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더로드 Jun 06. 2017

행복의 나라, 부탄 여행


Welcome to the Happiest Country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 이상엽


히말라야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 부탄.
은둔의 나라이자 가장 행복한 나라라고 불리는 그곳에서의 깨달음.


풍광이 바뀌었다. 바람과 빛. 풍광은 단지 눈에 보이는 장면만이 아니다. 바람을 통해 소리와 냄새가 실려온다. 살갗을 가볍게 흔든다. 풍광은 우리 몸 전체를 스치며 낯선 체험을 만든다. 공간과 공간의 이동. 현재 고도 해발 3,000미터. 눈앞에는 소나무, 전나무에 수많은 기생식물이 얽히고설켜 만들어놓은 우림이 펼쳐져 있다. 자욱한 안개는 실상 구름이다. 연중 이곳의 강우량은 3,000밀리미터에 이른다. 내가 탄 차는 아슬아슬 고개를 오른다. 좁은 도로를 지나며 마주 오는 차들이 공포스럽다. 난간도 없는 왼쪽으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벼랑이다. 차라리 눈을 감는다. 떨어지면 차가 지면에 닫기까지 참으로 영겁의 시간일 것이다. 이런 생경함이 얼마만인가? 여행작가라는 직업도 없던 시절, 1996년부터 2007년까지 12년 동안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세상을 많이 돌아다녔다. 한 해 200일 넘게 해외로 떠돌았다. 그러다 문득 재개발되는 내 집 앞 동네에서 외국보다 더 생경함을 느꼈고, 그 후론 줄곧 내 땅의 아픈 곳만 돌아다녔다.

부탄의 수도 팀푸에 자리한 오래된 사원, 팡리잠파(Pangri Zampa)의 초르텐을 돌고 있는 사람들. ⓒ 이상엽

지난해 겨울은 나 자신과 우리에게 모두 힘겨운 시절이었을 것이다. 혹한에도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였다.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이 현장을 나와 가족은 목격하고 기록했다. 그리 쉽진 않았다. 나는 이 현장의 기록과 지난 4년 내내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수집했고, 10명의 동료와 사진집 1권을 만들었다. 몸이 피곤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겨웠다. 그때 마침 부탄 취재 제안은 정신의 박카스 같았다. 오랜만에 떠날 수 있다는 기대로 사진집에 들어갈 5,000장의 사진을 400장으로 줄여나가는 과정을 즐겁게 마쳤다. 드디어 책이 나온 날, 출판기념회를 뒤로하고 바로 짐을 챙겨 떠났다. 그리고 지금, 내가 탄 차는 팀푸(Thimpu)에서 왕두에포드랑(Wangdue Phodrang)으로 가는 동부 하이웨이 해발고도 3,140미터의 도출라 고개(Dochula Pass)를 향해 힘겹게 산을 오르고 있다.




풍광은 우릴 흔든다

파로계곡 절벽 위에 들어선 탁상 사원 (Paro Taktsang). 파드마 삼바바가 수행한 동굴 주변에 1692년 건축했다. 서부탄의 가장 드라마틱한 사원 중 하나다. ⓒ 이상엽

부탄(Bhutan)의 국명은 산스크리스트어의 BHUUTTAN(Highland coutry)에서 온 것이다. 그리고 정말 부탄은 높은 곳에 자리한다. 평균 고도 2,200미터. 히말라야산맥 남사면에 위치했으니 고대에는 물고기가 놀던 바다였을 것이다. 북쪽의 티베트와 마주한 국경 지대에는 쿨라캉리(Kula Kangri, 7,554m)와 초모라리(Chomo Lhari, 7,314m) 등 7,000미터급 높은 산이 솟아 있다. 이 산들로부터 빙하가 녹아 흘러내린 물이 마나스강(Manas River), 통사강(Tongsa River), 라이닥강(Raidāk River) 등을 이루어 땅을 깊게 깎아 내리며 인도 아삼(Assam) 지역의 브라마푸트라강(Brahmaputra River)까지 남류한다.

부탄 유일의 공항이 들어선 파로(Paro)에서 수도 팀푸로 가다가 만난 파로강을 가로지르는 타초강라캉 다리(Tachogang Lhakhang Bridge)는 히말라야 산간에서 어떻게 인간이 자연에 맞서 살아왔는지를 보여준다. 티베트 출신으로 의사이자 대장장이 또는 건축가로 알려진 탕통겔포(Tangtong Gyelpo)는 1433년 이곳에 쇠사슬로 엮은 현수교를 처음 만들었다. 그는 비상한 과학적 지식으로 히말라야 일대에서 마법사로 통했으며, 많은 지역을 여행하며 이런 철교를 58개나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쇠는 녹스는 법. 지금은 위험해 건널 수 없고, 그 옆에 역시 탕통겔포가 지었다는 타초강라캉으로 가는 새로운 다리를 놓았다. 다리 중간에 서보니 이리 급히 흘러가는 계곡물에 빠지면 영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것 같다. 수많은 강이 계곡 사이를 갈라놓았으니, 인간은 공간이 분리되어 숙명처럼 살아가든지, 힘들더라도 다리를 놓아 교통하든지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전통음악을 재현하는 보테(Bhote)족 여성. 티베트계 민족이지만 인도의 영향을 받은 서남아시아 혼합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 이상엽

