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카시라 공원

by 마음은런더너
© 2025. 마음은런더너.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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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조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에서 와타나베가 소설 말미에 거주한 지역. 일본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동네 1위에 꼽힌다는 동네. 집값 비싼 부촌이라지만 강남의 위세 좋은 아파트나 평창동 회장님 저택 같은 위압감이 없는 곳. 그보다는 오히려 잔잔함과 맑음이 키치조지를 설명하기에 더 적절한 단어일 것 같다.

내게 일본은 가깝지만 먼 나라였다. 역사와 문화를 분리해서 보는 융통성이 없어서였다.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 가느니 그 돈 모아 유럽을 가지, 라는 생각도 있었다. 이 답답한 생각을 구제해준 건 아내다. 아내는 내 답답한 생각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일본어 전공일 뿐이었다. 내 안의 흥선대원군은 설 자리를 잃고 문호 대 개방. 신혼여행 이후의 첫 해외여행지도 당연히 일본. 우리와 뭐가 다를까 싶었던 일본은 정갈하고 깔끔했다. 지역별 관광 특색도 잘 살려서 여러 지역을 돌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둘이 아닌 셋이 된 후 일본의 매력은 더욱 돋보였다. 짧은 비행시간, 우리와 유사한 음식문화, 거기에 감사한 환율까지. 그래서 첫 아이가 두돌이 되기 전 도쿄행 티켓을 끊었다. 아이와의 첫번째 일본여행에서 얻은 귀한 경험을 타산지석 삼아 여행 내내 한 숙소, 한 동네에서 머물렀고, 복잡하고 방 좁은 도심에서 약간 벗어난 곳을 찾았는데 그게 키치조지였다.

낮잠 까다로운 아이가 감사하게도 유모차에서 잘 자주어 예상했던 것보다 동네를 더 구석구석 돌아볼 수 있었다.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이노카시라 공원. 뉴욕에는 센트럴파크, 런던에는 하이드파크, 도쿄에는 요요기 공원이 있다. 그리고 키치조지에는 이노카시라 공원이 있다. 요요기는 도쿄의 것이고 이노카시라는 키치조지의 것이다. 키치조지에 사는 사람들은 공원을 찾기 위해 도쿄 도심의 요요기까지 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오히려 도심 거주자들이 여유를 찾기 위해 이노카시라를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노카시라 공원은 아늑하고 평온했다.

붐비지 않아 아이도 유모차에서 내려 마음 놓고 걷게 할 수 있었다. 세 가족이 모두 안심하고 두 발로 여행할 수 있었던 곳. 적당한 규모의 호수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고, 정렬된 오리배들은 주말이 되면 공원이 유원지로서의 역할을 착실히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실제로 키치조지와 관련된 책의 표지를 오리배가 장식하고 있을 정도로 상징적인 것이라 한다. 오래돼 보이지만 잘 관리되었을 법한 동물원이 있어서 아이들이 더 큰 후에도 여전히 좋은 여행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원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니 주거지역 치고는 공원부지가 꽤 큰 것이었다. 나무들도 수령에 맞게 키가 커서 여름에 시민들에게 충분한 그늘을 선사할 수 있겠다 싶었다.

도시에는 생각이 복잡한 사람들이 많다. 잿빛 시멘트와 차가운 유리 가득한 도시에서는 쉼을 얻을 수 없고, 그래서 도시에 울창한 나무를 가진 공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머리를 식히고 마음을 가라앉힐 수 있는 곳. 청량한 초록 잎과 흙길, 불규칙적으로 뻗은 가지들이 허락하는 일시정지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수도권의 공원들은 대부분 나무의 키가 작고 부지가 좁다. 심기운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작고 초라한 나무들이 자리잡지 못하고 비실대다 죽어가는 것을 보아온 수도권 주민으로서 해외 잘 관리된 공원의 키 큰 나무들은 그저 부러울 뿐이다. 건물의 높이는 낮고 나무의 키는 높아야 도시에 여유가 있을텐데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주거환경을 찾기 쉽지 않다. 전쟁과 식민의 역사가 그 차이의 이유였을 수 있겠지만, 이제는 수도권 곳곳에 보다 공원다운, 본격적인 공원이 자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3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어서 이노카시라는 다시 가지 못 했다. 아쉽지만 다음을 위해 남겨둔다는 공허한 위로를 스스로에게 해본다. 다음에는 공원 안에서 달려보려고 한다. 달릴수록 힘이 드는게 아니라 충전이 될 것만 같은 달리기 코스다. 아이들에게 동물원도 보여주고, 함께 오리배도 타고, 아이들의 낮잠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좀 더 여유있게 돌아보다 오고 싶다. 아이들이 큰다. 지금은 하루하루 살아내기 정신 없지만, 아이들은 그런 정신없는 하루하루 속에 커가고 있다. 아이들이 큰다는 것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이겠다. 다음에도 같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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