트레이터 및 방문자들이 한 마디씩 남기거나 그림을 그리도록 벽이 마련되었고, 사람들이 가장 많이 지나다니는 입구 쪽 한 켠에는 우크라이나 어린이 책들을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 한국관에서도 전쟁 반대와 관련 있는 책들을 한데 모아 진열 중이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영국 및 유럽의 출판 비즈니스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 회사에서는 방금 막 출시한 책이었는데 책을 서점에서 모두 거두어들이기로 했다. 특정 동물들과 특정 나라들을 묶어서 소개하는 어린이를 위한 정보서인데, 이야기를 러시아 갈색곰이 이끌고 있다. 이 때문에 책을 모두 수거했고, 해외 출판사에서 이 책을 번역 출간할 경우, 러시아 갈색곰을 핀란드 갈색곰으로 수정해서 내도록 안내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전쟁을 돕고 있는 벨라루스도 배제시키기 위해, 이 책에 나오는 벨라루스 들소는 폴란드 들소로 수정해서 다시 소개 중이다.


우리 회사 러시아 담당자에 따르면 일부 러시아 출판사 담당자나 에이전트들도 볼로냐 도서전에 참석을 하긴 한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경우 현재 러시아와의 모든 계약 건을 보류한 상태이므로, 당분간 새로운 계약을 진행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이탈리아 볼로냐


아무 미팅도 없이 길게 있을 수는 없는 터라 월요일 밤 비행기로 런던으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대신 평년보다 하루 일찍 토요일 아침 런던을 출발하여 볼로냐에 도착했다. 볼로냐 도서전에 한 열 번쯤 온 거 같다. 이번에는 주말을 낀 2박 3일(2022년 3월 19일 토요일 - 21일 월요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그렇지만, 처음으로 시내를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볼로냐에 두 개의 타워(Two Towers)가 시내 한가운데 저렇게 우뚝 서 있는 걸 새삼스레 바라보았다.


매년 출장으로 일주일 안 되게 있는 동안 아침 일찍부터 6시까지 미팅에 묶여 있다 보면, 미팅을 마친 후에는, 맛있고 든든한 저녁 한 끼만 간절해지는 터라, 그리고 누군가 동행인 저녁 시간이므로 이야기하다 보면, 거기에 타워가 있거나 말거나, 그 타워가 몇 백 년을 서 있었건 말 건 내 마음에 말을 걸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출장이라가 보다는 반은 나그네의 마음으로 무리를 벗어나 홀로 볼로냐를 둘러보았다.


무료 코스가 시간이 맞지 않아, 유료인 시티 가이드 투어를 예약했고, 젊은 시절의 미켈란젤로가 작업했다고 하는 세 점의 조각상을 보기 위해 산 도미니코 교회(Basilica di San Domenico)도 시간 확인 후 찾아갔다. 마조레 광장(Piazza Maggiore)과 바로 연결되어 있는 볼로냐의 가장 오래된 시장 골목들도 새삼 호기심 가득 담아 둘러보았다. 토요일 오후, 시내 중심인 마조레 광장에서는 백신에 반대하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이미 문을 닫은 시각이라, 근처의 도서관(Biblioteca dell’Archiginnasio) 내부를 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다.


새삼 볼로냐 음식들이 이랬었나 맛이 느껴졌다. 음식들이 대체로 짰다. 피자를 비롯해, 심지어 아이스크림과 초콜릿도 짭조름했다. 그런데 기분 좋아지는 짠맛이었다. '햇살 바짝 지중해 짭조름' 정도로 별명 달고 싶은, 왠지 햇살에 바짝 말렸을 거 겉은 지중해가 느껴지는 그런 소금 맛이라, 여기 소금이 다른가 하는 생각을 하며, 소금을 샀다. 서점(Librerie Coop & Eatlay)에서 식재료들을 팔길래, 검정 후추랑 페페론치노와 함께 구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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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시내에 있는 산 도미니코 교회 안의 이 천사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한다.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 바이러스는 물러가지 않았다. 도착 첫날 함부르크에서 일하는 옛 동료로부터 음성 메시지를 받았다. 잔뜩 쉰 목소리로, '볼로냐에서 잠시나마 얼굴을 보려 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려 버려서, 나 대신 팀원이 출장을 가게 됐어, 정말 미안'. 다다음 주에 열리는 런던 도서전에는 무사히 올 수 있으려나?


그리고 우리 팀에서 가장 어린 23살, 리스본 출신인 B가 볼로냐 도착 첫날,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온 후, 기분이 영 찜찜하여 자가 검사를 해 보니 양성이 나왔다. 해서, 7일째인 오늘 토요일까지 호텔방에서 감금 중이다. 호텔에서 삼시 세끼를 대령하고, 방 문 앞을 테이블로 가로막아 두었다. 하우스메이트가 출장 전날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B. 이 친구 생애 첫 출장을 이렇게 맞다니. 여기에서 다가 아니다. 임프린트 대표 가운데 한 명인 J도 호텔방에서 두문불출해야 하는 상황.


그런데 나는 공교롭게도 그날 일요일 저녁, B 바로 옆에서 저녁을 먹었다. 평소에 비해 다소 말이 적던 B에게 질문을 해대며. 그리고 월요일 B를 대신해 브라질 출판사와 미팅을 해야 했다. B가 꽉 차도록 잡아 놓은 미팅들을 다른 사람들이 서로 나눠서 맡았다. 그리고 난 월요일 점심으로 전시장에서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J와 잠깐 이야기를 했다. 그날 밤, 나는 런던으로 무사히 돌아왔고, B와 J는 도서전이 끝났지만 이탈리아 TV만 나오는 호텔방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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