이처럼 계곡의 삶이란 고단하다. 부탄에서 곡물 재배가 가능한 평지는 국토의 2퍼센트뿐이고, 가축을 키울 수 있는 비탈진 초지 역시 6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러한 토지의 열악함에 비해 이곳의 기후는 매우 온화하고 강수량도 많다. 강수량이 많다는 것은 히말라야 너머 티베트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인도양에서 불어오는 습윤한 바람이 결국 히말라야를 넘지 못하고 부탄에 비를 뿌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지런히 비탈진 초지를 개간해 다랑이 논을 만들었다. 지역에 따라서는 이모작도 가능하다. 부탄의 인구가 약 70만 명, 면적이 우리네 경기도와 충청도를 합한 정도라는 점에서 농업만으로 자급자족이 가능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고원 위로 아침 해가 뜨고 산 중턱에는 구름이 걸린다.
이방인의 눈에는 그 아름다움에 홀려 농사짓는 고단함을 잊기 딱 좋다.


부탄 중부의 왕두에포드랑에서 묵는 숙소는 나무로 지은 일종의 로지다. 아침에 일어나 창을 열면 아름다운 다랑이 논과 전통 가옥이 펼쳐진다. 이 고원 위로 아침 해가 뜨고 산 중턱에는 구름이 걸린다. 일견 이방인의 눈에는 그 아름다움에 홀려 농사짓는 노동의 고단함을 잊기 딱 좋지만, 부탄의 풍광이 아늑하고 정겹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싱어송라이터 한대수는 오래전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장막을 걷어라 너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떠보자/ 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 가벼운 풀밭 위로 나를 걷게 해주세/ 봄과 새들의 소리 듣고 싶소/ 울고 웃고 싶소/ 내 마음을 만져주/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다들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 나는 정말로 찬 바람 스치던 광화문을 지나, 이 봄날의 행복한 나라 부탄에 온 것일까?




활쏘기에 열광하는 그들

도출라 고개 정상에 자리 잡은 드룩 왕걀 초르텐스 (Druk Wangyal Chortens) 108탑의 모습. 수시로 몰려오는 구름에 개마저 성불한 듯한 모습이다. ⓒ 이상엽

2004년쯤 중국 윈난(雲南) 다리(大理)에 갔을 때부터 부탄에 대한 소문은 들었다. 그곳 창산(苍山)이 히말라야산맥의 동쪽 끝이니, 언제고 그 일대를 두루 다니고픈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저 내가 알고 있던 부탄은 량차오웨이(양조위)가 신혼여행을 갔다거나, 한국인 방랑자가 그곳에서 배우 틸다 스윈턴(Tilda Swinton)을 만났다는 가십정도였다. 사실 부탄이 개방된 지는 십수 년에 불과하고 그곳에 가본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하여간 미리 공부하고 가서 편견의 시선을 보낼 것인지, 아님 그저 모른 채로 그곳에 가서 바보 노름을 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일단은 바보가 되기로 했다.

물론 나에게는 깔마와 쯔링이라는 안내인이 있다. 이 부탄의 두 남녀는 부탄정부관광청의 공식 가이드다. 친절하고, 늘 웃으며, 부지런하다. 또 같은 점이 있다면 모두 치마를 입었다는 것이다. 부탄의 남자는 ‘고(gho)’라고 불리는 전통 의상을 입는데, 짧은 치마다. 긴 양말을 신고 가죽 구두를 신는 것이 이들의 전통이다. 물론 남자가 이렇게 치마를 입었다는 것은 부탄인이 오래전 말에서 내려와 농부가 됐다는 의미기도 하다. 말 타는 유목민에게 바지는 필수기 때문. 하여간 그 두 안내인은 우리가 부탄에 대해 이미 알고 있거나 모르던 것이 그저 어떤 외부인의 편견이 아니었는지 확인시켜줄 터다. 일단 그 첫 번째는 금연 국가인지 아닌지에 대해.


