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육아휴직을 시작한다. 복직 후 1년 만에 다시 하는 휴직이라 첫번째 휴직만큼 충격이 크진 않을 것 같다.
첫번째 육아휴직 때는 10년간 일했던 관성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성인과 함께 일하고 고등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어느날 갑자기 말도 못 하는 한살짜리와 하루 종일 같이 있게 된 것이다. 마치 통신 끊긴 우주선에 아이와 덩그러니 남은 것처럼. 평일 낮은 모두가 일하는 시간이다. 아내는 물론이고 친구들도 지인들도 모두 일하는 중. 안부를 빙자해서 연락해 내 무료함을 달랠수도 없고 연락한다고 해서 오래 대화하거나 만날 수도 없다. 육아휴직자는, 특히 주로 육아를 전담하는 성별이 여성인 대한민국에서 남성 육아휴직자는 외롭기만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육아휴직은 귀한 기회이기도 하다. 아이와 보내는 1년이라는 이상적인 이야기는 잠시 넣어둔다. 육아휴직은 일하느라 놓쳤던 계절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봄에 꽃구경 실컷 갈 수 있고 가을에 단풍 지는 것 아쉬워하지 않고 감상할 수 있다. 전국 벚꽃지도, 단풍지도 찾아본게 언제이던가. 아직 꽃 예쁜 줄 모르고 단풍 고운 줄 모를 아이 보여준다는 핑계로 봄에는 창덕궁 홍매화, 가을에는 용문산 은행나무 등등 이곳 저곳 다녔다. 계절마다 명소 찾는 재미도 좋지만, 해질녘 아파트 단지의 단풍이 찬란할 수 있다는 것도 휴직이 주는 시간 여유 덕에 알게 되었다.
계획을 잘만 세우면 꽤 괜찮은 목표들을 이룰 수도 있다. 첫번째 육아휴직 때는 아이가 낮잠을 잘 때마다 짬을 내서 미뤄둔 책들을 읽었다. 미리 내려둔 커피 한잔에 안방에 쟁여둔 과자 몇개와 함께 한 책들은 달디 달았다. 첫째 아이는 밤잠을 일찍 자서 아이를 재운 후에 틈만 나면 밖으로 나가 달리기도 했다. 저녁에 자유시간을 이해해 준 아내 덕에 달리기에 대한 애정도, 달릴 수 있는 거리도, 속도도, 자존감도 늘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큰 육아휴직의 장점은 부모님과 1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고 나면 부모님과 시간 보내기가 쉽지 않다. 서로 사는 곳이 멀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명절 때나 얼굴 보는 사이가 되는 것이다. 다행히 내 부모님은 우리 가족과 한 동네에 살고, 엄마는 은퇴하신 후라 시간이 여유로우셔서 휴직 중 거의 매일같이 볼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조부모 덕을 톡톡히 봤다.
부모자식 간에도 밀린 이야기가 있다. 시덥잖은 가십부터 오랜 시간 묵혀둔 이야기까지, 같이 있는 시간이 많으니 나눌 이야기도 많았다. 단골로 나오는 소재는 내 어린시절 이야기. 자라면서 수없이 들어왔지만 내 아이를 키우면서 그 이야기들을 다시 들으니 와닿는 바가 달랐다. 당연히, 내게 유리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아이가 밤잠을 자꾸 깨서 힘들다고 토로하면 “너는 엄마 등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하시는 것이다. 기억이 남아있으니 부인할 수도 없다. 어린 시절 고생시킨 것 이렇게 되받나보다.
엄마가 사람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런 일은 입 꾹 닫고 자식들에게 말 안 하는 엄마가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자식과 대화할 시간이 생기니 툭 하고 꺼내놓은 것이다. 늘 한결같고 인격적으로 존경스러운 엄마가 자신이 힘든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내뱉는 모습을 보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자아낸다. 자식들 걱정할까봐 말하지 않고 혼자 속앓이한 전형적인 엄마스러움이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한다.
육아휴직이 선사한 부모님과의 시간은 부모님을 부모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보게 한다. 내게 베푼 당연한 헌신 뒤에 가려진 한 개인으로서의 고민과 연약함, 자신만의 독특한 성향과 습관까지. 당연하게 생각했던, 잘 알고 있다고 안일하게 여겼던 부모님을 발견한다.
시간을 생각한다. 나와 부모님이 함께 할 시간, 내 아이들과 내 부모님이 함께 할 시간. 내 아이들이 내 부모님의 사랑을 받게 할 시간.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울 정도로 아깝고 귀하다. 두번째 육아휴직은 그 시간들로 채우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