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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더로드 Aug 08. 2017

아일랜드 로드 트립


대서양에 맞선 압도적인 자연. 굴곡진 역사 속에도 유쾌한 정서가 흐르는 곳. 아일랜드를 가로지르는 길을 따라 더블린부터 딩글까지 끝에서 끝으로 떠나다.





THE WAY TO SEE IRELAND

아일랜드 로드 트립




DUBLIN 더블린의 밤

금요일 밤 자정, 더블린의 템플 바(Temple Bar)는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뭉툭한 돌이 깔린 골목에는 인파가 줄지 않고, 자전거 인력거는 술과 흥에 취한 이들을 힘껏 실어 나르고 있다. 줄지어 서 있는 펍이 내뿜는 조명에 물기 어린 바닥이 반짝인다. 이곳에 모인 이들의 행동은 한결같다. 맥주잔을 들고 큰 소리로 잡담하거나, 담배를 들고 큰소리로 잡담하거나. 그게 아니면 맥주잔과 담배를 들고 큰소리로 합창하거나. 템플 바는 세계에서 가장 과대 평가된 여행 명소라는 오명도 듣지만, 그게 무슨 대수 랴. 이곳은 18세기부터 더블린 유흥의 중심이었는데. 그리고 이제는 주말마다 유럽 각지에서 저비용 항공을 타고 날아온 여행자의 해방구로 이름값을 이어가고 있는데.


더블린 나이트라이프의 중심 템플 바. ⓒ 이한구
더블린의 리피 강. ⓒ 이한구

“치어스!” 1840년부터 영업을 했다는 더 템플 바(The Temple Bar) 펍 입구에서 한 젊은이가 갑자기 맥주잔을 내민다. “어디에서 왔어? 난 베를린에서 왔는데! 오, 더블린은 정말 미친 곳이지. 이번 주말에 신나게 놀 작정이야!” 그러고는 주변 친구들과 다시 건배를 외친다. 유럽 나이트라이프의 권좌를 다투는 독일 베를린도 더블린에 비해서는 따분한가 보다. 단 2잔의 맥주를 마시는 동안 독일, 네덜란드, 프랑스, 모로코, 영국에서 온 여행자와 잔을 부딪친다.


바 안에서는 남녀 듀엣이 어쿠스틱 기타를 힘차게 연주하며 라이브로 열창 중이다. 좁은 무대를 둘러싼 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드높여 따라 부른다. 마치 모두 템플 바 스퀘어의 버스커가 된 듯이. 한바탕 빌보드 차트를 휩쓸었던 곡들이 멜로디처럼 계속된다. 이윽고 벤 E. 킹(Ben E. King)의 ‘스탠 바이 미(Stand by Me)’가 끝나자 관객들은 성대하게 함성을 지르더니 또다시 술을 들이켠다. 흑맥주 기네스가 넘쳐흐르고,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가 걸어 다니며, 그룹 유투(U2)의 음악이 흐르는 도시가 바로 여기 더블린이다.


왼쪽부터 오코넬 거리(O’Connell Street)에 서 있는 제임스 조이스 동상, 더블린 문학인과 언론인의 아지트이던 더 팰리스 바는 빅토리아 시대 양식의 실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 이한구


“템플 바는 아일랜드에서 맥주를 가장 비싸게 파는 동네입니다. 보통 1잔에 7유로가 넘죠. 그래서 더블린 토박이는 잘 가지 않아요. 여기는 1잔에 5유로죠.” 1823년에 문을 연 더 팰리스 바(The Palace Bar)에서 P. J. 머피(P. J. Murphy)가 말한다. 그는 마치 영화 <백 투 더 퓨처>의 브라운 박사를 닮았는데, 아일랜드에서는 꽤 알아주는 제임스 조이스 전문가이자 독특한 문화 공간 스위니(Sweeny)의 운영자이며, 여행 가이드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주중 오후의 더블린은 여느 대도시와 다를 바 없다. 노동의 시간에 맞춰 삶이 돌아간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자 사람들이 비를 피해 하나둘 바로 들어온다. 곧 이어 바텐더와 자연스레 인사를 한 후 거품이 1.5센티미터쯤 오른 파인트 사이즈 맥주잔을 받는다. 수백 일간의 반복 훈련을 거친 듯,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럽다.


빅토리아 시대 양식을 완벽히 간직하고 있는 더 팰리스 바는 20세기 중반까지 아일랜드 작가와 언론인의 아지트였다. 탐낼 만한 작품의 소재나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드는 기삿거리를 찾는 곳. 오늘, 멋진 천장을 갖춘 안쪽 홀에서는 노신사들이 아이리시 위스키잔과 맥주잔을 들고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천장 유리를 통해 옅은 빛이 스며들고 먼지 알갱이가 떠돈다. 50년 전 발행된 지역신문에 실려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장면이다. 벽에는 제임스 조이스,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 플런 오브라이언(Flann O’Brien) 등 이곳을 찾은 유명 작가의 초상이 걸려 있다. 하나같이 괴팍한 표정에 눈빛이 번득인다. 머피가 바를 채운 손님과 초상화를 보며 말한다. “더블리너의 특징요? 더블린 사람들은 술 마시고 노래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죠. 상대방의 눈을 보며 자주 웃기도 하고요.” 반박이 필요 없는 설명이다. 주말의 템플 바와 위대한 작가를 안다면 말이다. 조이스가 묘사한 더블린 사람들은 음울하고 속물적이면서, 삶의 유희를 놓지 않았다. 천박한 유희라도 그것이 어쩌면 진솔한 삶의 모습이 아닐까. 어느새 손에 든 파인트가 바닥을 보인다. “1잔 더?” 머피가 묻는다. 자주색 나무로 짠 바 뒤쪽 선반에 일렬로 놓인 ‘더 팰리스 바’ 아이리시 위스키가 눈에 들어오고 만다.