수도 팀푸의 청년들. 서구 문화에 익숙하며 영어에 능통하다. ⓒ 이상엽

파로에 내려 수도 팀푸 거리를 거닐다 보면 담배를 피우는 현지인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다. 이건 나 같은 골초에게 약간의 공포다. “하지만 너무 걱정 마세요. 자기 집에서 피우거나 지정된 곳에서 피우면 되니까요”라며 칼마 역시 담배 1대를 뽑아 든다. 그는 1갑에 10개비가 든 인도산 담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어느 곳에서도 담배를 팔고 사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거 참 마술이군. 자 이제 조금 편한 마음으로 팀푸를 걷는다. 다음에는 개가 눈에 들어온다. 대낮에 거리 곳곳에서 개가 누워 자고 있다. 사람이 지나다녀도 깨지 않는다. 차도 피해간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온통 개 천지다. 이곳은 개도 성불한 나라라고 들었는데, 진짜인가? 전에 영화 감독이자 동물 보호 운동가인 임순례 감독이 다람살라(Dharmsala)의 개 이야기를 들려준 일이 있다. “십수 년 전, 다람살라에 개의 개체 수가 너무 많고, 광견병이 돌아 인도 정부가 개를 몰살 시킨 일이 있었죠. 사람들은 개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소용없었어요. 그 후에 달라이 라마가 서구 수의사의 도움을 받아 중성화 수술을 시행해 지금은 개체 수도 유지하고 훨씬 좋은 환경에서 인간과 공생한다더군요.” 여기 부탄의 개는 주인 없이 떠돌지만 건강 상태가 좋은 듯하다. 저녁이면 초롱초롱한 눈으로 구역마다 나뉘어 으르렁대며 패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 역시나 개는 성불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부탄의 국기이자 남성들의 최고 운동은 활쏘기. 이들이 사용하는 콤파운드 활은 140m 떨어진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린다. ⓒ 이상엽

개는 좀 사나웠지만 부탄 사람은 참으로 순하다. 여행 내내 거리 어디서도 화를 내며 고함치거나 경적이 울리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같은 불교 국가인 몽골이나 티베트에도 없는 풍경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들의 국기이자 가장 인기 있는 운동은 활쏘기다. 사실 부탄은 티베트와 인도 사이에서 많은 전화(戰禍)를 겪은 나라다. 또 여러 차례 내전도 있었다. 남성 역시 은근 마초적인 데가 있어 왕년의 액션 배우 스티븐 시걸(Steven Seagal)이 국민 배우로 추앙받던 시절도 있었다. 그가 부탄을 방문했을 때는 불교의 보물을 찾아나서는 탕통겔포의 환생으로 대접받았다고도 한다. 하여간 이 나라 남성은 활쏘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푸나카종(Punakha Dzong) 옆 공터에서 현지 남자들이 활쏘기 대결을 벌이고 있다고 하기에 찾아가 본다. ‘피융!’ 활시위를 떠난 화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날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한데, 과녁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네 활쏘기와 다르다. 멋진 무사 복장을 한 사내들이 편을 갈라 140미터 거리 양쪽에 과녁을 세우고 서로 화살을 날리고 있는 것이다. 내 눈에 과녁은커녕 세워둔 나무판자도 잘 보이지 않는데 저걸 맞힌다고? 이들은 전통적인 대나무 활 대신 비싸고 좋은 탄소섬유 재질의 콤파운드 활(날개 양쪽 끝에 도르래가 달린 활)을 쓴다. 다시 화살이 날아 온다. ‘피융!’ 사람들은 과녁 근처에서 재미있다며 구경한다. 나로서는 식은땀이 나는 풍경이다. 조금이라도 과녁에서 벗어난다면 객지에서 황천길로 갈 것만 같다. 이번 화살은 과녁을 조금 벗어났는지, 활을 쏜 궁사가 춤을 추며 상대편을 놀린다. 이야! 이건 오랜 전쟁의 산물이야.


'피융!' 사람들은 과녁 근처에서 재미있다며 구경한다.
화살이 과녁을 조금 밖에 안 벗어났는지
활을 쏜 궁사가 춤을 추며 상대편을 놀린다.


한참을 돌아다니니 역시나 배가 고프다. 여행은 먹고 자는 것이 만족스러우면 나머지는 고단해도 참는다. 이곳은 살생이 금지된 불교의 나라. 그렇다면 고기 없이 채식만 해야 한다는 것일까? 부탄에는 도축장이 없다. 하다못해 강가에 나가 물고기를 잡는 것도 불법이다. 하지만 식당에는 있다. 돼지고기도, 닭고기도, 생선도. 가이드 쯔링이 말한다. “전부 인도에서 수입하는 거예요. 그래도 이 부탄산 아스파라거스 어때요? 유럽인은 비싼 거라고 무척 좋아하는데.” 나는 매일 모든 끼니에 아스파라거스를 씹어야 했다. 평생 먹을 것을 이 여행 동안 모두 먹어치운 듯했다. 사실 그것 말고도 나머지 음식 종류 역시 10여 가지가 넘지 않는 것 같다. 무척 소박하다. 게다가 비료도 농약도 없는 완전 유기농으로 재배한 것이다. 농촌 국가에서 사치스러운 음식은 오히려 나를 불편하게 했으리라. 나는 집에서도 늘 즐기던 고사리가 이곳에서도 여전한 맛이기에 다만 행복했다. 오래전, 팀푸에 앞서 부탄의 수도였다는 푸나카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행복의 나라, 부탄 여행 두 번째 이야기

부탄 여행 노하우



론리플래닛 매거진 코리아와 함께 최고의 여행을 만나보세요.

▶ 론리플래닛 코리아 웹사이트

▶ 론리플래닛 코리아 페이스북

작가의 이전글 땅에 깃든 이야기, 전북 김제 여행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