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 볼레로 Three Bolero

by any

나는 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추는 춤에도 큰 관심이 없었고 내가 직접 추는 것은 극혐한다. 그런 내가 이 쓰리 볼레로 공연을 보게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참 아이러니하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 호기심이 갔던 것은 무용보다는 음악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초등학생 시절에 처음 들었던 볼레로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자극은 최근 예술의전당 입구에 크게 붙어 있었던 홍보 포스터. 나같이 무관심한 사람마저 매혹할 정도니 정말 잘 뽑은 포스터같다. 사실 오히려 ‘무용’이라는 점 때문에 관람이 꺼려졌던건 비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내가 태어나서 처음 본 무용 공연 쓰리 볼레로는 정말로 충격적일정도로 즐거웠고 깊은 인상을 주었다. 이제 사람들이 왜 발레도 아닌 현대 무용을 즐기는지 알 것 같달까?


세 명의 안무가가 안무를 짜고 기획한 세 볼레로는 각각의 개성이 있었지만, 또 공연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다보면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도 있는 것 같다. 우선 의상도 순서대로 흰색-회색-검은색으로 이어지며, 현대적이고 감각적으로 해석한 김보람의 볼레로로 시작하여, 기존의 것을 완전히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김설진의 볼레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고전적인 발레의 동작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그럼에도 일사불란한 군무에 압도당할수밖에 없는 김용걸의 볼레로로 이어진다. 특히 김용걸의 무대는 처음 시작할 때 무대 막 틈으로 보이는 다리나 예기치 못하게 갑자기 객석 바로 앞에서 튀어나온 손으로 인해,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다른 생각도 하지 못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집중할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또 하나 재미있던 점은 무용수들의 스타일링인데, 10명 남짓한 소규모 그룹으로 짜여 있던 김보람이나 마찬가지로 적은 인원의 김설진의 극은 각각의 무용수가 모두 같은 하얀, 혹은 회색의 옷을 입고 있었지만 개인의 머리스타일이나 선글라스 모양들이 모두 달라 각각의 캐릭터성을 강조한 반면, 김용걸의 극은 훨씬 많은 대인원이 모두 머리스타일과 선글라스를 통일시켜 철저하게 개인은 죽인 모두의 극으로 이끌어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김보람은 자신이 때때로 리드하면서도 소규모로 진행되는 극에 자신 또한 일부가 되어 진행했다. 무용의 운동량을 보면 제일 힘든 공연이 아니었나 싶다. 정말 안무가 선생님을 붙잡고 왜그랬냐며 따지고 싶었을 것 같은... 특히 마지막이 되면 고통으로 일그러진 무용수들의 얼굴이나, 격하게 몸을 움직일 때 조명에 비치는 땀방울을 보며 나까지 조마조마해질 정도였다. 그만큼 끝났을 때 더 큰 환희가 느껴지긴 했지만.

그에 비해 김설진인 자신은 철저히 무대 뒤에 숨어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 극을 진행했다. 가장 안무가의 존재감이 두드러졌던 것은 역시 김용걸이었다. 자신이 솔리스트가 되어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 가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흐트러짐 없이 절도있는 동작에 정말 그 운동량이 놀라울 정도였다.


보면서 사람의 몸이 저렇게 아름답게 움직일 수 있구나 하고 놀랐는데, 특히 공연 후반부에 무용수들이 갑갑한 자켓을 벗어 던지고 맨몸을 드러냈을 때는 육체의 아름다움에 더 놀라웠다. 저렇게 힘있으면서도 유연하게 움직이려면 어떤 몸이여야 할까 내심 궁금했다. 드러난 맨몸은 모두 하나같이 정말 군살은 일점 없이 마른 근육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나같은 문외한도 보면서 끊임없이 경탄하고 거기에 더해, 대사 하나 없이 사람의 몸이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즐겁고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무대. 이번 관람이 준 감동은 굉장히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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