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중간한 계절에 여행을 왔다. 여행을 예약할라치면 매번 휴가를 못 내겠다고 드러 눕거나, 예약을 취소해야 한다고 하거나, 심지어 비행기까지 놓친(!) 전적이 있는 룸메이트를 배려한지 어언 3년째. 올해는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일본에서 아직 가보지 못한 지역을 선제적으로 골랐고, 근로자의 날로 연차를 하루 아낄 수 있는 시즌을 골랐다. 마침 그 시기가 일본 최대의 연휴 골든위크+일왕 연호가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인 것은 모른채...
어쩐지, 비행기표는 쌌는데 호텔이 죄다 예약이 찼거나 or 비싸다거나 했어.
나의 20대에는 꽤나 일본을 자주 갔었다. 도쿄부터 오키나와까지, 한국인들이 자주 가는 여행지는 한번쯤 가본 듯 하다. 유일하게 못 가본 곳이 홋카이도였다. 그당시에는 저가항공사가 지금만큼 활성화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홋카이도를 갈거면 돈을 좀 보태서 유럽을 다녀와도 된다(?)는 말을 공항에서 주워듣고 지레 겁을 먹었던 탓도 있다.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지 이제 7년차. 여행을 가고 싶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이제는 몸과 시간이 모자란 부분은 돈으로 때우는 것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큰 맘 먹고 일단 비행기표를 끊어 버렸는데, 생각보다 비싸진 않았다. 다만 자국인 관광객들로 인하여 숙소 품귀현상이 있었을 뿐...
도착한 날의 풍경... 비싼 돈 내고 날씨 좋은 한국에서 이런 곳까지 온 건가 했네.
홋카이도에서 4박 5일을 보내긴 했으나, 강아지를 맡기고 찾아야 하는 문제도 있고 해서 온전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딱 4일 정도인 듯 하다. 이 중 첫날 밤은 오타루에서 머물고, 그 다음부터는 삿포로에서 지냈다.
신치토세 공항에서 오타루까지 가는 길은 기차를 이용했다. 생각보다는 거리가 꽤 있었는데, 오타루 근접해서 달리는 바닷길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중간중간에 보이는 다 쓰러져 가는 듯한 낡은 집들이라던가. (사람이 사는 집은 아니고 창고 비슷한 보트하우스가 아닐까 싶었다)
오타루의 운하는 생각보다는 작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오타루는 운하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작은 마을이었다. 대부분의 관광 명소가 바다 근처에 몰려 있는 듯 했는데, 걸어서 한시간 정도면 다 볼 수 있는 듯 했다.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라면 오르골당이 아니였을까? 대략 5,400엔 이상 구입하면 택스 리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예쁘고 아기자기한 일본 감성의 정수가 모여 있는 곳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인상 깊은 점이라면 정말 다이쇼 시대에 지어진 듯한 건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는 점. 아마 2차 세계대전의 폭격에서 그나마 무탈한 지역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부럽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을 수가 없는 역사의 흔적들이니까.
그밖에 내가 오타루에 대해 막연하게 알고 있는 점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라는 점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거의 찾아보지 못했다. 여 이츠키의 집은 화재로 인해 거의 소실되었다고 보았는데, 사실 내가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게 본 장면 중 하나는 히로코와 이츠키(여)가 스쳐 지나가던 길 한복판이었다. 언젠가는 한번 실제로 가보고 싶다.
삿포로의 첫 인상은 정말 도로가 넓고 쾌적하게 뻗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환상으로 삿포로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방송탑이 실제로 보니 당황스럽게 작다는 점.
호텔을 고를 때 시내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방이 넓은 곳을 골랐는데, 잘한 선택이었다. 생각보다 도시가 작기에 걸어다녀도 왠간한 곳은 거의 다 볼 수 있었고, 날씨가 좋아 걷는 것이 힘들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웠다. 어릴 때에는 여행을 다니면 최대한 많은 것을 봐야한다는 강박에 지도에 거의 코를 묻다시피 하고 걸어다녔던 적이 많은 것 같은데, 이번에는 대충 방향정도만 감을 잡으며 열심히 주위를 둘러보고 다녔다.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스쳐 지나갈 때 뿐만이라도 열심히 바라보고 그들의 삶을 한순간이나마 훔쳐 보고 싶어서. 그 감각이 최고를 찍었던 곳이 버스 투어를 하며 잠깐 들렸던 비에이 마을이었던 것 같다.
우리나라의 면 정도의 크기가 아닐까 했는데 생각보다 꽤 인구가 많았던 비에이. 큰 길을 따라 늘어서있던 세모 지붕의 집들이 인상적이었다. 점심을 먹고 할 것이 없어서, 놀이터에서 그네를 타며 지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마 여기서 내가 잠깐 스쳐 지나간 아이들은, 두 번 다시 만날 일이 없겠지만 이 작고 한적한 마을에서 또 각자의 삶을 펼쳐 나가겠지. 때로는 평탄하게 또 때로는 격렬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