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 옆 운치 있는 서원과 소나무 숲을 거닐고 야시장에서 전 세계 먹거리를 맛본 후 한옥에서 고요한 밤을 보낸다. 과거와 현재의 경주를 경험하는 색다른 가을 자동차 여행을 떠나보자.
가을 하늘의 맑고 선명한 빛이 자계천의 맑은 수면 위에서 반짝인다. 아직 초록색 옷을 채 벗지 못한 나무들은 천천히 가지를 움직이며 옥산서원으로 가는 길을 안내한다. 청명한 날씨 덕분인지 녹음이 짙은 숲길을 따라 나무와 풀내음이 가득하다. 서원의 외삼문(外三門, 바깥 담에 3칸으로 지은 대문)인 역락문(亦樂門)으로 들어가자 천에서 갈라져 나온 작은 내가 흐르고, 그 앞에 7칸의 2층 누각인 무변루(無邊樓)가 우뚝 서서 방문객을 맞이한다. 옥산서원은 경주에 내려오는 조선 시대 선비 문화의 풍치를 넌지시 알려준다.
“우리나라에 서원이 약 930개 있다고 하는데요, 여기 옥산서원은 소수서원, 병산서원, 도산서원과 함께 4대 서원이라고 불립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하고 건축양식도 독특해서 꼭 찾아봐야 할 서원으로 꼽히죠.” 서원을 둘러보며 윤영희 문화관광해설사가 그 내력부터 차근차근 설명해준다. “이곳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1491~1553)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지었는데, 그는 경주 양동마을 출신으로 조선 시대 성리학의 대가 5명을 칭하는 동방오헌(東方五賢) 중 1명이에요. 그만큼 학문이 뛰어났고, 곧은 말을 잘 하는 분이었다고 합니다.” 역락문, 무변루, 구인당(求仁堂) 등 서원 각 건물의 현액을 곱씹어 보면 유교 경전에서 뜻을 빌어왔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기쁨과 무위라는 무릇 상반되는 사유(思惟), 여기에 더해 사람의 관계라는 인(仁)의 형이상학을 학문의 공간에 펼쳐놓은 듯하다. 구인당 마루에 앉으니 무변루 기와 너머로 자옥산의 고즈넉한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밖에서 바라볼 때의 모습과 달리 사원 내부는 모두를 품어주는 아늑함이 느껴진다. 살면서 두 번이나 파직당했던 회재는 이 서원에서 의지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리라.
자계천을 따라 길을 오르면, 회재가 첫 번째 낙향할 당시 지었다는 고택과 마주친다. 고택 내부에는 한옥 여러 채가 담장을 두고 미로처럼 자리 잡았다. 회재는 사랑채에 주로 기거했다고 한다. 독락당(獨樂堂)이라는 이름처럼 혼자만의 즐거움을 위해 숨어 있는 듯한 사랑채는 담장의 나무 창살을 통해 자계천과 바람으로 연결된다. 집 주인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낸 듯 말이다. 오늘도 이곳의 바람은 천변에 난간을 내민 우아한 계정(溪亭)을 지나 녹음과 물소리에 파묻히거나 다시 독락당을 맴돌고 있다.
getting around 차를 빌려 경주 북부 지역에서 이번 여행을 시작해보자. 경부고속도로 경주IC에서 옥산서원까지 차로 약 45분, 익산포항고속도로 서포항IC에서 차로 약 20분 걸린다.
경주 옥산서원 9am~7pm, 연중무휴, 054 762 6517,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독락당 한옥 스테이 이용 가능(5만 원부터, gjgotaek.kr), 054 779 6109,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300-3.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아! 감은사, 감은사탑이여 !” 미술사학자 유홍준이 내뱉은 감동어린 탄식처럼 감은사지(感恩寺址)에는 형언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흐른다. 그것이 벼가 영근 드넓은 논 위로 홀연히 솟아오른 2개의 탑 때문인지, 넓은 터에 남아 있는 주춧돌 때문인지, 뒤로 펼쳐진 대숲의 춤사위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이도 아니면 해룡이 된 문무왕의 혼이 여전히 서려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감은사지를 한 번이라도 찾아온 사람은 그 분위기에 매혹돼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하곤 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감은사는 문무왕이 왜병을 제압하고자 짓기 시작했다. 정작 문무왕은 뜻을 이루지 못했고, 서기 682년 그의 아들 신문왕(神文王) 대에 이르러 완공했다. 사찰 이름 또한 진국사였으나 부친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감은사로 바꿨다. 감은사지 진입 계단을 따라 올라 터에 다다르면, 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2개의 석탑이 보인다. 비록 탑의 상륜부는 사라졌고 철간만 튀어나와 원래의 모습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삼국통일 직후 신라의 위세가 어디로 갈까. 이 두 탑 사이에 서면 마치 나 자신이 동해를 바라보는 감은사가 된 듯하다.
