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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Feb 23. 2017

6번 국도 자동차 여행 BEST 8

정감 있는 플리 마켓과 하우스 미술관을 돌아보고 건강한 산야초 밥상을 맛본 다음, 눈으로 뒤덮인 산골 마을에서 하룻밤 머문다. 6번 국도를 따라 양평과 횡성, 평창의 마을을 넘나들며 겨울 자동차 여행의 묘미를 실감해보자.


1. 문호리 리버마켓

문호리 리버마켓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병아리 걸개그림. ⓒ 임학현

매달 첫째 주와 셋째 주 주말. 양평의 외딴 강변에 들뜬 표정의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든다. 노란 병아리를 품은 걸개그림이 장대에 걸리고, 150여 개의 부스가 구불구불한 강변길을 따라 늘어선다. 강변의 너른 들판에 제멋대로 흩어진 의자, 테이블에서 피크닉을 즐기거나 모닥불에 둘러앉아 손을 녹이는 이들과 잔디밭을 내달리며 연을 띄우는 아이들. 2014년 봄 이래 양평의 주말을 분주하게 만든 문호리 리버마켓의 풍경이다.


“처음에는 양평 주민과 예술가가 모여 조촐하게 플리 마켓을 꾸렸어요. 지역과 연령에 제한을 두지 않으니 차츰 전국 각지에서 개성 있는 셀러가 모이기 시작하더군요. 이곳에서는 서로를 이름 대신 닉네임으로 부르죠.” 문호리 리버마켓을 처음 기획해 감독님으로 통하는 ‘캐논아빠’가설명한다. 매달 한 차례 열리던 리버마켓은 지난해 봄부터 월 2회로 늘렸고, 가을부터는 여주와 제천에서도 번갈아 개최하기 시작했다고. 매주 장소를 돌며 리버마켓을 열고 있는 셈이다. “마켓에 참가한 셀러는 모두 자신이 직접 만든 물건을 판매해야 합니다. 심지어 자신의 부스를 드러내는 간판도 각자 손으로 만들어야 하죠.” 이런 단순하면서도 명쾌한 참가 조건은 각양각색의 품목을 갖춘 풍성한 플리 마켓으로 자리 잡게 만들었다. 손수 그린 일러스트 간판을 내건 친환경 식자재 부스, 자연 속 캠프 사이트를 연상시키는 카페, 자체 개발한 가열 기구로 기발한 메뉴를 선보이는 ‘치포스(치즈와 포테이토, 스테이크를 함께 내는 메뉴)’ 푸드 트럭 등을 지나치며 걸음은 자연스레 느려진다. 

리버마켓 1회부터 참가한 문호리 버거. ⓒ 임학현

“매달 첫째 주는 병아리마켓이에요. 처음 참가한 셀러가 이날 시범적으로 기존 셀러와 함께 자신의 부스를 차리죠.” 오후에는 아이들이 직접 셀러가 되어보는 ‘루이의 게릴라 벼룩시장’도 들어선다. 집에서 쓰지 않는 장난감을 들고 나온 아이부터 공예가인 부모님에게서 배운 도예 작품을 준비한 아이까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테이블에 자리를 차지한 아이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손님맞이에 나선다. 문호리 리버마켓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느긋하게 강변 풍경을 감상하고, 셀러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물건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음식을 맛보는 사이 이곳에 감도는 정겨운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매주 마켓을 치르고 나면, 셀러끼리 모여 끝장 토론을 해요. 다음 마켓에서 개선해야 할 부분을 공유하죠.”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염원이 담긴 리버마켓의 상징 병아리 걸개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이와 같은 참가자의 열정이 멈추지 않는 한 리버마켓은 문호리 강변을 지킬 것이다.


첫째·셋째 주 주말 10am~일몰,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북한강로 941, rivermarket.co.kr


2. 구하우스

조민석 건축가의 모던한 감성이 담겨 있는 구하우스의 외관. ⓒ 임학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저마다 애정을 느끼는 물건이 하나쯤 있을 것이다. 좀 더 발전해 본격적으로 수집에 나서면 나만의 컬렉션을 완성하기도 한다. 수집 범위가 넓어지고 노하우가 늘면서 차츰 자신의 소장품을 모아놓은 전시 공간을 갖는 상상도 품게 된다. 이처럼 개인이 정성스레 수집한 작품으로 채운 미술관은 국가나 재단에서 운영하는 대규모 미술관보다 좀 더 내밀한 취향을 간직한다. 지난여름, 문호리에 조용히 문을 연 구하우스 역시 한 개인의 취미에서 시작한 공간이다. 


