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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Oct 17. 2016

수원 행궁동 탐방

이 작은 세계는 바깥세상과 다른 법칙으로 돌아간다. 지나간 왕조의 유적은 새로 복원했고, 근대 건축물은 유물이 되었다. 옛것과 새것의 개념이 뒤바뀌는 곳. 200년 전의 신도시 행궁동은 지금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화성행궁 후원에서 내려다본 풍경. 저 멀리에 수원제일교회 첨탑이 보인다. ⓒ 이규열

Restaurant & Shrine


담장 앞 레스토랑


20세기 말 수원. 과거는 현재를 밀어내려 하고 있었다. 1970년대에 복원한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성곽 안 부지를 시에서 전부 매입해 조선 시대 모습대로 재개발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성곽 안의 집값은 뚝 떨어졌고 젊은이는 하나둘 밖으로 빠져나갔다. 남은 이는 대부분 노년층이었다. 수원시에서 성안의 땅을 산다는 것은 물론 뜬소문이었다. 어쨌거나 성곽 안은 점차 슬럼화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을 전후로 수원 도심 외곽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고, 2003년에는 수원역 앞에 애경백화점 수원점이 개점했다. 한때 수원의 중심이자 경기도 최고의 땅값을 자랑하던 팔달문 일대의 영광은 옛말이 되었다. 수원에서 가장 영화롭던 성안 동네 행궁동은 희망 없는 회색 도시라 불렸다. 200여 년 전 만든 최초의 설계도에 따라 복원한 성곽만이 위풍당당했다.


모든 것의 시작은 오래전 한 사람이 꾼 꿈이었다. 화성행궁 북쪽 뒷골목. 평일 오후여서인지 정조 어진을 모 신 화령전 담장 앞은 썰렁할 만큼 한갓지다. 200년 넘은 화령전을 마주보는 레스토랑 아멜리에는 묘하고 고즈넉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이 골목에 자리잡은 지 2년째. 길가에서 보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8년 전 수원으로 이주한 남매가 함께 운영하는 가정식 레스토랑으로, 테이블은 달랑 3개고 식사를 하려면 문자메시지로 예약해야 하는데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오늘도 그렇다. 임현진 씨 남매는 주방에서 쉬지 않고 움직인다. 샐러드 접시에 리코타 치즈를 조금씩 떼어내 담고, 냄비에서 파스타를 건지고, 프라이팬에 재료를 넣고…. 셀 수 없이 반복해 몸이 먼저 기억하는 일을 해치우듯 하는데, 말 한마디 없어도 손이 척척 맞는다. 엄마가 요리해주는 것을 기다리는 기분으로 앉아 창밖을 내다본다. 정면의 커다란 창은 1폭의 그림처럼 화령전과 담장을 담고 있다. 담장 앞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노인 몇 명이 풍경의 일부처럼 앉아 초가을 볕을 쬐고 있다. 메뉴가 나온다. 딱히 장식에 신경 쓰지 않고 무심하게 차려낸 듯한데 접시 위에 놓인 샐러드와 매시트 포테이토, 스테이크는 그린 듯 정갈하다. “그 아멜리에 맞아요. 영화요.” 점심시간 서빙을 거의 끝낸 임현진 씨가 대답한다. “주방 크기가 일반 가정집 주방만 하니 식당치고는 작은 편이예요. 조금 불편하지만 일부러 고치지 않았어요. 조리 도구도 전부 집에서 쓰는 거고요. 친구들을 대접하듯 하고 싶었거든요.” 임현진 씨는 런던에 잠시 살 때 집에서 요리해 친구들과 나눠 먹던 추억에서 아멜리에를 떠올렸다. 요리를 따로 배운 적도 없다. “행궁 뒷골목은 2013년 쯤부터 길을 새로 닦았어요. 조용해서 좋은데 사람들이 아직 잘 몰라요. 우연히 이 동네의 빈 건물을 발견하고 꼭 여기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최근 행궁동에는 아멜리에를 비롯해 카페며 문화 공간이 하나둘 늘고 있지만 아직 도시적 트렌드를 이루지는 못했다.


