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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Apr 27. 2017


진주에는 누가 살까? 마음속의 진주


지리산 자락이 멈춘 곳에 잠자듯 고요한 도시.
진주에 사는 사람들이 꿈과 낭만, 향수가 담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Who lives in Jinju?

마음속의 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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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암


의암 앞에서 만난 서승조 교수. ⓒ 이규열

레몬빛 오후 햇살이 산산이 부서지는 물살 위로 갈매기 두세 마리가 떠다닌다. “바다까지 멀지 않아요.” 암벽에 서서 의암이 자리한 남강 자락을 굽어보며 서승조 씨가 말한다. 여기서 갈매기를 따라 차로 30분만 달리면 남해 바다에 닿을 것이다. 진주교육대학교 과학교육과 명예교수인 서승조 씨는 국내 지질학과 공룡학의 대가로 고성공룡박물관 명예관장도 겸하고 있다. 이곳은 그가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지질학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종종 찾던 실습 장소다. 오늘은 꽤 오랜만의 방문이다.

의암을 찾아가려면 진주성 내에 자리한 촉석루 뒤쪽의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강기슭의 가파른 암벽 저 끝으로 지름 3미터 남짓한 암석 하나가 강물에 잠겨 있다. 생각보다 아담한 크기지만 이곳에 얽힌 역사적 일화 때문인지 극적인 느낌마저 든다. 나라에 재난이 닥치면 의암이 암벽에 닿는다는 전설도 있는데, 진주에서는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이야기다.



진주성 공북문 인근에서 바라본 성곽. 오른편으로 촉석루 지붕이 보인다. ⓒ 이규열

서승조 교수는 의암 이동설을 과학적으로 처음 규명한 학자다. “의암이 움직인다는 전설은 지질학적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의암을 내려다보며 그가 말한다. “남강 지류를 따라 흘러 내려오던 암석이 강기슭에 이르러 모래층 위에 박혀 오늘날 의암이 된 거예요. 촉석루를 받치고 있는 암벽의 지층이 동남쪽으로 기울어진 게 보이죠? 반면 의암의 지층은 수평으로 뻗어 있지요.” 그를 따라 조심조심 의암으로 건너간다. 비늘처럼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왼쪽으로 진주교가 보인다. 일제강점기에 지은 동명의 다리를 철거하고 1982년 새로 조성한 것이다. 조선 시대에 백정이 모여 살았다고 하는강 저편에는 무채색의 아파트 단지가 솟아 있다.


남강 산책로 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물결무늬 화석. ⓒ 이규열

암벽을 따라 나란히 뻗은 남강 산책로를 걷는다. 이곳은 진주 도심 한복판에 숨은 지질학적 보물 창고 같다. 이따금 조깅하는 이가 우리를 스쳐 달려간다. 서승조 교수는 곳곳에서 중요한 지질 구조를 찾아내 설명해준다. 수억 년 전 땅이 위로 솟아오르고, 뜯어져나가고, 물살에 긁혀온 이야기다. 그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 것이다. “진주에서 이렇게 오래된 지층과 화석이 많이 발견되는 건 지금껏 지질학적으로 평온한 지역이었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대칭으로 난 물결 자국은 강이 아닌 호수가 남긴 거예요. 1억 년 전에 이곳이 호수이거나 늪지대였단 증거죠.” 서승조 교수가 가리키는 암석 끝이 아름다운 물결 모양으로 굳어 있다.









진주 중앙시장


수복빵집의 찐빵. ⓒ 이규열

정오경 수복빵집의 작은 텔레비전에서 대통령 탄핵 발표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다. 전면 유리창에 늘어뜨린 발 틈새로 따뜻한 햇살이 들어온다. 카운터를 맡은 주인 아들은 손님을 응대할 때를 빼고는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는 주문한 찐빵을 나무 탁자 위에 내려놓고 곧장 카운터 뒷자리로 돌아간다. 팥 국물을 대충 끼얹은 어린아이 주먹만 한 찐빵 4개가 흰 플라스틱 접시 위에 놓여 있다. 숟가락으로 잘라 입에 넣자 달큼하고 따뜻한 옛날 팥 맛, 딱 그대로다. 그 맛 하나로 진주 중앙시장 끄트머리에 위치한 수복빵집은 전국적 명성을 얻었다. 손님 대부분이 동네 주민인데, 다들 익숙한 듯 찐빵을 포장해 가거나 고개를 맞대고 앉아 팥죽을 먹고 떠난다. 아마 몇 시간 후면 재료가 다 소진돼 문을 닫을 것이다.



