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보다 어렸을 때에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행을 아예 안 다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에 비해 나는 확실히 엉덩이가 무거운 아이였다.
지금도 유럽에 그렇게나 오랜 시간 살다 왔는데, 어디도 가보지 않았고, 어디도 안가봤고, 어디도 안가봤다고 하면 사람들은 놀랜다. 그런 환경에 있으면서 어떻게 아무데도 가지 않았을 수가 있냐고.
여행을 가지 않았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여행을 계획하는 단계의 번거로움, 나는 여기에 살고 있기 때문에 특히 유럽은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안일한 생각, 그리고 부모에게 여행경비를 빚지고 싶지 않은 마음 등.
스스로 돈을 벌고 난 다음에는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에 결국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크지 않았나 싶긴 하다. 아, 그리고 하나 더 있었다. 자신의 취미는 여행을 다니는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며, 듣도 보도 못한 희귀한 여행지 - 특히 한국 사람들이 자주 가지 않는 - 를 다니며 사진으로 남기던 주변 사람들. 그들이 목적이 정말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나는 여기도 가보고 저기도 가본 (요즘 말로 하면) Hip한 사람이다 라고 과시하기 위한 목적인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괜시리 여행에 대한 회의감이 더욱 들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조금 바뀌기 시작한 것은, 약소하게나마 경제활동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순수하게 내가 번 돈으로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오면서부터 였던것 같다. 잘 모르는 곳을 헤매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다시 화해하기도 하고, 엄청나게 걷고 또 걷기도 하고. 좋은 사람들과 색다른 곳에서 함께하는 시간이 이토록 즐거운 것이라는 걸 그때 처음 깨달았던 듯 하다. 그렇게 내게 여행의 즐거움을 알려줬던 사람들과 이제는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점이 참 아쉽다.
그 이후에 여행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계기는 뭐였을까? 아마도 처음으로 동남아를 갔던 때였던 것 같다. 특별히 쉬려는 목적으로 갔던 것은 아니였다. 오히려 지극히 진지한 이유로 동남아를 향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좋은 리조트에서 머물면서, 여유를 선물받았다. 그 전까지는 동남아에 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여행이란 마땅히 선진국에 가서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전시품을 보고, 놀라운 건축물을 보고 오는 것인 줄로만 알았었다. 세상과의 소통을 끊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이토록 소중한 것인 줄은 처음 알았었다. 그리고 럭셔리한 경험을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즐거움은 덤이었고.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여행의 즐거움을 진정으로 체험했던 건 신혼여행을 다녀오면서였다.
두바이와 몰디브를 다녀왔는데, 아무래도 두 번 다시 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고 생각하니 그곳에서의 경험 하나하나가 특별히 다가왔던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 반평생 함께할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떠나는 첫 여행이라 더 각별했던 것도 있고.
사람들은 과연 여행을 왜 가는 것일까? 아마 개개인이 다른 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말재주가 별로 없는 나는, 새로운 곳을 다녀오면 그만큼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주제가 많아진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어디든지 다녀오고 나면 새로운 것을 보게 되고, 그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나보다 연상이시고 인생 경험이 풍부하신 분이 이렇게 말해주신 적이 있었다. 젊었을 적의 여행은 무조건 선진국에 가서 그곳의 문화와 역사를 배워 와야 하고, 동남아같은 휴양지는 나이가 많아졌을 때에나 가는 것이라고. 그 말도 상당부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한계를 짓고 싶진 않다.
젊었을 때에 동남아나 휴양지에 다녀오는 것이 뭐 어떻단 말인가? 다녀오고 나면 어쨌든 그에 관해 할 말이 생기고, 가 있는 동안에는 일상 속 머리를 괴롭히던 갖은 문제들과 잠시 작별을 고하고 오롯이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데. 나이가 많든 적든 그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