아멜리에에서 화성행궁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옛 신풍초등학교 건물이 있다. 1896년 설립한 경기도 최초의 공립학교다. 새 학기가 시작하고도 1달 넘게 흘렀지만 학교 대문은 잠겨 있다.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이라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1997년 수원화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무렵 수원시에서는 화성행궁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행궁 대부분이 헐리고 그 자리에 경찰서, 학교, 병원이 들어선 것이다. 신풍초등학교는 그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건물이다. 인근 학생을 수용하는 학교로서의 특수성은 물론, 수원 최고로 꼽는 명문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신풍초등학교는 올초 광교신도시로 이전했다. 초등학교에 영 어울리지 않는 웅장한 벽돌 건물은 곧 사라질 것이다. 이곳에서 보낸 유년 시절을 기억하는 이도 언젠가는 모두.


신풍동의 예약제 레스토랑 아멜리에에서는 언제든 조촐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 이규열


Guesthouse & Palace


가족이 모이는 집


행궁동 시내는 뿌연 안개에 휩싸여 있다. 오전 6시 30분. 팔달산 정상에 위치해 수원화성에서 가장 높은 서장대에는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온 이가 많다. 일출 명소지만 하늘 어딘가에 떠올랐을 해는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팔달산 동쪽 기슭에 지은 화성행궁은 꽤 잘 보인다. 설계 도면처럼 오차 없이 반듯한 모습이다. 지금 내려다보이는 건물은 2003년에 지었으니 그럴 만하다. 조선 시대부터 남아 있는 낙남헌과 화령전을 제외하면 전부 새 건물이다.


서장대에서 15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오래된 신풍동 주택가가 자리한다. 그중 낮은 담장의 새하얀 2층집 1곳은 카페 겸 게스트하우스인 슬리핑테이블로 운영 중이다. 마당의 나무와 풀이 제멋대로 우거진 듯하면서도 가지런해 부지런한 손길이 닿은 티가 역력하다. “배롱나무, 하늘수국, 붉은 매일꽃, 나팔꽃, 분꽃. 가을엔 구절초와 국화가 펴요.” 밀짚모자를 쓴 송은선 씨의 얼굴이 환히 빛난다. 그녀는 딸 박정연 씨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매일 정원을 손질한다. “늘 수원이 답답하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 들어가면서 수원을 잠시 떠났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화서문을 들어설 때마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수원 토박이인 송은선 씨는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남편과 결혼하면서 수원으로 돌아왔다. “그때만 해도 성곽의 일부만 드문드문 남아 있었어요. 팔달문, 화서문 정도만 있었죠.” 사실 이 집은 송은선 씨 가족이 20년 넘게 살던 집이다. 가족 모두 성곽 밖의 아파트로 이사한 후 몇 년간 텅 비어 있던 집을 딸 박정연 씨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자고 제안했다. 오픈한 지 1년. 카페로 운영 중인 슬리핑테이블 1층과 마당은 아침부터 밤까지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울산 화수 브루어리의 수제 맥주, 제철 식자재를 사용한 파니니가 인기다. 손이 부족해 남동생까지 일손을 돕고 있다. 어쩌다 보니 가족이 하나둘 옛집에 모인 셈이다.

정조는 1789년 화성행궁을 건설하면서 오늘날의 경기도 화성에 자리하던 수원시를 행궁동 지역으로 이전했다. ⓒ 이규열

슬리핑테이블에서 5분만 걸어가면 또 다른 가족 이야기를 만난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소가 자리한 계획도시 수원에 총 13차례 다녀갔고 화성행궁 정문에 ‘새로운 고향’이라는 뜻의 신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수원으로 천도하려 했다는 설이 있지만, 그보다는 왕위를 물려준 후 어머니와 함께 내려와 노후를 보내려던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결국 이루지 못한 꿈이었지만 말이다. 행궁 뒤쪽, 팔달산 기슭에 가꾼 후원은 경사가 꽤 가파르다. 소나무 숲 뒤편으로 정자 1채가 행궁을 굽어보고 있다. ‘미래에 늙어 한가로이 쉴 정자’를 의미하는 미로한정에 오르면 겹겹이 포갠 듯한 행궁의 기와지붕이 보인다. 그 너머로 성곽 바깥의 빌딩숲과 수원제일교회 첨탑이 솟아 있다. 후원 근처의 구석진 자리에는 아담한 복내당이 있다. “여기가 제일 예뻐요.” 2015년 개봉한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김민희는 이렇게 말하며 복내당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바나나우유를 빨아 마셨다. 그 마음이 짐작 갈 만큼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른다. 저쪽으로 정조가 입던 예복을 걸친 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행궁 어딘가로 걸어가는 중이다. 화성행궁 건물은 새것이지만 <화성성역의궤>에 나온 그대로 복원했으니, 만일 지금 정조가 행궁에 들렀다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게스트하우스 겸 카페 슬리핑테이블을 운영하는 박정연 씨 가족. ⓒ 이규열

