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더로드 Sep 19. 2016

이스라엘의 두 도시 사이에서

Between the Two Ancient Cities

텔아비브와 예루살렘. 불과 60킬로미터 떨어진 두 도시 사이에서 성스러운 땅의 수천 년 이야기는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알 바르 모스크의 첨탑은 야파 구시가의 상징이다 ⓒ 이기선

성스러운 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착륙하기 몇 시간 전, 텔아비브(Tel Aviv)의 한 레스토랑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팔레스타인 인의 소행으로 추정되며, 4명이 숨지고 6명이 부상당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보다 일주일 전에는 20만여 명이 참가한 게이 퍼레이드가 온 거리를 뒤덮었고, 아무 사건 없이 조용하게 끝났다. 연중 날씨가 맑고, 한여름 휴일이면 금빛 해변에 수영복 차림의 휴양객이 북적이는 지중해 도시. 세계 각국의 대사관과 다국적기업 지사가 모여 있는 곳. 전 세계에서 가장 최근에 건국된 나라 중 하나인 이스라엘의 경제 수도 텔아비브야파(Tel Aviv-Jaffa).

고대 항구 도시이던 야파 구시가는 옛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 이기선

“매우 안전해요.” 호텔 컨시어지와 택시 기사 모두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다음 날 아침, 차창 밖으로 깔끔하고 한적한 거리와 해변이 펼쳐지는 모습을 보니 그들의 말은 그럴싸해 보인다. 신도시 텔아비브에서 고대 도시 야파를 향해 달리는 길이다. 곧 해변 너머로 야파가 모습을 드러낸다. “제가 저기 살아요.” 택시 기사가 자랑스레 말한다. 청명한 하늘, 걸어놓은 듯한 뭉게구름 아래 희고 오래된 건축물과 첨탑이 신기루처럼 우뚝 솟은 극적인 풍경. 그리스신화에서 제물로 바쳐진 공주 안드로메다가 이 인근 바위에 묶여 있었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밀크 베이커리의 노천 테이블. ⓒ 이기선

성경에 수차례 등장하는 야파의 역사는 기원전 18세기로 거슬러올라간다. 예부터 성스러운 땅, 홀리 랜드(Holy Land)를 찾아온 순례자는 야파 항구를 거쳐갔다. 홀리 랜드는 요르단 강(Jordan River)과 지중해 사이, 즉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구를 포함하는 지역을 말한다. 오늘날 야파 지구에는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16세기 알 바르 모스크(Al Bahr Mosque)의 에메랄드빛 첨탑, 높은 야자수에 둘러싸인 성 베드로 교회 그리고 오래된 시가지가 그대로 남아 있다. 미로 같은 골목에는 중동 음식 샥슈카(shakshuka)와 후무스(hummus)를 파는 허름한 레스토랑, 1880년에 문을 연 빵집을 비롯해 잡다한 구멍 가게가 즐비하다. 최근에는 그 틈에 로컬 부티크 숍, 레스토랑, 카페 등이 하나둘 들어서며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 프랑스식 카페 밀크 베이커리(Milk Bakery)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동네 주민이 개를 끌고 들르거나 야자수 아래의 노천 테이블에서 수다를 떤다. 텔아비브 출신의 종업원 엘리(Eli)는 여느 때처럼 줄줄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단골손님을 위해 커피를 내리느라 분주하다. 주방에선 빵을 굽는 달콤한 향기가 흘러나온다. “아랍인과 유대인이 함께 하나의 사회를 이루는, 이스라엘 유일의 평화로운 도시죠.” 커피 머신에서 잠시 해방된 엘리가 말한다. “요즘 이 동네에는 오래된 건축물의 외관을 유지한 채 내부를 세련되게 개조한 가게나 호텔이 점점 늘고 있어요.”

야파의 변화는 일부에 불과하다. 최근 <더 텔리그래프(The Telegraph)> <스릴리스트(Thrillist)> 등은 ‘세계에서 가장 힙한 도시’ 리스트에 텔아비브를 올렸다. 힙스터들은 주로 텔아비브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 지구인 네브 체데크(Neve Tzedek), 플로렌틴(Florentin) 등에 모인다. 예술가의 스튜디오, 감각적인 서점과 쇼룸, 카페, 클럽들이 즐비한 곳. 맛있는 젤라토 가게도 빼놓을 수 없다. 네브 체데크의 유명한 아니타(Anita)는 이탈리아 출신의 오너가 현지 레시피대로 젤라토를 만드는 가게다. 셸리(Shelly)는 10년 전 아니타가 문을 연 이래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데,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아르바이트생처럼 활기가 넘친다. “아이스크림을 먹고 미소 짓지 않는 사람은 없죠.” 셸리가 중동 디저트인 할바(halva) 맛 젤라토를 푹 떠서 건넨다. 과연 그녀의 말이 옳다.

텔아비브의 인기 있는 젤라토 가게 아니타. ⓒ 이기선

텔아비브에서도 이스라엘의 정치적‧종교적 분쟁은 중요한 문제다. 방대한 이스라엘 현대미술 컬렉션을 소장한 텔아비브 미술관(Tel Aviv Museum of Art)에서는 텔아비브의 저명한 그래픽 예술가 다비드 타르타코베르(David Tartakover)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그는 현대 이스라엘의 이미지와 텍스트를 재치 있게 사용하기로 유명하며, 국가 최고의 권위를 지닌 이스라엘 상(Israel Prize)을 수상하기도 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역대 테러 사진을 프린트한 대형 작품 앞에 멈춰 선다. 사진마다 “아임 히어, 베들레헴(I’m here, Bethlehem)” “아임 히어, 비르셰바(I’m here, Be’er Sheva)” “아임 히어, 예루살렘(I’m here, Jerusalem)” 등의 글귀가 쓰여 있다. 울부짖거나 비탄에 잠긴 이들 틈새로 구호 조끼를 입은 남성이 등장한다. “타르타코베르는 테러가 끊이지 않는 현 상황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고민했어요. 그래서 자기 자신을 당시 사진 속에 합성한 것이죠.” 큐레이터 줄리 피아코크(Julie Peacock)가 설명한다. “방금, 봤어요?” 밀짚모자를 쓴 지긋한 남자가 우리를 지나치자마자 흥분한 피콕이 말한다. “그가 미스터 타르타코베르예요. 항상 저 모자를 쓰죠. 정말 신사 같지 않나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열렬한 존경이 어려 있다.

텔아비브 미술관의 헤르타 앤드 파울 아미르 빌딩은 2002년 완공했다. ⓒ 이기선

전시관 밖으로 나와 또 다른 작품을 만난다. 푸른 하늘 아래, 새하얗고 독특한 기하학적 형태로 유명한 헤르타 앤드 파울 아미르 빌딩(Herta and Paul Amir Building)이 서 있다. 아무 일 없다는 듯 매끈하고 아름답게. 마치 21세기 텔아비브를 상징하듯 말이다.

새하얀 바오하우스 양식 건축물이 즐비한 텔아비브는 ‘화이트 시티’라는 애칭을 지니고 있다. ⓒ DANA FRIEDLANDER/ISRAELI MINISTRY OF TOURISM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와 함께 최고의 여행을 만나보세요.

> 이스라엘의 두 도시 사이에서 PART2

론리플래닛 코리아 페이스북

작가의 이전글 영화 속 마카오 탐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