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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Jan 09. 2017

천국보다 타히티

Better than Paradise

발끝에서 분홍빛 모래가 반짝이고 머리 위 녹색 봉우리에서 실타래 같은 폭포가 쏟아진다. 우리가 꿈꾸는 완벽한 휴양과 신령한 야생이 공존하는, 이 세상에 없던 세계다.


Tikehau 

티케하우, 산호와 새들의 왕국


보트가 수면을 경쾌하게 때리며 광활한 청록빛을 가로 지른다. 바닷속에 고래를 닮은 검은 너럭바위가 보일 듯 말 듯 비치고, 부드러운 온풍이 졸음을 실어 나른다. 청명한 하늘에 붉은발얼가니새(Red-footed Booby)가 낮게 유영해 붉은 물갈퀴에 손이 닿을 것 같다. 티케하우 섬의 투헤라헤라(Tuherahera) 마을 선착장에서 섬의 남동쪽에 있는 티케하우 펄 비치 리조트(Tikehau Pearl Beach Resort)로 향하는 길. 타히티에서 306킬로미터를 가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짓는 신혼부부가 보트에 함께 오르지 않았다면, 이 광막한 바다에서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모험 그 자체였으리라. 

거대한 라군으로 둘러싸인 모투에 자리한  티케하우 펄 비치 리조트.  © TIKEHAU PEARL BEACH RESORT


남태평양의 푸른 눈


남태평양 한가운데 118개 섬이 흩어져 있는 프렌치 폴리네시아(French Polynesia)는 크게 마르키즈 (Marquises), 투아모투(Tuamotu), 소시에티(Society), 오스트랄(Austral), 감비에(Gambier)의 5개 제도로 나뉜다. 프렌치 폴리네시아 제도의 한쪽 끝부터 다른 쪽 끝 까지 길이는 2,000킬로미터가 훌쩍 넘는다. 칠레령의 이스터 섬과 피지 제도까지 아우른다면 폴리네시아인이 지구 상에서 가장 넓은 해양 영역을 개척한 민족인 셈. 아마 폴리네시아인조차 이곳의 모든 섬을 둘러보기란 평생 불가능할지 모르겠다. 광활한 영역만큼 이곳의 지형을 하나로 묘사하기란 쉽지 않다. 그중 투아모투 제도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자리한 티케하우 섬은 작은 모투(motu, 섬)로 이뤄진 환초다. 환초는 화산섬이 바닷속으로 침강하면서 섬 가장자리에 자라던 산호만 반짇고리 형태로 덩그러니 남은 것인데, 산호초 안쪽으로 수심이 낮고 물결이 잔잔해 거대한 라군을 만든다. “수백 개의 작은 섬이 이어져 있습니다. 셀 수도 없지요. 바닷길을 따라 마라톤을 뛸 수도 있어요. 꽤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티케하우 펄 비치 리조트의 직원 앙젤리크 티노루아(Angélique Tinorua)가 수평선을 손으로 훑으며 말한다. 보트가 속도를 줄이며 육지를 향해 미끄러지자 옥빛 바다 위 수상 방갈로가 꿈처럼 일렁인다. 바다는 보는 각도에 따라 짙은 푸른색에서 초록색, 이어 유리처럼 투명 한 빛결로 바뀐다. 세상의 온갖 청록 계조를 다 풀어놓은 것 같다. 분홍빛 해변에 누워 책을 들여다보는 여자와 나무 덱에 앉아 물고기를 관찰하는 남자의 모습이 느긋하고 평온하다. 머릿속에서 그리던 남태평양 휴양지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그런 풍경.


“요라나(la ora na)!” 타히티 말로 인사하며 꽃으로 만든 목걸이를 건네는 직원은 대부분 타히티 원주민이다. 공항이나 호텔은 물론 현지인의 집을 처음 방문할 때 그들은 환대의 의미로 티아레(tiare) 꽃으로 만든 헤이(hei, 목걸이)를 목에 걸어준다(반면 작별할 때는 조개 껍질 목걸이를 건넨다). 1700년대 타히티 섬에 닻을 내린 유럽 인에게도 그랬을까?


1767년 6월 영국 해군 새뮤얼 월리스(Samuel Wallis)가 그의 선박 돌핀(Dolphin)을 몰고 타히티 소시에티 제도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정반대였다. 검은 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린 매혹적인 젊은 여성을 태운 수백여 개의 카누는 마치 이국적인 환영 의식처럼 보였지만, 이내 돌변해 선박을 공격한 것. 1768년 4월 라부되즈(La Boudeuse)와 레투알(L’Étoile)호를 이끌고 타히티에 도착한 프랑스 함장 부갱빌(Bougainville)의 기록은 또 다르다. 타히티에서 고작 9일간 머문 그는 타히티 인의 우호적 환대, 심지어 비너스를 닮은 여인과의 성적인 만남을 환영 인사로 ‘제안’받는 등의 일화에 대해 늘어놓았으니까. 과장이 있는지는 몰라도 이듬해 남태평양을 탐험하던 제임스 쿡(James Cook) 또한 타히티 여인의 억압되지 않은 성문화와 외설적인 춤 등에 관해 기록을 남겼다. 그러니 수많은 유럽 인(대부분 남성)이 머나먼 남태평양의 섬을 원초적 자연이 깃든 이상향으로 묘사하고 동경하며, 예술적 소재로 사용한 것에 조금은 수긍이 간다. 