문무왕은 유언에 따라 동해의 바위에 안치되어 해룡이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바다 위로 살짝 드러난 문무대왕릉의 바위는 전설을 숨긴 채 묵묵히 파도를 맞이한다. 당나라와 맞섰던 왕의 위용을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동해의 담대함은 짐작할 수 있다.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이방인은 대왕암 해변을 거닐며 왕이 어떻게 해룡이 되었는지에 관한 전설을 얘기해왔을 것이다. 만약 그들의 발걸음이 해변 끝자락 언덕에 닿았다면 이견대(利見臺)에 앉아 다시 문무대왕릉을 바라보았을 것이고. <삼국유사>에는 감은사 금당 아래에 해룡이 들어올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놓았는데, 바로 이견대에서 그 용을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이견대를 복원해놓은 위치가 정확한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래도 이곳에서 보는 문무대왕릉이 가장 멋스럽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비죽거리듯 남쪽으로 뻗어나간 해안선과 짙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은 장쾌한데, 대왕암의 바위 때문일까 마음 한편은 아득하다.
getting around 옥산서원에서 동쪽으로 약 50킬로미터를 달리면 감은사지에 도착한다. 감은사지에서 이견대까지는 차로 약 2분 만에 갈 수 있다. 경주양남주상절리도 차로 10분 거리에 있어 한 번에 돌아보기 좋다.
감은사지 054 779 6396,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3.
이견대 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61.
경주양남주상절리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405-2.
경주 도시에는 2개의 주요 시장이 있다. 현지인은 경주역 근처의 성동시장을 윗시장이라고 하고, 중앙시장을 아랫시장이라고도 부른다. 그중 100년이 넘었다는 중앙시장의 역사는 천년고도라고 불리는 경주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지만, 이 도시에서 유달리 활력 넘치는 곳이다. 해가 진 후 역사 유적지의 출입문이 닫히고,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인근 식당마저 영업을 종료해 갑작스레 고요해지는 경주의 밤에도 말이다. 특히 올해 봄 문을 연 중앙시장의 야시장은 그저 조용하기만 하던 도심의 분위기를 서서히 바꿔놓고 있다.
중앙야시장은 행정자치부가 육성하고 있는 국내 전통 시장 야시장 사업의 네 번째 주자다. 시장 북쪽 약 75미터의 길이의 공간을 만들어 조성했는데, 낮 동안에는 채소나 청과물 등을 판매하는 좌판이 들어서서 그다지 특별할 게 없다. 저녁 7시부터 먹거리 노점이 영업을 시작하면 그제야 야시장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광경이 펼쳐진다. 똑같은 외관을 한 20개의 노점에서는 떡볶이, 어묵, 닭꼬치 등의 전형적인 길거리 음식부터 케밥, 스테이크, 쌀국수, 초밥 같은 지방 도시의 시장에서 마주치기 쉽지 않은 먹거리도 판매한다.
“저희는 야시장 참가자 모집 공고를 보고 창업에 도전해봤어요. 이건 저희 집에서 만들어 먹는 특제 양념을 입힌 석쇠돼지불고기예요. 진짜 맛있어요. 저희 집에서 먹는 거라 그런게 아니고 진짜 맛있다니까요!” ‘경주전통 석쇠돼지불고기’라는 간판을 내걸고 열심히 고기를 굽는 최성호 · 최창호 형제의 말처럼 이곳 상인들은 하나같이 열정이 넘친다. 쌀국수는 베트남 이주민이, 케밥은 터키 이주민이 직접 솜씨를 발휘하기도 한다. 길거리 음식다운 합리적인 가격 덕분인지 손님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휴대폰 카메라로 열심히 떡볶이를 찍는 커플도 있고, 근처 가게에서 소주를 구입해 와 곁들이는 단체 여행객도 보인다. 밤이 깊어질수록 노점 앞에 늘어선 줄이 점점 길어지고, 식사를 할 수 있는 공용 테이블의 빈 자리가 줄어든다. 야시장 한쪽 끝에서는 라이브로 노래를 들려주며 흥을 돋운다. 지금 경주에서 가장 활기찬 밤을 경험하고 싶다면 중앙야시장을 그냥 지나쳐선 안될 듯싶다.
getting around 감은사지를 출발해 토함산과 보문단지를 지나쳐 경주 시내까지 약 40분 소요된다. 중앙야시장은 지하와 야외 주차장을 갖추고 있어 주차하기도 편하다.
중앙야시장 주차 요금 30분당 500원, 054 743 3696, 경북 경주시 금성로 295.
