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초원과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 게르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유목민이 존재하는 곳. 몽골로 떠나는 여정은 어쩌면 여행의 본질에 한걸음 다가서는 일인지도 모른다.
울란바토르(Ulaanbaatar)는 개발 열기에 휩싸인 1970~1980년대 서울과 여러모로 닮았다. 우선 자연조건부터 기본적으로 비슷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도시 가운데를 툴 강(Tuul River)이 동서로 가로지른다. 강의 이남 지역은 고급 아파트와 쇼핑센터를 세우기 위해 크레인 타워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도시 한복판은 수흐바타르 광장(Sukhbaatar Square)이 차지하고 있다. 한낯의 광장에는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관광객 무리와 자전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현지인으로 활기가 넘친다. 유려한 곡선 형태로 세운 블루 스카이 타워(Blue Sky Tower) 빌딩, 구 소련의 영향을 받은 분홍빛 외벽의 문화 궁전(Cultural Palace) 등 이곳을 둘러싼 시대별 건축물을 통해 몽골이 통과한 굴곡진 현대사를 짐작할 수 있다.
서울의 남산쯤에 해당하는 자이산 기념탑(Zaisan Memorial)에 오르자 도시 전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울란바토르는 외곽의 게르촌에서 떼는 석탄 난로 탓에 매연으로 악명이 높지만, 대기가 연중 가장 깨끗해지는 여름에는 비교적 탁 트인 전망을 자랑한다. 자이산 기념탑은 몽골이 20세기 초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구소련의 공산주의에 동참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두 나라의 군사 협력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1990년대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며 탑의 의미는 퇴색했지만, 거대한 원형 콘크리트 안쪽의 빛바랜 벽화는 아직 공산주의 시절의 과거를 알려준다.
몽골 인의 강인한 기질을 엿보고 싶다면 매년 7월 중순에 열리는 나담(Naadam) 기간에 맞춰 방문하자. 울란바토르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보흐(bokh, 몽골 전통 씨름), 승마, 궁술 대회를 벌이고, 온 가족이 모여 전통 음식을 나눠 먹는 몽골에서 가장 떠들썩한 축제다. 마침 울란바토르 동부의 국립 레슬링 경기장(National Wrestling Palace)에서는 나담 축제의 보흐 예선전을 진행하는 중이다. 몽골 전통 텐트 게르(ger)를 100배 정도 확장한 듯한 웅장한 경기장 안에는 열혈 팬과 장대한 골격의 선수들이 경기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60여 명의 선수가 경기장에 천천히 원을 그리며 도열하자 승려가 불경을 10분 남짓 낭독하며 경기의 시작을 알린다. 이어 8쌍의 선수가 모자를 벗어 심판에게 건넨 뒤, 일제히 겨루기에 나선다. 보흐는 우리나라의 전통 씨름과 자유형 레슬링을 혼합한 룰이 특징. 체급이나 시간 제한은 없고, 다리를 걸거나 상체를 잡아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것으로 승부를 가린다. 빡빡 머리카락을 민 헤어스타일과 우락부락한 근육질 몸매, 엇비슷한 색상의 의상을 차려입은 선수 수십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경기를 벌이는 탓에 경기를 한눈에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자칫 한눈을 팔았다간 경기장 바닥에 내팽개쳐진 선수와 양팔을 크게 벌린 승리자의 세러머니만 구경하고 경기장을 빠져나와야 할지도 모른다.
몽골의 인구는 300만 명. 그중 절반 이상이 울란바토르와 인근 지역에 거주한다. 나머지 절반은 한반도의 7배나 되는 광활한 영토에 띄엄띄엄 자리한 숨(sum, 군 단위의 행정구역)에 정착하거나 초원 속에서 유목 생활을 한다. 다시 말해 울란바토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몽골의 대자연에 다가설 수 있다는 얘기다.
혜초여행의 트레킹 여행 팀에 동행해 울란바토르 외곽을 돌아보기로 한다. 차를 타고 툴 강을 건너 도시의 남서쪽으로 향하자 그야말로 탁 트인 진녹색 초원과 푸른 하늘이 사방을 가득 메운 광경이 펼쳐진다. 360도로 풍경을 담는 촬영 팀이 이곳에 온다면 조금 진이 빠질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시선을 돌려봐도 온통 같은 풍경으로만 보일 테니까. 그 대신 초원에서 풀을 뜯는 말과 양 떼 그리고 드문드문 하얀 게르가 놓인 풍경은 묘한 설렘을 불러일으킨다.