구하우스를 연 주인공은 기업 CI를 개발하는 디자인 포커스의 구정순 대표. “늘 사회 환원에 대해 고민하곤 했어요. 당초 학교를 지을 생각이었는데, 젊은 시절부터 모으기 시작한 작품 수가 늘어나면서 미술관으로 방향을 바꿨죠. 다른 어느 곳에도 없는 집 형태의 미술관으로 말이에요.” 그녀는 30년 가까이 작품을 모으는 동안 취향과 안목도 변했다고 한다. 그렇게 2층으로 된 널찍한 저택에 자신만의 컬렉션을 채운 것이다.

라이브러리 서가에 꼽혀 있는 아트 북 또한 구정순 대표의 수집품이다. ⓒ 임학현

우선 이름처럼 집을 테마로 꾸민 공간 구성이 돋보인다.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조민석 건축가가 잿빛 벽돌을 엇갈리게 배열한 모던한 외관은 한적한 문호리 마을 풍경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다. 곡선과 직선을 혼합해 안마당을 품도록 설계한 구조는 실내에 들어가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다. 입구 앞으로 펼쳐진 가느다란 복도와 통유리창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그리고 클로크룸, 포런트룸, 리빙룸, 베드룸, 라이브러리 등 집의 기존 형태를 반영한 공간 배치는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클로크룸에는 오용석 작가의 비디오 아트 작품을 상영하고 프런트룸에선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 줄리안 오피(Julian Opie)의 팝아트,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드로잉 등 익숙한 현대미술 대가의 작품이 하나씩 등장한다. 소파와 장작 난로 그리고 예술 서적으로 서가를 채운 라이브러리 너머에는 건축가이자 실용주의 디자이너 장 푸르베(Jean Prouve)의 가구로 꾸민 근사한 방도 있다. 방마다 무심하게 놓은 테이블부터 미술관 마지막 코스인 카페테리아의 조명과 모빌까지, 작품과 인테리어의 경계가 사라진 듯하다. 구정순 대표가 테마를 정해 자유롭게 배치한 공간을 천천히 돌아보며 자신의 미적 취향을 테스트해봐도 좋겠다. 일반 미술관처럼 기획전을 준비하지는 않지만, 다음 방문 때는 또 다른 작품이 어느 방에추가될지 모를 일이다. 그녀의 작품 수집은 여전히 진행 중이니까.


1만5,000원(음료 1잔 무료 제공), 화~일요일 10:30am~5pm(토요일·공휴일 6pm까지), 031 774 7460,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무내미길 49-12, koohouse.org



3. 중미산 자연휴양림

트리하우스에 밤이 찾아오면 저마다 망원경을 설치해 별을 관측하기 시작한다. ⓒ 임학현

어린 시절 마크 트웨인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읽은 뒤, 숲속에 나만의 비밀 아지트가 하나쯤 있었으면 싶었다. 북유럽이나 동남아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울창한 숲에 친환경 트리하우스 형태의 숙소를 지어 이런 어릴 적 로망을 실현시켜주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기분을 누릴 공간을 찾기가 어려웠다. 지난겨울 중미산 자연휴양림에 트리하우스가 들어서기 전까지 말이다.


지상 1미터 위에 설치한 구름 모양의 클라우드하우스를 비롯해 통나무 목구조의 로그캐빈하우스 등 총 7동으로 이뤄진 트리하우스는 중미산 자연휴양림을 일약 스타덤에 올렸다. 특히 아이를 동반한 가족 여행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모든 객실은 나선형 계단으로 이어진 다락방을 갖춰 은밀한 아지트에 머무는 기분도 제법 든다. 


이곳의 진가는 밤이 되어야 제대로 실감할 수 있다. 휴양림 사무소에서 트리하우스 이용자에 한해 무료로 천체망원경을 대여해주는데, 밤이 긴 겨울에는 한층 빛을 발한다. 사방이 어두워지고, 달과 별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각 트리하우스의 테라스는 한껏 분주해진다. 천체망원경을 세워두고 본격적으로 별 관측에 나서는 것이다. 망원경에 익숙하지 않은 이가 수억 광년 떨어진 별을 제대로 포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트리하우스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던 가족 단위 여행자의 아버지들은 이 순간만큼은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해 렌즈의 핀을 조절해가며 달과 별을 찾아 나선다. 행성의 위치가 시시각각 변하는 탓에 렌즈의 방향을 거듭 바꿔야 한다. 그런 아버지의 수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한 아이는 “별이 우리를 쫓아오고 있어”라고 천진난만하게 외친다. 