CORK 코크 인민공화국?

가니시 하우스의 깔끔한 아침 식사. ⓒ 이한구

“방에 짐을 두고 내려오세요. 티와 빵을 준비해놓을 테니까요.” 코크(Cork) 가니시 하우스(Garnish House)의 웰컴 티는 다정하고 달콤하다. 작은 식탁 위에는 티와 스콘, 브라우니 그리고 잼과 버터가 깔끔하게 차려 있는데, 그중 베이커리와 잼은 이 B&B에서 직접 제조한 것이다. 잡지 화보의 조명처럼 스콘과 브라우니에 오후의 햇살이 드리우고 있다. 설탕을 살짝 뿌린 브라우니와 노릇노릇하게 구운 스콘은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운다. 참지 못하고 스콘 1조각을 떼어 사과잼을 담뿍 바른다. 한입 먹을 때마다 감탄이 나올 수밖에 없는 거의 완벽한 맛이다.


아일랜드 남서부에 자리한 도시 코크는 오늘날 아일랜드 미식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는 분위기다. 더블린 못지않은 풍부한 문화를 자랑하며, 전반적으로 유쾌한 활기가 도시에 퍼져 있다. 화창한 주말에는 너도나도 거리로 나와 버스킹을 보다가 먹고 마시며 즐긴다.


생선 가게 코코넬의 주인 펫 오코넬이 거대한 아귀를 들고 있다. ⓒ 이한구

사실 아일랜드의 역사를 논할 때 코크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코크 사람들은 이곳을 아일랜드의 ‘진정한 수도’라고 부른다. 혹은 ‘코크 인민공화국’이라는 대범한 별명도 붙인다. 바로 독립과 투쟁이 뒤얽힌 아일랜드 근대사의 주요 무대였기 때문이다. 이 무대를 휘저은 주역으로는 마이클 콜린스(Michael Collins)가 있다. 그는 코크 출신으로, 1916년 부활절 봉기에 등장한 아일랜드 독립 운동의 영웅이며, IRA의 사령관이자 코크의 국회의원이었다. 1922년, 아일랜드 내전하에서 코크는 ‘영국-아일랜드 조약’ 반대파의 본거지였다. 반대파는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주장하며 총을 들었는데, 콜린스가 그 시기에 고향으로 향하다 반대파의 손에 살해됐다. 무장투쟁과 테러를 숙명처럼 받아들이던 때다. 사상의 전향이 인간의 목숨을 좌우하던. 1세기 전 아일랜드 혁명의 시대에는 누구도 거기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노천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꽉 들어찬 지금 코크의 세인트 패트릭 거리(St. Patrick’s Street)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잉글리시 마켓(English Market)에 들어서자 갖가지 식자재가 눈과 코를 자극한다. 19세기 중반부터 빅토리아 시대의 건물에 들어선 시장은 코크의 미식 수준을 보증하는 대리인 같다. 품질 좋은 육류와 생선, 치즈, 채소 등을 자신 있게 펼쳐놓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손님을 맞이한다. 특히 생선 가게 코코넬(K O’connell) 앞에는 유달리 사람이 많다. 2011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방문한 가게로, 당시 영국 왕의 아일랜드 방문은 100년 만의 일이라 전 세계의 관심사였다. 여왕은 코코넬에 들러 아귀를 살펴봤는데, 아일랜드에서는 아귀를 ‘장모’라는 별칭으로도 부른다. 마침 여왕의 아들 윌리엄 왕자가 결혼한 직후였고, 눈치 빠른 언론은 이 일을 대서특필했다. ‘장모 여왕이 100년 만에 장모 생선을 만났네’라는 식으로. “그후 영국 왕실에 생선을 보내기도 했고 여왕의 초대를 받아 버킹검 궁전(Buckingham Palace)에 간 적도 있죠.” 코코넬의 주인 팻 오코넬(Pat O’Connell)이 말한다. “궁전은 그냥 그랬어요… 하하! 농담이고요. 정말 제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이었죠. 모두 매우매우 저에게 친절했어요.”


매일 밤 아일랜드 전통 음악 라이브가 펼쳐지는 펍 신에. ⓒ 이한구

리강(River Lee)을 따라 여무는 코크의 저녁은 역시 펍으로 마무리된다. 번쩍이는 발효 설비를 갖춘 마이크로 브루어리부터 업스케일 인테리어를 뽐내는 가스트로 펍, 땀과 열창이 난무하는 라이브 펍 등 이곳은 역시 더블린 못지않다. 다른 점이라면, 기네스보다 머피스(Murphy’s)를 자주 마신다는 것 정도.


그중 1889년 영업을 시작한 펍 신에(SIN É)에는 여간 발을 들여놓기 쉽지 않다. 좁은 실내의 바는 애초부터 노령의 터줏대감이 차지하고 있다. 그 안을 비집고 들어가면, 어디에선가 낯선 음악이 들려온다. 3인조 밴드가 테이블 좌석에 앉아 진지하게 연주에 몰두하고 있다. 신에는 진짜 아일랜드 전통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펍으로, 벌써 50년 넘게 전통 음악 라이브를 선보여왔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촌스럽다고 치부되던 음악이 이제는 다시 주목받고 있는 상황. 일리언 파이프(Uilleann Pipe, 아일랜드 전통 백파이프)에서 가녀린 음이 나와 공간을 채우고 펍의 관객들은 눈을 감은 채 그 선율을 좇는다. 그 파이프 선율 너머로 맺어진 끈끈한 유대가 독립운동 이전부터 이어지는 듯하다.




글. 태우       사진. 이한구




링 오브 케리&딩글 로드 트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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