“몽골에서는 말과 양, 염소, 소, 낙타를 5대 가축으로 여겨요. 그만큼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동물이죠. 각 가축을 빗대어 사람의 성격을 나누기도 하는데, 저는 염솟과예요. 성질이 좀 드센 편이거든요.” 트레킹을 안내하는 현지 가이드 간치메그(Ganchimeg)가 차창 밖 풍경을 가리키며 말한다. 여행자 사이에서 ‘치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녀는 서울에서 2년간 유학 생활을 한 덕분에 한국말을 능숙하게 구사하고, 쾌활하게 농담을 건넨다.
울란바토르 남쪽을 감싸고 있는 보그드한 산 중점 보호구역(Bogdkhan Uul Strictly Protect Area)은 몽골에서 신성시 여기는 지역 중 하나. 과거 이곳은 몽골의 국교인 라마 불교 수도승이 거주하는 성스러운 장소였는데, 근래에는 울란바토르 근교 최고의 하이킹 코스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중점보호구역 남쪽에 있는 만드시르 사원(Mandshir Khiid)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체체군산(Tsetsee Gun Uul)까지 이어진 트레일의 출발지 역할을 한다. 과거 350명의 수도승이 거주하던 이 대규모 사원은 1937년 공산당 지배 세력의 탄압 때문에 대부분이 파괴됐다. 박물관으로 사용하는 본당 건물 외 나머지사찰은 짙푸른 시베리아 낙엽송이 우거진 산등성이 아래에 옛터만 남아 있다.
만드시르 사원은 대략 해발 1,700미터 부근에 위치한다. 체체군 산 정상의 높이가 2,256미터니 500미터 남짓 오르는 하이킹 코스인 셈이다. 정상까지 2시간 반 정도면 충분하고 산악로의 경사도 완만하다. 1시간쯤 걸리는 오르막이 끝난 뒤에는 완전히 평탄한 고원지대가 이어져 누구나 부담 없이 하이킹을 즐길 수 있다. 이번 트레킹 참가자가 초등학교 4학년 아이부터 일흔 살에 가까운 할머니까지 남녀노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한다. 그렇다고 잘 닦인 트레일을 상상하면 곤란하다. 안내 표식이랄 만한 것은 딱히 없고, 간혹 가축이 지나가면서 남긴 배설물이 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식이다. 자칫 앞뒤 일행과 간격이 벌어졌다간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산악로를 따라 초롱꽃, 양귀비 등 희귀한 야생초를 구경하고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기울이며 걸음을 옮기는 사이, 어느덧 사방이 탁 트인 고원지대에 다다른다. 바로 정면에는 체체군 산의 정상을 알려주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놓여 있다. 정상에 오르자 몽골 인이 자연을 숭배하는 샤머니즘 의식에서 유래한 돌무더미 어워(ovoo)가 보인다. 푸른 천으로 휘감겨 있는 어워는 몽골의 국교인 라마 불교 의식을 더해 지역에서 신성시 여기는 장소마다 높다랗게 쌓는다. 몽골 인은 먼 길을 떠날 때 바로 이 어워 주변을 3바퀴 돌아 복을 빌기도 한다.
보그드한 산 중점보호구역 북쪽에 있는 후렐 토고트(Khurel Togoot) 관측소로 향하는 하산 코스는 좀 더 다이내믹하다. 툴 강과 이어지는 좁은 계곡을 따라 내리막길이 쉼 없이 이어지는데, 짙푸른 참나무와 소나무 군락 사이로 부드러운 바람이 땀을 식혀준다. 경사 구간이 끝나는 연녹색 산비탈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과 소에게 작별 인사를 건네며 몽골에서의 첫 산행을 마무리한다.
