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다녀온 여행지 중에서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다.
직접 가보기도 전부터 홍콩은 묘하게 선망의 도시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널리 쓰이는 은어로 '홍콩 간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니.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말하자면 비록 나는 그 세계에 영원히 발을 딛지 못하게 되었지만, 내 주변에는 금융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니, 지금도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일 선망했던 것은 미국이나 영국에서 일하는 것이었고, 금융위기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그 꿈이 이루어지기 힘들 것처럼 보이기 시작했을 때 두 번째의 선망의 도시는 홍콩이나 싱가폴이었다.
내가 본 대부분의 백인들은 물론 뉴욕이나 런던에서 일하는 것을 꿈꿨지만 가끔씩 미지의 나라인 아시아로 가고 싶어하는 친구들은 모조리 다 홍콩이나 싱가폴을 선택했다. 당연한 일이다. 도쿄, 상하이에 비해 언어적 장벽이 덜하니까.
한국 유학생 중 영주권 등의 운이 없어서 한국에서 일하게 된 사람들도 희한하게 홍콩을 꿈꿨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일하는 것은 어려워 보이지만, 지리나 문화 등의 여러 요건을 고려해 보았을 때 홍콩은 선진국에서 일하는 느낌도 나고, 고향과 거리도 가까워서 크게 마음을 먹지 않아도 되고, 인종차별 등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느끼는 것 같다.
그리고 가끔씩 한국에서 일하다가 홍콩에 자리가 나서 이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는 묘한 부러움을 느꼈고 내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남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이야기를 하면, 꼭 'XXX 홍콩에서 일한다더라, 부럽다' 라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지만 직접 발을 딛고 내 눈으로 본 홍콩은 약간은 그 기대감에서 벗어났다.
일단 내가 막연히 상상했던 것보다는 도시 개발이 덜 되었다. 아니 덜 되었다기 보다는, 이미 너무 오래되어서 outdated된 느낌이었다.
특히 구룡반도쪽에는 높은 고층 빌딩중에 콘크리트가 아닌 것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상하이에서 입이 떡 벌어지는 고층빌딩들을 보았을 때보다는 묘한 실망감이 느껴졌다.
물론 두바이몰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큰 쇼핑센터나, 홍콩 섬의 고층빌딩들도 있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런 새로운 건물들보다는 오래된 건물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좁고 더러운 골목들이 강하게 뇌리에 남았다. 내 동행인은 그것을 보고 마치 '종로 3~5가 같다'라고 표현했다.
명성에 비해 실망감을 안게된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한국식 재개발 문화에 익숙해진 내 눈이 30, 40년은 족히 지나보이는 낡은 건물들에 잘 적응을 못한 탓이 큰 것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것이 중국 반환 이후에 본토의 묘한 홀대(?) 탓이 아닌가 싶었다. 상하이가 최근 몇년간 이룩한 발전을 생각하면 홍콩의 시간은 97년에 그대로 멈춘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물론 이미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인구밀도가 높기 때문에 개발이 쉽지 않았으리란 이유도 있었을 거고.
그리고 홍콩이 특히 우리나라에서 그 명성을 얻게 되었던 것은, 아무래도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에, 가까운 일본보다는 멀리 큰 맘을 먹고 가야 갈 수 있는 나라였기 때문 아니었을까 하고 혼자서 짐작하는 중이다. 지금도 홍콩의 밤을 화려하게 물들이는 네온 사인들은 요즘의 눈으로 보면 촌스러워 보이지만, 그 시절의 눈으로 보았을 땐 얼마나 신세계였을까. 그리고 한국에도 많이 소개가 되고 사랑받았던 홍콩영화들. 밤에는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물들었다가도 밤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채색으로 돌아오는 그 도시.
떠나기 전에는 미래, 선망의 도시라고 생각했던 곳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향수를 만나버렸다. 그리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 이미지가 어설프게 찍은 사진 한장보다도 더 생생하게 머리속에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