Bookshop & Old Teahouse


독립 서점과 옛날 찻집


“수원이 다른 도시와 다른 점이 있다면, 성이 있는 게 자연스럽다는 거예요. 저는 수원에서 나고 자라서 어디에나 성이 있는 줄 알았어요.” 행궁동 유일의 독립 서점 피큐알북스를 운영하는 선인우 씨가 말한다. 그가 걸친 하와이안 셔츠는 이곳에서 보호색처럼 잘 어울린다. 여기서 1블록 떨어진 화성행궁에서라면 눈에 띄겠지만. 행궁 광장 앞 길모퉁이 서점의 핫 핑크색 외관은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서점 내부는 샛노란색과 에메랄드색으로 칠하고 구석구석 동물 탈, 괴물 인형, 우쿨렐레, 특이한 그래픽 포스터 등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피큐알은 제가 운영하는 디자인 그룹 이름이기도 해요. 컬러풀하고 키치하고, 크레이지한 감성을 추구해요. 서울 신사동에서도 비슷한 공간을 운영했는데, 수원으로 오게 된 건 이 위치 때문이에요.” 피큐알북스에서는 국내 작가의 독립 출판물을 위주로 시각예술 관련 서적을 비롯해 시집, 매거진 등을 선보인다. “요새는 행궁동에 매달 공방이나 카페가 새로 생기고 있어요. 점차 문화적으로 풍요로워질 거라고 생각해요.”

행궁동이 벽화 골목으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10년. 대안공간눈에서 ‘행궁동 사람들’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나서다. 그 후 6년이 지났으나 도시의 문화적 변화는 더뎠다. 그렇다고 수원이 아예 문화 불모지였던 건 아니다. 현지에서 ‘남문’이라 불리는 팔달문 앞 찻집 시인과 농부는 그 자체로 유적 같다. 한때 남문 일대를 메우던 포차와 재래시장은 이제 3~4층 높이 건물로 바뀌었지만, 찻집 안에서만 29년 세월이 멈춘 듯하다. 곳곳에 비디오테이프, 책, 액자, 조각 작품 따위가 쌓여 있고 낮은 천장에는 여기저기 종이를 덧대었다. 이미 벽의 일부가 된 듯한, 겹겹이 붙인 고전영화 포스터 위를 낙서와 종이쪽지가 빼곡히 덮고 있다. 레코드플레이어에는 하인츠 홀리거(Heinz Holliger)가 지휘하는 오보에를 위한 협주곡 모음집이 걸려 있다. “성직자가 되기 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법을 배우려고 찻집을 열었는데 아직도 하고 있죠. 시인과 농부의 진실한 마음으로 찻집을 하고 싶어서 이름을 지었어요. 시농(그녀는 찻집 이름을 ‘시농’이라 부른다) 문만 열고 나가면 다른 세계예요. 여기 있으면 세월 가는 것을 모르겠어요.” 주인 이지현 씨는 클래식 애호가로, 찻집 이름 역시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 프란츠 폰 주페(Franz von Suppé)의 서곡 ‘시인과 농부(Dichter und Bauer)’에서 따왔다. “전원에서 농부가 씨를 뿌리며 땅을 대하는 마음을 표현한 곡이에요.” 수원 중·고등학생부터 종교인, 문화·예술 종사자까지 이곳을 즐겨 찾는다. 이지현 씨는 단골손님의 도움을 받아 이따금 전시나 공연, 시 낭송회를 개최하기도 한다.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속 주인공들은 시농 한쪽 구석에 둘러 앉아 막걸리잔을 기울였다. “제가 알기로 홍상수 감독은 원래 수원에서 영화를 찍으려는 계획이 없었어요. 친분이 있는 독립 영화 감독과 우연히 이 앞을 지나가던 길에 그분이 시인과 농부에 잠깐 들어가 인사하고 나오겠다고 했대요. 홍 감독은 밖에서 기다리다가, 들어간 사람이 하도 안 나오기에 직접 들어가봤죠. 그때 이곳에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해요.” 이지현 씨가 귀띔한다. 영화 속 장면과 달리 사실 찻집에서는 술을 팔지 않고 전통차만 낸다. 이지현 씨가 어릴 적 할머니 어깨 너머로 본 대로 손수 10시간 넘게 끓이는데, 어느 차를 시키든 찐 감자를 곁들여 낸다. 살얼음이 동동 뜬 식혜가 엄청 달고 진하다.