울란바토르에서 동쪽으로 약 50킬로미터 떨어진 고르히 테렐지 국립공원(Gorkhi-Terelj National Park)은 캠퍼를 위한 지상낙원처럼 보인다. 실제 광활한 초원과 웅장한 바위산 그리고 툴 강의 지류가 어우러진 이곳에는 100여 개에 달하는 게르 캠프가 흩어져 있다. 물론 나머지 산야는 유목민과 그들이 기르는 말과 야크, 염소, 양 등 가축 차지다. “초원에 아무렇지 않게 풀어놓은 듯 보이지만 유목민은 자신의 가축을 단번에 알아보지요.” 간치메그의 설명대로 한 유목민이 멀찍이 뒤처진 소 1마리를 발견하더니 무리 쪽으로 재빠르게 몰아낸다.
초원 어디에서든 유목민에게 반갑게 다가갈 수 있다. 길을 걷다 마주친 아이에게 “샌 배 누(sain baih nuu, 안녕)”라고 인사를 건네면 서슴없이 손을 흔들어준다. 단, 유목민의 게르를 방문할 때에는 가장 먼저 “코호이 호르(Kokhoi khor, 개를 붙잡아주세요)”라고 외쳐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유목민이 기르는 초원의 개는 성미가 사나워 낯선 방문객에게 환영 인사 대신 거칠게 돌진하는 게 다반사니까.
푸레브(Purev)는 고르히 테렐지 국립공원 일대에 머문 지 40년 넘은 유목민 가족의 가장이다. 2채의 게르와 간이 목조 가옥에서 9명의 식구와 살고 있으며, 말 150여 마리, 양 300마리와 염소를 기른다. 그를 도와 일꾼으로 일하는 오드(Od) 역시 몽골 남서부의 아르항가이(Arkhangai)에 거주하다 7년 전 이곳으로 이주해 온 유목민이다. 그녀는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소젖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젖을 짠 오후에는 요구르트, 치즈, 발효유 음료인 수테차이(suutei tsai) 등 유제품을 만들고, 저녁에 한 번 더 소젖을 짜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소젖을 짜는 일은 굉장한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새끼에게 젖을 물린 어미소의 다리를 묶은 뒤, 마사지하듯 젖을 짜야 한다. 소 10마리의 젖을 짜는 데 2시간 이상이 걸릴 정도. “어릴 적부터 젖을 짜서 힘들지는 않아요. 무척 익숙한 일이죠. 하지만 앞으로 제 아이들이 저와 같은 삶을 살지는 모르겠어요. 도시로 떠나고 싶어할 수도 있겠죠.”오드는 게르 앞에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세 아이를 가리키며 말한다.
고르히 테렐지 국립공원에서 머무는 숙소는 푸레브의 게르에서 북서쪽 방면의 산비탈에 자리한 바이갈린 누츠(Baigaliin Nuuts) 게르 캠프. 새하얀 캔버스 천과 펠트로 덮은 외부는 영락없는 전통 게르지만, 실내는 단출하게 정돈된 모습이다. 4개 침대가 가장자리를 차지한 가운데 전기 콘센트와 형광등이 구비된 것은 물론, 중앙에는 게르를 떠받치는 기둥 사이로 화로도 갖췄다. 한여름 밤에도 기온이 영하에 가깝게 떨어지는 몽골의 초원에서 화로는 게르의 가장 중요한 필수품이다.
여름의 몽골은 백야처럼 낮이 몹시 길다. 오후 9시가 되어도 해가 하늘에 걸려 있고, 10시가 지나야 어스름한 석양이 지기 시작한다. 차츰 사방이 어둑해지면 게르 지붕 바깥으로 연결된 연통에서 희뿌연 연기가 새어나오고, 남청빛으로 물든 하늘에선 곧 놀라운 쇼를 준비한다. 구름이 빠른 속도로 사라진 이후 하나둘 반짝이던 별이 하늘을 가득 채우더니, 게르 캠프의 불빛이 완전히 꺼진 한밤중에는 그야말로 별빛이 지상으로 쏟아지듯 압도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누군가는 바닥에 드러눕고, 또 다른 누군가는 술잔을 기울이며 우주와 고르히 테렐지 국립공원의 대자연이 합작한 황홀경을 숨죽인 채 바라본다.
고르히 테렐지 국립공원에서는 자연을 벗 삼아 래프팅과 하이킹, 승마 투어 등 다양한 아웃도어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우리 일행은 이튿날 아침 캠프 인근에 가파르게 솟은 옹고츠 산(Ongots Uul) 트레킹에 나선다. 산 정상이 전날 오른 체체군 산보다 높이가 200미터 정도 낮은 2,085미터지만, 초반 구간의 경사는 2배 이상 가파른 듯하다. 길 초입에서 말 1마리가 모래 더미 위를 뒹구는 장면을 목격한다. “몽골에선 말이 목욕하는 장면을 보면 행운이 온다고 하죠.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인가 보네요.” 간치메그가 빙긋 웃으며 트레킹에 나선 일행에게 힘을 북돋아준다.
