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by 마음은런더너

구입할 때부터 새것이 아닌 중고였다. 사진 감각이 좋은 것도 아니고, 카메라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닌 내 수준에는 중고에 렌즈 교체도 필요없는 똑딱이가 딱이었다. 고가 브랜드지만 저가 라인으로 출시된데다 수입차 판매 당시 사은품으로 지급되기도 해서 중고제품이 많았던 카메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오’ 할테지만 사실은 그리 대단치 않은, 겉멋으로 딱 적당한 모델.

여행 때마다 카메라를 챙겨 갔고. 사진도 찍다보면 느는지 어디 보여줄 사진 몇장은 건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배움에는 여전히 게을러서 보정의 세계에는 아직도 입문할 생각이 없다. 그저 예쁜 것을 예쁘게 찍으려고 노력할 뿐이지만 안 예쁜 것도 예쁘게 찍고 예쁜 건 더 예쁘게 찍는 눈 좋고 감 좋은 사람들 앞에선 명함도 못 내민다.

그럼에도 누가 묻는다면, 사진을 취미라 말해왔다. 취미니까요, 특기를 물으신게 아니니까요.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이 비례하란 법은 없으니까요. 라는 생각이었다. 열심히 하지 않는 적당한 취미를 예찬한다. 입시전쟁, 취업전쟁, 내집마련 등등으로 피말리는 대한민국에서 취미까지 열심히 하라고 한다면 그건 너무하다. 취미는 적당히, 내가 원하는 만큼 즐길 수 있는 영역이어야 한다. 비록 육아로 인해 카메라는 고이 모셔두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 취미 1, 2위를 사진과 달리기가 늘 다퉈왔다.

사진의 가장 큰 매력은 기억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한다. 사진 한 장으로 그날 그곳의 공기와 온습도, 기분까지 불러올 수 있다. 파리도 런던도 도쿄도 언제든 머릿속에 재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은중과 상연에서 상연의 오빠가 은중에게 셔터스피드를 설명하며 셔터스피드가 설정된 만큼의 시간을 사진에 담아둘 수 있다고 했는데 사진에 대한 그만한 설명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다들 여행지에서 카메라를 들기 바쁜 것 아닐까? 지금의 시간을 사진에 담아두었다가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 메말라갈 즈음 하나 둘 꺼내보려고 말이다.

그런데, 카메라가 고장 났다. 서른 이후로는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 카메라를 산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8년 가까이 됐다. 중고제품이었으니 이전 주인 손에 있었던 기간까지 적어도 10년. 고장나는게 당연하려나. 센터에 가보니 단종된 제품이라 수리가 어려울 수도 있고, 가능하다고 해도 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란다. 겉멋에 취해 비싼 브랜드 사더니 꼴 좋다. 적당한 취미에 종언을 고하게 될 위기다. 이참에 새거? 하기에는 둘째가 아직 분유를 먹고 있다. 이혼 전 조정기간도 아니고 20일 후에 수리 가능여부 연락을 주겠단다. 너는 나의 몇 안 되는 취미다. 살아돌아오길. 애지중지 잘 해줄께.


작가의 이전글이노카시라 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