하나의 바닷길을 두고 크고 작은 모투가 왕관을 두르고 있는 듯한 티케하우 섬. ⓒ TIKEHAU PEARL BEACH RESORT

티케하우 섬은 타히티에 관한 온갖 루머와 환상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보라보라(Bora Bora)와 무레아(Moorea) 같은 유명 관광지에 비하면 외딴 시골이나 다름없죠. ‘평화로운 땅(peaceful landing)’이라는 의미의 이름처럼 이곳에서는 그저 긍정적 태도와 느긋한 마음이 필요합니다. 5년 전만 해도 예비 전력을 위해 밤마다 발전기를 돌려야 했어요. 비가 오면 여전히 물탱크에 담아 나중에 사용하고요.” 프랑스 출신의 총괄 매니저 안 트랑 탕(Anne Tran-Thang)이 방갈로로 안내하며 말한다. 티케하우 펄 비치 리조트는 섬의 유일한 특급 리조트지만, 화려한 부대시설과 서비스로 무장한 호사로움만 기대한다면 실망할지 모른다. “원하는 것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열대지방에서 초콜릿을 보기 어려운 것과 같죠. 하지만 거대한 물고기 어장과 다름없는 섬을 매일 탐험하며 숨은 모투를 발견하고, 새로운 액티비티를 즐기다 보면 그런 생각은 금세 사라질 거예요.” 


춤추는 새들의 섬


바닷길 안쪽 라군을 가로질러 티케하우 섬에서 가장 유명한 모투인 버드 아일랜드(Bird Island)로 간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초록 바다는 어지러울 만큼 명징한 색깔을 내뿜고 부드럽게 일렁인다. 보트에서 내려 발가락에 잔뜩 힘을 쥐고 표면이 날카로운 산호 화석을 건너자 덤불이 사방으로 뒤엉킨 새들의 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살을 파고드는 듯한 강렬한 햇살 아래 흰제비갈매기 그림자가 머리 위로 휙 지나간다. 순백의 날개가 움직일 때마다 선명한 명암을 만든다. 아름답고 우아하며 군더더기 없는 흰색 앞에서 그저 “와” “와” 탄식이 쏟아진다. “이 곳에만 조류 십여 종이 서식하는데, 검은제비갈매기와 갈색얼가니새가 가장 많은 군을 이룹니다. 보통 나뭇가지에 둥지를 만들어 알을 낳고, 라군에서 물고기 사냥을 하지요. 쉿! 저기 나뭇가지 위에 어미를 기다리는 어린 흰제비갈매기가 있네요. 아직 나는 법을 몰라 저렇게 하염 없이 어미 새를 기다리는 겁니다.” 버드 아일랜드 가이드가 관목 아래 몸을 낮추며 나지막하게 말한다. 아기 새라 하기에는 몸집이 좀 큰 편인데, 이방인의 중얼거림 앞에서도 깊고 검은 눈동자를 정면에 응시한 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킨다. 그 옆에는 조그마한 알 하나가 나뭇가지 사이에 끼여 있다. 금방이라도 땅에 떨어질 것 같지만 접착제로 부착한 듯 흔들림이 없다. 손이 닿을 만큼 낮은 키의 나무 틈에서 새들은 그들 나름의 질서와 균형을 지키며 평온하게 성장하는 중이다. 천적이 없는 이 섬은 그들에게 안락하고 안전한 보금자리일 테다.

나뭇가지에 앉아 어미 새를 기다리는  어린 흰제비갈매기. ⓒ 신진주

말라비틀어진 나뭇잎 더미 사이로 몸을 숨긴 소라게(Hermit crab, 허밋 크랩)의 집게가 슬쩍 나와 있다. 킹 크랩이 벗어 던진 빈 허물도 눈에 띈다. “아, 저 나무 꼭대기에 붉은발얼가니새가 있어요. 몸집이 아주 크고 목이 굵죠. 이 섬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닷새랍니다.” 가이드의 말처럼 불협화음 속에서 독보적인 크기와 외모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무의 제일 높은 곳에 우아하게 앉아 아랫 동네를 관찰하는 붉은발얼가니새는 이름처럼 붉은 물갈퀴를 지녔다. 양쪽 날개를 펴면 그 길이가 1.5미터나 된다고. 버드 아일랜드의 대장인양 늠름한 새의 움직임이 생경하면서도 신비롭다. 모투 투어는 상어들이 노니는 라군으로 이어진다. 최대 수심이 2미터 남짓 될 만큼 만만 하고 물결이 잔잔하다. 수영에 자신이 없어도 모투와 모투 사이를 제법 씩씩하게 헤엄쳐 건널 수 있다. 정강이에 상어 지느러미가 스치긴 했지만, 라군에서 물고기를 먹고 사는 아담한 레몬 상어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으니 겁낼 필요는 없다.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투명한 바다 안에서 나른하게 움직이다 보니 그림 같은 풍경에 들어가는 듯하다. 라군 너머로 화석이 된 산호에 부딪치는 하얀 파도와 야자수 그늘이 아른거린다.