산등성이를 빼곡하게 매운 반듯한 시베리아 소나무 숲 사이로 하얀 자작나무가 드문드문 보인다. 물론 이곳의 가파른 산악로에도 어김없이 가축이 배설물을 잔뜩 남겨놓았다. 그런데 몽골의 산야에서 쉽게 마주치는 가축의 배설물에선 고약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초원에서 자라는 싱싱한 풀을 뜯어먹는 덕분인지 쑥 향 비슷한 냄새가 날 뿐. 게다가 유목민에게 매우 유용한 연료기도 하다. 소와 말의 배설물을 널찍하게 펴서 말린 뒤, 이것을 화로의 땔감으로 사용하니 말이다.
산 정상에는 체체군 산의 어워와 다른 제단이 세워져 있다. 무당 격에 해당하는 버(buu)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가축의 머리를 연상시키는 장대를 두른 장식에선 좀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한다. 국립공원 서쪽 경계에 걸쳐 있는 옹고츠 산의 평탄한 정상부에선 고르히 테렐지 국립공원의 대자연을 조망하기 좋다. 가파른 산비탈 너머로 펼쳐진 초원과 점점이 하얀 점으로 보이는 게르 캠프,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는 산등성이에 흐드러진 총천연색의 야생화와 청명한 하늘이 어우러진 장면은 스위스의 알프스 못지않은 목가적인 풍경을 만들어낸다. “7월 중순 이후에는 에델바이스가 곳곳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해요. 그 즈음의 풍경 또한 굉장히 아름답죠.” 간치메그가 들판에 막 피어오른 에델바이스 1송이를 가리키며 말한다.
5시간 남짓 이어진 트레킹을 마친 뒤에는 게르 캠프에서 펼쳐진 특별한 만찬이 기다린다. 몽골의 유목민이 즐겨 먹는 허르헉(khorkhog)이다. 커다란 양철통에 토막 낸 양고기를 넣고, 그 위에 장작불에 뜨겁게 달군 돌을 얹은 다음 소금 간을 한 감자와 당근 등 채소를 올리고 3시간 이상 끓여야 하는 정성스러운 요리다. “몽골에선 보통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 허르헉을 준비하죠. 이동이 잦은 유목민에겐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최고의 보양식이니까요.” 커다란 쟁반에 양고기와 채소를 푸짐하게 내온 오드쿠(Odkhuu)의 설명이다. 두 손으로 고기를 집어 한입 크게 베어 무니 보통의 양갈비와 전혀 다른 풍미에 놀란다. 육질이 부드러운 데다, 양고기 특유의 누린내가 전혀 나지 않는다. “조리할 때 넣은 차돌이 양고기의 기름과 냄새를 동시에 제거해주죠. 이 돌을 손에 쥐면 건강에도 좋다고 해요.” 오드쿠가 뜨겁게 달궈진 돌을 번갈아 쥐는 시범을 보이며 말한다.
특별한 만찬에 술이 빠질 순 없을 터. 오랜 기간 러시아의 영향을 받은 탓에 몽골 인은 보통 허르헉과 보드카를 함께 즐긴다. 여기에 오직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아이락(airag)도 있다. 마유주로 익숙한 이 술은 말의 젖을 3,000번 이상 저어 발효시킨 몽골 유목민의 전통주. 첫 맛은 조금 시큼한데, 차츰 초원의 풀 냄새 같은 미묘한 잔향이 코끝에 감돈다. 도수가 3도 정도라 유목민은 부담없이 음료처럼 마시기도 한다고. “아이락을 마시고, 찬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난다고 해요.” 2잔째 벌컥벌컥 들이켜던 찰나 간치메그가 주의를 준다.