영화<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서 주인공들이 막걸리를 마시던 자리. ⓒ 이규열

찻집 한편에는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시기별로 분류한 장부가 성인 키만큼 높이 쌓여 있다. 손님이 쓴 일종의 방명록을 모아둔 것. 식혜에 든 살얼음을 사각사각 씹으며 들춰본다. “주인 언니, 너와 나. 돌이킬 수 없는 세월 뒤로 모두가 바뀌었어. 난 지금 이렇게 여기에 그때 그곳에 이렇게 앉아 있는데 혁아, 넌 어디서 누굴 생각하니.” “지겹다. 왜냐하면 정순이가 말을 안 들어서.” “너 보아라. 언젠가는 수원에 와서 이 글을 읽게 될 거라고 믿는다. 우린 서로 너무 쉽게 헤어진 것 같다.” 사랑하고 고민하고 그리워하는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현재 진행형인 듯하다.



Cafe & Fortress


서문 앞 주택가 카페


올봄 화서문 앞에 문을 연 카페원모어에서 독특한 공간을 꼽는다면 다름 아닌 복도다. 오래된 빌라나 아파트의 층마다 길게 뻗어 있고, 각 세대의 문과 창문이 나란히 펼쳐지는 복도 말이다. 장안동 주택가 초입의 다세대주택 2층. 새하얀 벽에 창틀과 문은 병아리색이나 벚꽃색으로 칠했다. 바깥으로 난 창틀엔 화분이 놓여 있다. 늦은 오후의 미풍에 흰 커튼이 가만가만 흔들린다. 모르는 이의 집에 들어가듯 비밀스러운 느낌이 든다. 장지영 씨가 처음 집을 보러 왔을 때 복도는 ‘흉물스럽기 그지없었다’. 복도에는 낡아빠진 보일러와 신발장, 온갖 넝마와 잡동사니가 가득했다. 그녀는 1902년 행궁동 수원천변에 설립한 수원 매향여자정보고등학교를 다녔지만, 이 동네는 가게를 보러 다니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화서문이 내다보이는 창문을 보고 너무 예뻐서 꼭 이곳에서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 무렵 건물주가 수원문화재단에서 일하는 이로 바뀌면서 세입자의 면면도 달라졌다. 장지영 씨의 카페와 사진 스튜디오, 영상 작업실이 들어섰다.

카페 원모어에서 맛보는 살구 케이크와 플랫 화이트. ⓒ 이규열

사실 손님들은 복도보다 카페 위층 옥상을 좋아한다. 몇백 미터 거리에서 눈높이로 화서문을 마주 볼 수 있 어 기묘한 기분마저 든다.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라오는 장면이기도 하다. 카페 안은 별다른 장식 없이 온통 새하얗게 칠하고 키 큰 야자수를 들여놓았다. 원래 이곳은 좁고 습한 방 4칸짜리 집이었다. 장지영 씨는 옛집의 노후한 설비를 철거할 때 연탄보일러, 석유 보일러 등 옛 흔적이 시간 순으로 켜켜이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동네 사람이 조용히 쉬어 가는 곳이 될 수 있게요.” 휴무일인 오늘 장지영 씨는 하루 종일 케이크를 구울 예정이다. 그녀가 오전에 구워놓은 살구 케이크 1조각을 내준다. 포슬포슬한 시트에 밀도 낮은 생크림을 푸짐하게 얹었고, 살구절임을 큼직한 조각째로 넣었다. 케이크는 설탕을 줄이고, 제철 과일을 손수 절여 사용한다고. 수원 토박이이자 그림책 작가로 카페 단골인 이미주 씨가 메뉴판 그림을 직접 그려 주었는데, 카페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