왼쪽의 진주 천황식당의 진주비빔밥. 오른쪽의 고향 고속 펑은 진주 중앙시장에 남은, 몇 안 되는 뻥튀기 가게 중 1곳이다. ⓒ 이규열


10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중앙시장 곳곳에 향수를 자극하는 요소가 흩어져 있다. 시장 아케이드를 중심으로 진주 구도심 몇 블록에 걸쳐 제철 식자재부터 진주 꿀빵과 분식 노점, 한복집까지. 새벽이면 사람들은 아케이드 구석의 제일식당에 들러 해장국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점심시간이면 천황식당의 오래된 나무 문짝이 쉴 새 없이 여닫힌다. 직장인 무리는 꽃처럼 알록달록하고 아름답다 하여 ‘칠보화반’이라 불리는 진주비빔밥 1그릇을 후딱 해치우고 사라져버린다.

시장 한편의 가게 ‘고향 고속 펑’ 앞에 종종 서 있는 아주머니들은 햇살을 쬐며 수다가 한창이다. 깡마른 체구의 유삼암 씨가 뻥튀기 기계 뚜껑을 돌려 열자 누군가는 황급히 귀를 막고, “이거는 뻥 안 한다. 쌀이 뻥 하지”라며 다른 누군가는 핀잔을 준다. 40년 넘게 중앙시장에서 뻥튀기 기계를 돌려온 유삼암 씨는 막 튀긴 둥글레 줄기를 능숙한 동작으로 바구니에 퍼 담는다. 누군가 둥글레 줄기 하나를 슬쩍해 손에 쥐여준다. 바삭하고 고소하다. 기계를 비워내자마자 유삼암 씨는 까만 고무로 된 옛날 군모를 이용해 다음 재료를 넣기 시작한다. 꾸지뽕이다. “쌀, 약초, 차… 뭐든 갖고 오면 다 튀겨줘.” 해맑은 얼굴로 기계를 작동하며 그가 말한다. “국민학교 졸업하고 바로 뻥튀기 장사를 시작했어. 손님이 많을 때 가장 기분이 좋지. 가게 안에 옛날에 쓰던 뻥튀기 기계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거야.” 그 기계가 궁금한데, 마침 손님 1명과 목청 높여 언쟁을 시작한 그는 이쪽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다. 열정적 대화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가게를 나선다.




비봉루


비봉루에서 다도를 즐기는 박군자 씨와 녹차 1잔. ⓒ 이규열


“보세요. 꽃 1송이만 놓아도 느낌이 확 다르죠?” 방금 뜰에서 꺾어온 붉은 동백꽃을 찻상 위에 놓으며 진주연합차인회 회장 박군자 씨가 말한다. 누각 위에 차린 찻상 앞에 앉은 그녀는 분홍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곱게 차려입었는데, 이곳에서라면 응당 그런 격식을 갖춰야 할 듯하다. 그녀의 등 뒤로 키 큰 노송이 멋들어지게 휘어 있다. 오후 4시경. 나뭇가지를 우수수 흔드는 바람과 새의 울음에 쪼르륵 차 따르는 소리가 섞인다.

비봉루는 진주 구도심 북쪽 비봉산 기슭에 숨어 있다. 여기서 불과 100미터 거리에 현지인이 ‘여고’라 부르는 진주여자고등학교와 상봉동 시가지가 자리한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고요하다. 수백 년 전 포은 정몽주가 들른 날에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비봉산전 비봉루’로 시작하는 유명한 구절을 읊으며 이곳의 몽환적 풍경을 시로 남겼다. 그 누각은 사라졌으나, 대신 정몽주의 후손인 정상진 씨가 1939년에 옛 모습을 복원했다. 그의 아들 은초 선생은 촉석루 현판을 쓴 이름난 서예가였는데 바로 이 누각에서 서실을 운영했다. “비봉루는 예부터 쟁쟁한 예술인의 사랑방이었어요. 이중섭 화백도 한때 여기에 머물며 그림을 그렸죠.” 박군자 씨가 말한다. 이제는 그녀가 월요일마다 이곳에서 다도 수업을 진행한다.



비봉루 앞의 뜰. ⓒ 이규열

비봉루 앞 한옥에 새긴 문양. ⓒ 이규열


비봉루에서 내려다보이는 뜰에는 백일홍, 동백, 산수유, 서향이 철마다 피고 진다. 얼마 전부터 서향이 분홍빛 꽃을 피웠다. 천리향이라는 별칭대로 퍽 진하고 상큼한 향이 바람을 타고 퍼진다. 누각을 마주보는 한옥은 예술 작품이나 다름없다. 유리문과 넓은 창살 등 일본풍을 가미했고 난간 아랫부분을 따라 일렬로 봉황 모양을 뚫어놓았다. 서쪽에서 반짝이는 햇살이 마루 위로 난간의 그림자를 드리우며 새의 실루엣을 또렷이 새긴다.