사실 온전히 천문 관측에 집중하고 싶은 이라면 휴양림 남쪽에 있는 중미산 천문대로 향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러나 온 사방이 어둑어둑해진 고요한 중미산 중턱에서 보내는 낭만적인 하룻밤을 포기하기란 너무도 아쉽다. 육안으로도 볼 수 있는 수없이 반짝이는 별빛에 로망을 자극하는 트리하우스까지 있으니 말이다. 물론 그런 고민은 일단 치열한 추첨 경쟁에서 살아남은 뒤에 가능할 테지만.


입장권 1,000원(동절기 면제), 트리하우스 4만6,000원부터, 031 771 7166,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산201-2, huyang.go.kr


4. 풍수원성당

약 100년 전에 지은 고딕 양식의 첨탑이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 임학현

양평읍을 지나 용문면부터는 차츰 주변 건물의 높이가 낮아지고 한적한 국도 여행의 묘미가 더해진다. 길 우측으로 가느다랗게 북한강의 지류를 이루는 흑천을 지나자 완만한 산골 마을로 뒤바뀐다. 그렇게 횡성에 진입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원도에서 가장 오래된 천주교 유산이 있는 풍수원마을이 나온다. 


1910년에 완공한 풍수원성당은 서울 약현성당, 완주 되재성당(현 고산성당), 명동성당에 이어 국내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그 긴 세월 이전부터 이곳 마을은 남다른 역사를 품어왔다. 19세기 초 신유박해 당시 용인에 머물던 천주교 신자들이 정착한 곳이 바로 풍수원마을이다. 이후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신자의 은거지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서품을 받은 정규하 신부는 이곳에 한국인 신부 최초로 성당을 세우기로 결심한다. “당시 중국 인부를 동원해 벽돌을 구워 쌓았다고 해요. 실내는 나무 기둥으로 지탱하고, 외부는 흙벽돌로 마감했고요.” 풍수원성당을 관리하는 이화균 사무장이 설명한다. 사실상 조명과 전기 설비를 제외하면 약 100년 전의 원형이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라고 한다. 고딕 양식 종탑의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로마네스크식 원형 아치의 천장이 드러난다. 나무 바닥을 깔아 삐걱거리는 소박한 경내에는 경건하게 기도를 드리는 신자가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킨다.

풍수원성당의 내부. 이곳에서 매년 전국 각지의 신자가 참여하는 성체현양대회가 열린다. ⓒ 임학현

오랜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한 덕분에 풍수원성당은 영화 <약속>을 비롯해 숱한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각광받아왔다. 성당 뒷편에는 예수의 고난을 상징한 ‘십자가의 길’을 조성해 가볍게 산책을 이어갈 수 있다. 판화가 이철수가 각 고난의 비석에 글씨와 그림을 새긴 것이 흥미롭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길이 끝나는 지점에 자리한 과거 풍수원에 머물던 이들의 생활 도구를 진열한 유물전시관도 함께 둘러보자.


033 343 4597,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30, pungsuwon.org


5. 오음산과 태기산

오음산 산자락에서 직접 재배한 약초를 주재료로 요리한 산야초밥상. ⓒ 임학현

강원도에는 설악산, 오대산, 치악산, 태백산 등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이 즐비하다. 이 외에도 강원도의 각 동네에는 이름을 일일이 헤아리기 힘든 산이 온 사방을 채우고 있다. 6번 국도를 타고 횡성읍에 접어들기 전, 홍천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오음산도 그런 무명의 산 중 하나다. 이 평범하고 깊숙한 산골짝을 굳이 찾은 이유는 오음산산야초밥상을 맛보기 위해서다.