카페 옆집은 조금 특이한 공간이다. ‘뜨는 이야기’라는 이름의 글쓰기와 뜨개질 교실 겸 작업실. “작업실을 구할 때 딱 세 가지면 된다고 말하고 다녔어요. 창밖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네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고, 집세가 싸면 된다고요. 그날은 부동산에서 집 열쇠가 없다고 해서 복도의 창으로 들여다봤어요. 방 안이 노을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더라고요. 그 순간 ‘저거면 돼’라고 생각했죠.” 노을이 지는 방 안을 본 것이 그토록 운명적 사건이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논술 교사이자 뜨는 이야기를 운영하는 이소영 씨는 세상 모든 것을 색으로 바꿔 생각한다고. 흰색은 깨끗한 마음, 청록색은 멍든 마음, 노란색은 희망, 검은색은 분노.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답답할 때마다 뜨개질을 했다는 그녀는 그날의 기분에 따라 실의 색을 고르곤 했다고 한다. 응당 이해가 간다. 세상사와 달리 뜨개질은 단순히 계속 실을 이어가기만 하면 완성되니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뜨개질과 글쓰기를 결합한 수업을 진행한다. 그날그날 실을 골라 꽃 모양을 뜬 후 자유롭게 글을 쓰는 식이다. “수원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연회색이에요. 흰색과 검은색의 중간. 이 동네에는 자기중심이 잘 잡힌 젊은이가 많이 찾아오거든요.”

화서문 앞에서 글쓰기 겸 뜨게질 교실을 운영하는 이소영 씨. ⓒ 이규열

초승달이 뜰 무렵, 다시 화서문을 찾아가기로 한다. 수원화성 동문인 창룡문 앞을 지날 때 푸른 저녁 하늘에 플라잉수원이라 불리는 거대한 헬륨 기구가 보인다. 수원 화성 방문의 해인 올해 수원시에서 시작한 기구다. 조명을 밝힌 성곽 위로 두둥실 떠오른 헬륨 기구가 마치 수원의 새로운 꿈처럼 보인다.

헬륨 기구 투어를 시작한 수원화성의 창룡문. ⓒ 이규열

세상의 모든 장소는 정도는 다를지라도 각자 자기만의 기운을 지니고 있다. 논리적 설명을 떠나 직감적으 로 느껴지는 분위기 말이다. 화서문은 수원화성에서 가장 정겨운 장소다. 수원화성의 건축물 중 조선 시대의 모습이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장소이자, 한적한 주변 동네와 잘 어우러지기 때문인 듯하다. 화서문 앞에는 성곽을 따라 밤 산책을 하는 이가 많다. 화서문에서 왼쪽으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서북각루가 나온다. 신을 벗고 누각에 오르자 가을 밤바람이 꽤 쌀쌀하다. 처마 아래로 화서문까지 구불구불 뻗은 성곽이 보인다. 그 반대편엔 반짝이는 시가지가 펼쳐진다. 양말 바람인 여고생 넷이 양반다리를 하고 둘러앉아 도란도란 대학 입시 이야기를 나눈다. “너 이런 데 어떻게 알았어?” “지나가다가.” “우리 지금 여기에 있는 거 담임이 알면 뭐라고 할까?” 이런 얘기가 밤바람을 타고 흩어진다. 되살린 옛 성은 오늘의 사람들과 어울려 수원의 새로운 꿈을 이뤄갈 게 분명하다.

수원 행궁동 전경. ⓒ 이규열

이기선은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의 에디터다. 영화 포스터 수집가기도 한 사진가 이규열은 찻집 시인과 농부에서 벽에 붙은 고전 영화 포스터를 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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