경주 황남동의 풍경은 낮다. 동네 전체가 건물 고도를 제한하는 역사문화 환경 보존육성지구에 포함되어 있으며, 오래된 한옥 주택이 많다. 잔잔하게 펼쳐진 낮은 기와지붕의 물결 너머로 대릉원과 경주역사유적월성지구의 거대한 능이 보이고, 대형 버스가 관광객을 연신 실어 나르는 유명 유적지와 달리 골목은 매우 한산하다. 동네 주민이 탄 자전거가 간간이 눈에 띌 뿐이다.
올해 3월, 이렇게 조용한 동네에 문을 연 소설재는 아직 목재 향이 채 사라지지 않은 한옥 스테이다. 대릉원 주차장을 지나 한옥 형태로 지은 스타벅스 매장 옆 골목으로 들어가면 이 동네에서 유일한 2층짜리 한옥이 보이는데, 그게 바로 소설재의 카페 겸 독방 건물이다. 뒤쪽으로는 10개의 객실을 갖춘 ㅁ자 구조의 한옥이 자리 잡고 있다. 작은 우물과 소나무 1그루가 안마당에 운치를 더하면서. “오래된 한옥과 밭으로 사용하던 땅을 활용해 새롭게 한옥을 지었어요. 저 우물은 원래 있던 것을 복원했는데, 조사 결과 통일신라 시대부터 사용한 우물로 밝혀졌죠.” 소설재의 신현정 지배인이 설명한다. 그는 경주 토박이로 이곳이 처음 문을 열 때부터 근무했다. “사실 이 동네의 청년층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요. 황남초등학교는 학생 수가 부족해 이전한다고 하는데, 다행히 소설재 같은 공간이 하나둘 생기면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경주의 몇몇 현대식 한옥 숙소는 다소 부담스러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 남쪽을 바라보는 소설재의 객실 한옥은 과하지 않게 전통미를 살렸다. 집과 집 사이에 놓인 것 같은 대청마루는 4~5명이 누워도 될 만큼 크고, 작은 대청마루는 차를 마시기 좋게 소담하다. 객실은 고재(古材)를 사용한 소품과 광목을 사용한 침구를 갖췄다. 반면 욕실은 현대적으로 디자인해 사용하기 편하다. ‘계림’ ‘금오’ ‘낙안’ 등 객실마다 뜻깊은 이름을 붙여 투숙객을 세심하게 배려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그중 1곳에 들어가 이부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면, 처마에 걸린 풍경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맑은 아침 햇살이 안뜰의 소나무를 비추기 전까지, 경주의 밤은 그리 깊어가는 것이다.
getting around 중앙시장 네거리를 출발해 경주노서리고분군과 대릉원을 지나 첨성로에 들어서자. 대릉원 주차장과 스타벅스 사이 골목으로 들어서면 소설재가 바로 보인다.
소설재 숙박 2인 9만 원부터, 카페 전통차 4,000원, 070 7357 7412, 경북 경주시 포석로 1050번길 46, soseoljae.com
경주시 교동 월정교에서 배동에 있는 배리삼릉까지 이어지는 ‘삼릉 가는 길’. 경주의 여러 문화재를 거치는 이 길은 공식적으로 삼릉을 조금 지나쳐 경주 남산의 입곡 석불두에서 끝난다. 수많은 유적과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는 경주에서도 삼릉 가는 길을 따로 만들어놓은 것을 보면, 삼릉은 분명 어떤 유일성을 지니고 있는 게 분명하다. 능 주변의 소나무 숲이 주는 신비로운 분위기 때문이랄까. 삼릉은 그저 능이라기보다 남산에서 이어 내려온 정기와 소나무의 혼이 어우러진 하나의 입체적 공간 같다. 이른 아침 빛이 들기 전, 남산 위로 태양이 자태를 드러내려 할 때 이곳을 산책하면 더욱 그렇다.
새벽녘, 배리삼릉 주차장에서 남산 초입으로 향하는 길은 스산하다. 흙길을 밟고 조금만 걸으면 솔 향이 코를 자극하고, 몸통을 비틀며 춤추듯 하늘로 뻗어오른 소나무 군락이 펼쳐진다. 장막을 가르듯 소나무 사이를 헤쳐나가 맞닥뜨리는 삼릉은 품에 안긴 아기처럼 낮게 몸을 웅크리고 있다. 3개의 능이 나란히 붙어 있어 삼릉이라 부르는데, 각 능의 정확한 주인과 연대는 의문투성이다. 각각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능이라 전해지고 있지만, 정확한 기록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또 아달라왕과 신덕왕 사이에는 700년의 시간 차이가 있어 도대체 무슨 연유로 이렇게 능을 연달아 축조했는지 헤아리기도 어렵다. 주변을 둘러싼 신비로운 소나무 숲만큼이나 미스터리한 역사를 품고 있는 것이다.