국립공원을 이동하던 중, 차창 밖으로 초원을 재빠르게 질주하는 말 위에 올라 탄 어린아이가 시선을 끈다. 열한살 된 다와냠(Dawaanyam)이 말의 고삐를 능숙하게 흔들며 자유자재로 방향을 튼다. 보통 초원에서 자란 아이는 세 살 때부터 안장도 없이 말을 탄다고 한다. 그들에게 말은 최고의 교통수단인 동시에 삶의 동반자인 셈이다. 오늘날 몽골 전역의 초원에서 유목민이 약 1,500만 마리의 말을 기르니 이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고르히 테렐지 국립공원 내에서 말타기 시합이 벌어진다면 강력한 우승 후보로 오치르뱜바(Ochirbyamba)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다섯 살 때 지역의 승마 대회에 참가한 이래 50년 가까이 이곳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그는 테렐지 마을에서 승마 투어도 운영한다. “말은 몽골에서 가장 숭배하는 짐승이죠. 국가의 휘장에 말이 커다랗게 담겨 있으니까요.” 오치르뱜바의 승마 투어는 테렐지 마을에서 출발해 말의 몸통까지 차오르는 툴 강을 건너 초원을 가로지르는 코스로 이루어진다. 고삐를 이리저리 당기고 말에게 달리라는 신호인 “추(chu)”를 외치며 마음껏 초원을 질주해보고 싶지만, 초심자는 그저 마부가 탄 말의 꽁무니를 뒤따라 천천히 이동해야 한다. 말타기에 익숙한 이도 야생마에 가까운 몽골의 예민한 말을 다루기란 쉽지 않다. 항상 왼쪽 방향으로 타고 내려야 하고, 모자를 떨어뜨린다거나 카메라 촬영을 하는 등 말의 신경을 조금이라도 거슬리게 하는 일은 금물이다. 말 위에 올라 초원과 게르가 어우러진 고르히 테렐지 국립공원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동안 익숙한 노랫말이 들려온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오치르뱜바가 과거에 어느 한국 여행자에게 배웠다는 남진의 ‘님과 함께’를 구성지게 부르며 승마 투어 행렬을 느긋하게 이끈다.
고르히 테렐지 국립공원을 조금 벗어나면 끝없는 초원이 지평선을 가득 채운다. 이따금 수백 마리의 양 떼가 느린 속도로 지평선과 하늘이 이루는 경계를 지나가는 광경은 비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차를 타고 국립공원 동쪽으로 20분 남짓 달리면 좀 더 현실과 동떨어진 장면과 마주칠 수 있다. 지평선 위로 40미터 높이로 불쑥 솟아오른 거대한 촌징 볼도그(Tsonjin Boldog). 이는 바로 20만 명의 기마병을 이끌고 유라시아 대륙을 정벌하며 몽골제국의 시대를 연 칭기즈칸을 형상화한 동상이다. 몽골은 과거 공산주의 정부 시절 칭기즈칸의 흔적을 감추고 지내야 했다. 그러다가 소련의 몰락 이후 민주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칭기즈칸의 위대한 업적을 당당하게 끄집어내는 중이다. 칭기즈칸이 황금 채찍을 발견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이곳에 촌징 볼도그를 세운 일 또한 상징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다. 강렬한 햇살 아래 반짝반짝 윤이 나는 칭기즈칸 동상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 헨티(Khentii)를 우두커니 바라보고 서 있다.
촌징 볼도그 앞에는 오늘날 수많은 여행자가 오간다. 관광버스를 타고 온 단체 관광객부터 1년 반 동안 오토바이를 타고 세계 일주 중인 라이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스웨덴에서 건너온 배낭 여행자, 지프 랭글러로 자동차 여행 중인 몽골 현지인 커플까지. 저마다 독수리를 손에 얹고 칭기즈칸 동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거나 동상의 말 머리에 설치한 전망대에 올라 광활하게 펼쳐진 몽골 중부의 대초원을 바라본다. 자유와 개방의 시대를 맞아 몽골은 조금씩 변화를 받아들이고 있지만, 저 텅 빈 초원은 칭기즈칸이 호령하던 시절처럼 유목민과 그들이 기르는 가축이 변함없이 채우고 있다. 그리고 유목민이 머무는 터전에 매혹된 여행자가 그들이 거친 길을 뒤따르는 중이다.
고현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오작은 평소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기는 사진가다. 둘은 게르 위로 펼쳐진 밤하늘을 못 잊어 조만간 두 번째 몽골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취재 협조 혜초여행(hyech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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