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때 교수님이 시를 가르치면서 학생들에게 물으셨다. “여러분은 계절로 치면 언제일 것 같나요?” 대부분 20대 초반이었던 학생들은 자신있게 봄이라고 대답했다. 교수님은 이렇게 답하셨다. “아니요, 봄은 10대이고, 여러분은 한여름을 지나고 있습니다.“
젊음에 취해 아직 남은 시간이 많다고 생각한 우리의 자만심에 정곡을 찌르는 말씀. 꽃 피우고 생기 넘치는 봄은 이미 갔고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하지만 곧 가을에 자리를 내주게 될 여름의 한가운데를 살았던 때였다.
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여름으로라도 돌아갈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것이 몇 가지 있다.
먼저, 오래 한 연애를 짧게 끝냈을 것이다. 부모님이 반대하셨던 한 사람을 10년 가까이 만났는데, 결국 어른들 눈이 맞고 사람은 많이 만나볼수록 안목이 생긴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의 교제를 엄마는 반대했다. 나와 갈등하면서 마음고생한 엄마의 10년, 그러니까 정확히는 나의 10년이 아니라 엄마의 10년을 그렇게 보내게 한 것을 후회한다.
경제와 투자에 더 삘리 관심을 가졌어야 했다. 투자는 복리라는 진리를 너무 늦게 깨달았다. 투자와 재테크는 어른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젊은 날의 어리석은 나를 반성한다. 시대 탓을 좀 하자면, 흔히들 기준 삼는 서울 아파트를 우리 세대부터 꿈꿀 수 없게 됐다. 정확히 말하면 임용 되고 나서는 무리하면 살 수는 있었지만 몇년 지나지 않아서 인생을 2, 3회 살아야 살 수 있을까 말까 한 것이 됐다. 서울 아파트를 못 사서 아쉽다는게 아니라 경제 공부를 나중으로 미룬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투자는 복리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경우 특히 더 그렇다.
유럽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고 싶다. 미국의 대학에서 보낸 1년도 값진 경험이었지만, 일하면서 배우는 언어와 문화를 배우지 못한 것이 아쉽다. 취업 1년 더 빠르게 하는게 뭐가 대단한 일이라고 자리에 앉아서 공부만 해댔는지. 앉아서 보낸 20대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든다. 지금 그렇게 짝사랑하는 유럽에서 돈을 벌면서 체류할 기회가 있었다면 지금 내 인생이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 젊음과 패기가 비례하지 않았다.
달리기를 좀 더 빨리 시작하면 좋았을 것 같다. 마치 시간이 무한한 것처럼 누워서 티비 보던 때가 있었다. 그 시간에 나가서 뛰었더라면 육아 전에 마라톤 완주했을텐데, 건강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 무엇보다, 달리기가 주는 기쁨을 생각해보면 이 좋은 걸 너무 늦게 시작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가능성 넘치는 봄은 이미 기억도 안 나고 나뭇잎이 진초록으로 에너지 뿜던 뜨거운 여름도 이제 다 지난 계절이다. 후회만 나열하면 마치 지난 시간이 행복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봄도 여름도 좋지 않은 게 아니었다. 우당탕 거리는 봄의 성장기를 사랑으로 품어준 가족이 있었고, 여름에는 연애 경험을 통해 나를 잃지 않으면서 상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가을에 접어든 지금, 늦게나마 경제공부를 시작해서 아이들의 미래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고, 훗날 아내와 함께 할 유럽여행을 꿈꾸며 책 읽고 지도도 열어본다. 후회 없는 인생이 없겠지만, 후회만 하다 죽는 불쌍한 인생을 내 아이들에게 보여줄 수 없다. 후회보다 감사가 더 많은 삶을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