“마을 할매들 솜씨가 워낙 좋아 함께 식당을 열어보자고 제안했죠.” 10년 전, 오음산 자락의 산골 마을에 정착한 한봉기 씨는 마을 주민과 함께 인근에서 난 야생초를 주재료로 요리하는 농가 식당 오음산산야초밥상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또 옛 폐교를 개조해 강원도 향토 음식 만들기 체험을 해볼 수 있는 영농 조합 법인 오음산캠프도 세웠다. “하필 이 추운 계절에 찾아왔는지 몰라. 가장 식자재가 부족할 때인데.” 아쉬움이 담긴 깊은 한숨을 내쉬던 그녀는 이곳의 유일한 메뉴인 산야초밥상을 재빠르게 준비한다. 마을에서 나는 식자재에 따라 계절마다 메뉴가 조금씩 바뀌는데, 겨울에는 반찬이 얼마 없다고 아쉬워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해바라기씨를 넣은 도토리묵과 돼지감자 샐러드, 산나물 메밀 전병, 더덕 구이, 고들빼기 무침 그리고 산초와 명이 장아찌를 곁들인 돼지고기 수육 등 열 가지가 넘는 정갈한 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메인 메뉴는 강원도 농업기술원에서 특허를 받은 강원 나물밥. “오음산 인근에서 채취한 참취, 곰취, 어수리, 곤드래 이렇게 네 가지 나물을 넣고 가마솥에서 지은 밥이에요.” 양념장을 넣어 쓱싹 비벼서 크게 한 숟가락 뜨자 쌉싸름하면서도 달큰한 산나물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수세미를 담근 차에 진득한 감자떡까지 곁들이면 오음산의 건강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풍력발전단지를 지나 태기산 정상에 이르는 산악 구간에서 만끽하는 설원 드라이브. ⓒ 임학현

강원도식 만찬을 즐긴 뒤에는 횡성 동쪽의 태기산으로 올라가보자. 물론, 산행이 아닌 자동차로 말이다. 평창 봉평과 경계를 이룬 태기산은 해발 1,261미터로 횡성에서 가장 높은 산인데, 정상 부근까지 임도가 이어져 산악 드라이브가 가능하다. 특히 눈이 푹신하게 쌓인 한겨울에는 산마루에서 오토캠핑을 즐기는 이도 더러 있다. 6번 국도의 커브 구간을 정신 없이 통과하다 보면 ‘태기산 정상입니다’라고 쓰인 표지판이 나온다. 정확하게는 태기산 정상까지 향하는 임도의 시작점이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틀어 좁은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되는데, 한겨울에는 사륜구동 차량이 필수다. 조심스럽게 액셀러레이터를 밟아 경사를 넘나드는 순간 온 사방이 새하얗게 덮인 산등성이와 10여 대의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장관이 시야에 들어온다. 희부연 눈안개가 흩날리는 가운데, 경이로운 설경이 펼쳐지는 이곳은 겨울 드라이브의 진정한 묘미를 알려준다.


오음산산야초밥상 2만 원(2인 이상, 예약 필수), 10am~9pm, 둘째 주 일요일·월요일 휴무, 010 4188 8114,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금계서로 276.


6. 운교산방

주인 내외가 수집한 LP를 감상하며 차분한 하룻밤을 보내자. ⓒ 임학현

동계올림픽을 앞둔 평창은 숙소 선택의 폭이 굉장히 다양해졌다. 대규모 스키 리조트 단지와 호텔, 모던한 펜션 그리고 배낭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까지. 양적인 면에서 강원도의 어느 지역보다 숙소의 인프라를 잘 갖춘 곳임에 분명하다. 만약 호젓한 휴식을 원하는 이라면 방림면 운교리의 산골 마을로 향하면 된다. 


마을 끄트머리에 ‘LP and BOOK, ART Stay’란 간판을 내건 운교산방의 주인은 패션지 에디터 출신의 칼럼니스트 김경. 그녀는 5년 전 오랜 도시 생활을 접고 남편과 함께 무작정 강원도로 향했다. 그렇게 부부는 전원주택을 알아보던 첫날, 운명처럼 한 집을 발견했다고. 정착 생활 동안 이 낡은 집을 일일이 고치고, 가구를 만들고, 남편이 직접 그린 그림을 걸어 집을 가꾼 뒤, 지난해 에어비앤비를 통해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 “예전에 네팔 포카라의 한 호텔에 머문 적이 있어요. 저렴하고 평범한 호텔이었는데, 주변 자연 풍광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그곳에서 적지 않은 위로를 받았죠. 그때의 경험 덕분에 이와 같은 숙소를 열게 됐어요.”