“여기에 앉아 있으면 꼭 산속에 있는 것 같아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숲에 가려서 시내가 잘 보이지 않거든요.” 찻상 앞에 앉아 박군자 씨가 내준 쌉쌀한 차를 후루룩 마신다. “차는 세 번에 걸쳐 마신다고 해요. 먼저 입을 축이는 정도로 마시며 색을 감상하고, 다음으로 맛을 보고, 마지막으로 향을 음미하는 거예요.” 설명대로 따라 해보니 마음까지 고요해지는 듯하다. 고향 부산이 현실이라면 진주가 이상향이라는 박군자 씨의 고백에 동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경상남도수목원


경상남도수목원의 열대 식물원. ⓒ 이규열

금요일 폐장 무렵, 식물원 한쪽에서 직원 서너 명이 가지치기를 하고 있다. “수고하셨습니다!” 잠시 후 입을 모아 인사한 그들은 연극을 마친 배우처럼 뿔뿔이 흩어진다. 그로부터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싱글 코트 차림에 카메라를 든 노상태 씨가 서 있다. 일주일 전 쿠바 아바나에서 돌아와 새카맣게 그을린 얼굴이다. “가까이에선 오히려 향이 안 나네요.” 초령목 앞에서 그가 말한다. 온실에 들어가자마자 진한 풍선껌 같은 향을 뿜던 꽃나무다. 그의 말대로 1미터 거리에서 가장 강렬하던 향기는 몇 발짝 다가서자 사라져버린다.

진주 시내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경상남도수목원은 58만 제곱미터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에 3,000여 종의 국내외 식물을 식재하며, 멋진 메타세쿼이아 길도 있다. 노상태 씨와 함께 인기 있는 열대 식물원을 거닌다. 살짝 습한 온실 안에는 야자수, 바나나나무 등 약 300종의 열대 식물이 자라고 있다. “식물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요. 특히 이런 뒷면요.” 그가 잎맥이 아로새겨진 큰극락조화잎 뒷면을 가리키며 말한다. 무늬월도 앞에서도 잠깐 멈춘다. 넙적하고 튼튼한 잎 표면에 레몬색으로 칠한 듯한 선이 그려져 있다. “식물의 조형적인 면에 끌리는 것 같아요.” 수목원은 노상태 씨가 종종 찾는 촬영 장소다. “작년 이맘때는 이곳에서 ‘봄처녀 찾기 프로젝트’를 했어요. 봄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여성을 현장에서 섭외해 수목원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진행했죠. 열대 식물원이 가장 멋있더라고요.”



경상남도수목원 열대 식물원에서 만난 노상태 작가. ⓒ 이규열


2년 전 고향 진주로 돌아온 노상태 씨는 지역 사진 프로젝트인 디스커버 진주에 합류했다. 진주 기반의 사진가들이 담은 진주 사진을 매일 페이스북에 게시하는 비영리 프로젝트로, 현재 그를 비롯해 사진가 4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페이스북 구독자 수는 약 5,600명이다. 촬영을 위해 노상태 씨는 매일 서너 시간 넘게 진주 곳곳을 걸어 다닌다고. “진주는 이 식물원처럼 조용한 도시예요. 우리가 뭔가 일을 벌여보기로 한 건 그 때문이죠.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면 확실히 일을 벌인 것 같아요.” 눈 덮인 웅장한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진주 도심 사진이 디스커버 진주 페이스북에 올라오자 한창 합성 논란이 벌어진 적도 있다(물론 실제 사진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사진의 촬영 장소를 공개하는데,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경상대학교 농과대학교 실습장 사진을 올리자 바로 다음 주말에 대학교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었다고 한다. 출사 장소를 공개했다고 해서 지역 사진 동호회로부터 비난받기도 했다.

식물원의 마지막 손님인 우리는 난대 식물원에서 나와 출구 쪽으로 걸어간다. 노상태 씨는 진주를 떠날 생각이 없다고 고백한다. 물론 앞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언젠가는 제가 직접 선정한 진주8경을 촬영해보고 싶어요. 그중에는 수목원도 있고, 진주 도심이 내려다보이는 옥봉동 달동네도 있을 거예요.”




 마음속 진주 두번째 이야기

진주 여행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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