배리삼릉 인근에 자리한 또 다른 왕릉은 통일신라의 몰락을 대변하고 있다. 제55대 경애왕은 후백제 견훤의 강요로 포석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삼릉에서 불과 50여 미터 떨어진 곳, 소나무 몇 그루를 지나 작은 돌다리를 건너면 홀로 자리한 경애왕릉에 다다른다. 능은 통일신라의 다른 왕릉에 비해 확연하게 규모가 작아 당시 국력이 얼마나 쇠퇴하고 있었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준다. 경애왕 다음 경순왕 때 통일신라는 태조 왕건에게 항복했고 고려 시대가 시작됐다. 찬란한 천년 왕국의 시대가 결국 저물어버린 것이다. 삼릉의 소나무에 아무리 화사한 빛이 내려 사위를 비춘다 한들 왕국의 소멸과 탄생의 기록은 바뀌지 않을 터. 송림에 취해 이곳을 산책할 때마다 언뜻 자연 앞에 무상해지는 인간의 역사를 곱씹게 된다.
getting around 황남동의 포석로를 이용해 경주오릉과 포석정을 지나 약 4킬로미터를 가면 배리삼릉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한다.
배리삼릉 주차 요금 소형 2,000원, 054 779 8793, 경북 경주시 배동 73-1.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보고(寶庫)를 경주라고 한다면,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보고는 보문단지 내에 자리한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일 것이다. 한류와 K-Pop의 세계적 인기에도 이렇다 할 음악 박물관이 없는 상황에서, 이곳은 가히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 컬렉션으로 세운 사립 박물관이라는 사실을 알면 더욱 놀랍다. 우리나라 대중음악을 망라하는 앨범뿐 아니라 빈티지 오디오 시스템까지 3층 규모의 박물관을 채운 소장품은 이곳을 관람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박물관의 음악 관련 기록물은 약 7만 여 점에 달한다. 그중에서 선별한 LP, CD, 카세트테이프 등이 2층 전시실에 전시되어 있는데,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초기 대중음악의 유산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유성기 음반부터 시작해 최초의 창작가요 이정숙의 ‘낙화유수’, 193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나 박향림의 ‘오빠는 풍각쟁이야’ 등 유성기 음반은 대중음악의 초석을 닦은 유물들. 그 후로 1950년대 여성 보컬 그룹 김시스터즈의 미국 발매 음반, 국내 록 음악의 선구자 신중현의 데뷔 앨범 등을 포함해 1970년대 청년 문화의 혼이 담긴 포크 가요, 1980년대 민중가요와 대중가요, 1990년대부터 폭발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 2000년대 K-Pop 스타 등 대중음악의 모든 것이 총망라되어 있다. 3층 전시실은 전설적인 오디오 명기들이 차지한다. 미국 초기 영화관에서 사용하던 극장용 웨스턴 일렉트릭 스피커 시스템, 독일의 클랑필름 필드 코일 스피커, 영국의 탄노이 오토그래프 스피커 등은 오디오 마니아라면 누구나 탐낼 걸작이다. 별도의 LP 라이브러리에서는 음반을 골라 직접 들어볼 수도 있고, 해외 팝스타의 오리지널 골든 디스크도 전시해놓았다.
“웨스턴 일렉트릭의 미로포닉 사운드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10여 기밖에 없어요. 저희 박물관에만 2기가 있죠. 6중주 이상 오케스트라의 음을 제대로 구현한다는 극찬을 듣고 있습니다. 웨스턴 일렉트릭 오리지널 16혼 스피커는 바이올린 소나타 등의 현악기에 어울리고, 알텍랜싱 알텍은 4중주를 듣기에 딱이죠.” 박물관의 임지환 팀장이 1층 음악 감상실 뮤직 라움(Music Raum)의 기기를 시연하며 설명해준다. “사실 저도 이 박물관에 근무하기 전까지는 잘 몰랐는데, 이제 막 오디오 기기를 배우고 있어요.” 그가 오디오 플레이를 구동하자 지난 세기의 명기 일렉트릭 16혼 스피커에서 현의 울림이 깊게 퍼져 나온다. 신라의 문화와 현대의 대중문화 그리고 빈티지 스피커. 아이러니한 이 조합을 만끽하기 위해 1곡의 음악만큼 완벽한 것은 없는 듯하다.
getting around 배리삼릉에서 경주 도심 쪽으로 향하다 오릉네거리에서 보문단지 방향으로 우회전 하자. 15분쯤 달리면 보문호가 나오고 보문단지 안쪽에 한국대중음악박물관이 자리한다.
한국대중음악박물관 박물관 입장료 1만2,000원, 뮤직 라움 입장료 1만 원, 통합권 1만6,000원, 10am~8pm, 월요일 휴무, 054 776 5502, 경북 경주시 엑스포로 9, kpopmuseu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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