운교산방을 운영하는 김경 씨. 그녀가 기르는 고양이(풀잎)와 개(개울이와 나무) 역시 이곳을 이루는 풍경이다. ⓒ 임학현

이곳에 도착한 투숙객은 가장 먼저 LP 턴테이블 사용법부터 익히게 된다. 본채에선 TV 대신 주인 부부가 모은 7,000여 장의 LP를 마음껏 감상하고, 서가를 가득 채운 책을 읽거나 드립 커피를 직접 내려 마시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정말 멍 때리기 딱 좋은 곳이에요. 도시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보내는 시간이 참 귀했어요. 여기에선 그런 시간을 존중해주죠.” 사실 마을 주변에 이름난 관광 명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온화한 산골의 정경 속에 자리 잡은 아담한 집에 머무는 것 자체로 마음이 놓인다. 나홀로 혹은 2명이 방문한다면 별채를 예약해보자. 땔감으로 뜨끈하게 바닥을 데우는 구들장으로 된 자그마한 방에 푹 파묻힌 채 휴식에 집중할 수 있다. 욕실에는 창밖으로 포근하게 눈이 쌓인 마을 풍경이 내다보이는 욕조를 갖췄으며, 사다리로 이어진 다락방에 누워 하염없이 밤하늘을 감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본채와 별채의 테이블에는 수많은 이의 손때가 묻은 두툼한 방명록이 놓여 있다. 짤막한 감사 인사부터 정성스럽게 그린 마을 풍경 그림과 직접 쓴 시까지. 운교산방을 스친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제법 흥미롭다. “이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엮어보면 어떨까 싶어요. 무명의 인터뷰집으로요.” 실제 김경 씨는 에디터로 일하던 시절, 유명인을 취재해 엮은 인터뷰집 <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를 낸 적이 있다. 그녀의 바람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여유가 생기면, 현재 게스트하우스 바로 옆에 마련한 집에 중고 LP 숍 겸 책방을 열고 싶어요.” 평화로운 산골 마을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과 책 그리고 진정한 휴식을 여행자와 나누는 숙소. 따스한 온기가 감도는 운교산방은 겨울에 찾아야 진가를 누릴 수 있는 곳이다.


별채 4만7,000원부터, 033 336 6151, 강원도 평창군 방림면 비네소골길 86-56, blog.naver.com/sookim19



7. 브레드메밀

평창에서 난 쓴메밀로 구운 바게트는 쫀득한 식감을 자랑한다. ⓒ 임학현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등장한 문장처럼 평창의 최대 산물은 메밀이다. 소설의 주무대이던 봉평읍에는 약 80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메밀밭이 지천에 널려 있으며, 매년 가을 효석문화제 때 소복이 흐드러진 메밀꽃의 향연을 즐기기 위해 수많은 이가 평창으로 향한다. 꽃이 완전히 저문 계절에 찾은 이상, 메밀로 만든 다채로운 향토 음식으로 그 아쉬움을 달래보자. 


평창읍에 있는 평창 전통시장은 동계 올림픽 개최와 함께 평창 올림픽시장으로 이름을 바꿨다. 5일장을 겸한 이곳에선 메밀 막국수, 메밀부침, 메밀전병 등 메밀을 주재료로 한 맛깔나는 음식을 모두 맛볼 수 있다. 이웃한 정선 아리랑시장이나 원주 중앙시장처럼 젊은 청년들이 활기를 불어넣거나 특화된 볼거리가 많지는 않다. 그 대신 지난봄, 작은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빈 상가가 늘어나던 썰렁한 메밀부침 골목 끝에 자리 잡은 브레드메밀. 침체된 시장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모던한 인테리어가 시선을 끄는 베이커리 겸 카페가 등장한 것이다. “평창의 메밀을 주재료로 사용한 빵집이 하나쯤 있었으면 했어요.” 봉평에서 난 타타리메밀차를 권하며 최승수 씨가 말한다. 평창에서 나고 자란 그는 누나 효주 씨와 함께 브레드메밀을 운영하고 있다. 효주 씨가 빵을 구우면, 승수 씨가 정성스럽게 자르고 포장한다. “동생과 함께 제주의 플리 마켓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 후 둘이서 함께 뭔가를 시도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두툼한 메밀발효빵에 호두와 오렌지, 건포도를 채운 ‘보물상자’ 빵을 막 구워낸 효주 씨가 말한다. 

평창 올림픽시장에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브레드 메밀의 남매. ⓒ 임학현

바게트와 도넛, 단팥빵, 카스텔라 등 베이커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뉴를 준비하는데, 대다수 빵의 주재료는 평창에서 난 쓴메밀이다. 더불어 치즈와 호박, 고구마 등 지역에서 난 제철 식자재를 최대한 활용한다고. 두 남매가 의기투합한 빵집은 이미 입소문이 퍼졌는지 지역 주민은 물론, 차로 1시간 넘게 걸리는 제천 등 타지에서 온 단골 손님을 거느릴 정도다. “바로 옆의 비어 있는 가게를 스페셜티 카페 겸 프로젝트 키친으로 오픈할 예정이에요.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음식을 선보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어요.” 이들이 곧 평창의 전통시장에서 벌일 두 번째 도전도 궁금해진다. 


브레드메밀 바게트 3,000원, 10am~9pm, 월요일 휴무, 010 9631 8575,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평창시장2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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