티케하우 섬 라군에는 풍부한 어종이 서식한다. 투명한 바닷속에 온순한 레몬 상어와 만타레이, 열대어가 평화롭게 헤엄친다. ⓒ 신진주

타히티 인처럼


모투 투어는 티케하우 섬을 만끽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무인도가 대부분이지만, 모투 하나를 소유하고 있는 프라이빗 아일랜드 리조트도 많다. 투헤라헤라 마을 선착장에서 다시 보트를 타고 티케하우 섬 남서쪽에 자리한 또 하나의 모투로 향한다.


야자수와 덤불로 둘러싸인 니나무 리조트의 방갈로. 섬의 나무와 산호 등 천연 건축자재로 지었다. ⓒ 신진주

“호주 태생인 대표가 4년 전 이 모투에 니나무 리조트(Ninamu Resort)를 지었어요. 타히티에 오래 거주하는 외국인은 대부분 비슷한 과정을 겪죠. 이곳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거나, 정착하거나. 섬의 목재와 산호로 지은 방갈로로 우리만의 작은 천국을 만들었어요.” 자신을 비비 카에나(Vivi Kaena)라고 소개하는 니나무 리조트의 홍보 담당자가 말한다. 뭍에는 선베드에 누운 남녀가 황금 빛 석양을 말 없이 응시하고 있다. 우거진 야자수 사이로 방갈로 지붕이 드문드문 보이는 풍경이 비밀스러운 대자연의 품에 파묻힌 형국이다. 신발을 신고 다니는 이도 없고, 심지어 객실 열쇠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숲속 작은 왕국처럼 자리한 리조트에는 살찐 강아지 초푸가 어슬렁거리며 방갈로를 제 집처럼 드나든다. 나무 덱으로 지그재그로 연결한 방갈로는 하늘을 가릴 만큼 큼지막한 야자수와 덤불로 둘러싸여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는데, 내부는 꽤 규모가 크다. 2층 구조에 해변 방향으로 널찍한 테라스가 있고 그 위에 매달린 해먹이 흔들거린다. 방갈로는 전통적인 폴리네시안 집처럼 온갖 천연 건축자재를 활용해 지었다. 나무로 골조를 만들고 새하얀 산호 조각으로 벽면 안팎과 천장 일부를 빼곡하게 채웠다. 야자수와 판다누스(pandanus) 잎사귀를 따서 엮어 단단하게 고정해 만든 2층 천장은 영화 <블루 라군>에서 브룩실즈가 낮잠을 자던 트리 하우스를 떠올리게 한다. 한번 앉으면 일어나기 힘든 폭신한 소파와 붉은 꽃을 꽂은 빈 바카디병, 창을 통해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바람은 그저 쓸데없는 생각을 내려놓고 타히티 사람처럼 지내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곳에서 삐걱거리는 화장실 문과 수평이 맞지 않은 목조 계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단 한 가지, 개방된 창으로 자유롭게 들락거리는 벌레는 견디기 힘들다. 빛을 쫓아 모이는 작은 벌레들과 한몸이 되고 싶지 않다면 캐노피를 매트리스에 완벽하게 감싸는 재주가 필요하다.

야자수와 덤불로 둘러싸인 니나무 리조트의 방갈로. 섬의 나무와 산호 등 천연 건축자재로 지었다. ⓒ 신진주

“매일 아침 섬 반대편 해변으로 만타레이(manta ray, 쥐가오리)를 만나러 갑니다. 날개를 펴면 몸 길이가 6미터나 되지요. 그들과 만날 수 있는 건 영적인 행운 이에요.” 총괄 매니저 마크 콜먼(Mark Coleman)이 만타레이 날개처럼 팔을 양쪽으로 쭉 뻗으며 말한다. 만타레이는 티케하우 섬 라군에 서식하는데, 큰 것은 무게가 6톤이나 된다고. 사람들은 만타레이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고, 손으로 헤엄치거나 조명등을 금지하는 등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 밤새 거센 바람이 분 탓인지 막상 도착한 해변에 끝내 만타레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른 아 침부터 보트를 점검하던 콜먼은 ‘뭐 어쩌겠어’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들썩인다. 언제나 그렇듯 자연이 허락한 딱 거기까지. 문득 마음 한 편에 숨겨둔 혈기 왕성한 활력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동경이 교차한다.

다섯 살 때부터 서프보드를 잡았다는 비비 카에나는 니나무 리조트에서 서핑 강습을 한다. ⓒ 신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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