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시간이라는 제도가 가정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늘려준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사자의 삶이 쾌적해졌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육아시간 이전에는 가정에서만 마음이 급했다면 이제는 직장에서도 늘 쫓기는 마음이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하는 만큼 업무시간이 줄어드는 건 당연하니까. 아, 당연히 육아시간 만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아무튼, 쫓기는 삶은 무엇보다 시야가 좁아지게 해서 이전에는 보이던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같은 공간에서 늘 마주치는 사람들의 패턴, 이를테면 누구는 언제 커피를 마시고 누구는 언제 영양제를 먹는지와 같은 것들. 가까운 이가 수업 중 난처한 일을 당했다는 것도 일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기도 했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활동지를 확인하는데 학생들 몇몇이 자기들 앞에 선 나를 흘끗 본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만 활동지 확인을 멈출 만큼은 아니다. 이번주까지 마쳐야 하니까.
얼마 후 다른 학생들이 또 나를 보고는 지나간다.
반복은 강조. 얼굴에 뭐가 묻었나? 아니다. 평소와 옷이 달랐다. 교복처럼 입던 늘 같은 디자인에 색만 달랐던 반팔을 벗고 간절기에 맞는 셔츠를 입었던게 그 이유였나 싶다.
관심이었구나. 마음이 바빠 모르고 넘어갈 뻔했다.
살면서 내가 놓친 나를 향한 관심과 애정, 배려는 얼마나 될까 하는 상상에 빠진다.
고래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원더풀라이프는 망자들의 죽음 이후를 다룬다. 망자들은 사후세계로 넘어가기 전 자기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을 선택해 영화로 볼 수 있게 해주는 공간에 머물게 되는데, 참 따뜻한 발상이다. 나에게 일어난 행복한 일들이 책자나 LP처럼 보관되어있다면, 그것들을 손가락으로 넘겨가며 기억들을 되새길 것이다.
그러다가 “어? 이건 뭐지?” 하는 순간이 있다면? 내가 미처 눈치채지 못 한 고마운 마음들을 그 때 알게 된다면 어떨까? 경주마 같았던 그 때에도 날 향한 따뜻한 시선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 행복을 뒤늦게 정산받고 지난 삶에 대한 감사를 더하게 될까?
내 삶이 사실은 좀 더 나은 삶이었다는 것을 지나고 나서야 정산받는 것은 후회스럽지 않을까? 주변을 돌아볼 여유를, 날 향한 관심과 배려를 늦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는 숨구멍을 마련해두고 살아야겠다. 정산도 좋지만, 가장 좋은 건 결제시 할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